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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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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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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3,832

작성
23.01.0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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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안 돼. 저건 못 먹는 감이야

DUMMY

25.


어스름한 밤하늘 아래로 박민권은 다소곳이 미간을 찌푸렸다.


“흠.”


바람 한 점이 없어 나뭇잎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옆 사람의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

하지만 아쉽게도 평화와는 거리가 먼 고요함이었다.

이건 말 그대로 폭풍전야(暴風前夜)였으니까.


‘벌써 일주일인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박민권은 고생스러웠던 지난 일주일을 상기했다.

두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서울 연합엔 꽤 많은 변화가 생겨나 있었다.


‘우선 덩치.’


천 명 단위로 이루어졌던 규모는 어느덧 약 오십만 명에 이르는 무리가 되었다.

서로 빼앗고 혹은 빼앗기다보니 자연스레 커질 수밖에 없던 게 작금의 연합의 크기!

연합에서 소외되었던 개개인이 몰려든 탓도 있겠지만, 몇몇 그룹은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기도 했다.

특히 소형 연합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렴 괜히 버티다가 광신도 연합에게 먹혀버리면 그땐 정말 답도 없을 테니까.

땅을 빼앗긴 이들은 깃발의 소유주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장을 빼앗기거나 명령을 거부해 막대한 패널티를 감수하거나······.’


어느 쪽이든 최악이었기에 소형 연합은 죄다 알아서 대형 연합의 문고리를 두드렸다.

그런 이들을 하나 둘 받아 주다보니 서울 연합의 규모는 필연적으로 커지고 말았다.

보유한 땅 덩어리도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

서울 연합은 이 주변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거대 연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주였······.’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을 찰나.


“청승맞게 여기서 뭐하냐?”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낯짝 하나가 앞에 드리웠다.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을 해, 근육이 더욱 부각되어 유난스럽기까지 한 남자.

박민권은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그러고 다니면 안 춥냐?”


양인호가 피식 웃었다.


“호랑이가 옷 입고 다니는 거 봤냐?”

“······너 지금 인간 모드잖아.”

“싸울 땐 기장이 길수록 불편해. 어차피 찢어지니까.”

“헐크 납셨네.”


양인호에게 일반인의 상식을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마침 잠이 안 오는지 산책을 나온 한 사람도 보였다.


“오, 김태하! 너도 잠이 안 오나봐?”


양인호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김태하는 품에서 웬 술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초록빛 유리병 아래로 투명한 물이 곱게도 찰랑이고 있었다.


“막밤인데 한 잔해야지.”


일찍이 서울 연합을 먹겠다고 달려들었다가 된통 당하고 흡수 합병된 옛 지인.

김태하는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두 사람의 앞으로 안주를 늘어놓았다.


“한동안 또 못 볼 거 아니냐.”


느긋하기까지 한 어조를 한 그를 보며 박민권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이렇게 뻔뻔한 유형이었나.


“살다 보니 그리 되더라.”

“음?”

“내 수준은 잘 알고 있으니까.”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주일 전의 그와 벌였던 전투 장면이 떠올랐다.

죽일 듯이 달려들던 맹수의 모습을 했던 그가 한 순간에 초식 동물로 변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약간 패색이 짙어지자마자 바로 꼬리를 말고 패배를 시인하며 항복해왔던 것이다.

김태하는 이를 두고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내가 또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내 수준을 모르고 무작정 달려드는 타입은 아니거든.”

“······전생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러질 않으면 살아남질 못하는 세계였단다.”


혀를 차면서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박민권은 침음을 삼켰다.

일주일을 지내며 알게 된 것 중 가장 놀랐던 건 김태하가 그보다 더 상층에서 회귀했다는 사실이다.


“너도 50층을 넘겨보면 알아. 자신을 믿었다간 그냥 골로 가기 쉬워.”

“······그러냐.”


대체 상층엔 뭐가 있길래 양인호처럼 맹수처럼 싸우길 좋아하던 놈이 저렇게 되었을까.


‘뭐든 올라가보질 않으면 모르는 일이야. 겪어보기 전엔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어.’


씁쓸하게 술잔을 드리우는 김태하를 보면서 박민권도 독한 술을 삼켰다.

