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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의 서재

유언 그리고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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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eL
작품등록일 :
2019.11.24 01:08
최근연재일 :
2020.02.03 16:18
연재수 :
1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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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8,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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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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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죽음(6)

DUMMY

검과 검이 부딪쳤다. 은색과 백색 검이 서로를 쳐냈고 적과 백의 마력이 상대를 잡아먹었다. 검과 마력의 싸움. 지근거리 속에서 치열한 박투가 펼쳐졌다.

짧은 호흡 속에 날카로운 검격이 섞인다. 힘을 겨루기에 물러남은 없었고, 맞부딪친 무기는 비켜설 줄 몰랐다.

--챙!

한 번의 소리에 수많은 변화가 담긴다. 밀고, 당기고, 흘리고, 가두고. 힘과 자세, 무게와 마력. 논리가 아닌 물리의 싸움, 현란한 기교가 펼쳐졌다.

“역시 주인의 적이 될만한 존재군.”

검을 쳐내며 하인켈이 말했다. 그의 말에는 진실 된 감탄이 섞여 있었다.

소환수가 되었지만, 검에서 일가를 이뤘던 그의 실력은 결코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불멸의 존재가 되면서 생긴 시간으로 인해 그의 실력은 더더욱 늘어갔다.

범인은 볼 수 없고, 천재는 볼 수만 있다. 천재이면서 한계에 다다른 검사만이 그의 검을 이해해 맞받아칠 수 있었다.

하지만 세리아는 그의 검을 따라오고 있었다. 마법사이기에 전문적으로 검을 쓸 필요가 없음에도 그녀의 실력은 그를 상대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검을 연습했나?”

“클루엘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녀의 창술을 막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오로지 주인과 대적하기 위해서? 좋은 스승이라도 있었나 보군.”

세리아는 침묵한 채 한 걸음 물러났다. 반 박자 늦게 하인켈의 검이 그녀의 목을 스쳤고, 날카롭게 갈라진 공기가 그녀의 목을 베었다. 상처를 따라 피가 흐르며 붉은 선이 흘렀다. 피했음에도 검압만으로 상처를 낼 수 있는 속도. 예측하지 않았으면 이유도 모른 채 목이 베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난 공격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틈이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세리아는 발을 구르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마력을 둘러 속도를 높였다. 순간 가속, 평균보다 네 배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하얗게 타오르는 검은 한 줄기 섬광이 되어 그의 심장으로 쏘아졌다.

---!

시간을 잘라낸 듯한 찌르기, 한 줄기 잔상을 남긴 채 하얀 검이 심장을 찔렀다.

검을 타고 피가 흘렀다. 새빨간 피는 전투의 열기로 인해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끈적한 피가 혈조를 따라 손잡이까지 흘러내렸다. 세리아는 피를 토했다.

“어떤가. 내 검은 괜찮은가?”

하인켈은 웃으며 기침을 했다. 터져 나오는 숨결에 핏방울이 섞여 있었다. 마음이 통한 듯 둘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두 검이 서로의 심장에서 빠져나왔다.

상처 난 가슴을 붙잡으며 세리아는 비틀거렸다. 몸에 난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마법사인 그녀에겐 심장의 상처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감정을 통해 되살아난 마법사는 영혼을 통해 몸을 구성한다. 그리고 혼은 물리를 초월한 논리적 개념이다. 따라서 혼을 통해 구성한 마법사의 신체 또한 논리의 결합이다.

눈이 보는 것을, 귀가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마법사의 심장 또한 무언가를 의미했다.

생명을 담당하는 심장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부활하게 된 이유인 감정, 따라서 심장을 다치는 것은 그들의 감정이 오염되는 것을 의미했다.

감정의 오염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의 상실이다.

죽고 부활했기에 변화할 수 없는 마법사는 순수를 잃는 순간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다. 그리고 순수를 잃고 혼돈이 된 이들은 모두가 그토록 혐오하는 마물이 된다.

