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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의무는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의 감정을 작품속에 쏟아 붓는 것이다

대통령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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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캉
작품등록일 :
2016.08.10 12:15
최근연재일 :
2017.01.22 04:57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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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3
추천수 :
80
글자수 :
93,027

작성
16.09.0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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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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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한강

DUMMY

‘한강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강변도로를 따라 차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운전하고 있는 최용호는 강물을 거슬러 유유히 올라가고 있는 유람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침 햇살이 물결에 반사되어 산산이 부서지며 은빛 비늘처럼 눈부시게 다가온다.

그 위로 갈매기가 날갯짓하며 비상하고 유람선이 지나간 하얀 물거품 줄기가 푸른 물결을 가로질러 기다랗게 꼬리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팔을 돌려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9시 30분, 마포까지는 적어도 30분은 걸릴 텐데, 조금 늦겠군.’


오늘 올림픽 스타디움에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은 별다른 취재계획이 없다는 것이 이유가 되겠지만, 왠지 그녀를 가까이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쁨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제의 숙취가 아직 그의 머릿속에 남아 어지러움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참석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었다.

동창이라는 공통점을 빼고 나면 직업이 다양한 각계각층의 모임이다

경찰, 군인, 의사, 금융, 부동산, 교육자, 음식점, 시인, 여행가, 예술가, 노무자···. 트럭운전사까지 거의 모든 직업이 한자리에 모인다.

50대 중반의 나이인지라 각 분야에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베테랑들이고 최고의 경력에 올라 있을 때라 화려한 친구들이 많다.

초라한 말단기자의 신분으로 참석하는 것이 자격지심이 생겨 자주 참석하지는 않지만 서로 흉허물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은 바로 고등학교 동창들뿐이다.

때로는 훌륭한 기삿거리를 제공 받기도 해서 어쩌다가 생각 날 때 한 번씩 얼굴을 내밀곤 했다. 대중의 여론을 허심탄회하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점이다.

동창 모임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지만 어제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라 열띤 토론이 벌어졌었다.

야당으로만 30여 년을 버텨온 새 나라당에 대한 지지도는 약하지만, 이번 대선에서의 김혜숙 대통령 후보에 대한 호감도는 매우 우호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내심 기뻤다.

새나라당 아니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하였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대한민국이 전쟁 이후 폐허와 빈곤의 나라에서 일약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 한 번 더 도약해야 할 시기가 왔다.

한강의 기적을 완성해야 한다.


오늘 아침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눈을 떴다. 냉수를 한컵 들이키고 시계를 보니 아홉시.

김혜숙 당수의 대통령 후보 추대식까지 한시간 남았다.

새나라당의 행사에 참가하라는 운명의 계시처럼 생각이 들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혜화동 할머니 집의 콩나물 해장국 생각이 간절했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스타벅스에서 뽑아온 아메리카노 커피로 뒤집어진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차는 한강 다리를 건너 마포구청 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올림픽 실내 경기장 정문에는 정복 차림의 수위가 가로 막고 서 있었다.

차를 정차하자 수위가 다가왔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창문을 내리고 건네주면서 말했다.

“H 일보 최 기자입니다.”

수위는 신분증을 건성으로 흘낏 보고는 차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담긴 표정이 역력했다.

색이 바랜 검은색의 그의 차는 10년도 넘은 오래된 고물차인 데다가 뒤범퍼는 찌그러져 있고 차체에 긁힌 자국이 여기저기 있었으며 운전석 쪽의 사이드미러는 부서져서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 져 있었다.

더구나 그는 세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런 고물차를 끌고 왔느냐 하는 무시의 눈초리였지만 그는 태연한 척 앉아 있었다.


“취재차량은 오른쪽으로 가서 북쪽 주차장 끝쪽입니다.”


억양 없이 내뱉는 수위를 뒤로하고 그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주차하고 있는 차들은 벤츠와 BMW 아우디 등 외제 차들로 먼지하나 없이 반짝반짝 빛났다.

주차장 끝에는 방송국 카메라가 장착된 밴이 여러 대 보였다.

그중 유난히 크고 각종 장비가 설치된 화려한 밴 차가 눈에 들어 왔다.