안주는 서울에서 챙겨놨던 육포로 대신했다. 짭짤한 게 씁쓸한 술 안주로 제격이었다.


“······슬슬 시작되겠네.”


입맛을 다시던 그는 서서히 동이 터오는 동쪽 하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와 똑같이 잠을 못 이루고 산책을 하던 몇몇 헌터들의 시선도 떠오르는 해를 향했다.


“그러게. 드디어 마지막날이야.”


생존 땅따먹기의 마지막 날······ 7일 차에 이르면 이곳엔 새로운 변화가 생겨난다.

아마도 여태 겪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극적이고 또한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지독한 규칙.


“연합원들을 소집해야겠네.”


박민권의 말은 곧 오십 만 명에 이르는 모든 연합원들에게 전달되었다.


*


서서히 해가 떠올라 어스름하던 하늘이 청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엔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땅의 주인이 내린 명령을 거절해도 패널티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치듯 나타난 메시지였지만 동요는 상당히 적었다.

연합원 중에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단언컨대 한 명도 없을 테니까.

당장 소집령을 내렸는데도 모이질 않는 헌터가 반절이 넘는 것만 봐도······.


“쯧, 결국 다들 흩어지네.”


언덕 위에 올라선 그는 연합이 있는 곳을 쭉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조용한 움직임을 내보이고 있었다.

여태 숨을 죽이고 있던 소형 연합이나, 부득이하게 통합됐던 다른 연합들.

혹은 개인도 있었고 그보다 적지만 파티를 이룬 이들도 눈에 선했다.

물론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 날’에 한하여 ‘황금 깃발’이 활성화됩니다.]

[‘생존 땅따먹기’가 종료되는 시점에 ‘황금 깃발’을 보유한 헌터에겐 어마어마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탑은 메시지를 통해서 대놓고 헌터들을 유혹해대고 있었으니까.

당장 자신이라도 저 유혹에 가담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박민권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저건 못 먹는 감이야.”


어렴풋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도 그는 저 깃발을 쟁취하고자 달려들던 수많은 헌터 중 하나였다.

실제로 깃발을 손에 쥐어봤을 정도로 그는 당시에도 꽤 잘 나가는 헌터였다.

하지만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지.


‘땅따먹기는 빼앗는 것보다 이를 지키는 게 더 힘든 게임이야.’


메시지가 언급하기로는 깃발을 소유한 채로 오늘 하루를 꼬박 버텨내야 한다.

그리고 황금 깃발을 노리는 헌터는 살아남은 수백 만 명의 서울 시민들이다.

전부가 나서진 않겠지만 그 일부만 나선다 해도 개인이 어찌할 수준이 아니다.

하물며 연합이라도 쉽지 않았다.

인구수만큼이나 오늘날 이곳에 파생된 연합의 숫자도 적지 않을 테니까.


“나만 회귀자였으면 몰라.”


모두가 회귀자인 마당에 약한 헌터는 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드물다.

마지막 날에 이르렀는데도 이만한 생존자들이 득실거린다는 게 그 증거였다.

1회 차만 해도 밀려드는 몬스터에게 당해 참 많이도 죽어나갔었는데.

하기야 이번 회 차는 땅따먹기가 시작하기 이전부터 연합을 꾸려놨었다.

시작하자마자 목책을 쌓아 완벽한 안전거점을 마력하는 데에 주목하기도 했다.

생존자가 많은 건 당연했다.


‘그만큼 황금 깃발을 노리는 건 더 어려워지겠지.’


그 많은 인원을 상대로 싸울 생각이 아니고서야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심지어 상층 회귀자들이라고 단 하나 밖에 없는 ‘황금 깃발’을 가만히 놔두려 할까.

현실적으로 박민권은 자신의 수준으로는 그들 모두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바란다면 모두가 그렇게 판단하여 사이좋게 황금 깃발을 포기해주면 좋을 것이다.

박민권은 쓰게 웃었다.


‘그럴 리가 있나······ 다들 자신은 괜찮다 생각하겠지.’


로또에 당첨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어차피 못 먹을 감이라고 생각하면서 뛰어들 헌터도 없을 거다.


‘어쩌면 방법을 찾았는지도 모르고.’


황금 깃발을 소유한 채로 마지막까지 버틸 수단을 이미 마련해놨는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 해도 여긴 2회 차의 세계였으니까.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박민권, 온다.”


