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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무는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의 감정을 작품속에 쏟아 붓는 것이다

대통령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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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캉
작품등록일 :
2016.08.10 12:15
최근연재일 :
2017.01.22 04:5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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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5
추천수 :
80
글자수 :
93,027

작성
16.10.02 22:09
조회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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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사자성어 게임

DUMMY

동구몽 대사의 말은 마치 물 흐르듯이 유연하게 흘러나왔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김 후보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며 인사했다.

동구몽 대사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태조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끝내지 못한 시합을 오늘 결판내도록 하자.”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사님!”


“사자성어 끝말 이어가기를 하다가 네놈이 도망가지 않았느냐?”


"아, 그거요? 벌써 5년 전 일인데 아직도 안 잊고 있었어요? 대사님도 정말 끈질기시네, 좋아요, 근데 마지막에 뭐였지요?"


" '삼십육계(三十六計)'에서 네놈이 도망갔느니라."


"삼십육계(三十六計)라..... 계, 계...“


이태조는 두어 번 중얼거렸다.


“좋습니다, 그럼 ‘계’를 이어가겠습니다."


이태조는 허험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낭랑하게 읊었다.


"삼십육계(三十六計)는 계명구도(鷄鳴狗盜)였습니다. 계명구도(鷄鳴狗盜)는 잔꾀를 잘 부리거나 비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므로 부끄럽지만 바로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동구몽 대사는 그에 이어서 한 줄의 시를 읽듯 음률을 넣어 길게 읊었다.


"계명구도(鷄鳴狗盜)가 나라를 다스리니 도탄지고(塗炭之苦)로다. 오늘 날 대한민국에 도적 같은 무리가 판을 치고 비겁한 놈들이 나라를 다스리니 도탄지고(塗炭之苦)로다. 즉 선량한 백성들만 고생하도다.”


이태조는 세상을 향해 손을 펼쳤다가 그 손으로 대사님을 공손하게 받들면서 음률을 받았다.


"도탄지고(塗炭之苦)하니 고운야학(孤雲野鶴)이 날아오도다. 외로운 구름에 들판의 학이라 함은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똥광거사님을 지칭하오니 대사께서 중생을 위해 세상에 나서심이 어떠하온지?"


가야금 음률이 튕겨 나오듯 대사의 대답이 즉시 이어졌다.


"고운야학(孤雲野鶴)은 성불 중이니 학수고대(鶴首苦待)하지 않음이 득이로다.“


이태조도 쉬지 않고 음을 받았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함은 바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우리는 큰 나라가 되기 위하여 큰 그릇이 필요한 때이옵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도 성중형외(誠中形外)라. 비록 큰 그릇이 늦게 된다 해도

성중형외(誠中形外): 속마음에 들어 있는 참된 것은 숨기려 해도 자연히 밖에 나타나게 됨은 자명한 일입니다.“


"성중형외(誠中形外)라도 우리나라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 필요한 때라 할 것입니다.“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으로 부드러우나 속은 꿋꿋하고 강한 인물이 나서니 강구연월(康衢煙月) 태평한 세상에 평화로운 세월이 오도다."


"강구연월(康衢煙月)도 곧 월만즉식(月滿則食)이라. 달도 차면 기운다 하였으므로 흥하고 망함이 순식간이외다.“


“월만즉식(月滿則食)이라 식자우환(識字憂患)이로세. 오히려 서툰 지식 때문에 도리어 일을 망치는 경우라.”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니 환골탈태(換骨奪胎) 해야 할 것이오."


"환골탈태(換骨奪胎)하면 태산북두(泰山北斗)가 되어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뛰어난 인재가 될 것이니라."


"태산북두(泰山北斗)가 되더라도 두문불출(杜門不出) 문을 닫아걸고 집 안에만 들어앉아 있고 밖에 나다니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두문불출(杜門不出)하더라도 출장입상(出將入相) 문무가 골고루 모두 다 갖추어진 사람임에 변함이 없도다.“


"출장입상(出將入相)이라 하오나 상아지탑(象牙之塔) 실리를 떠나 학문과 예술을 즐기는 중이옵니다."


