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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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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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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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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1
글자수 :
283,832

작성
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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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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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채운 뒤엔 덜어내야 하니까

DUMMY

50.


하늘에 수놓은 화살은 곡선을 그리며 비처럼 후두둑 이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무 것도 보이질 않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시작된 갑작스러운 습격.

하지만 대응이 느리진 않았다.


티티티티티팅!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살은 허공에 생겨난 반투명한 막에 의해 막혔으니까.

차도윤은 옆을 돌아봤다. 입술을 꽉 깨문 백지현이 허공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수백 개의 화살이 튕겨나갔다.


“이 정도쯤은······!”


뒤이어 원정대의 헌터들이 저마다 수비용 스킬을 꺼내드니 상황은 더욱 나아졌다.

이어지는 화살 세례에서도 원정대는 그 어떤 대미지도 입지 않아도 되었다.

백지현을 향해 잠시 감사를 표한 레이첼은 빠르게 헌터들을 독려했다.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여기에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돼요.”

“산 쪽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는 게······.”

“아뇨. 저들이 아직 적이라고 판단하긴 이릅니다.”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화살 세례를 쏟아 붓는 인간들이었지만 저들은 적이 아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우리의 적은 여전히 유령이니까요.”


차도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야의 한쪽에 나타난 메시지를 일람했다.

화살 세례로 인해 무심코 놓칠 뻔했지만 그곳엔 분명히 상황에 대한 단서가 있었다.


[시련이 주어집니다.]

[‘시나리오’를 공략하시오.]


+

[시련]

분류 : 시나리오

등급 : F+++

정보 : ‘비가 내리는 도시’는 어째서인지 비가 그치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유령들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임무 : 주민들을 도와 유령을 퇴치해 비가 내리는 원인을 파악하시오.

제한 시간 : 24시간

(선택) 비가 내리는 원인을 제거하시오.

+


메시지를 확인한 차도윤은 그 내용이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전생에서도 이런 시나리오였다.


‘비가 그치질 않아 곧 침몰 위기에 빠진 도시였지.’


얼추 주변을 둘러봐도 언덕 아래쪽으로는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마을의 반쯤은 침수됐고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원인은 마을 인근의 묘지였지.’


그곳에 자리잡은 보스 몬스터가 마을을 향해 지독한 저주를 내리고 있었다.

모두가 수몰되기 전에는 그치질 않는 비. 아쉽게도 전생에선 그 원인까지 파괴하진 못했다.


“1회 차와 개요는 비슷해요. 저들은 우리의 적이 아닐 겁니다.”

“······글쎄요. 전개는 전생과 너무나도 다릅니다.”


레이첼은 고개를 끄덕여 다른 헌터의 말에 긍정했다.


“그렇죠. 전생엔 저들이 우리에게 이다지도 적대적이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이미 마을 사람들은 유령들에게 빙의됐을지도 몰라요. 그놈들 사람들 몸에 빙의하고 막 그랬잖아요.”


일리가 있는 추론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라고 무조건 장담할 순 없었다.

레이첼이 말했다.


“아직 모르는 겁니다. 저들은 우릴 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어요.”

“무슨 뜻이죠?”

“메시지를 잘 확인해보세요. 공략 기한이 고작 24시간 밖에 안 남았잖아요.”


아무렴 전생과 가장 큰 차이점은 시나리오의 진입 시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전생엔 무려 일주일이나 주어졌다.

마을이 아직 온전히 수몰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크게 걱정도 하지 않았을 시기.

이곳의 비는 일주일 전부터 지독하게 내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러 거의 수몰 직전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 어떤 것도 판단해선 안 됩니다. 단순히 활용할 시간만 줄어든 게 변동점의 전부라고 생각해선 곤란해요.”


다소 신중한 레이첼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직접 확인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겠죠.”


당장 화살을 쏘아낸 사람들이 아군인지 혹은 유령에게 빙의된 적인지는 봐야 안다.


“거리를 좁힙니다. 선두는 방패 들고 방진으로 이동해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다들 긴장해요!”


몇 차례 쏘아진 화살을 간신히 튕겨낸 헌터들은 빠르게 언덕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을 공격한 사람들은 다행스럽게도 적이 아니었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공격.


‘그조차 시련의 일부였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때 응전을 했더라면 상황은 더욱 골치 아파졌을 것이다.

유령은 물론, 도시의 사람들마저 적대하게 된 채로 시나리오를 공략해야 했을 테니까.

그것도 자신들을 적대하는 인간들의 마을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해야만 할 것이다.

그건 썩 유쾌하진 않겠지.


“레이첼 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결과적으론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인간들에게 이쪽이 빙의되질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 방법도 굉장히 쉬웠다.

