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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11,129
추천수 :
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3.26 19:00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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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49화 새로운 일 (4)

DUMMY

순수한 검술 대결.

그 간극의 차이가 크지 않다.

기술의 대결에서 내가 우위일 수도 없었다.

그간의 쌓여왔던 시간들이 내가 익힌 검술을 한 단계 씩 퇴보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적을 단번에 죽이기 위한 검술이지 아름다운 검형을 이룬 무예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라이벌과의 만남은 내 몸 안에 잠들어 있던 무예에 대한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대단하군···”

“너 역시 마찬가지야.”


서로가 서로를 칭찬한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신체 능력이 우리들이 갈고닦았던 무예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상대를 죽인다는 목적은 이미 퇴색되었다.

그에게 직접 보여 주는 거다.


“······.”


서로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어디서 잘 못된 것인지,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변했는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의 눈앞에 있는 상대와 검으로 대화하는 것.

옛날에 아버지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면,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검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통한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가 그런 느낌일까?

아버지가 말했던 경지에 오른 것일까, 길잡이가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꼭 그런 느낌일 것만 같다.


“한눈팔지 마라! 내 검은 네놈의 심장을 언제나 겨누고 있으니까 말이야!”


윤지석이 검을 찔렀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쾌속의 검술이다.

막아도 좋다. 이어지는 파죽지세처럼 몰아치는 참격에 눈이 어지러웠다.

위? 아래?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검을 움직이고 상대를 면밀하게 관찰한다.

내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지금!


“허엇···!”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검을 위로 쳐냈다. 순식간에 빗겨 흘려진 공격에 윤지석이 중심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힘을 갖고 있다. 이따위 중심을 무너뜨리는 일에 녀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나를 꾀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는 중일 터.

이를 이용하는 거다.

평소 내밀던 거리보다 앞발을 조금 더 길게 끌고 갔다. 녀석의 시야 속에서 내 거리감 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이러한 거리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당황스러운 기색이 나까지 느껴질 정도로 깊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칼날로 날 베지 못하고 손잡이 부근에서 이미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대로 팔을 잡아 녀석을 메쳤다.

땅을 크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지탱하던 콘크리트에 금이 갈 정도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커억···!”

“나는 데이비드 박을 원한다. 윤지석···”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는 윤지석이 아니다. 내 이름은 다비드 윤이다···”


숨을 길게 토하면서 자신을 부정하는 그를 보고 짧게 한 숨 쉬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걸 네놈이 알아서 뭐 하려고? 아니 알아도 너는 내 인생을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네놈의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맞는 말이다.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지···”

“우리는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던 거겠지. 최후를 맞이한다면, 네놈의 검에 죽고 싶었다. 한 명의 검사로서···”


이미 죽음 앞에 놓인 그의 표정은 의연하다 못해 당당했다.


“그런 거라면··· 알겠다.”


서로 마지막 공격을 준비한다. 이제는 끝을 볼 시간이었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즐거웠다. 윤지석.”

“글세··· 난 삶의 미련이 많아서 말이야. 나는 살고 싶거든··· 난 여기서 죽을 수 없다. 너를 밟고 나는 더 높게 날아오를 것이다.”


순수한 삶을 갈망하는 의지.

그런 의지가 죽음 앞에서도 그를 태연하게 만들 수 있는 걸까.

반드시 죽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말이다. 한 수 배웠다.

검이 뽑힌다. 서로의 발검에, 순간 빛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내 검은 녀석의 흉부를 깊고도 빠르게 베고 지나갔다.


“커헉···”


서로 맞바꾼 자리에서 등만 돌렸다. 그의 가슴에 깊은 검상이 남았다.

금방이라도 상처가 벌어질 것 같았다.


“왜 그랬지? 삶을 갈망한다면서···”


순간이었지만, 윤지석은 검을 지르는 것을 포기했다.

적어도 내가 직접 검을 받는 입장은 그러했다.


“웃기지 마라. 나는 살고 싶었다. 윤지석이라는 이름으로··· 언제까지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단 말이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에 이 삶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얼마만큼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한 거냐?”

“죽음이라니,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인데, 너나 이런 구속받는 삶에서 영원히 엿이나 먹으면서 살아라.”


그가 가운데 손가락을 펼쳤다.


“데이비드 박이라고 했나? 번지수를 잘못 찾아와도 한참을 잘못 찾아왔어. 차미혜 그 년 한테,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말이야. 데이비드 박은 그 년의 꼭두각시 일 뿐이야. 이 밤의 왕국의 실세는 바로 차미혜 그 사람이다. 이 멍청아···”


그는 갑작스럽게 고통스러워했다. 하얀 눈동자가 붉어지다. 못해 핏줄이 모두 터졌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서 한 방 먹여줘라··· 그 개자식한테 말이야··· 반드시··· 먹여줘라 통쾌한 한 방을···”


그대로 머리가 터졌다.

어안이 벙벙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차미혜 그 사람이 이곳의 실세라니. 문을 막고 있던 이하루도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밀물처럼 들어오는 흡혈귀들이 자신의 우두머리가 죽은 것에 분개하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꺼져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용의 기운이 그 자리를 한 방에 제압하였다.