사자성어로 끝말을 이어가면서 시를 주고받는 동구몽 대사와 이태조를 바라보며 김혜숙 후보는 속으로 감탄하였다.

이처럼 보기 드물고 이채롭고 대단한 시합은 본 적이 없었다.

엉뚱하고 개구쟁이 같은 대화지만 은연중에 그 숨은 뜻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갑자기 두 사람의 대화가 빨라졌다.


-설부화용 雪膚花容 눈같이 흰 살과 꽃 같은 얼굴의 미녀가 나타날 것이며.

-용사비등 龍蛇飛騰 드디어 용이 하늘로 날아오름의 징조이다.

-등고자비 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듯 무릇 모든 일에는 천천히 순서를 밟아야 하느니라.

-비례물시 非禮勿視 혹시라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보지도 말라.


말을 주고받는 속도는 마치 쿵쿵 따 게임을 하듯 더 빨라졌다.


-시종일관 -관포지교 -교언영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채미술 -술이부작 -작심삼일 -일취월장 -장유유서 -서유견문 -문일지십 -십시일반 -반포지효 -효녀심청 -청출어람 -남남북녀 -여시아문 -문경지우 -우보천리 -이심전심 -심광체반 -반면교사 -사면초가 -가급인족...'


이태조는 여기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 쉬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하였다.


"족, 가, 지, 마!(足家之馬)"


이태조는 즐거운 듯 싱글벙글 웃고 있고 동구몽 대사는 이마의 굵고 하얀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대사는 잠시 이태조를 형형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술만 움직여서 말을 이었다.


"마 이 동 풍"


이어가기는 다시 시작 되었다.


-풍기문란 -난중일기 -기상천외 -외유내강 -강구연월 -월하빙인 -인명재천 -천상천하

이번에는 이태조가 다시 실실 눈웃음을 치며 들릴 듯 말 듯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하 의 실 종”


동구몽 대사가 벌컥 큰 목소리를 내었다.


"시벌노마, 족가지마!"


"네에?"


"지난번에는 '시벌노마' 하더니 이번에는 '족가지마' 하였다. 이 말은 나도 알고 있으므로 봐주지만 '하의실종'이란 말은 없다. 금시초문이니라."


"대사님께서는 하의실종이란 말을 모르시는군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누구나 다 쓰는 말인데······. 자 여기 보세요."


이태조는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하의실종'을 입력하고 나서 동구몽 대사에게 보여 주었다.

핸드폰을 받아들고 살펴보던 동구몽대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대사는 갑자기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


"어디 가십니까? 갑자기."


"해우소에 간다."


"핸드폰은 주고 가셔야지요."


“네놈은 무지하고 무각하고 무능하니 공부를 더하거라.”


"네, 똥광대사님. 학문을 넓히고 열심히 닦겠습니다. 그러니 핸드폰을 돌려 주십시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김 후보에게 조용한 귀엣말로 속삭였다.


"지금 대사님께서는 학문을 넓히고 닦으러 가시는 중입니다."


김 후보가 '호호흡'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 소리 나도 들었느니라."


대사는 뒤도 안 보고 말했다.


이태조는 다시 살짝 속삭였다.


"항문만 넓으신 게 아니라 귓구멍도 넓으십니다."


"그 소리도 들었다."


이태조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대사의 뒤에 대고 허리를 90도 숙여 공손한 절을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대사님 학문 많이 넓히시고 잘 닦고 오시옵소서."


대사는 대답도 없이 마당을 건너 우물을 지나 해우소를 향해 저만치 가버렸다.

김 후보는 두 사람이 마치 어린애들처럼 유치한 말장난하는 것을 보며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나이든 사람이 머리가 하얀 노인과 친구처럼 놀다니 지난 삼십년을 수많은 남자를 상대로 활동하였지만 이런 대화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이다. 김 후보 자신도 그 누구와 시시덕거리며 말장난해본 기억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참 재미있는 대사님이시네요."


