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실력이 미천해서 짧은 한두 마디 댓글로는 심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빤하기에 이렇게 두서없는 새 글로 전합니다. 회원여러분들의 많은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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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게시판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제 이름을 발견하고는 무슨 일인가 싶어 화들짝 놀랐습니다. 난데없이 ‘계좌번호를 얼른 알려주세요’하는 글 제목에 낯설지 않은 이름 하나가 천연스럽게 끼어있다니 말입니다.
후원이란 두 음절을 두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거래’에 익숙해진 삶에 ‘후원’이란 단어는 연습장을 가득 채우고 외워도 좀체 입에 붙지 않는 외국어 스펠링처럼 생경하기만 했습니다. 커피를 몇 잔 내려 마시고 담배를 몇 개비 태우고 나서야 그 뜻을 겨우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점치고, 문학의 초라한 몰골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철학은 한 없이 가벼워져 휘발하고 문학은 끝 간 데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영상통화는, 침 발라 우표를 붙이고 나서도 빨간 통 앞에서 망설이던 마음을 손바닥 보다 작은 액정 안으로 들이밉니다. 진중한 토로는 스크롤 압박이라는 한 마디로 눈 흘김 당합니다. 미학의 미덕은 스펙타클이 점거하고 있습니다. 반성과 성찰은 마케팅 전략에 따라 상품이 되어 진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고 문자를 만들어낸 이래로 문학은 한 번도 자기 자리를 내준 적이 없습니다. 언뜻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만약 문학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가 있다면 그 때의 인류는 지금의 인류가 아닙니다. 철학이 백과사전에나 등장하는 유물로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종이 출현해 이 행성을 점령한 세계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을 쓰고 있고, 또 쓰려고 합니다. 장자가 “소설은 큰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飾小說以干縣令, 其於大達亦遠矣.)"고 했던가요. 그는 경계 없는 세계에서 무궁의 문을 드나들며 조물자와 함께 뛰놀았는지 모르지만, 저는 감히 비웃습니다. 사양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꿔 감히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돈이 아니라 응원과 질책으로 받겠습니다. 인식의 지평을 일 제곱센티미터라도 넓히는데 쓰겠습니다. 감수성의 중량을 일 그램이라도 키우는 데 쓰겠습니다. 넓어진 일 제곱센티미터가, 무거워진 일 그램이 천 명에게, 만 명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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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 그리고 소생
-감사의 말씀에 붙여
항몽
아직 이르다.
종언을 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심폐소생술로 다시 뛰게 하지 못한다면
으스러진 갈빗대를 열어
심장을 쥐어짜서라도 뛰게 하면 된다.
투석으로 새 피를 돌게 하지 못한다면
좁아터진 혈관을 벌려
입으로 불어서라도 돌게 하면 된다.
불면으로 돋아난 실핏줄 벌건 눈으로라도
물집 터져 오히려 욕창으로 번진 발바닥으로라도
다니고 찾고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끼고 곰삭히고
팔딱팔딱 언어 하나라도 건지면 된다.
아직 이르다.
심장이 뛰고 피가 도는 한
소생하게 되어있다.
아직 이르다.
종래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싹은 트게 되어있다.
아직 이르다.
그것. 부토(腐土)의 법칙. 지금 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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