양인호의 목소리에 박민권의 시선은 지난밤 고요하던 수풀 건너편으로 향했다.

폭풍전야와 같던 그곳은 해가 뜨자마자 크게 들썩이며 요동치고 있었다.


“예상대로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 거야.”

“······진짜 긴 하루가 되겠네.”


무엇보다도 그가 황금 깃발을 노리질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대규모의 몬스터 웨이브!

마지막 날에 ‘황금 깃발’을 노리는 종족은 오직 인간에게 국한된 게 아니었으므로.


“여기서 막아야 해. 자칫 잘못하면 이번에도 대참사가 일어날 거야.”


고개를 주억거리는 양인호를 일별하고 박민권은 지팡이를 매만졌다. 새삼스러운 목적이 그들의 앞에 있었다.


“이번 생은 달라야지.”


그들이 회귀한 이후로 히든 피스를 독점하고자 발에 불이 나도록 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길드를 전보다 더 견고하게 조성해 생존력을 높이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더 많은 생존자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사실 박민권이 나서서 서울 연합을 조직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도 이쪽에 일을 떠맡기고 제 이득을 챙기러 간 놈들이 진심으로 얄밉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여길 수호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알고 있지?”


모르긴 몰라도 오늘은 생존 땅따먹기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올 거다.

그리고 그건 미래에 큰 화를 불러온다.

다른 회귀자들은 어찌 생각할지는 몰라도 40층에서 죽어버렸던 그들의 입장은 그랬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아군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았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진 않았을 거야.’


박민권은 김태하를 향해 말했다.


“너도 분발해 줘. 후방을 부탁할게.”


근데 박민권의 말에 김태하는 멀뚱히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왜 그런가 하니 그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한쪽을 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몬스터가 말려나왔다고 조금 당황이라도 한 걸까.


“······이거 반전인데.”


김태하는 다소 감탄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던 그림과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르겠다.”

“뭐?”

“진짜 난 놈은 다르다니까.”


느닷없이 수많은 몬스터 무리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는 소리가 뭔 뜻인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몬스터 무리를 확인한 박민권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저건······.”


몬스터 무리의 한 가운데에서 별 다른 대책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설마 사람이라고?”


그리고 일대에서 포효하던 몬스터 무리는 날카로운 눈빛을 뿜어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시끄럽게 떠들며 포효하던 것들도 터무니없지만 절도 있게 굳은 자세를 유지했다.


끼아아악!


이윽고 게이트를 통해서 웬 까마귀들이 편대를 갖추어 빠져나와 예의 사내 앞에 도열했다.

남자의 앞으로 온갖 몬스터가 입을 꾹 다문 채 질서정연한 태도로 기다리고 있었다.

리자드, 개미, 맨티스, 포이즌 크로우······.

수많은 몬스터 군단의 앞에 선 남자는 거두절미하고 한 까마귀의 등에 올라탔다.

펄쩍 날아오른 까마귀와 그 뒤를 따르는 건 수많은 몬스터의 행렬이었다.


“······미친.”


한껏 긴장한 채 전투를 준비한 게 아무런 의미를 갖추지 못할 정도로.

몬스터들은 인근의 인간을 아예 없는 존재인 것마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멀리 황금 깃발이 있을 방향으로 날아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박민권은 생각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만.


‘진짜 날아다니냐고.’


그것도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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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라헬 스트로디아 +2 23.01.15 1,545 57 12쪽
36 너도 마음이 급했나봐? +2 23.01.14 1,617 5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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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돈값은 해줄 테니까 23.01.11 1,892 52 13쪽
32 그냥 받아들이세요. 무엇이든 23.01.10 1,945 55 12쪽
31 증명해보이면 되겠지? 23.01.09 1,960 57 12쪽
30 그때랑 지금은 시세가 다르지 +1 23.01.08 2,017 57 13쪽
29 줄래야 줄 것도 없어 23.01.07 2,064 5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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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돼. 저건 못 먹는 감이야 +1 23.01.03 2,237 59 12쪽
24 저들이 너희들의 원수다! 23.01.02 2,354 58 12쪽
23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23.01.01 2,594 57 12쪽
22 난 여기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22.12.31 2,786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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