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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의 서재입니다.

오디션(Au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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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로
작품등록일 :
2016.09.10 00:01
최근연재일 :
2017.06.21 00:1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51,296
추천수 :
7,047
글자수 :
29,660

작성
16.09.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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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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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11쪽

Preliminaries. 함께(3)

DUMMY

비스듬히 기운 태양이 이쪽으로 내리쬐는 오후.

우진과 아리는 ARS 1차 예선을 통과한 후 2차 예선 장소인 축구 경기장에 나왔다.

두 사람의 배에는 ‘36-29’라고 쓰인 종이가 붙었다. 36번 부스에서 29번째로 노래한다는 뜻이었다.

아리는 <C-POP Artist>에서 나누어 준 팜플렛을 한동안 보았다.


“우승할 가능성도 없는데 혜택은 무슨.”

“또 알아? 우승할지?”

“됐다.”

“근데, 우리나라에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어?”

“부스 예선에 올라온 팀만 4천쯤 된대. 서울이 2천 팀이고, 다른 대도시에도 수백 팀씩 있고.”

“20만 명이 참가한다더니, 1차 예선에서 거의 다 떨어진 거네?”

“그렇겠지. 여기서 200팀 정도 올라간대.”

“그럼 본선 올라가는 것만 천 대 1이야?”

“응.”


축구 경기장의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참가자들이었고, 경기장 내부에는 50여 개의 부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여기 앉은 사람들은 벌써 50대 1의 경쟁률을 뚫었고, 본선에 올라가려면 또 20대 1의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

아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니 음악을 그만두려는 우진의 무게가 새삼 실감났다.


햇볕과 그늘의 경계선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아리가 양산을 펼치며 우진에게 말했다.


“여기 들어와.”

“싫어. 더 더워. 그리고 너, 말 많이 하지 마.”

“왜?”

“우리 팀 메인보컬 목 상한다.”

“치잇!”


이윽고 36번 부스의 인솔자가 이들을 불렀다.


“20번대 참가자 분들 내려갈게요.”

“야! 가자.”


우진과 아리 등 10개 팀은 부스와 가까운 별도의 장소로 안내되었다.

한 사람이 인솔자에게 물었다.


“작가님! 화장실 갔다 와도 돼요?”

“주의사항부터 듣고 가세요. 그리고 저는 그냥 알바예요.”


아르바이트생 인솔자는 20번대 참가자들에게 부스에서의 주의사항을 전달했고, 참가자들은 그것을 들은 후 지정된 장소에 앉아 대기했다.

아리는 화장실에 갔다가 인솔자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저 알바는 시급이 만 원인데, 점심 먹을 시간은 없고, 대신 점심값 5천 원 준대.”

“그 정도면 한 끼야 건너뛰어도 되지. 부럽다.”

“저런 알바는 어떻게 찾는 거지? 사이트에 올라오지도 않는데. 물어봐도 안 가르쳐주던데?”

“알바도 무슨 등급이 있나···.”

“아유! 되게 긴장되네.”

“너 긴장 별로 안 하잖아.”

“이건 완전 달라.”

“그럼 연습이나 한 번 할까? 긴장될 때는 연습하면 나아져.”

“여기서 어떻게 노래를 불러?”

“음 안 내고 소곤소곤 하면 돼. 가사 기억하고 파트 확인하고 리듬감 유지하는 거지.”

“그래.”


우진과 아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노래를 속삭이며 순서를 점검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순서가 왔다.


“29번 팀 들어갑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네.”


반대편에서 본 부스는 한쪽 면이 터진 상자였다. ‘C-POP Artist’ 로고가 새겨진 바닥이 참가자가 노래하는 곳이었고, 맞은편에는 카메라 한 대와 한 남자가 있었다.

우진이 먼저 자리에 앉아 기타를 잡은 후에야 아리가 앉았다.

카메라 옆 남자가 말했다.


“준비됐어요?”

“네.”

“시작할게요. ···3, 2, 1, 큐!”


사인과 함께 순정남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프로젝트 혼성 듀엣 ‘순정남녀’입니다.”

“저는 프로듀서 서우진.”

“저는 메인보컬 매아리예요.”

