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평소 생각... 한담인 이유는 오채지 작가님의 십만대적검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요 태규 나민채 등 문피아 작가님들이 주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우겨 봅니다만 토론마당에 올리기에는 정리가 안 되어있고 정담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고 조회수도 연담이 제일 높은지라 연담에 올립니다... 뭐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으면 어련히 처리해 주시겠죠.
판타지를 1세대 - 2세대 - 3세대로 나누는 것처럼 무협도 흔히들 1세대 - 2세대 - 3세대로 나뉘고 1세대를 구무협, 2세대를 신무협, 3세대를 판협지의 시대로 구분하는데요. 개인적으로 3세대는 논할 가치도 의미도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판타지측은 특히 그러한데 한국 판타지 소설의 3세대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그냥 무협의 써먹기 편한 액기스만 뽑아온 짝퉁일 뿐이죠. 무협도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묵향>과 <비뢰도> 이후로 판타지와의 융합이 시도되었고 한동안 흥했습니다만 그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가히 시조와 같은 정형문학(?)의 한 종류가 되어버렸지요. 관련된 비판은 지금까지 수백 수천 번 다뤄졌으니 생략.
하여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4세대’ 인데... 판타지 쪽에서는 보통 라이트노벨로 을 4세대 판타지로 보고(작가도 많이 넘어갔고 독자층도 많이 겹친다죠?) 있지요. 물론 현대 판타지 라는 장르가 있습니다만 이건 본질적으로 3세대 뽕빨 판협지를 더욱더 저질스러운 방향으로 자극성만 높이기 위해 배경만 바꾼 괴작들이므로 마찬가지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무협에 있어 ‘4세대’ 는 무엇이냐, 하는 얘기.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제가 볼 때 무협 역시도 판타지의 4세대 - 라노벨 흐름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세대 교차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은 그 대표 주자로 태규와 장영훈, 두 작가님을 꼽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4세대의 특징으로 또 한 번의 “장르융합” 을 언급하려는데요, 간단하게 논해 보겠습니다.
장르융합은 무협의 시대적 맥락을 짚어봐야 될 것 같은데요, 최초의 융합이 일어난 것은 다들 잘 아시다시피 3세대입니다. 그러나 저는 3세대의 융합을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융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악하지만 비유를 들자면, (그나마 정상적인) 요리에 양념을 한답시고 똥물을 끼얹은 꼴이랄까요.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3세대 판협지는 무협의 주요 골자를 어설프게 판타지化 시키고 이리저리 섞어서 만들어낸 허접한 산물이었죠. 판타지와 무협 중에 어느 장르가 더 큰 피해를 봤냐, 고 하면 물론 판타지지만(1,2세대 이후 사실상 한국 판타지는 맥이 끊겨버렸죠) 무협 역시 만만치 않죠. 판타지와 무협이 (최악의 방향으로) 합쳐지며 이도저도 아닌 글줄이 범람했으니까요. 그러한 글들은 최소한의 무협적 요소는 품고 있지만 독자들에게 얼마 만큼의 제대로 된 장르적(무협적) 재미를 줬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결국 3세대의 장르융합은 명백한 실패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실패한 장르융합은 원인보다는 결과에 가깝지 않나 하지만 논점에서 어긋난 얘기니까 넘어가고.
하면 4세대의 세대 교차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르융합의 대상은 무엇이냐- 저는 기존의 “전통적 무협” 과 일본 서브컬쳐로 대변되는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으로 봅니다.
...어. 뭔가 어려운 말 나왔죠? 근데 사실 저도 잘 몰라요 ㅋㅋ 그냥 이런 글 쓸 땐 각 좀 잡아야 될 것 같고 어려운 용어 써야될 것 같고 해서 개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 번 끄적여 봤습니다. 번역(?)하자면 만화-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은 근대문학(우리나라로 치자면 순수문학-이런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의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소위 “덕후물” ,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라이트노벨, 일본 애니메이션, 만화 등에서 찾는 리얼리즘이라는 것이지요.
