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쓴 글에 댓글이 20개 넘게 달렸던데.
종종 [그럼 그냥 판소 아님?]이라던가 [게임이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말이 보이는데.
좀 험하게 한마디. 젠장.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면 그냥 게임인지 판타지인지 분간이 못 간다던가, 차라리 게임이 아니라 판타지가 낫겠다 하는 이야긴 순전히 작가 필력 문제 아닙니까? 작가가 배분을 못하고 분위기를 못 만든 거지, 효과음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가상현실을 엄격히 구분하는 캐릭터를 만들든, 그걸 동일시하는 캐릭터를 만들든, 게임 속의 퀘스트 진행상황을 서술하든, 그 보상과 아이템을 언급하든 나름 이건 '게임이다'를 인식하고 쓰면 메시지고 알림음이고 좀 적게 나와도 이세계가 아니라 가상현실게임 분위기 못 낼 게 뭐 있습니까? 꼭 그런 메시지나 알림음이나 안내창이 '유치하게, 여러번 나타나야' 게임처럼 보이나?
한 몇 년 전쯤 PC게임잡지들에게서 울티마 온라인 기행기들을 참 재밌게 읽은 본인은 거기서 <띠링, GM이 되었습니다>라느니 그런 거 안 보고도 참 '현실 같은 게임'을 엿봤습니다.
이름 만드는데 숫자가 못 들어간단 사실을 몰라 쓸데 없이 낑낑거리거나,
멋대로 '마법사는 지능!'이라며 힘을 최소로 잡았다가 걷지도 못하는 캐릭터가 되어 다시 캐릭터 만드는 모습이라거나,
팬티에 단검이나 곡괭이만 들고 달리는 사람들 보고 '왜 저러지?' 했다가 얼마 못 가 그 이유를 깨닫는다던가,
광물을 미친 듯이 캤는데 머더러에게 걸려서 작살나고 몇 시간짜리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다던가(앞서 말한 알몸 행진의 이유),
하도 화가 나서 검술을 조금 배워서 어설픈 마법사 머더러를 궁지로 몰아 주변 광부들과 다구리 쳐 잡은 이야기라던가,
아직 지도만 구상 중이고 공개가 안 된 던전을 찾는다고 이틀을 허비한다던가,
무심코 길드 성문을 열자마자 도둑이 쏜살같이 들어와서 스텔스 VS 디텍트하이딩 연속 싸움이 벌어진다던가,
패치 이후 특정 상자에 안 담고 집 바닥에 내려놓은 아이템은 몇 분 뒤 다 사라진다는 사실을 깜빡해 아이템을 다 날려먹는다던가,
초강력 폭탄 가방을 버려두고 멋모르는 초보들이 자폭하길 노리는 팅커들이라던가,
사람들 열심히 전사 수련하는 본나이트 방에 옆 방의 포이즌 엘레멘탈 끌고 들어와 대량학살을 벌이는 X새라던가.
리치(실버 무기만 들면 만만한 사냥감)와 리치 로드(재앙)를 분간 못해서 리치 로드에게 복날 개 맞든 맞고 죽는 이야기라던가.
그 울티마 기행기 기억하는 사람들 있으면 말해보십쇼. 거기서 <띠링, 스킬이 올랐습니다.>라던가 <띠링, 300원을 얻었습니다> 따위의 메시지가 주구장창 뜬 적 있는지. 시스템상 스킬 숙련도가 0.1단위로 메시지 뜨던 그 게임에서도, 기행기에까지 그걸 언급하진 않았는데.
정말 그게 게임소설의 필수입니까? 그거 유치하게 보일 땐 정말 보기 싫더라는 게 "게임소설을 이해 못하는 놈의 헛소리" 같아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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