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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SSS급 전함에 의식이 실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완결

깁흔가람
그림/삽화
깁흔가람
작품등록일 :
2023.10.04 22:17
최근연재일 :
2024.04.06 20:00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37,815
추천수 :
3,413
글자수 :
968,567

작성
24.01.15 20:00
조회
389
추천
13
글자
12쪽

14. 타우러스의 부름(5)

DUMMY

그렇게 밤 늦게까지 케레시스와 웃고 떠들며 놀았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60이 넘은 케레시스가 아무리 체력이 좋고 젊어보이더라도 본래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잠을 잘 필요가 없다.


몰랐지만 어느새 케레시스의 무릎과 주요 관절들은 유기체 안드로이드 기술로 새롭게 재건했다고 한다.


"후아암.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푹 쉬고 내일 보자고."


결국 피곤해진 케레시스가 먼저 잠들었고, 나는 그를 배웅했다.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내어준 손님방으로 들어가 쉬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생각할 시간을 얻었다.


어쩐지 처음 전함에 실려있을 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평소에도 나 혼자 시간을 보낸 적은 굉장히 많았지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친하던 동료들이 갑자기 30살씩 나이가 먹어버리고, 내가 열심히 가꾸던 행성들이 훌쩍 발전해버렸다.


물론 이곳 차 행성의 격납고에 내가 실려있던 전함이 아직 있겠지만, 굳이 그곳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어쩐지 케레시스와 같이 가서 보고 싶은 기분에 아직 의지체 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안드로이드에 탑승해 있었다.


-그냥 와서 보시면 될 일이지 뭐가 그리 까다로우십니까?

'아니 그냥 내 기분이 그렇다고.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본인을 보러 본인이 오면 될 일을 왜 굳이 동행이 필요로 한 건지 모르겠어서 하는 말입니다.


베로니카는 유능한 인공지능이다. 때로는 너무 유능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이긴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제가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됐고, 오늘 케레시스를 만났는데 왜 아리엘이 안보이는 건지 조사해봐.'

-아리엘이요?


아리엘도 얼마나 변했을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과연 어떻게 활약을 해왔을지도 기대가 된다. 워낙 대단한 아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베로니카의 대답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게 누구입니까?


***


아리엘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는 말이 과연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아리엘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만난 옛 동료들에게 전부 이야기를 해봐도 아무도 아리엘이 누군지 떠올리지 못했다. 심지어 벨롱가마저 아리엘을 몰랐다.


"아리엘이요? 그게 누구죠?"


물어보는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대답했다.


"선주 무슨 일 있어요?"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 올게."


나는 조용히 차 행성의 거리를 거닐며 생각을 정리했다. 주변에 케레시스가 붙인 경호원들이 나름 은밀하게 따라오긴 했지만 신경쓰지 못했다.


만약 저 녀석들이 전부 기억을 못하더라도 이 정도로 큰 충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맨 처음 기억을 못하는 것은 베로니카였다.


이 점이 내게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 베로니카는 사후 영역까지 들어와서 그 컴퓨터를 해킹한 인공지능이다. 그 정도 되는 인공지능의 기억마저 지워졌다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아리엘은 분명 특별한 아이이긴 했다. 우연히 콜로니의 하층부에서 만나 함께했고, 벨롱가를 비롯해, 타우러스 등의 여러 초월적 존재들에게 안내를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사후 영역에서 내가 제 때에 제 장소에 돌아올 수 있도록 안내도 해주었다. 사실 우리 일행들 중에서 그렇게 존재감이 없긴 했지만, 아리엘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아리엘인데, 마치 그 자리만 도려낸 것처럼 존재감이 사라져 있었다. 내 기억에만 남아있을 뿐 어떤 기록도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타우러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타우러스는 애초에 우리 일행들을 잘 몰랐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순간 아리엘의 존재를 완벽히 알아봐준 딱 한 사람이 기억났다.


우리 가운데 내 다음으로 2인자가 될 것이라고 알아본 사람. 제국의 사략해적이자 내 후원자이기도 했던 루테였다.


나는 곧바로 루테의 연락처로 통신을 시도했다.


"누구시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지 통신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저 수호에요."

"누구시죠?"


목소리의 뉘앙스가 전혀 나를 못알아보는 뉘앙스였다. 마치 잘못 걸었던 전화처럼 말이다.


"혹시 루테씨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런 사람 없어요."

"거기 제국 사략 해적선 아닌가요?"

"아니에요."


통신이 끊겼다.


혹시나 연결이 잘못 되었나 싶었지만 연결은 제대로 되었다.


"베로니카, 사략해적 루테에 대해 알아봐줘."

-정보를 수집합니다.


베로니카에게도 루테에 대해 물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찾아볼까요?

"아니 됐어."


이로써 뭔가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다. 루테와 아리엘이 사라졌다. 사실 아리엘만 사라졌더라면 내가 가닥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루테도 사라졌다는 사실은 내게 강한 힌트를 건네고 있었다.


루테를 얽매고 있는 키워드.


황제였다.


거의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확신을 채워줄 존재가 필요했다.


나는 루이 첸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다행이 이번에는 연결이 되었다.


-드디어 돌아왔나보군요.


!!!!!!!


