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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16.09.10 00:01
최근연재일 :
2017.06.21 00:1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51,294
추천수 :
7,047
글자수 :
29,660

작성
16.09.10 00:07
조회
7,855
추천
75
글자
10쪽

Prologue.

DUMMY

“여보세요.”

[뭐해?]

“집에 가지.”

[소주 먹자.]

“너 어딘데? 편의점?”

[응.]

“갈게.”

[명한이도 부른다?]

“걔는 잘 텐데?”

[깨워야지.]

“야. 그건 좀···.”

[이따 봐!]


우진은 휴대폰을 접으며 고개를 들었다. 흐리지도 않은데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은 그가 원하던 풍경이 아니었다.

이윽고 전화가 울렸다.


“명한이냐?”

[너네 아직도 집에 안 갔냐?]

“알바 방금 끝났다. 아리가 전화했냐?”

[그래. 아무리 술이 땡겨도 자는 사람을 깨우냐고.]

“미안하다.”

[네가 뭘. 내가 미안하지. 잘게.]

“그래. 자라.”

[술 적당히 마셔.]

“알았다.”


명한은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일어나서 출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새벽 1시 40분.

아리는 명한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명한도 화를 못 내는 것이리라.


우진은 문득 등에 멘 기타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도 결국 그것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이 시간에 만날 친구 있다는 건 다행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


우진과 아리는 아리의 일터가 아닌, 다른 편의점의 파라솔 앞에 마주앉았다.


“넌 좋겠다?”

“···.”

“살 빠진 것 같은데? 비결이 뭐야?”

“우리 이틀만이다. 살 빠지기는.”

“아이씨. 다이어트 비결이 뭐냐고!”

“이게 다이어트냐? 그냥 마르는 거지.”

“노래하면 마르나? 나도 노래나 할까?”

“해. 너 노래 잘하잖아.”

“내 노래 누가 듣기나 한대?”

“···.”


한 잔밖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아리는 취한 듯 흐느적댔다.


“뭔 일 있었냐?”

“우리가 뭔 일 있어야 만나?”

“···.”

“이거 먹어.”


우진은 아리가 건넨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을 먹고 소주 한 잔을 넘겼다.


“오늘은 진상 없었어?”

“늘 있지. 엉큼한 아저씨가 둘이나 왔어.”

“조심해라.”

“됐거든? 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데 뭐.”

“그래서 더 무서운 거잖아.”

“그치? 넌 나한테 안 잘하는데 안 무서운 거 보면.”


우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이럴 거면 술을 마시지 말라고!”

“···.”


푸르딩딩한 파라솔 위에 물 먹은 휴지처럼 축 늘어진 아리 앞으로 빈 소주병과 과자 부스러기, 먹다 남은 삼각김밥이 놓여 있었다.

아리의 주량은 소주 반 병.

우진은 혼자 더 마실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일어나. 가자고! 어?”

“···.”

“하아아.”


우진은 아리를 부축하여 억지로 잡아 일으키고 기타를 들었다. 텁텁한 여름밤에 공연과 아르바이트로 피로가 쌓인 몸으로 아리까지 데리고 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아리는 납치당하듯 우진에게 질질 끌려갔다.


“차라리 빨리 취하는 게 낫나? 돈도 없는데 술만 센 것보다야···.”


우진의 혼잣말 때문일까. 아리가 깨어났다.

귓전에 달착지근한 입김이 닿았다.


“우진아.”

“어? 깼냐?”

“업어줘.”

“···뭐?”

“우진 씨! 저 업어주세요! 응?”

“야! 너···.”


결국 우진은 아리를 또 업어야 했다.

대안은 늘 없었다.




“어휴!”


우진은 아리를 침대에 내려놓고서야 허리를 폈다.

아리가 사는 원룸이 편의점에서 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리라.


“너 빨리 남친 만들어라. 아주 죽겠다.”

“아우웅!”


아리는 흐느적대는가 싶더니 금세 잠들었다.

우진은 아리의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준 후 원룸을 나왔다.


띠딕,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자동으로 잠겼다.

자동 도어락은 우진이 사 주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문을 연 채 자도록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신경 쓰여.”


우진은 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어제인지 오늘인지 알 수 없는 세상. 내일이면 알까. 모레면 알까~”


오후 7시. 우진은 대학로 노천공원 한쪽의 공연장에서 노래했다.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일까. 공연장의 관객은 단 두 사람, 그리고 지나다 멈추고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뿐이었다.