“저희가 부를 노래는.”

“자작곡 <조별과제>입니다.”

“잘 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우진의 리드미컬한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가 시작되었다.




<조별과제>


[못해 먹겠네 진짜 못해 먹겠네]

우리 조원은 다섯 명인데

마감 사흘 남았는데 둘이 [톡을 안 받고]

하나는 몸살 땜에 못했다고 [미안하다네.]


[동기야] 몸살은 2주 동안 걸렸니?

[선배님] 군대에서 다 공부했다고 폼 잡으시더니,

정작 폼 잡으라니까 잠수 타세요?

[후배야] 너는 죽었니 살았니?


[못해 먹겠네 진짜 못해 먹겠네]

둘이 겨우 다 준비해서

발표 마치고 칭찬 들었더니

인사한 사람은 다섯이었네.


교수님 메일 좀 읽으세요.

안한 애들 학점 주지 마시고요.

차라리 개인 과제 주시든가 시험으로 해 주세요.

채점도 어차피 교수님이 안 하시잖아요

[이 노래도 어차피 안 들으시겠죠.]


※ [ ]는 합창, 나머지는 아리의 독창




“감사합니다.”


우진과 아리가 동시에 인사하며 말했다.

맞은편 남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를 슥슥 적은 후 둘을 보았다.


“노래 재미있네요. 잘 만들었고요.”

“감사합니다.”

“화성은 참신하지도 않고 올드하지도 않고, 무난하다고 해야 하나? 특히 가사가 재미있고, 리듬에 신경 많이 썼고, 두 사람 다 가사 전달력이 나쁘지 않네요. 듣기 좋았어요. 대신, 다음 노래부터는 실험적인 화성도 생각해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여자 분 이름이, 아리 양이랬죠?”

“네.”

“뮤지컬 쪽 발성이 있네요?”

“네. 대학교 연합 뮤지컬 동아리에서 2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그럼 공연 경험도 있겠고요?”

“뮤지컬 동아리 때 오지 재능기부 공연을 했어요.”

“저는 대학로 노천공원에서 자주 공연했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감정 표현이 잘 되네요. 그런데 아리 양.”

“네.”

“이 노래는 아리 양의 발성에 많이 맞추어졌어요. 그래서 티가 잘 안 났지만 다른 노래, 특히 고음 많은 노래를 부를 때는 힘을 더 뺐으면 좋겠어요.”

“새겨듣겠습니다.”

“그리고 노래는 아리 양이 거의 다 했는데, 이유가 있어요?”

“제가 아리보다 가창력이 떨어져서입니다.”


우진의 답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우진을 보았다.


“이 오디션 때문에 팀으로 뭉친 거예요?”

“예.”

“처음 치고 화음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독창이 힘들면 합창이라도 더 넣으세요. 혼성 듀엣만 낼 수 있는 화음을 살리면 돼요. 같이 노래하는 파트를 많이 넣으면 한쪽이 부족해도 어느 정도는 희석될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남자는 이 말까지 한 후 카메라를 멈추었다.


“수고했어요. 부스 참가자 대기 장소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진과 아리는 남자에게 인사하고 부스를 나와 대기 장소에 앉았다.


“고생했어.”

“응.”

“저분은 내 이름은 묻지도 않으시네.”

“풉! 기억하신 거 아니야?”

“그럴 리가. 그나저나 저분한테 명함이라도 한 장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왜?”

“기획사 프로듀서면 허드렛일이라도 시켜 달라고···.”

“그런 거 물으면 안 된댔어.”


사실 우진은 좀 답답했다. <조별과제>에 대한 남자의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극찬이라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은 36번 부스 참가자 중 가장 길게 평가받은 팀이 자신들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리야.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응.”


유난히 후텁지근한 8월 초의 한낮.

우진은 얼굴에 찬물을 연거푸 끼얹었다. 시원함은 잠깐 뿐,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워졌다.


“휴우. 덥네.”


우진은 한동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땀 맺힌 아리의 얼굴이 겹친 듯했다.

그는 손수건에 찬물을 적신 후 대기 장소로 돌아왔다.


“야. 서우진! 빨리 와!”

