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설아는 정신을 잃고 사공운에게 업혀온 신독을 보며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자신과 사공운을 위해 목숨을 건 사내, 단지 의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그의 마음이 한량없이 가슴을 울린다.
"사영환님, 신소협은……괜찮을까요?"
신독의 혈도를 짚어 지혈하려 했으나 상처가 너무 커 난감해하고 있던 사공운은 고개를 들
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일단 근골을 상하진 않은 듯 한데……."
"으……음."
정신을 차린 신독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를 일으켜 주……시고, 진기를 좀 주입해 주세……요."
사공운은 신독의 청대로 그를 일으켜 바위에 기대 앉혔다.
"안전한 곳……입니까?"
"내가 급조한 환영소석진(幻影小石陣)일세. 반시진 정도는 적의 눈을 피할 수 있네. 그냥 바
윗덩어리로 보일걸세. 자개봉과는 꽤 떨어진 곳이니 괜찮을 걸세. 초영이 죽었으니 한시름
놓은 것 아닌가? 상세나 살피게."
사공운이 말을 끝내고 명문혈을 통해 진기를 조금씩 돋아 주었다. 신독은 가부좌를 힘겹게
틀고 토혈을 해 죽은 피를 뱉어내고 서서히 품 안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다.
익숙한 솜씨로 허벅지를 꼬매어 상처를 닫은 신독은 사공운을 보았다.
"사대협……께서 어깨를 꼬매 주세요."
"아프지……않은가? 난 이런 것은 한 번도 안해봐서……."
"일단 피를 멎게 해야지요. 후우……, 시간이 없습니다. 치료는 나중에 제대로 받을 겁니다."
신독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보며 생살을 꼬매는 사공운의 마음은 쓰라렸다.
"마혈을 짚을까?"
"그럼……혈맥이 굳어 오히려 안좋습니다. 당장 활동을 하려면……이 상태로 봉하는 게 좋
습니다."
어깨를 다 꼬매자, 신독은 운기에 들어갔다. 빨리 소주천이라도 한 번 해서 힘을 모아야 한
다. 아직 안심할 수 없다.
한식경쯤 흘렀을까, 신독이 눈을 떴다.
"괜찮나?"
"당장 몸을 움직일 여력은 된 듯 합니다. 어서 여길 떠나야겠습니다."
많은 출혈로 창백해진 신독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설마……우두머리가 죽었는데 추적이 이어지겠나?"
신독은 사공운을 보며 어렵게 입을 떼었다.
"사대협……, 이변마왕에게 들었습니다. 초우지보를 갖고 계신가요?"
사공운은 흠칫했다. 초우지보. 배교의 지존령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었다. 배교인이 아니라면
그 명칭을 알지 못했다. 그것도 핵심의 수뇌급만이 아는 이름이었다.
"분명……, 초영이 초우지보라고 했나?"
"예."
"초우지보는 배교지존령의 별칭이네. 아는 이가 거의 없지. 초영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갈라진 배교 일파일 가능성이 크네. 어서 여길 떠야 겠네. 그가 소혼술(消魂術)을 익혔다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어."
아연한 말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사공운은 서둘러 등짐을 매고 용설아를 업었
다. 신독을 돌아보았다. 이제 겨우 사경을 벗어나 몸을 추스린 상태, 이제 자신이 지켜줄 차례였다.
"사대협……, 청이 있습니다."
"무언가? 뭐든 들어주겠네."
뜻밖의 부탁에 사공운은 서둘러 대답했다. 이 친구에게는 무어라 보답할 길이 없다. 뭐든 해
주고 싶다.
"형님이라 하고 싶습니다."
사공운은 신독을 보았다. 삼일의 인연이다. 하지만 만리장성을 쌓은 듯 가까운 생사의 동지.
마음이 뜨거워졌다.
"아우!"
사공운은 신독의 손을 마주 잡았다. 등 뒤의 용설아도 기꺼운 마음에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신독은 사공운의 손을 감싸잡으며 격동에 찬 마음을 가라앉혔다.
풍백에 이어 두 번째로 부르는 형님소리다. 진정 사내다운 사내, 자신을 버리지 않고 구하러
온 사내, 형으로 삼아 한 점 모자랄 것이 없는 장부였다.
"형님, 이 곳은 제가 말씀드린 고사목 군락에서 일마장쯤 떨어진 곳입니다. 이 곳에서 서북
방면으로 고사목 군락을 지나 직진하면 관도를 따르지 않고도 작은 야산이 나옵니다. 시루
봉이라 합니다. 그 곳은 봉성의 코 앞이라 할 수 있지요. 먼저 그 곳으로 가십시오. 곧 따르
겠습니다."
"안돼네. 함께 가세."
"지금 제 몸으론 전과 같은 속도로 산을 뚫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남아 적의 이목
을 교란해야 합니다. 염려 마세요. 전 숲 속에서는 죽지 않습니다. 이 곳에서는 제 결정에
따른다는 약속을 잊지 마십시오."
사공운은 신독의 절절한 마음에 가슴이 떨림을 느꼈다. 외로운 이 길, 얼마나 든든한 아우가
생겼는가. 두고 갈 수 없다.
"영환호위무사는 목숨을 걸고 호위자를 지키는 것 아닙니까."
쿠쿵!
사공운은 둔기에 머리를 맞은 듯 했다. 그렇다. 용설아를 지켜야 한다. 나의 아내, 목숨을 걸
고 지켜야 할 사람. 그니를 지키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가 아니던가.
용설아가 등 뒤에 느껴졌다. 작게 팔딱이는 심장의 고동이 전해졌다. 봉성까지 무사히 데려
가야 한다. 비록 다른 이의 품에 안기는 길일지라도…….
사공운을 신독을 보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가야……한다.
"약속해라……."
"말씀하십시오. 형님."
"죽지마라. 절대로."
신독은 사공운을 보고 용설아를 보았다. 가슴이 달아 오른다. 사나이 한 목숨. 지켜줄 이를
위해 버릴 수 있다면 가장 크게 얻는 법. 호기가 끓어 오른다.
"약속하겠습니다. 절대……죽지 않겠습니다."
사공운은 신독의 눈을 보며 손을 맞잡고는 몸을 돌렸다.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새로 맞은 아우에 대한 최대의 보답이다.
"신소협……, 꼭 다시 만나요."
"아가씨, 형님과 아가씨를 다시 뵈러 가지요. 그 때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만나기를……."
사공운의 등에 업혀 숲을 달리는 용설아는 신독의 마지막 말을 계속 생각했다.
'저도……사영환님과 다른 모습으로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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