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곤 어렸을때 독후감 써본게 전부다보니
어머니 은퇴식 감사문 두 페이지 적는것도 정말 힘드네요.
저는 장남이고 한 살 어린 여동생이있어요.
아버지가 고추장사를 하다 망하셔서
제가 7,8세 때 어머니가 수산물 시장 노점상을 시작하셨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셔서 일 마치고 들어오면 밤 8시고 공휴일도 없이 일하셨어요
키 140에 몸무게 30~40kg 되는 몸으로
30년간 중노동이나 다름 없는 수산물시장에서버티셨으니
그 고생을 글로 다 표현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욕심 많고 자존심 센 아이였는데, 공부 머리는 있는 아이였어요.
시골이어서 가능했지만,
전교1~3등을 유지해서 선생님과 친구들 관심을 많이 받는 아이었어요.
저는 초라한 집이 부끄러웠고 ( 국민학교 3,4학년까진 나무를 때고 살았거든요)
어머니가 시장 노점에서 생선 장사를 하신다는게 자존심이 상했어요.
어머니가 중노동 하는게 너무 짠하고 슬픈데, 친구들에게는 들키고 싶진 않았어요.
친구들을 한번도 집에 초대하지 않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말했어요.
사춘기 끝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어머니 일하시는 시장 이따금 들렸어요.
어렸을땐 혹시나 아는 사람 마주칠까봐 얼씬도 안했거든요.
어머님은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사셨을까 생각이 들어요.
키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다 쓰러져가는 시아버지도 없는 집에 시집와서
반 평생 중노동 하여 남매 뒷바라지 하셨어요
본인 인생은 없고 , 오직 자식 잘되는것 만이 낙이 아니셨을까 싶어요.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직장,사회 생활 할 자신이 없었어요.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자존심 세고, 자기 보호 거짓말을 밥먹듯했거든요.
이런 나를 알고나면
아무도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까봐 두려웠어요.
그 시절엔 비빌 언덕도 없었고
평범하게 자라서는 인생 망한다는 경각심이 컸지요.
그런 두려움과 부모님 성실함을 지켜본 덕분에
지금은 전문직 면허증을 취득하고 개원해서 큰 부족함 없이 살고있습니다.
결혼해서 어린 삼남매를 키우고있구요.
아이들 데리고 공원,놀이동산 가는게 가장 큰 즐거움이예요.
우리 아빠가 제일좋아, 아빠랑 잘꺼야, 아빠 안아줘 이런 말 들을때마다
행복한 삶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엄청난, 아이가 주는 행복을 느껴보았을까요.
새벽에 나가 , 자식들 잠들기 전에 들어와 잠깐 얼굴 보다보니
어느새 자식들은 이렇게 다 커버렸네요.
뼈마디가 다 닳아서 더 이상 일 할 수 없는데도
그만 둔다 그만두다 말씀만 하실 뿐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은퇴 하시네요.
수 년전부터 그만 두시라고 만류는 했지만,
30년 단골이 쌓이고, 시장에서 유명인이 된 어머님 월 수입이
저 보다 많을 때도 있어요.
내심 좀 더 일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만류하지를 못했어요.
이 나이 먹도록, 삼남매 아빠가 되어서도
저는 자립심이 없었네요.
내가 잘못되도 엄마가있으니까, 힘들면 엄마가 도와줄테니까 ,
내가 장남인데 엄마가 힘들면 또 도와주겠지
그리고 엄마는 돈을 잘 버니까.....
일을 그만 두신다는 말을 듣고나니
비로서 어른이 된 기분이 들더군요.
시장 이모들에게 우리어머니가 이렇게 고생하셨고
그 고생한 인생이 자랑스러운 인생이었고
이제부터 보답 받는다는 걸 보여드리고싶어요
아들이 이제 철이 들려고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싶어요.
그 날 만큼은
시장 이모들에게 큰 박수 받으면서 은퇴하게끔 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표현 못했던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끄집어 내어 보여드리고싶어요.
그 동안 집안 행사같은건, 아내에게 맡기면 척척 해결해주었는데
이번 만큼은 제가 해야겠어요 .
감사문을 읽고, 감사패를 먼저 드린 후
저는 어머니 업고 시장 이모님들에게 인사 드릴려구요
제 아내와 아이들, 동생네 가족은 수건과 떡을 들고 시장 사람들 나눠주고요.
사진사 불러서 은퇴 기념 가족사진 액자도 만들구요.
두 달 정도 시간이 있어요.
감사문 작성해서 연습하고,
한 두가지 이벤트 더 추가해서
준비하려고 합니다.
오늘 주말이라 시작하는데!
감사문 첫 줄 작성하는 것도 이렇게 어렵네요 ^^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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