모두가 몸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움직이는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가도록 하죠···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건지··· 직접 물어보러 갑시다.”


* * *


차미혜가 있는 곳, [라이진]이라는 술집은 손님으로 가득했다.

그녀 혼자 직원을 쓰지 않고 일하는 탓에 굉장히 바빠 보인다.

손님 중 한 명이 그녀가 다른 손님들의 음식을 전달하는데 허벅지를 쓸어 만졌다. 그녀는 엉큼하다며 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가 흡혈귀의 진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속내를 잘 감추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가 날 발견하고 잰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서와 오빠! 일은 잘 처리한 거야?”


차미혜가 능글맞은 눈빛을 보낸다.


“일을 처리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호··· 뭔가 알아낸 게 있나 본데?”

“다비드 윤이 최후의 말을 전하더군요. 당신을 조심하라고.”


모든 사실을 말하진 않는다. 다만 그녀가 충분히 경각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사실을 전달한다.


“그래? 다비드 윤이 그렇게 말했다고? 죽어 가면서? 왜 날 조심해야 하는지는 말해 주지는 않았고?”


그녀의 눈빛이 금세 가라앉은 것이 도드라져 보였다.

뭔가 켕기는 사실이 있는 것 같았다.


“글쎄요··· 그건 이제 제가 답변을 들어야 할 차례라서요. 죽어 가면서 까지 거짓말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말이죠.”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쉽게 됐네, 사실 다비드 윤이 나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지?”


그녀의 곁에서 무언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악하고도 아주 짙은 피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불길하다. 그녀와 잠시 거리를 두기 위해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렸다.


“왜 그래? 왜 날 피하는 거지?”


그녀의 빨간 입술이 더욱 붉게 물들며 아름다운 색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만큼 그녀의 기운은 더욱 난폭하게 주변을 휘몰아쳤다.


“아쉬워··· 내가 준 술을 너희도 마셨다면, 우리와 같아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 됐어 다비드 윤도 이기지 못할 상대라는 건데, 너는 얼마나 강할지 한 번 보도록 할까?”

“정말 당신이 진조인가?”

“그래··· 내가 진조야. 진조라고 하기에도 뭐 하지만 그의 힘을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사람이기도 하지.”

“그의 힘을 물려받아?”

“그래, 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는 여러 신들 중에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신이 존재하거든. 그 사람이 내게 이런 능력을 주었어.”

“······.”


그녀의 곁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자가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의 곁에서 어린 아이처럼 마치 어미의 품에 안기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녀는 그런 아이들을 꼭 안아주면서, 애정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보살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이죠?”

“···큰일 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하루의 말에 이런 식으로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차미혜가 가진 힘의 크기가 놀라울 만큼 대단해서 나도 어찌 확고하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자, 너희들도 내 품에 오지 않을래?”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주변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우리를 향해 손을 벌렸다.


“거절하겠습니다. 윤지석은··· 당신에게 그런 식으로 당한 건가···?”

“윤지석··· 그게 누구더라···? 아아··· 다비드 윤 그 아이의 원래 이름이 윤지석이었구나··· 내 아이와 무슨 관계라도 되는 거니?”


그녀의 성격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그 녀석은 내 친구였다.”

“친구··· 걔한테 친구는 없었을 텐데··· 늘 혼자 있던 상처 많은 강아지 같던 아이였어. 그런 아이에게 친구 따위 있을 리 없잖아?”


무슨 말인지 솔직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런 건 솔직하게 잘 모르겠고, 녀석이 친구가 없든 있든··· 나는 그 녀석을 최소한 친구라고 생각했으니, 복수는 해줘야겠지.”

“복수라··· 그래 너도 나를 죽이러 온 거구나? 내 아이들아··· 나를 지켜주지 않으련?”


그녀의 부름에 우리를 적으로 인식한 나머지가 강한 적개심을 갖고 다가왔다.

숫자가 너무 많다. 아무리 이하루가 이런 상황에 단련된 자라고 한들 그녀는 일단 마법사다. 마법사는 근접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혼자로 벅차다.

제기랄··· 이 빚은 나중에 꼭 배로 돌려받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황금빛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쌌다.


“이 힘은···? 한성우?”

“···오래간만입니다.”


태연하게 2층으로 올라온 한성우가 검을 늘어트린 채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의 전신에 황금 갑주가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하하··· 잡것들이 조금씩 몰려오기 시작하는구나··· 여긴 내 구역이야! 내가 만든 내 세상이야!”

“그 대사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들었더라죠. 안 그런 가요 현성 씨?”

“난 몰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내가 뭘 알겠어··· 그보다 너무 극적인 등장 아닌가?”

“원래라면 같이 동행하는 게 맞았는데, 미국에서 조금 일이 밀려 조금 늦었습니다. 그보다 좋은 소식 하나 가져왔는데요? 여기서 들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일이 다 끝난 후에 들으시겠습니까?”


좋은 소식이라.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좋은 소식은··· 역시.


“일이 다 마무리되고 난 후에 듣도록 하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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