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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의 서재

유언 그리고 운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ClueL
작품등록일 :
2019.11.24 01:08
최근연재일 :
2020.02.03 16:18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782
추천수 :
68
글자수 :
118,297

작성
19.12.15 18:00
조회
106
추천
5
글자
17쪽

2. 운명(Fate)(4)

DUMMY

창문을 통해 건물에서 뛰어내린 세리아는 허공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밤의 장막이 뒤덮은 하늘 아래서 건물 하나가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건물을 가득 채운 불꽃은 창문을 깨뜨리고 외벽을 따라 흘러내렸다. 용암처럼 밀도 높은 불꽃은 피를 마신 듯 검붉은 색을 띠었다. 불꽃에 집어 삼켜진 물건들에서 매캐한 연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불꽃과 어둠이 춤추는 그 모습에 세리아는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불길을 피하지 못한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더 이상 없었다. 쏟아지는 잔해에 깔린 자들은 그들을 덮은 불꽃에 숨을 거둔 뒤였다. 건물의 뼈대까지 태우는 불꽃은 죽은 이들의 무덤마저 앗아가고 있었다.

모든 게 불타 무너지는 재앙 속에서 그녀는 의문을 느꼈다.

누군가가 살아 있다면 그게 더 큰 고통일까, 아니면 모두가 죽은 이 상황이 더 고통일까.

그녀와 상관없는 자들이 죽어갔다. 불타고, 깔리고, 질식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엔 마땅한 당위가 없었다. 단지 그녀가 쫓기다 들어선 건물에 있었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그녀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단지 방해된다는 이유로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불사르는 클루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클루엘을 막을 수 없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누군가가 희생되는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사람이라도 이 재앙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마음속 죄악이 쌓여갔다. 세리아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쏟아냈다.

쏟고 쏟아내며,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쏟아냈다.



바닥에 착지한 세리아는 발에서부터 치미는 고통을 버티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상처 난 온몸이 비명을 질렀으나 아직 멈춰설 때가 아니었다. 과연 그녀의 판단대로 그녀가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있었던 자리에 붉은 창이 날아와 꽂혔다. 충격파가 주위를 터뜨렸고, 아직 멀리 떨어지지 못했던 세리아는 거칠게 튕겨 나갔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른 그녀는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뒤이어 도착한 클루엘이 창에 손을 뻗었을 때가 돼서야 그녀는 간신히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자세를 잡은 그녀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했다. 도주와 전투,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목적은 이데아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었다. 클루엘과 격차가 더욱 벌어진 그녀에겐 도주가 더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둘의 소란이 서울에 전파됐음이 확실한 지금, 이미 적당한 시간을 끌은 그녀는 약속했던 요람의 마법사가 와 그녀를 도울 때까지만 버티면 됐었다.

그 뒤에 요람의 마법사에게 이데아를 건네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다. 인간들에겐 이데아를 들키지 않고, 그녀는 클루엘의 계획을 저지하며, 도시는 멸망으로부터 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도주를 선택해야 했고, 그것이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어.’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 부상당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기천이 넘을 것이었다. 죄없이 죽은 영혼이 원망을 쏟아내는 지금 같은 상황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그땐 또 다른 재앙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럼 맞서 싸우게?’

그녀의 내면이 물었다. 세리아는 입을 다물고 자신을 살폈다.

후들거리는 팔다리는 전투에 들어서는 순간 무너질 것이다. 온몸에 난 상처는 시간을 들여 정화를 거친 뒤에야 치료할 수 있었다. 상처에서 치미는 고통은 날카롭게 세운 정신을 무너뜨리고 있었고, 마음속에 굳게 박힌 죄책감은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암담한 현실, 전투를 하기에는 그녀가 너무나 지쳐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선의 결과로 이끌진 못했으나, 최선을 다해 움직였었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짊어졌었다.

클루엘의 눈을 가리고, 이데아를 훔치고, 추적을 피해 서울로 들어서고, 요람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렸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고, 이제 그 결실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내려진 시련은 그녀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수많은 고통, 수많은 죽음. 열 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는 게 과연 옳은가?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다.

치열한 갈등에 쌓였던 세리아였지만, 결국 상념은 상념일 뿐이었다. 잔혹한 현실은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고, 다가오는 클루엘은 선택을 강요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더 잘 하면 돼. 단 몇 합, 단 몇 분만 묶어도 수십 명을 살릴 수 있어.’

세리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전투라는 선택지를 고른 이상 그녀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둬야 했다.