관련해서는 논의가 여럿 있는 걸로 압니다만 제가 거의 알지 못하는고로(...) 제가 이해한 방식대로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풀이하자면 우리가 김영하나 헤밍웨이, 톨스토이 같은 소설들과 소드 아트 온라인 바보와 시험과 소환수, 이런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많이 다르잖아요. 단순히 소재의 차이로 퉁칠 수 없는 작품 전반에 걸친 명명백백한 차이 - 인물(캐릭터)의 성격,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방식, 다루는 주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매커니즘, 독자들이 소비하는 방식... 이런 작품군 전반에 걸친 공통적인 특징을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물론! 본인이 주워들은 내용을 조합하여 멋대로 내린 정의이므로 현실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 무협소설로 돌아와서- 그럼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과 무협소설이 무슨 상관이냐, 하면 제가 위에서 언급한 “태규” 와 “장영훈” 두 분의 소설을 봐야 하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두 작가님의 소설에서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이 섞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1세대에서 2세대 무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죠. 편의를 위해 저는 1세대 무협에서 “무협적 리얼리즘” 이라는 개념을 추출하고자 합니다. 근대문학의 리얼리즘을 “자연주의 리얼리즘”, 일본 서브컬쳐 만화-애니메이션 계열을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선택지와 리셋이 가능한 게임 텍스트를 “게임적 리얼리즘” 남미 환상문학의 글쓰기 경향을 “마술적 리얼리즘” 이라 부르는 것처럼 저 중국의 고전인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로부터 전해 내려온 무협의 본질, 무협적 내용을 통털어서 “무협적 리얼리즘” 이라 칭하겠다는 겁니다(굉장히 애매모호한 정의라는 걸 압니다만 저는 정식으로 훈련받은 비평 평론가가 아니므로 양해를).
1세대 무협은 90년대부터 시작된 북파(北波)와 남파(南波)로 대표되는 근대의 중국 무협소설의 무협적 리얼리즘을 한국화 시킨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무협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구무협에 대해서는 지식이 일천하여 유창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협소한 시야에 의존하여 꼭 필요한 부분은 짚어보자면 계속 언급한 무협적 리얼리즘의 원형(본질)적인 부분이 투박한 형태로 한국땅에 정착하여 작가들이 창작하고 독자들이 소비하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즉 무협이 무협이라고 불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 무협적 리얼리즘이 이 땅에 탄생했다는 것이지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전성기를 누렸던 1세대 무협은 곧 몰락을 맞이하는데 그 이유는 모두 잘 아시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2세대 무협이 시작되는데 많은 분들이 용대운과 좌백 두 작가를 그 효시로 봅니다. 저는 여기서 좌백이라는 작가에 더 집중하고자 하는데 제 판단에 따르면 좌백이야말로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그 모든 변화와 특질과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러한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2세대에서 4세대로의 변화(장르융합)이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1세대에서 2세대로의 변화는 한마디로 “자연주의적 리얼리즘” 의 도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무협 소설의 작법(作法)에 현대소설(정확히는 근대소설)적으로 변했다는 얘기지요. 많은 분들이 그 변화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가장 먼저 “문체” 의 변화를 들 수 있겠지요. 기존의 지나친 한자어나 한 줄 의성어의 배제, 근대소설과 비슷한(하지만 전혀 똑같지는 않은) 문단나눔이 외향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이고, 또한 소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크나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존의 고전소설을 연상케 하는 영웅적, 연대기적 구성에서 좌백의 소설(그리고 2세대 무협은)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구무협의 큰 단점으로 꼽혔던 지나친 우연성은 이제 근대소설다운 필연성, 개연성을 갖추게 되었지요.
다시 말해 좌백, 진산, 장경, 풍종호 등으로 대표되는 신무협 작가들의 특징은 기존의 “무협적 리얼리즘” 의 토대에서 병폐로 꼽히던 부분을 떨쳐내고 근대소설적 글쓰기를 도입함으로써 큰 호응을 받은 겁니다. 이는 중국에서 먼저 일어난 현상이라고 추측되는데 신파(新波) 무협, 즉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김용과 고룡 두 거인이 먼저 걸어온 길입니다. 실제로 김, 고 두 작가 특히 고룡이 한국무협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막대하다고 합니다. 다만 신무협 작가들(특히 그 효시를 쏘아올린 좌백이)이 새로운 작법의 도입에 김용과 고룡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기존 제도권 문학을 도입한 건지 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좌백님의 저서에 관련 내용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 정도면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은 충분히 잘 설명이 되었다고 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3세대 판협지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인이 주장하는) 4세대 무협에 대해서 논하도록 하지요. 표로 정리하면 훨씬 이해하기 편할 듯합니다.
