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챙!’
수풀이 우거진 산 속에서, 살기를 덮어 쓴 칼날이 부딪치며 내는 쇳소리가 주변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 눈과 귀를 거의 덮을 수 있을 정도의 남자 치고는 긴 머리칼을 가진 남자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땀과 함께 피가 흘러 이마와 머리카락을 더럽히고 있었다.
“김 경…… 도망가라. 어서!”
남자는 뒤를 돌아보고서 그의 시선에 들어온 한 철없는 소년을 보고서 소리쳤다.
그 소년의 이름은 김 경.
동양인이 가지기는 무척이나 힘든, 아니. 가질 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적갈색의 긴 머리카락과 얼마나 입었는지 모를 회색의 헌 모시옷. 그 위로 눈길이 목을 타고 올라가면 날카로운 턱과 코를 가진 김 경의 얼굴이 보인다. 날카로운 코 밑엔 자그마한 입이 있었고, 15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매우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
하지만 지금 그 눈빛은 너무도 애처롭게 자신 앞의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 싫어…… 이대로 도망가면 사부님은 어떡해!”
“듣기 싫다! 어서 도망가란 말이야!”
“난 사부님이랑 같이 죽을 거라고 했잖아! 절대 도망 못 가!”
“이 자식…… 나는 네 아버지한테 부탁 받았단 말…… 컥!”
그 순간, 사부님이라고 불린 남자의 품 속으로 긴 칼이 빨려 들어오듯 쑤셔 박혔다. 그 바람에 남자는 자신에게 칼을 꽂은 자객인 듯 보이는 남자의 어깨에 피를 토하고 말았다.
“크윽… 경아, 빨리 가라니까!”
김 경의 사부에게 칼을 꽂은 남자는 흰색과 검은색이 제 멋대로 섞인 듯한 온 몸을 덮는 망토, 그리고 삿갓과 하회탈을 쓰고 있었다. 하회탈의 왼쪽 눈 밑에는 잘린 듯한 흉터가 있었다. 사실 나무로 만들어졌을 뿐인 탈에게 ‘흉터’ 라는 말을 쓴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긴 하지만 그 형상을 보아 방금 생긴 듯 했다.
“경아…… 저 자의 모습을 잘 기억해 두거라. 지금의 너는 저 자를 이길 수 없다! 검술도, 술법도 모두 너보다 한참 위야! 그러니 지금은 도망쳐서, 훗날…… 반드시 그를 다시 만나거라. 그러니 어서……!”
“흐으…….”
김 경은 무너져가는 자신의 사부님을 보며 흐느끼기만 했다. 그 모습에, 다시 김 경의 사부님은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어서 도망가!”
그 말을 마치고, 다시 한 차례 피를 토해내고는 땅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회탈의 사나이는 김 경의 사부님의 품에서 칼을 뽑아냈다. 그러자, 그와 함께 한 움큼의 피가 또 뿜어져 나왔다. 칼에는 피가 듬뿍 묻어 나왔지만 그 칼을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 천으로 닦아 내는 그의 얼굴이 헤죽헤죽 웃고 있는 하회탈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김 경의 눈엔 그가 더욱 더 잔악해 보였다.
“넌 아직 나에게 죽을 정도의 가치는 없군. 그만 꺼져라.”
하회탈의 사나이는 매정하게 한 마디 내뱉고는 산 아래로 유유히 내려갔다.
김 경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발걸음을 돌리는 ‘원수’ 의 모습을 멀찌감치서 눈물을 짜며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사부님……?”
김 경은 아직도 경직됐던 몸이 풀리지 않았는지 몸을 파르르 떨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사부님에게 기어가서는 새하얘진 그 뺨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 순간 김 경은 숨이 멎는 듯 했다.
정말…… 얼음처럼 싸늘했다.
김 경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 안돼… 거짓말이야!”
대체 뭐 때문에. 그 사람이 뭐 때문에 사부님을 죽였는지 김 경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나고, 더욱 슬펐다. 어째서 자신의 사부님이 죽어야만 했는가? 김 경은 참을 수 없어 주먹을 꽉 쥐고선 오열했다.
“거짓말이야……!!”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스승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푸른 무궁화의 개화와 함께.
* * * * * *
문피아에 들어와서 처음 쓰는 작품입니다.
뉴웨이브 장르로 도전해보는데.. 잘부탁드립니다.
뭔가 새로운 뉴웨이브 소설을 보고 싶으신 분은 와 주세요. 기대에 부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유연재란 뉴웨이브, 한반도 연대기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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