저마다 가슴에 휴대용 랜턴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증명이 됐으니까.


‘유령은 빛에 약하다. 그 흔한 설정이 이곳에선 놈들의 약점이니까.’


유령에게 빙의된 놈들이 겁도 없이 빛을 온몸으로 내뿜고 다닐 리가 없었다.

거리가 멀고 쏟아지는 빛 무리로 다소 저들이 그걸 늦게 발견했을 뿐이었다.


“어디서 오셨다고요?”


주민의 대표인 ‘리호갈 영주’에게도 일행의 소개는 아주 간단하게 끝냈다.


“저흰 벨리 황제께서 친히 리움을 구하고자 보낸 특수 부대입니다. 마을에 내린 저주를 부수고자 이렇게 파견을 나왔습니다.”


1회 차에서도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낸 꽤 그럴 듯한 거짓말이었다.

전반적인 배경이 바뀌지 않았기에 리호갈 영주는 레이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쪽에 대한 대우도 상당해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저흰 황제폐하께서 내린 명을 따를 뿐입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는 레이첼 덕분에 일행은 도시에서도 꽤 좋은 숙소를 잠시 빌릴 수 있었다.

그나마 지대가 높아서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몇 안 되는 여관 중 하나였다.


“일단 여기서 짐을 풀고 다들 작전대로 움직이도록 하죠.”


다들 이쪽 일엔 전문가라 그런지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분주하게 주변을 탐색했다.

혹시나 있을 함정, 숨어있을 적, 유사시를 대비한 대피로까지 모두 마련해뒀다.

휴식은 돌아가면서 취하기로 했다. 움직이는 것도 반드시 2인 1조를 유지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인원은 마을 전역으로 흩어져 정보를 모으는 일이었다.


“1회 차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파악해야 해요. 큰 틀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작은 변화가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어요.”


물론 그 모든 일에서 차도윤이 마땅히 할 일은 딱히 없었다.

각자 전문 분야가 있고, 차도윤은 예나 지금이나 싸우는 게 일이니까.

차도윤도, 백지현도 그저 여관의 한쪽에서 숨을 고르며 체력을 보존하는 게 할 일이었다.

작전 지휘를 맡은 레이첼은 은근슬쩍 차도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앉아도 되겠죠?”

“···이미 앉으셨는데요.”


뻔뻔하게 웃은 그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웬 투구 하나를 꺼내들었다.

익숙한 모양이었다. 아니 어찌 모르겠는가.

검성이 늘 쓰고 다니던 투구와 똑같이 생긴 물건인데.


“이거 보신 적 있으세요?”

“······검성의 투구요?”

“역시! 전 차도윤 씨라면 분명히 알아보실 줄 알고 있었어요.”


냅다 꺼내든 검성의 투구를 빌미로 레이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검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대기하는 동안의 시간을 때우려는지 시작된 이야기는 생각보다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전투요원들이 귀를 쫑긋 세울 정도로 몰입도가 있었다.

백지현도 맞장구를 쳤다.


“검성께서······ 그런 일도 하셨다고요?”

“말도 마요. 그분이 하신 일은 모두 전설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흠.”

“물론 전설적으로 대단하단 얘기죠. 허구나 그런 말은 아니랍니다.”


호응이 좋아서 그런지 레이첼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검성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어댔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성격이었나 싶을 정도로.

전투 요원들도 이젠 다들 경청하는 자세마저 갖추고 있어서 딱히 무어라 하기도 뭣했다.


“잠깐만요. 검성이 그런 걸 언제······.”

“차도윤 씨도 모르고 계셨구나. 검성께서는 말이죠. 늘 겸손하라고.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

“늘 귀감이 되시는 분이었어요. 대표적인 사건이 40층 공략전이었죠. 그분이 거기서 어떤 활약을 했냐면······.”


왼손이 한 일은 오른손이 몰랐으면 하는 이유는 그저 그 혼자 다 먹기 위함인데.


“검성은 말이죠.”


엄청나게 미화된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괜히 귀까지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검성이 저런 위인이 된 거지?

말만 들어서는 종교를 세워도 이상하지 않았다.

눈앞에 선 레이첼은 그 종교의 선지자라 어색하지 않았다.


“······원정대의 리더가 그렇게 속 편하게 있어도 돼요?”

“괜찮아요. 당장 바쁜 일은 없어요. 그리고 이건 원정대의 정신 교육 중 일환으로······.”


언제부터 검성에 대한 자잘한 대화가 정신 교육으로 바뀌고 만 것인지.


“······.”


차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은근슬쩍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기 이야기에 심취했고, 또한 들어주는 이들도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어서 그가 빠져나가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앓느니 죽지.’