사실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차 행성에 멋대로 들어왔고, 멋대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황제의 행성 멜롯에서 만났고, 납치되었을 때 나를 도와줬다.


의심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던 사람. 루이 첸에게서 나는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직감을 얻었다.


"루테와 아리엘에 대해 기억나는게 있나?"

-멋진 사략해적이었지요. 아리엘이라는 꼬맹이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저번 휴가 때 있었던 아이를 말하는 건가요?


루이 첸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차 행성에 있지 않은 영향이었을까?


"지금까지 어디에서 지냈지?"

-멜롯에 있었죠.


확실히 루이 첸을 떠올린 것은 정답이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한 가지 부탁해도 되나요?


루이 첸은 말을 계속 이었다.


-저 좀 살려주실래요?

"어디길래?"

-미친 황제가 저를 잡아 먹어치우려고 하거든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도움이 필요해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리엘이 사라지고, 루테도 행적을 알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아리엘과 루테를 기억하는 남자 루이 첸이 황제로부터 위험을 느끼고 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황제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 더 이상 차 행성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곳 위치와 필요한 도움을 이야기해."

-이 통신도 오래 못해요. 황제 궁 비밀 장소라는 것 외엔 저도 몰라요.


그때 통신 너머로 잡음이 들려왔다.


-슬슬 마지막이군요. 어려우면 굳이 안 도와주셔도 돼요. 그곳 나름의 당신의 행복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것마저 희생시키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통신이 끊겼다. 혹시나 싶어 계속 통신을 시도했지만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을 굳혔다.


***


"황제를 공격하러 가겠다고요?"


케레시스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그 외에도 호세, 세실리아, 힐데가 옆에 있었다. 언제나 나를 도와주었던 이 네 사람이 이제는 각각 행성에서 커다란 역할을 맡고 있는 거물들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따라오라고 하지도 않아. 그냥 알아만 두라는 거야."

"아니 이제 막 돌아오셨는데 또 어디로 가세요!"


여전히 젊은 모습을 지니고 거기에 성숙함도 지니게 된 힐데의 말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어. 어차피 더 이상 내가 이곳에서 할 일은 없어보이기도 하고. 내가 굳이 나타나는 것보단 이야기 속 행성을 수호하는 역할로 남아도 충분해 보여서 말이야."

"말이 황제이지 그곳이 어디라고 들어가십니까!"


호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한 번은 이렇게 맞서야 할 거라 생각했어."


오래전, 내가 제대로 성장하기 전 부터 저 멀리 우주에서 전해지는 시선이 있었다. 확실히 알지 못했던 시선이지만 이제 알 것 같았다. 그것은 황제의 시선이었다. 그랬기에 루테를 만나서 황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고, 이제 그것이 보다 구체화 되었다.


"황제의 정체는 아마 평범한 인간은 아니겠지. 그리고 그것은 의지체인 내가 한 번은 만나서 서로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야 할 거라는 이야기야."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데요?"


세실리아. 이제 아르뎅 가문의 온전한 주인이 된 그녀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젠가 아르뎅 가문의 피닉스를 만났지. 오랬동안 침묵했다가 겨우 만났을 때 사라졌잖아? 내 예측으로는 아마 황제도 그에 연관이 있을거라고 봐. 아직 확실히 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제 피닉스는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요? 벌써 30년도 더 넘게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제게 미련은 없어요. 중요한 건 선주가 우리에게 돌아왔다는 거에요!"


나는 문득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했다.


"그랬구나. 다들 너무 고맙네."


하지만 타우러스가 나를 불러서 맡긴 일이 있었다. 피닉스의 소멸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 달라. 이미 30년이 지난 지금 차 행성이 있는 이곳 타우러스 항성계에서 조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멜롯으로 향해야 했고, 그곳에서 모든 비밀을 쥐고 있는 황제를 만나야 했다. 저번에는 지나가듯 서로의 속내를 비추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온 존재를 통해 맞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해왔으니 너희가 더 잘 알겠지?"


케레시스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 표정은 호세도, 세실리아도, 힐데도 짓고 있었다.


"그러면 리사 총수가 올 때까지만 좀 기다려줘요."

"리사가 더 이상 이사가 아니라고?"

"벌써 기업 총수가 되었다고요. 얼굴은 봐야하지 않겠어요?"


그들의 말에 내 마음이 조금은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그때까지 기다릴게."


그렇게 황도 멜롯으로 가는 것은 조금 미뤄지는 걸로 결정이 났다.


***


하지만 결정만 그렇게 났을 뿐,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리사 이사 아니 이제는 리사 총수가 된 그녀까지 만나면 내 결심은 흐트러질 것이 분명했다.


황제는 아무래도 좋으니 변방에 있는 타우러스 항성계에 숨어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 내 마음을 파악한 것은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앉아있는 시간 가운데였다.


아무래도 이제 나이들이 많다보니 다들 일찍 잠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은퇴해서 편히 쉬는 것도 아니고 각 행성의 주요 현역 책임자들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가운데에도 여러번 통신이 왔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나와 같은 짐을 져달라고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예전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험을 떠나는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왔을 이별이고, 그것이 지금일 뿐이다.


"다들 잘 있어."


홀로 잠에 들지 않는 나는 방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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