1세대 무협 = (중국에서 전파된) 무협적 리얼리즘
2세대 무협 = 무협적 리얼리즘 + (좌백으로부터 시작된) 자연주의 리얼리즘
4세대 무협 = 무협적 리얼리즘 + 자연주의 리얼리즘 +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4세대 무협은 2세대가 쌓아올린 토양에 새로운 요소가 도입됨으로써 성립합니다. 제대로 된 평론이라면 사실 이 부분에서 (1세대→2세대의 과정을 설명했듯) 여러 외부적, 내부적 차이를 조목조목 짚어봐야겠습니다만 필자는 능력도 딸릴 뿐더러 2세대 - 4세대의 세대 교차는 1세대 - 2세대의 세대 교차보다 그 차이점이 덜 드러나고 아직 진행 중에 있는 듯하여 일괄적으로 그 차이점을 정의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여 다소 비겁하지만 두 작가(태규, 장영훈)이 보여준 몇몇 새로운 시도와 (절반의) 성공, 그리고 보수적인 무협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보여주는 반응을 들어 이 변화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부끄럽게도 세대 교차를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실증적 사례에 대해서는 다양한 예시를 떠올리기가 힘들군요. 이를 테면 장영훈 작가가 “절대군림” 에서 보여준 주인공 적이건의 캐릭터성과 목표, 일도양단에서 보여준 파티 플레이적 구성, 절대마시에서 보여주는 구조적 특성과 (여러 주조연의) 캐릭터성. 그리고 무엇보다 네이버 웹소설의 아니메풍 삽화가 가미된 최신작 천하제일. 태규로 말하자면 역시 화제작 천라신조의 절대고수들과의 댓글 주고받기식의 독특한 인트로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네... 거창하게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이니 뭐니 떠들어 놓고는 실증적 사례가 많이 부족하지요. 앞서 말한 몇 가지 제반적 어려움 때문인데 이를 보충하고자 보수적(정치적 의미가 아닙니다. 절대로;) 무협팬들과 3세대 이후 유입된 무협팬들 사이의 갈등을 들어 이 빈약함을 보충할까 합니다.
태규가 근래들어 한국 무협시장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작가라는 점을 부정할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논란을 앉고있는 작가이기도 하지요. 저는 태규와 관련된 무협팬들 사이의 논쟁에서 2세대→4세대의 세대 교차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천라신조의 “자, 날아볼까?” 에 대한 분분한 논쟁들. 저 대사에 관한 논쟁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지만 제가 볼 때 그러한 논쟁은 태규가 기존의 보수적 무협팬덤에게 가져다준 위화감을 가장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태규의 무협에 대한 많은 논쟁들. 재미있다, 신선하다, 글 잘 쓴다. 혹은 이것은 무협이 아니다, 오그라든다, 애들이나 보는 거다. 사실 어떤 무협에서 “무협답지 않다” 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영어 단어(ex:점프, 데스크)의 사용은 작가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 가깝지요.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건 여성(히로인)의 부각이나 주인공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행위나 대사가 보다 가벼워지는 점, 혹은 작품의 지향점과 전개 자체가 색다른 곳으로 향하는 점 등을 들을 수 있겠지요.
물론 단순히 글을 못 써서, 인물들이 나이에 맞지 않게 유아틱해서, 라고 잘라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많고많은 현역 무협작가 중에 태규와 장영훈, 이 둘을 콕 찝어 언급한 것은 그러한 지적을 막기 위해섭니다. 태규와 장영훈(정확히는 절대강호-절대마신)에 대한 논란은 단순히 ‘글을 잘 쓰냐, 못 쓰냐’ 로 치워버리기에는 너무 찝찝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그렇다면 태규는 왜 이렇게 논쟁을 일으키나.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태규가 4세대 무협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이며 4세대 무협은 무협적+자연주의적+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이 섞여있는 무협이기 때문입니다. 태규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기존의 보수적 무협층은 1세대부터, 혹은 2세대부터 무협을 봐 오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단순한 무협적 리얼리즘 혹은 거기에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 섞인 무협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현대의 첨단(?)을 달린다고 할 수 있는, 그리고 (무협 관련 매체 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문화컨텐츠와는 굉장히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망가-애니메적 리얼리즘에는 어느 정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1세대→2세대의 경우는 호응을 받았으면 받았지 반발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것은 근대로부터 형성된 유구한 작법이며 또한 무협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익숙하지요. 하여 2세대로의 세대 교차는 “진보” 라고 간단히 정의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4세대는,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 은 분명 다릅니다. 이것은 일본에서 수입되었으며 그 외의 분야에서는 쉽게 접할 수도 없습니다.