우진은 자작곡 하나와 기성곡 하나를 연달아 부른 후 쓴웃음을 흘리며 기타를 챙겼다.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관객 두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곡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학생이세요?”

“아니요.”


관객 중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내밀었다.

‘기라성 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 전명희’, 그럴 듯한 직함이었다.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은 그에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성함이 어떻게···.”

“서우진입니다.”

“저희 회사에 프로듀서가 필요해요.”

“예.”

“관심 있으면 연락 주세요. 자세한 조건은 회사에 오셔서 협의하고요.”


관객을 가장한 기획사 사람들이 고개를 까딱한 후 뒤를 돌았다.

우진은 고개를 돌렸다. 회사에 와서 협의하라던, 그에 머릿속에 없었던 이름의 기획사들은 다 비슷했다.


“보나마나 지분 사야 들어올 수 있다고 돈 내놓으라겠지. 두 번이나 당했으면 됐다고.”


우진은 기라성 엔터테인먼트의 명함을 휴지통에 던져 넣고 걸음을 떼었다.

호프집에 갈 시간이었다.


***


“누나. 4번에 모튀(모듬 튀김)요!”

“저거 먹고 해.”

“이따가요.”


금요일 저녁의 호프집은 늘 바쁘다.

우진은 맥주잔 손잡이를 기울여 잡은 채 생맥주 꼭지를 누르고, 왼손으로는 나무 그릇으로 과자를 퍼 담았다.

거품 높이를 못 맞추어서 닷새나 혼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맛있게 드십시오!”

“저기.”

“예, 손님.”

“당신 아까 대학로에서 노래하던 사람 맞지?”


서른 어간의 남자는 이미 술에 취해 있었다.

남자의 맞은편에는 단정한 생머리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렇습니다.”

“노래 별로던데.”

“예. 노래 잘 못합니다.”

“그런 데서는 개나 소나 공연하나?”

“···.”

“한 곡 불러 봐.”


단정한 여자가 남자를 쿡 찔렀고, 옆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던 동호가 이 말을 듣고 이쪽으로 왔다.


“예?”

“예는 무슨 예야. 한 곡 뽑아 보라고!”

“···.”


듣다 못한 동호가 남자에게 말했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뭐?”

“아니다, 동호야. ···사장님께 여쭤 보고 오겠습니다.”


우진은 카운터에 자초지종을 말한 후 돌아왔다.


“불러드리겠습니다. 여자 분께서 이쪽으로 앉아 주시지요.”

“아니에요. 미안···.”

“뭐가 미안해? ···너! 신나는 거 뽑아!”

“···소리 지르는 네가! 음악에 미치는 네가!”


우진은 반주도 없이 한 곡을 부른 후 본래의 일로 돌아갔다.

오늘은 그가 아리에게 전화해야 할 날이었다.


***


“네가 웬일이야? 나한테 소주를 다 사고?”

“팁 받았거든.”

“팁?”


서른 어간의 술 취한 남자는 우진에게 “그놈 사회생활 잘하겠네.”하면서 5천원을 주었다.


“넌 배알도 없어?”

“그딴 거 있으면 돈 나오냐?”

“···.”

“바로 써야지. 불로소득이잖아.”

“불로소득? 더러워서 아니고?”

“···.”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소주를 마셨다.

아리는 오늘따라 생각이 많았다.


“우진아.”

“왜?”

“너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나 열심히 했는데. 지금까지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알지?”

“그래.”

“딴 애들은 어학연수도 가고, 하다못해 영어 학원이라도 다니는데. 내가 알바 안 하면 우리 엄마도 병원에서 눈치 볼 거 아냐.”

“하아.”

“나 학교 그만둘까?”

“너는 그러지 마.”

“···.”

“어떻게든 돈 벌어서 복학하고 졸업해야 되잖아.”


할 말이 없을 때면 늘 나오는 레퍼토리.

명한은 대학을 생략했고, 아리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았다. 우진은 실용음악학과를 1년만 다니고 그만두었으니 두 사람의 중간쯤이리라.


“너는 기획사 같은 데서 연락 없어?”

“나도 이 일 그만둘까봐.”

“나는 네 노래 좋던데. 네가 친구라서가 아니라, 노래는 진짜 좋아.”

“그렇겠지. ···노래만.”


우진은 자필 이력서와 자작곡 CD를 들고 수많은 연예 기획사를 드나들었지만, 그가 바라는 연락을 한 회사는 없었다.