공격, 방어, 은신, 도주. 갖가지 방향성을 가진 계획이 생기고 지워졌다. 아는 정보를 종합하고, 추측의 가능성을 판단해 적의 행동을 예상했다. 점차 행동의 구심점이 생기고, 각 상황마다 대응할 방법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모든 가능성을 판단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녀는 실낱같은 가능성 하나를 보았다. 상황을 유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도박이나 다름없는 수였고, 실패했을 경우 거대한 재앙이 들이닥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패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 마음 속에 가득찬 확신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세리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알 수 없는 안도감이 그녀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세워뒀던 모든 계획을 지운 그녀는 클루엘을 보고 손을 까딱였다.

“덤비시죠.”

세리아의 도발에 클루엘의 눈썹이 움찔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클루엘은 손에 쥔 창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세리아가 무슨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것을 부술 자신이 있었다. 클루엘은 붉은 마력을 몸에 두르고 걸음을 내디뎠다.

세리아는 성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의지를 받든 검이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생긋 웃은 그녀는 하얀 마력을 몸에 두르고 걸음을 내디뎠다.

침묵으로 상대를 떠보는 때는 이미 지났었다. 망설이지 않고 달려든 둘은 서로의 무기를 휘둘렀다.

검과 창의 충돌음이 불꽃 속에서 퍼져나갔다.



“뿌리를 옭아매는 어둠, 나태한 자의 속삭임, 끓어오르는 피의 노래.”

클루엘은 율법을 외웠다. 완성된 논리가 마력을 연료 삼아 현실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촉수처럼 솟구친 어둠이 세리아를 붙잡았다. 정신에 침투한 속삭임이 그녀의 의지를 약하게 했고, 흘린 피가 들끓어 초열의 고통을 주었다. 검을 휘둘러 클루엘의 공격을 맞받아친 세리아는 거리를 벌리며 대응하는 율법을 외웠다.

“해방의 빛, 구원의 기도문, 성스러운 전사의 축복!”

머리 위에 뜬 빛이 어둠의 촉수를 불태웠고, 마음에 새겨진 기도문이 흔들리던 의지를 강화했으며, 뜨겁게 달궈졌던 피가 성수로 변해 그녀의 상처를 치료했다. 오차 없는 정확한 대응이었고, 덕분에 세리아는 무사히 공격을 파훼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을 파훼한 세리아를 보며 클루엘이 달려나갔다. 세리아는 달려오는 클루엘을 보며 율법을 외웠다.

“성전에 임하는 가시 굴레의 길!”

참아왔던 고통만큼 강력해지는 축복이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다. 지속시간은 짧으나 폭발적인 힘을 선사하는 율법에 달려오던 클루엘은 땅을 박차며 몸을 뒤로 날렸다. 한 박자 늦게 세리아가 클루엘을 쫓았고, 클루엘은 창을 휘둘러 그녀의 추격을 방해했다.

강화된 신체 덕에 세리아는 클루엘의 창을 손쉽게 쳐낼 수 있었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를 보며 클루엘은 생각했다.

추격과 도주를 멈추고 전투를 시작한 지 십 분이 넘었다.

제아무리 방어에 특화된 세리아라 해도 소비된 마력이 적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요 일주일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고통을 원료 삼아 큰 힘을 내는 율법 [성전에 임하는 가시 굴레 길]은 마력면에서 불리한 세리아에게 최선일 것이었다. 다만 율법을 통해 내는 힘을 온전히 신체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었고, 클루엘은 세리아가 그 부하를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곧 마지막이다.’

클루엘은 다가오는 세리아를 보며 생각했다. 시간을 끌면서 율법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모든 게 끝난다.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세리아의 사정을 봐주면서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려던 클루엘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는 세리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소리 없는 어둠 속 발걸음.”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클루엘의 모습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습을 숨긴 클루엘은 세리아의 율법이 끝날 때까지 철저하게 소모전으로 나가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그녀의 유일한 잘못이었다.

세리아는 정확히 클루엘을 노려보며 어둠 속을 내리찍었다. 머리를 노리고 내리꽂히는 검을 본 클루엘은 다급히 창을 들어 올렸다.

쾅, 강렬한 충격파가 어둠을 찢었다. 모습이 드러난 클루엘은 무릎 꿇은 채 창으로 검을 받아낸 상태였다.

클루엘은 혀를 깨물어 정신을 다잡았다. 머리 위에서 터진 충격파에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에 클루엘은 의문을 떠올렸다.

제아무리 고통받았다 해도 율법을 통해 이만한 강화를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분명 그녀가 눈치채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이 그녀가 느꼈던 이상함일 것이었다.

그 변화의 원천은 무엇인가. 세리아를 노려보던 클루엘은 손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세리아의 왼손엔 마력이 가득했고, 그녀가 쥔 이데아는 그 마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침묵했고, 경악했다. 등골을 치솟는 오한에 클루엘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그녀는 세리아에게 외쳤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사악한 자를 막고 있죠.”