“어?”


아리가 급한 듯 그를 향해 손짓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나가고 있었다.


“우리 붙었대. 합격이라고!”

“뭐?”

“29번 팀. 6번방으로 가세요!”

“네! 지금 갈게요.”


36번 부스에서 오디션을 본 39개 팀 중 합격한 팀은 세 팀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곧바로 본선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본선에 진출할 팀은 지역별 예선이 모두 끝난 후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네.”

“아까 그분이 좋게 봐 주셨으면 좋겠는데. 옷이라도 예쁘게 입을 걸 그랬나?”

“잘 입었구먼.”


기나긴 복도를 걸어 6번방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시원함을 느끼며 얼굴을 폈다.

서른 어간의 여자가 이들을 뚫어지게 보았다.


“듀엣이에요?”

“네.”

“이거 쓰고, 사진 붙이고, 신분증이랑 같이 주세요. 동의서 잘 읽고 서명하고, 연락처는 꼭 다시 확인하고요.”


여자가 건넨 것은 참가 신청서와 참가자 동의서였다.

참가 신청서에는 인적사항과 지원 동기, 선호하는 기획사, 다른 대회 참가 및 수상 경력,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등을 적게 되어 있었다. 참가자 동의서에는 저작권 관련 내용이나 가족에 대한 촬영 동의여부, 다른 기획사와의 계약 문제 등에 대한 주의사항이 있었다.


우진과 아리는 여자의 안내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고 사진을 붙인 후 연락처까지 세 번 확인했다.

여자는 둘의 서류를 여러 장으로 복사한 후, 사본 한 부와 자신의 명함을 우진에게 주었다.


“본선 1라운드는 자유곡 2개예요. 미리 준비하세요. 그런데 아직 본선 진출이 확정된 건 아니에요.”

“예.”

“본선 진출 여부는 2주 내로 문자로 갈 거고, 탈락해도 문자는 가요. 궁금한 거 있으면 거기로 전화 주세요.”

“예.”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일은 인터넷이나 SNS에 올리지 마세요. 지인들에게도 얘기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우진과 아리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참가자 동의서에 명시된 의무였고, 둘 다 SNS를 하지 않는데다가 여기 참가한다는 사실을 아는 지인이라고는 명한뿐이었다.


“순정남녀 팀. 수고하셨어요. 가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6번방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아! 여기는 시원하다.”

“운동장보다야 낫지.”

“나가기 싫다.”

“잠깐 쉬었다 갈래?”


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에 앉았고, 우진은 자판기에서 오렌지 주스를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


“너는?”

“난 별로.”

“그럴 거면 그냥 자판기 커피나 뽑지.”

“더운데 뜨거운 걸 마시자고?”

“···.”

“너 오렌지 주스 좋아하잖아.”

“나만 먹으라고?”

“너, 순정남녀일 때는 돈 쓰지 마.”

“···!”

“한 푼이라도 쓰면 나, 다시는 너 못 볼 거야.”

“왜?”

“미안하니까.”

“···.”

“나 혼자였으면 100% 여기서 떨어졌을 걸?”

“···알겠어.”


49-2, 13-33, 6-6 등 다른 합격자들이 이들을 힐끗거리며 지나갔다.

아리의 얼굴이 아주 잠깐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이참에 10년 동안 너한테 쌓였던 거 다 받아야겠다.”

“원하는 거 뭐든지 얘기해.”

“나중에.”

“그래.”

“가자.”


두 사람은 어둑어둑한 복도를 나와 늦은 오후의 삶으로 돌아갔다.

아리는 8월 초의 햇볕에서 가을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작가의말

※ <오디션>은 파트별 분량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 추석 연휴에도 월~토에는 연재합니다.


내일부터 연휴지요..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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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ound 1.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다(1) +2 16.09.14 4,769 64 10쪽
» Preliminaries. 함께(3) +4 16.09.13 3,877 72 11쪽
3 Preliminaries. 함께(2) +6 16.09.12 5,147 76 8쪽
2 Preliminaries. 함께(1) 16.09.11 5,192 83 9쪽
1 Prologue. +8 16.09.10 7,856 7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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