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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의 만려일작(萬慮一作)

이안페이드2: 해삼위발 입찰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견마지로
작품등록일 :
2013.11.15 15:04
최근연재일 :
2013.12.11 22:2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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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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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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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 Prologue

DUMMY

- Prologue


1918년 5월 첼랴빈스크


흐린 하늘 사이로 조각난 햇볕이 들어오던 오후,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수증기가 자욱하게 지면을 덮었다.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흰 증기의 장막 사이로 움직였다. 육중한 금속의 바퀴,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듯 보이던 쇠바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채찍이라도 맞은 양 힘겹게 강철로 된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빼애액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하늘을 찌르자 바퀴는 채근을 알아들었다는 듯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퀴와 바퀴를 잇는 쇠 가로대는 노예를 묶은 사슬처럼 보였고, 굵은 쇠막대가 위아래로 천천히 들썩이자, 바퀴는 마치 숨을 몰아쉬듯 무거운 몸을 끌며 일정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귀에 거슬리는 쇳덩이의 마찰음 사이로 또 다른 소리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소리, 소리였다. 여기저기에서 바닷가의 파도처럼 사방에서 날아와 쇠바퀴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들은 온갖 소리였다.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둔중하고 빠른 발소리였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날카롭고 재빠르게 다가온 것은 파열음이었고 비명이었다. 총소리였다. 총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바퀴 위의 호흡은 점점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바퀴는 더는 소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얀 증기를 토하듯 지면에 쏟아냈다.


기차가 천천히 역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기차가 머리를 시가지에 비쭉 들이밀자 사람들의 목소리는 한층 거세게 울렸고, 총소리 역시 그에 화답하듯 도시의 건물 사이를 메아리 쳤다. 한 무리의 군화들이 달려와 증기의 안개를 뚫고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기관차가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함성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사내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열린 객차와 화물칸의 입구로 젊은이들이 자신의 몸을 짐짝처럼 던졌다. 하얀 사내들의 얼굴은 땀에 절었고, 손에 들린 총은 번득거렸지만 모두 한결같이 이를 드러내고 외치고 있었다. 패잔병의 얼굴이라기에 그들의 얼굴은 너무나도 강한 결기(決氣)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때 한 사내가 천천히 첫 번째 객차 위에 놓인 모래주머니 위로 올라갔다. 백발이 희끄무레 보이는 사내의 손에는 권총이 한 자루, 그리고 양철로 된 확성기(擴聲器)가 하나 들려 있었다.


“형제들이여!”


탕! 어디선가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한 명의 사내가 2층의 창문에서 곤두박질치는 것이 노병의 눈에 들어왔다. 붉은 완장을 어깨에 두른 시체에서 눈을 뗀 사내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장병이 계속 기차 안으로 물밀 듯 밀려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뱀처럼 기차의 끝은 멀리 정거장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사내의 입이 다시 열렸다.


“합스부르크는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또 다른 총소리가 마치 응답하듯 울려왔다. 노병의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러시아는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기차에 올라탄 사내들은 천천히 객차와 화물칸의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총을 손에 쥔 사내들의 눈은 사방을 맹금처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귀는 모두 노병의 입을 향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볼셰비키들은 우리의 길을 막았다! 고향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그러나!”

기차는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노병의 머리카락이 흐린 하늘 아래에서 흩날렸다.


“우리는 돌아간다!”

빼액 하는 기적소리가 다시금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퍼져갔다. 기차의 철륜을 감싸던 수증기가 열린 공간으로 퍼지듯 흩어지자 천천히 주위를 둘러 싼 시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사방에서 밀물처럼 몰려들던 소리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기차를 감쌌다.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총성을 음악 삼아 여기저기에서 군복을 입은 사내들끼리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같은 복색의 사내들이 서로에게 총을 발사했다. 총에 맞고 쓰러지고 나뒹굴며, 사람들은 구르고 쓰러지고 달려들었다. 젊은 청년 하나가 집중사격을 받고 역사 문 앞에서 고꾸라졌다. 하지만 더 많은 젊은이가 재빨리, 그러나 꾸준히 기차를 향해 뛰어오며 자신들의 뒤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다. 다른 듯 같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노병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퍼졌다.


“서쪽이 막히면 동쪽 끝까지 돌아간다!”


“돌아간다!”


“동쪽이 막히면 북극을 넘어 돌아간다!”


“돌아간다!”

사내들의 합창이 노병의 말에 화답하였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말 한마디에 사내들의 냉철하던 눈동자에 반짝거림이 감돌았다. 젊은 병사들을 둘러보던 노병의 입이 떨리더니 급기야 휙 하니 확성기를 내던지고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체코 만세!”

“체코 만세!”

“체코 만세!”