“씨발, 넌 지금 너 스스로 도시를 부쉈어!”

“글쎄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리아는 웃으며 말이 마쳤다. 클루엘이 대답하려는 것보다 빠르게 그녀는 창을 짓눌렀다.

클루엘은 신음하며 창에 힘을 더했다. 하지만 그녀를 짓누르는 힘은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검을 막는 창이 점점 내려왔고, 클루엘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간 성검이 그녀의 머리를 둘로 쪼갤 것이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그녀 또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클루엘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모든 것을 숨기면서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세리아는 이미 이데아를 깨웠고, 아무 희생 없이 이데아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계획이 시작되기도 전에 비밀을 드러내는 건 마음이 쓰렸으나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클루엘은 빠르게 봉인을 해제했다. 봉인이 해제됨에 따라 클루엘은 그녀를 짓누르는 힘이 점차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세리아가 움직였다.

세리아는 이데아를 들어 올리며 성검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창을 양쪽에서 짓누르던 추 하나가 사라지며 셋이 이루던 무게 중심이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아직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클루엘은 그 변화에 대응할 수 없었다. 한쪽으로 기운 창이 순식간에 바닥에 내리꽂혔다. 창을 쥐고 있던 클루엘의 자세는 완전히 무너졌다. 완벽한 무방비, 클루엘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긴박한 전투에선 작은 틈조차 치명적이다. 하물며 클루엘이 보인 빈틈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세리아는 망설이지 않고 그 틈을 향해 이데아를 내찔렀다.

심장을 향해 쏘아진 이데아를 보며 클루엘은 마음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쏜살처럼 내찔러진 이데아가 클루엘의 심장을 꿰뚫었다.



칠흑의 검이 빠져나오고, 붉은 피가 흘렀다.

옷을 적시던 피가 마침내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클루엘 또한 땅에 몸을 눕혔다.

털썩, 차가운 바닥이 그녀의 몸을 받았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그녀는 양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윽, 아아, 으아, 으아아아아아···.”

땅을 기는 듯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세리아는 신음하는 클루엘을 보았다.

클루엘은 몸부림쳤다. 주먹을 쥐고, 땅에 머리를 처박고, 이를 악물고, 온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녀는 온몸을 저미는 듯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모든 것에서 앞서는 이데아는 논리에서 앞서고 존재에서 앞선다. 이데아 앞에서는 강대한 클루엘이라도 한낮 연약한 영혼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심장을 찔린 그녀의 영혼은 이데아라는 거대한 칼날에 갈가리 찢어지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던 클루엘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끔찍한 고통에 비명마저 막힌 그녀는 날개 찢긴 벌레처럼 버둥거릴 뿐이었다.

세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더 이상 압도적인 위엄을 느낄 수 없었다.

‘이걸로 끝이네요.’

그녀는 이데아를 보았다. 모든 시작의 원인이 되었던 검이었다.

그녀의 방해도, 클루엘의 추격도, 도시에 일어난 비극과 클루엘을 쓰러뜨린 변수도. 모두 이 한 자루의 검 때문이었다.

그녀는 검에 두려움을 느꼈다. 가장 악명높은 마법사를 단 한 번에 무릎 꿇린 검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수천만의 생명을 지울 수 있는 무기가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검이 두려웠다.

이데아는 그녀를 유혹했다. 나를 써라. 힘을 바쳐라. 너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완전에 나아가기 위해 너 자신을 내게 바쳐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법사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마검이었다. 이것이 인간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리고 이데아의 진정한 활용법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었다.

성검을 돌려보낸 세리아는 오른손으로 이데아를 들었다. 검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지만, 그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마법사였다. 눈을 감은 그녀는 빛으로 이데아를 감싸고 주문을 외웠다.

“짓누르고, 억죌지어다. 허락되지 않았음을 이름을 통해 알린다. 눈을 가리고, 입을 꿰매고, 손과 발을 자를지어다. 자유는 없으며 끝없는 공겁(空劫) 속에서 영원을 맞이하라.”

그녀의 이름을 건 봉인의 율법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나온 빛이 사슬이 되어 이데아를 묶기 시작했다.

이데아가 거칠게 웅웅거리며 봉인에 저항했다. 세리아는 세계 최고의 봉인 전문가였고, 남은 힘을 전부 쏟아내어 봉인을 성사시켰다. 다만 잠들어있던 이전과는 달리 그녀의 힘을 받고 깨어났기에 완벽하게 봉인할 수는 없었다.