"예, 그렇습니다. 똥광대사님은 이렇게 초야에 묻혀 계시지만 사실 능력이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도에 대해서 저는 잘 모르지만, 대사님의 도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내공 또한 무한해서 심력이 강한 분입니다.

불경은 물론 사서삼경, 성경, 코란까지도 탐독하신 분으로 도에 능통하시고 학문의 깊이 또한 아무도 따를 자가 없을 것입니다. 외국어도 대체 몇 개어를 할 수 있는지 세어보지 않았지만 웬만한 나라의 언어는 모두 할 줄 안다고 봐야 합니다.

저하고는 단군제에서 만났고 제가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김 후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 공중부양술이나 유체이탈이 가능한가요?"


"글쎄요, 저도 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렵지요. 유체이탈은 대한민국에 오직 두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한 분은 백제 시대의 무악대사로 무악 산에서 수도하며 기거하셨는데 그를 시기한 제자가 유체이탈 하신 중에 몸을 숨겨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으로 환생을 못 하고 영의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똥광대사님이 영의 세계에서 자주 만난다고 합니다."


"똥광대사, 아니 동구몽 대사님 같으신 분의 가르침을 많이 배우면 좋겠군요."


"고등학교 때부터 참선과 도를 닦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깨달은 바가 있어 학교를 그만두고 달마와 혜초의 길을 따라 중국과 몽골, 티베트, 인도로 수행의 길을 떠나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곳에 은거하여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김 후보는 고개만 끄덕였다.


"대사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요?"


교육개혁이라면 김 후보 자신도 관심 있는 부분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지식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지성과 지각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하늘이 파랗다'라고 하지만 우리 눈에 파랗게 보일 뿐이지 실제 파란색은 아닙니다.

따라서 실체를 알 수 있는 생각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능력, 즉 지각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성, 올바른 정신과 사고 능력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천편일률적인 지식만을 배웁니다. 교과목을 다양하게 편성하여 학생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고등학교에 훌륭한 시인이신 국어 선생님이 계시면, 그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시를 잘 쓰며, 실제 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시인이 없는 고등학교에 다니면 시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시에 재능이 있어도 묻혀버립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교 때에 선생님의 영향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예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학교는 국민 누구에게나 문을 열고 배울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한 예로 미술을 전공하여 디자인을 잘하시는 분이 있다고 합시다. 그분이 자동차를 디자인하면 아름답겠지만, 실용성이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의 원리와 구조와 역학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자동차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은 고등학교 수능과 시험을 다시 공부해서 대학의 자동차공학과를 입학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강의는 누구에게나 열어주어서 원하는 사람은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때 청강생이 있었지요. 비슷합니다. 저도 한때 도둑 강의를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특정 대학에 훌륭한 교수가 있다면 오직 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만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훌륭한 재능과 지식이 아까운 일이고 또 다른 대학의 학생 또는 일반인들의 아까운 재능 발휘의 기회가 없는 일입니다.

시를 잘 써서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도, 노래를 잘해서 음악가가 되고 싶어도 경제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도 경제원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등등.

각자의 능력과 재능을 계발하고 발휘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시대에 따라가는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합니다.

컴퓨터 시대에 게임이나 하고 채팅만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응용프로그램을 직장에서 또는 개인의 재능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경제원리를 알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나라의 헌법과 6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법규를 몰라 범법자가 되는 세상입니다."


이태조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수십 년간 체계화된 교육시스템을 하루아침에 개혁하기에는 실패의 우려와 모험이 따른다.


대한민국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교육개혁이 시급한 문제임을 잘 알고 있는 김후보이기에 크게 공감하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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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성어 게임 16.10.02 512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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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두 번째 도피 16.09.25 407 3 11쪽
10 특종 폭로 사건 16.09.23 340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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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통령 후보 추대식 +1 16.09.09 707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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