어째 레이첼 쟤는 전생보다 이번 생이 더 유난이다.


‘수련이나 하자.’


차도윤은 사람들과 거리를 벌린 채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가 자리를 선점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썩 듣기 나쁘지 않았다. 반쯤 물에 잠긴 도시의 풍경이 재난 영화에 맞먹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일단······.’


차도윤은 말없이 손을 앞으로 내밀어 마력을 실처럼 뽑아내기 시작했다.

눈에 힘을 주고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로 얇은 실을 뽑아내는 게 특징이었다.

미세한 마력 컨트롤은 물론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금방이야.’


수련의 일환으로 전생에서도 마력을 실처럼 뽑아내는 연습은 수도 없이 해왔으니까.

요령은 이미 다 익히고 있다.


‘어려운 건 지금부터야.’


차도윤은 실처럼 뽑아낸 마력을 한데 겹치고 겹쳐서 하나로 뭉치기로 했다.

요점은 뭉친 실의 크기는 뭉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압축.’


전신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미세한 컨트롤로 손에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얇은 실 안으로 고밀도의 마력을 압축시킨다는 건 확실히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1차 각성에 이른 그의 몸으로도 쉽게 컨트롤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그래서 그렇다.

방대한 마력을 가진 만큼 미세한 컨트롤은 더더욱 어렵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해야 한다.


‘채운 뒤엔 덜어내야 하니까.’


1차 각성 이후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덧없이 채워낸 것들을 비우는 길이다.


“음······ 실패인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도윤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일단 마력을 흐트러트릴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오늘의 수련으로는 압축된 마력의 실을 뽑아낸다는 건 무리였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매일 꾸준히 같은 훈련을 반복해서 덜어내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을 쌓듯 그는 그렇게 2차 각성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응?”


근데 수련을 끝낸 차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게.”


언제 기어들어왔는지는 모르겠는데 푸른 빛감을 머금은 다람쥐 한 마리가 보였다.

차도윤의 손에 꼬리를 감고 매달린 녀석은 고롱고롱 잠에 빠져있었다.


[‘물의 정령’이 당신을 궁금해합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난 다람쥐가 하품을 하면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입 안 가득 웬 마력을 가득 집어먹은 채로.

고밀도로 압축된 마력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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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누가 보면 내가 악당인 줄 알겠네 23.01.27 822 29 13쪽
48 뭐든 물어보면 알겠지 23.01.26 905 33 12쪽
47 이다미 23.01.25 989 37 13쪽
46 네놈이 얼마나 음흉한지 잘 알 뿐이지 +1 23.01.24 1,081 37 13쪽
45 곤란하군요 +1 23.01.23 1,123 41 13쪽
44 질긴 악연을 잘라내려면 무딘 칼로는 부족하거든 +1 23.01.22 1,316 43 12쪽
43 누가 감히 움직여도 좋다고 했지? +2 23.01.21 1,315 44 13쪽
42 네가 도재준이야. 그렇지? +1 23.01.20 1,360 42 13쪽
41 도전자 님의 건승을 빕니다 +2 23.01.19 1,405 49 13쪽
40 근데 이걸 어쩌나 +3 23.01.18 1,434 51 12쪽
39 나머진 당신들 몫이라고 23.01.17 1,432 48 12쪽
38 미안하지만 타임 오버야 +3 23.01.16 1,482 51 13쪽
37 라헬 스트로디아 +2 23.01.15 1,545 57 12쪽
36 너도 마음이 급했나봐? +2 23.01.14 1,617 51 12쪽
35 저게 왜 난쟁이야 +3 23.01.13 1,716 48 12쪽
34 음식은 멀쩡하다니까 +5 23.01.12 1,771 54 12쪽
33 돈값은 해줄 테니까 23.01.11 1,892 52 13쪽
32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23.01.10 1,945 55 12쪽
31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23.01.09 1,960 57 12쪽
30 그때랑 지금은 시세가 다르지 +1 23.01.08 2,017 57 13쪽
29 줄래야 줄 것도 없어 23.01.07 2,064 50 13쪽
28 주변을 둘러보는 눈을 기르래도 +1 23.01.06 2,120 58 13쪽
27 차도윤입니다 +1 23.01.05 2,175 55 12쪽
26 그럼 해 봐. 감당할 수 있으면 +1 23.01.04 2,205 64 14쪽
25 안 돼. 저건 못 먹는 감이야 +1 23.01.03 2,237 59 12쪽
24 저들이 너희들의 원수다! 23.01.02 2,354 58 12쪽
23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23.01.01 2,594 57 12쪽
22 난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22.12.31 2,786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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