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 반발을 살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보수적 무협층이 아닌 이들, 3세대 판협지로 판무협을 시작한 세대는 비교적 그러한 반발이 적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3세대(들)은 연령도 적고 일본 매체에 익숙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용층이 태규로 대표되는 4세대 무협에 포함된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에 얼마나 친숙한가(1,2세대 무협팬-3세대 무협팬)의 대립이 곧 태규 소설에 대한 대립으로 표층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장영훈, 정확히는 절대강호-절대마신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절대강호는 무협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절대마신은 여러가지 이유로 혹평이 쏟아졌지요. 장영훈 작가가 한 작품만에 갑자기 퇴보하기라도 한 걸까요?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장영훈은 그 이전부터 아니메적 리얼리즘의 성향을 보였고 절대마신의 경우 본인은 약간 방향성을 틀었을 테고(4세대적 무협을 썼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조금 있다가도 설명하겠지만 장영훈의 시도는 (4세대로의 세대 교차라는 관점에서 보면) 실패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장영훈은 이후 네이버 웹소설에서 기존의 무협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망가풍 삽화의 접목을 훌륭히 성공시켜 4세대 무협을 대표하는 작가임을 증명했습니다. 적어도 저는 네이버 웹소설 천하제일이 4세대 세대 교체의 성공 사례로 들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4세대 무협은, 단순히 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을 추가로 섞으면 성공하는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표에서 보셨듯 4세대 무협은 무협적, 자연주의적, 망가-에니메적 리얼리즘의 조합입니다. 그리고 비중을 따지자면 앞의 두 개가 훨씬 크며 따라서 두 리얼리즘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장영훈의 절대마신을 비롯하여 많고많은 판협지 범람 이후 세대의 무협들이 실패를 맛 본 것은 이 때문입니다. 4세대 무협도 4세대이기 이전에 무협입니다. 가장 중요한 무협적 본질을 잊으면 그것은 무협독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주의 리얼리즘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근대 이후로 소설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이며 오늘날에는 “글쓰기 실력” 정도로 치환될 수 있겠지요. 3세대의 실패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비뢰도” 로 대표되는 판협지의 작가들은 무협에 대한 이해도, 존중도 찾아볼 수 없었고 따라서 기존의 무협적 리얼리즘을 기본으로 하는 1,2세대 무협팬들에게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독서로 축적된 기존의 장르적 관습, 무협적 요소에 기본적인 글쓰기의 소양, 문장력 구성력 개연성, 거기에 작가 본연의 개성까지 더해지면 그것은 훌륭한 무협, 정확히는 무협적 리얼리즘에 자연주의 리얼리즘이 더해진 “2세대 무협” 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망가-아니메적 요소가 더해지다면 바로 새로운 “4세대 무협” 이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조화입니다. 정확히는 무협과 망가-아니메의 조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서브컬쳐 계열의 문화는 무협팬들에게 낯선데 이는 달리 말하면 무협과 일본 서브컬쳐는 그 궁합을 잘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즉, 기존의 글쓰기 실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새로운 리얼리즘의 도입을 신중히 결정하지 않는다면 크나큰 실패를 맛보게 된다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장영훈의 절대마신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싶습니다. 이러한 조화는 기존 무협에 대한 빼어난 이해와 존중이 선행 되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4세대 무협으로의 세대 변화는 어떠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 저는 한국무협의 새로운 도약의 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뢰도는 사실 제가 주장하는 4세대 무협을 가장 먼저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무협에 유려한 일러스트, 그리고 정통적인 서브컬쳐 장르인 “학원물” 의 요소를 섞어 큰 성공을 거두었지요. 물론 저는 비뢰도는 기존 리얼리즘을 충실히 갖추지도 못했고 조화, 융합에도 실패했다고 보기 때문에 4세대 무협으로 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인식과는 별개로 무협+망가-아니메적 리얼리즘은 기존 무협의 외연에서 벗어나 더욱 더 대중성을 확보하고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장점은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포맷과 합쳐져 더욱 큰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무협작가의 像으로 장영훈과 태규 같은 4세대 무협작가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부분을 밝혀둡니다. 본래의 무협적,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신세대 작가들, 이를 테면 오채지나 백연 같은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테니까요. 설봉, 좌백, 장경과 같은 2세대의 거장들 역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바, 이 글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뿐 2세대 무협의 종말을 고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함이 많은 글입니다. 모든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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