그렇기에 세리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상처를 덮은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은 하얀색 피로 젖어있었다.

변화, 인간의 육신이라면 보일 수 없는 피였다. 이는 그녀의 신체가 변했음을, 순수를 잃었음을 의미했다.

‘마물화!’

그 저주스러운 단어에 사고가 끊겼다. 뜨거운 호흡이 한순간 멈췄고, 심장이 차갑게 굳었다. 등골을 타고 오한이 흐르며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마음속에서 치솟았다. 그녀의 떨림을 본 하인켈이 나지막이 말했다.

“죽음이 다가왔나?”

그의 말에 세리아는 얻어맞은 듯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예전에 했던 다짐을 떠올렸다.

‘이미 각오했었잖아.’

클루엘에게 맞서고자 할 때부터 죽음을 각오했었다. 이제야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해서 충격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차분해진 머리로 그녀는 전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방금 그 반격은 보이지 않았어.’

싸늘하게 식은 정신이 좀전의 공격을 복기했다.

빠름을 넘어선 반격, 전투에 존재하는 박자감 따위를 무시한 공격이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의 검은 심장을 찌른 뒤였다.

찔렸다는 감각마저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나타났었다. 명백히 물리법칙을 초월한 공격, 감각이 따라잡을 리가 없었다.

‘율법?’

마음속에 떠오른 의문을 그녀는 부정했다. 율법을 발동하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율법을 발동하는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일까. 세리아의 고민을 눈치챈 하인켈이 웃으며 말했다.

“고민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네.”

“방금 그 공격 말인가요?”

“그렇다네. 고민한다고 방도가 생기면 이 기술을 익힌 내가 억울해하지 않겠는가.”

하인켈은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자세를 취했다. 검 끝이 심장을 노리며 싸늘하게 빛났다. 하지만 세리아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고, 하인켈은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동요하지 않는군.”

“아까 그 공격은 뭐였죠?”

“기사의 검이라네. 마법사는 할 수 없는 것이지.”

“기사?”

“더 이상 단서는 없다네. 자넨 내 적이지 않은가.”

말을 마친 그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무거운 압력이 둘 사이를 메웠다. 세리아는 이를 악물며 검을 들었다.

‘몸 상태가 심각해. 빨리 쓰러뜨리던가, 도망치던가. 더 이상 시간이 없어!’

한 번 시작된 변화는 멈출 수 없었다. 정화를 통해 유예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요람에게 이데아를 넘겨줘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냥꾼의 존재는 그녀에겐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시선이 꽂혔다. 현은 심장이 멈추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압도적인 기백,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짓누르는 압력이 그곳에 있었다.

붉은 안광이 그를 꿰뚫었다. 영혼에 구멍이 난 듯 그의 전신이 통제를 벗어나 떨기 시작했다. 각오는 재가 되어 바스러졌고, 흩어진 자리엔 공포만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세리아가 그를 구하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었다.

챙!

은빛 대검이 가느다란 성검에 막혔다. 눈앞에서 벌어진 검격에 현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검을 흘린 세리아가 현을 붙잡고 뒤로 던졌다. 바닥을 수차례 구른 현은 간신히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곁에 다가온 그녀는 하인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냥꾼?”

“당신은 성녀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본청 소속 사냥꾼인가요?”

“예.”

그의 끄덕임에 세리아의 얼굴에 안심의 기색이 옅게 스쳤다. 그녀는 현을 보호하듯 그의 앞에 서며 하인켈에게 검을 겨눴다. 현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을 도우러 간 사냥꾼들은 어떻게 됐나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전 사악-클루엘에게 패배해 의식을 잃었었고, 저를 도우러 온 몇몇 사냥꾼들이 저를 서울로 이송하려 했습니다. 다만 그들은 앞의 기사에게 모두 죽었습니다.”

“기사, 클루엘의 마법이군요.”