세리아는 몸을 돌렸다.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으로 전투 현장을 빠져나가는 그녀는 고개를 들어 거대한 달을 보았다.

하늘의 달은 아직 그 위치를 옮기지 않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끝났어.’

아직 할 일은 많이 있었다. 깨어난 이데아를 잠재워야 했으며,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야 했으며, 도시에 벌어진 피해를 책임져야했다.

하지만 클루엘이라는 가장 거대한 벽을 넘어선 그녀는 남은 일 또한 이겨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힘차게 걸음을 내디디려던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창 한 자루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팔로 창을 붙잡았다. 창을 쥔 손이 그녀의 피로 물들었다.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의문을 가진 채 털썩 쓰러질 뿐이었다.

싸늘한 바닥이 그녀의 체온을 빼앗았다. 사무치는 추위에 몸을 떨며 그녀는 천천히 다가오는 클루엘을 보았다.

그녀를 노려보는 클루엘의 등 뒤에 검은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세리아에게 다가선 클루엘은 거칠게 창을 뽑았다. 그 격한 손길에 세리아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아쉽네.”

클루엘은 세리아의 심장에 창을 겨누며 말했다. 세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눈을 감을 뿐, 더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클루엘은 창을 들어 올렸다.

어둠이 차오르는 그녀의 시야에, 내리꽂히는 창 너머로 거대한 섬광이 잔상처럼 지나갔다.

밤을 가득 채운 그 빛은, 그녀에게 익숙한 따듯한 빛이었다.

쓰러지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토요일에 올리겠다고 했는데, 바로 지키지 못하네요 ㅠㅠ


사실 이번 화, 쓰고 지우고만 세 번을 반복했습니다. 모든 사건의 발달이 되는 장면임과 동시에 클루엘과 세리아를 묘사하는 중요한 장면이었거든요...

거기에 전투가지 곂치니 설명하랴 묘사하랴, 떡밥 흘리랴...


일단 어떻게 완성했습니다만, 솔직히 많이 마음에 안 듭니다.

다만 하나를 잡고 오래 써봐야 나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일단 완성해서 올리게 됐습니다 


이번 화엔 댓글과 추천을 안 주셔도 됩니다.

제가 마음에 안 드는걸요...

다음 화부터 3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마지막 시험기간이기에 연재를 못 할 확률이 높습니다.

최대한 좋은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엔터를 그냥 싹 삭제했습니다.

보기 안 좋은 거 같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10 칠초
    작성일
    19.12.17 20:41
    No. 1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필력만 놓고 본다면 기성 작가님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들 수 있을 정도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이런 글이 좋긴 한데, 웹소설 보는 분들은 템포 빠른 걸 좋아해서, 묘사가 너무 많아 잘 안읽을거 같아 좀 걱정되네요.

    문장은 짧아서 시원시원하게 읽히는데, 그 짧은 문장들이 반복된 묘사를 좀 하는 거 같아요.
    참고로 저는 진짜 좋습니다. 잘 읽혀요.

    그리고 자유 연재에 계시는데, 분량이 되신다면 일반 연재로 승격을 신청하는 건 어떨까요?
    일반연재 (일연) 만 가도 조회수가 좀 더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일연 신청 분량이 얼만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한 10화 정도 쓰면 보내주는거 같더라고요.
    한 번 알아보시고 일연 신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더 많은 독자들이 이 글을 봤으면 좋겠거든요 ^^ 건필하시고 자주 써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ClueL
    작성일
    19.12.18 20:24
    No. 2

    감사합니다. 8화 연재 당일에도 조회수 100이 안나와 우중충했는데 오늘 보니까 무슨 연유인지 선작이랑 추천이 폭발했네요.
    많은 관심과 칭찬 감사드립니다.
    댓글은 언제나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시험기간 내일이면 끝나니 이번 주 최대한 밀린 오늘 연재까지 포함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언 감사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jhlee119
    작성일
    19.12.17 23:34
    No. 3

    재밌습니다. 설정이 참신해서 특히 좋네요. 꾸준한 연재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만에 재밌는 글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 ClueL
    작성일
    19.12.18 20:24
    No. 4

    댓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댓글 하나하나가 제 창작 의지를 마구 샘솟게 합니다. 다음 편 얼른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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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운명(Fate)(3) 19.12.12 81 3 17쪽
6 2. 운명(Fate)(2) 19.12.08 100 3 12쪽
5 2. 운명(Fate)(1) 19.12.06 103 3 16쪽
4 1.불청객(3) 19.12.03 127 3 18쪽
3 1.불청객(2) +2 19.12.01 176 7 12쪽
2 1.불청객(1) 19.11.27 238 9 11쪽
1 프롤로그-졸업식 +2 19.11.24 419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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