기차 올라탄 수백 수천의 병사들의 입에서 일기가성(一氣呵成)이 울려퍼졌다. 북방의 패자 러시아의 작은 도시에서 방금 독립한 신생국가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사내들의 팔뚝은 강건하고, 총탄은 풍부했다. 무엇보다 사내들의 눈은 정련된 강철인 양, 일절 주저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들의 총구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일제히 방아쇠가 당겨졌다. 땅에서 천둥이 치자 철마는 다시금 비명을 지르며 동쪽으로 강철의 발굽을 구르기 시작했다. 매캐한 화약냄새가 바람에 흩어져 사방에 퍼져갔다. 1918년 5월, 러시아의 도시 첼랴빈스크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동쪽으로 진군을 시작했다. 아니, 또 다른 출애굽(出埃及)의 시작이었다.


***


1920년


밝은 가로등 아래 출렁이는 황포강의 검은 물결은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놓인 비단 같았다. 소리 없이 땅을 가로질러가는 검은 구렁이의 빛나는 몸뚱이처럼 보였다. 어두운 강물 위에 빛나는 와이탄의 등불 아래 정갈한 보도로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는 외국인들의 즐거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치스러운 복장의 여인과 그를 에스코트하는 멋쟁이 신사부터 서로 주정을 하고 지나가는 노인들, 그리고 처음 상하이에 발을 내디딘 듯 황홀한 불야성에 넋을 잃고 주위를 둘러보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강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싸늘한 2월의 밤풍경을 덥히고 있었다. 강변의 보도 옆으로는 파리에서도 보기 힘든 최신식 차량들과 마차가 클락션과 고함을 동시에 울려가며 속도경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떠들썩한 와이탄의 밤거리라도 골목을 타고 도는 싸늘한 밤바람은 코트를 여미게 하였다. 앞으로 보름은 지나야만 제대로 된 봄 날씨가 찾아올 터였다. 사내는 코트 깃을 세우고 찬찬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고 있었다. 따듯한 차 한 잔이 그리운 날씨였다.

날카로운 콧수염을 기른 사내였다. 길게 기른 흑발은 뒤로 넘어가서 어깨까지 넘어오는데,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낡은 가죽코트는 장신의 사내를 마치 검은 타르를 칠한 범선의 돛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도끼날도 튕겨낼 것 같은 인상의 마른 사내는 조용히 가로등이 없는 골목 담벼락에 기대어 밝은 와이탄의 거리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미스터? 무슈? 좋은 거 하나 드릴까요?”


중국인 하나가 슬쩍 다가와 담에 기대어 있던 사내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유창하진 못해도 매끄러운 영어솜씨였다. 사내는 손을 슬쩍 들어 중국인에게 자기 갈 길을 가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중국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걸어보려는 찰나, 코트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중국인은 겨우 연습했던 대사를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놈이 곧 나올 겁니다.”


코트사내의 눈이 아주 잠시 중국인을 쳐다봤다. 흑발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색 눈이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말을 전한 중국인은 더는 눈을 마주하기 싫은지 부리나케 골목을 빠져나갔다. 심부름꾼이 사라진 뒤에야 사내는 천천히 골목 밖으로 몸을 내밀어 오른쪽에 보이는 화려한 호텔의 정문을 쳐다보았다.


휘중호텔,

차량 행렬이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상하이 와이탄의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인 휘중호텔 밖으로 양복 위에 근사한 프록코트를 걸친 사내 하나가 천천히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근사한 양복에 어울리는 근사한 카이저수염을 기른 백인사내 하나와 그에 못지않은 옷맵시를 뽐내는 중년의 백인 신사, 그리고 그들 옆으로 몇 명의 남자들이 빙 둘러싸며 사방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시하는 중이었다.

가죽코트의 사내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천천히 코트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 내었다. 기나긴 총신이 반짝거리는 권총 하나가 어느 새 코트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사내가 서 있는 곳은 완벽한 사각이었다. 가로등 하나 들어오지 않았고, 발걸음을 애써서 돌리지 않는 한 가까이 오지도 않을 법한 골목이었다. 검은 코트사내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자 어두운 골목에 희미하게 자리잡은 사내의 그림자도 못 이기는 척 천천히 손을 뻗었다. 뻗은 손아귀에 기다란 총신이 슬며시 그림자를 길 바깥으로 내놓았다. 카이저수염의 사내는 껄껄거리며 어두운 상하이의 밤하늘을 보며 웃음을 날렸고, 그의 옆에서 백인신사는 웃으며 시가를 꺼내 들고 동시에 불을 찾으러 손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쾅!