다만 한 회사에서 그의 자작곡 중 하나를 사겠다고 연락했고, 얼마 후 데뷔한 신인 가수의 앨범에 그 곡이 수록되었다. 작곡가는 그 가수의 이름이었고, 우진에게는 50만 원이 던져졌다.


“너도 좀 아깝긴 해.”

“···.”

“오디션이라도 나가 봐. 지금 CBC에서 참가자 모집하던데.”

“내가? 큭!”


아리에게 있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졸업이라면, 우진에게 있어 그런 일은 노래였다.

대학로 공연장에서 작곡가로 인정받는 우진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래해도 그는 작곡가일 뿐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었다.

물론 그 역시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우진은 최근 2년간 방송했던 모든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웃음은 자괴감이었다.


“팀 만들어 봐. 공연장에 노래 잘하는 사람 있을 거 아냐?”

“그 사람들은 다 팀 있어.”


아리는 말없이 한 잔을 더 마셨고, 또 주량에 도달했다.

우진은 또 아리를 부축하고 질질 끌고 갔고.


“우진 씨. 어부바! 어부바 해 주세요!”

“···어휴! 덥다.”


대안은 또 없었다.


아리와 맞닿은 우진의 등은 땀범벅이었다.

새벽 3시가 넘은 도심의 거리에는 나른한 불빛만 비추었고, 드문드문 지나는 사람들은 아리를 업은 우진을 힐끗거리며 지나쳤다.

우진은 ‘파이팅’이라고 말하는 듯한 남자들의 눈길이 불편했다.


‘아 진짜! 얘 이거, 내가 이런 거 아니라고요!’


우진은 마음속으로 절규하며 길을 걸었고, 머지않아 아리의 원룸에 도착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를 침대에 내던졌다.


잠든 아리의 얼굴이 “네가 언제 나만큼 예쁜 애 업어보겠어? 어?”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신경 쓰인다니까.”


우진은 방을 나가려다 멈칫했다.

아리의 노트북이 펴 있었는데, 키를 건드리니 화면이 밝아졌다.


“야. 나, 뭐 하나만 검색할게.”

“···.”


아리는 조그맣게 코까지 골고 있었다.

우진은 브라우저를 켜고 검색창에 커서를 갖다 댄 후 ‘C-POP Artist’라고 입력해 보았다.

CBC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름은 <C-POP Artist season 3>였다.


작가의말

이 작품도 엄밀히 말하면 판타지입니다.


현실적이려고 노력하지만, 현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배경은 2016년 서울이지만, 지명이나 장소, 등장하는 회사 등은 실제 우리가 사는 시공간과 무관합니다.


어쨌든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 작성자
    Lv.6 vl******
    작성일
    16.09.14 23:29
    No. 1

    재밌어요

    찬성: 0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16.09.15 17:41
    No. 2

    피에트로님! 감사합니다.
    처음 시도하는 장르라 부족하지만 열심히 쓰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지팡
    작성일
    16.10.18 19:31
    No. 3

    선작
    달려볼께요

    찬성: 0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16.10.19 00:36
    No. 4

    지팡님!
    프롤로그에 댓글 주시고 마지막 편에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99 가디아
    작성일
    16.11.08 01:36
    No. 5

    노래만 판것도 아니고 작곡가 이름이 데뷔한 가수이름으로 나왔다면 저작권까지 팔았다는건데 그러면 50만원은 너무 작은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찬성: 0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16.11.08 18:15
    No. 6

    가디아님! 먼저 감사합니다.
    사실 저 거래는 불법이고, 금액으로도 형편없는 거죠.
    그냥 돈이 없어서 저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감사해요~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90 흔남31
    작성일
    16.12.13 01:46
    No. 7

    만류귀종이라... 십년간 써온 글들이 배신하지않은것이 확실합니다. 읽으면서 즐거운 글을 또 하나 찾았네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20 진사로
    작성일
    16.12.13 14:20
    No. 8

    무협 작가로 가는 것이 제 꿈이라, 만류귀종은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훈남25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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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Fantastic Ending. <오디션(Audition)>을 떠나보내며 +8 17.06.21 461 10 8쪽
6 Round 1.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다(2) +2 16.09.15 3,633 74 10쪽
5 Round 1.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다(1) +2 16.09.14 4,769 64 10쪽
4 Preliminaries. 함께(3) +4 16.09.13 3,876 72 11쪽
3 Preliminaries. 함께(2) +6 16.09.12 5,147 76 8쪽
2 Preliminaries. 함께(1) 16.09.11 5,191 83 9쪽
» Prologue. +8 16.09.10 7,856 7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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