“예. 당신은 저를 도우러 온 것입니까?”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아는 곁눈질로 현을 쳐다보았다.

세리아는 현에게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마력은 평범했으며, 전투 자세는 그녀가 볼기엔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다양한 속성을 다루는 것과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것 정도만이 도움되리라 생각될 뿐이었다. 하지만 현의 보구를 본 순간 그녀는 모든 평가를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보구는 뭐죠?”

“유언입니다. 사용법은 유언을 듣는 것, 효과는 대상자의 죽음입니다.”

설명을 들은 세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풋내기나 다름없는 사냥꾼이 겁도 없이 그녀를 도우러 왔다고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었다. 현이 들고 있는 보구를 통해서라면 제아무리 풋내기라 해도 그녀를 도울 자격이 충분했다.

그렇기에 현의 설명을 들은 하인켈 또한 긴장을 몸에 둘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한 보구로군.”

“동감입니다.”

하인켈과 세리아는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객체에게 절대적 죽음을 선고할 수 있는 보구를 어찌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그 보구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죠?”

“반드시 유언이 목소리의 형태로 나와야 하는 건 아닙니다. 눈빛, 행동, 혹은 흘린 피마저도 유언이라 인식할 수 있으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게 잘린 신체 부위를 쏨으로써 그 신체 부위에 한정해 죽음을 선고했었습니다.”

육체에서 벗어난 신체는 행동 의사가 없다. 그걸 이용해 신체 부위에서 흘린 피를 유언이라고 인식, 신체에 총을 쏨으로써 영구적인 신체 박탈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불사성과 회복을 모두 봉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금제임과 동시에, 영구적인 전투력 상실을 야기할 수 있는 극독과도 같은 공격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세리아와 하인켈은 오한이 치솟는 걸 느꼈다. 보구가 말하는 죽음이란 단순한 물질적 죽음이 아닌 논리적 죽음이기 때문이었다.

논리적 죽음은 종결이다. 풀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끝. 영원한 단절이며 궁극적인 붕괴다.

그렇기에 하인켈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 세상은 참 요지경이군. 누가 저런 걸 만들었는지 참 궁금하구먼.”

“동감입니다. 하지만 그걸 나눌만한 상황은 아니군요.”

서로 걸음을 걸으며 간격을 조정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거리 속에서 둘은 빠르게 젼락을 세웠다.

‘성녀를 무시하고, 저 사냥꾼을 죽인다. 성녀는 어차피 자멸한다. 상처 입더라도 일격에 사냥꾼을 죽이면 된다.’

‘사냥꾼을 지켜야 해. 단 한 번의 기회만으로도 저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어. 두 번은 내 몸이 못 버틸 거야.’

세리아는 허리춤에 멨던 이데아를 현에게 건넸다. 그녀는 현에게 말했다.

“받으시죠. 이데아입니다.”

“이데아?!”

세리아의 끄덕임에 현은 놀라며 이데아를 보았다. 영혼을 잡아먹는 마검, 한때 마법사들이 대륙을 피로 물들이게 만든 원인이 그의 손에 있었다.

“약식으로나마 봉인을 했기에 검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습니다. 율법을 사용하듯 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그녀의 말을 통해 그녀의 전략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몇 번까지 가능하죠?”

“한 번뿐입니다. 제 몸이 좋지 않거든요.”

항상 최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마법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법사에게 거짓말이란 없기에 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분 남았습니까?”

“글쎄요. 그래도 길진 않겠죠.”

씁쓸한 대답, 하지만 절망은 없었다. 오로지 상황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만이 가득했었다.

그렇기에 현 또한 이데아를 쥐며 힘차게 대답했다.

“부탁합니다.”

“네, 그럼 가겠습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둘은 의지를 다졌다.

세리아는 하인켈에게 달려나갔다.


작가의말

게으름 + 바쁨...

죄송합니다. 글도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일정을 빨리 정상화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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