천둥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염 사내가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모로 쓰러졌다. 동시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주인만큼이나 당황한 뒷줄의 경호원들이 총을 뽑아 들고 백인신사를 겨누었다. 신사의 뒤에 있던 사내들 역시 총을 꺼내 들고 카이저 수염의 수하들을 겨누었다. 순식간에 비명소리와 함께 여인들과 사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차량이 멈추고 사람들이 모두 차 옆으로 고개를 숙였다. 카이저 수염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총탄은 정확하게 사내의 목을 뚫고 나간 뒤였고, 검붉은 피가 천천히 호화로운 호텔의 대리석 계단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제야 경호원들은 재빨리 불빛이 어디에서 보였는지 확인하고 도로 반대편으로 추정되는 총성의 시발점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하지만 어떤 존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매캐한 화약냄새만이 암살자가 그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었다. 어두운 밤 그림자가 뒤덮은 골목은 더 이상의 정보를 사내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와 비명이 호텔의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검은 코트의 사내는 가로등을 따라 조계지의 주택가를 걷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집안의 풍경은 평범한 유럽의 겨울철이었다. 아버지가 딸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사내는 물끄러미 창 밖으로 부녀의 저녁일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의 동상 같은 얼굴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하늘색 눈동자는 유심히 타인의 삶을 관조하는 중이었다.


“대인(大人), 수고하셨습니다.”


아까 골목에서 그에게 정보를 준 중국인이 어느샌가 뒤에 서 있었다. 코트사내는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중국인은 으레 그의 행동을 짐작한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봉투를 사내에게 건넸다.


“감사의 뜻으로 어르신이 드리는 것입니다.”


“필요 없어. 이걸로 내 목숨 빚과 병원비를 청산한다고 말해주게.”


“대인께서 받지 않으시면 제가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제서야 사내는 중국인을 쳐다보았다. 사내의 하늘색 눈과 다시 마주치자 중국인은 급히 머리를 숙였다. 사내를 감히 쳐다 볼 엄두가 나지 않는 듯싶었다. 천천히 코트 사내의 입이 열렸다.


“받았다고 치세. 나도 상하이에 얼마 머물지 않을 테니.”


“미스터……미스터 페이드!”

검은 코트의 사내는 몸을 돌려 천천히 가정집에서 멀어져갔다. 중국인은 차마 따라가지는 못한 채 가로등 밑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멀어져 가는 사내의 모습을 쳐다 볼 뿐이었다. 상하이의 2월, 밤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IAN PADE


해삼위발 입찰

(Bidding in Vladivostok)


작가의말

오랫만에 돌아왔습니다.

확실히 일이건 글이건 운동이건 꾸준히 손을 대고  있어야만 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향상은 화중지병이요 떨어지지 않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성장보다 어렵네요.

이번 [이안페이드2: 해삼위발 입찰]은 전작 [이안페이드- 상하이행 특송]의 후속작입니다. 인물들이 겹치고, 그로 인해 인물의 배경묘사가 부족한 점이 맹점이 될 것 같습니다만  아무쪼록 즐겁데 봐 주시길 바랍니다.  이 아이리쉬는 글이 지지부진해도 계속 가져가게 되는군요. 생명력이 잡초같은 친구인가 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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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pilogue (完) +18 13.12.11 1,802 37 13쪽
21 Chapter. (18) +3 13.12.11 1,310 28 13쪽
20 Chapter. (17) +3 13.12.09 1,157 35 20쪽
19 Chapter. (16) - 2 +4 13.12.08 1,141 27 11쪽
18 Chapter. (16) - 1 +1 13.12.08 934 24 16쪽
17 Chapter. (15) +2 13.12.05 1,201 31 17쪽
16 Chapter. (14) +4 13.12.04 1,213 36 18쪽
15 Chapter. (13) +3 13.12.02 1,365 24 12쪽
14 Chapter. (12) +3 13.12.01 1,568 29 15쪽
13 Chapter. (11) +3 13.11.29 1,134 23 18쪽
12 Chapter. (10) +1 13.11.28 1,081 32 17쪽
11 Chapter. (9) +2 13.11.27 1,315 31 14쪽
10 Chapter. (8) +1 13.11.26 1,345 26 15쪽
9 Chapter. (7) +1 13.11.24 1,703 33 16쪽
8 Chapter. (6) +2 13.11.23 1,678 25 17쪽
7 Chapter. (5) +1 13.11.23 1,319 33 13쪽
6 Chapter. (4) +2 13.11.21 1,340 35 16쪽
5 Chapter. (3) +1 13.11.20 1,492 30 19쪽
4 Chapter. (2) +3 13.11.18 1,475 31 13쪽
3 Chapter. (1) - 2 +3 13.11.16 2,435 50 14쪽
2 Chapter. (1) - 1 +2 13.11.16 2,424 38 12쪽
» 1. Prologue +9 13.11.15 4,132 5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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