M 방송사의 마크가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젠장 황 실장도 온 모양이군.’


황철순, M 방송사 취재실장, 유난히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대학 신문방송학과 동기로 대학 시절에는 친구이자 유일한 경쟁자였다. 성적으로 따지자면 최용호가 한발 앞섰지만, 교수와의 관계나 선후배 관계에서는 황철순이 훨씬 앞섰다.

선천적으로 타고 난 사교술과 원하는 것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얻어 내고 마는 그의 끈질긴 성격에다 뻔뻔스러울 정도의 유들유들함을 겸비한 황철순이다.


고지식한 최용호와는 서로 극과 극을 이룬다고 할 정도의 성격이 판이하였다.

황철순은 카드게임이나 고스톱을 하면 열에 아홉은 판을 휩쓸다시피 했다.

그러한 그가 졸업과 동시에 M 방송사에 취직하여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더니 대한민국 제일의 방송사 취재부 실장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하여 최용호 자신은 방송사도 아닌 지역신문사의 만년 말뚝 평기자로 근무하고 있어서 심한 자격지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쥐꼬리만 한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을 뿐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꼈다.

황철순은 골수적인 여당파이다.

당연히 출세와 이익을 위하여 그는 언제나 여당 편일 것이다.

항상 힘과 권력이 있는 편에 줄을 설 줄 아는 현명한 한국인이다.


최용호는 한쪽 구석에 차를 주차하고 손에 들고 있던 기자증은 목에 걸고 소형 카메라, 소형 녹음기와 수첩을 챙겨 들고 나섰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다시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찾았다. 라이터는 거기에 없었다.

차 뒷문을 열고 바닥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인 후 천천히 내 뿜었다.

정신이 한층 맑아지는 것 같았다. 경기장 정문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허허, 이게 누군고? 최용호 아닌가?”


방송사 차량 옆에서 걸어 나오며 황철순이 소리쳤다.


“오랜만이네! 황실장.”


약간은 거북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최용호는 대답했다.

말쑥한 감색 신사복에 빨강 줄무늬 넥타이를 하고 머리는 올백으로 가지런히 뒤로 넘기고 헤어무스를 잔뜩 발라 바람이 불어도 머리칼은 한 올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에는 카메라용 분을 바른 듯 유난히 하얗고 반짝반짝 번들거렸다.


“죠르지오 알마니!”


최용호는 황 실장의 양복 재킷의 황금색 단추에 검은색으로 새겨져 있는 GA(Georgio Armani) 문양을 보고 손으로 쓰다듬는 시늉을 내었다.

죠르지오 알마니는 이탈리아 최고급 디자이너 신사복으로 한 벌에 수백만 원이 넘는다.


“자네는 차가 필요 없겠군그려, 옷이 날개라고 날아다닐 수 있겠네! 아 참, 자네는 배가 너무 나와서 힘들겠구먼.”


최용호는 빈정대듯이 말했다.


“하하하, 역시 세계 최고급을 알아보는군, 아직 날 수 있는지 시험을 안 해봤는데, 어때? 이 옷을 최 기자에게 빌려 줄 테니 옥상에서 뛰어내려 볼 텐가?”


황 실장은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털어내는 손짓을 하였다.


“고맙지만 사양하겠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뭐 획기적인 화끈한 뉴스 없어? 요즘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단 말이야!

최 기자는 김혜숙 새나라당 편이지? 이번 후보 선출에 대한 팁 좀 주게. 새나라 당이 요즘 상승세를 날리는 거 같은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어허 이 사람, 우리 기자들에게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는가? 사실대로 기사화하는 것이 언론인들의 본분 아닌가?“


그는 항상 그렇다. 남의 정보는 잘 물어보면서 정작 본인의 정보는 절대 나누어주지 않는 그다.


“어 그런가? 그 이유를 알아보려고 오늘 여기에 온 건데···. 틀림없이 김 대표에 뭔가 있단 말이야! 최 기자는 알고 있지? 뭔가 숨기고 있어 나는 알아!”


답변을 회피하려는 기색을 보이며 최용호는 서슴없이 돌아섰다.


”김 대표가 대통령의 당선 될 거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지, 최기자, 헛물켜지 말고 지금이라도 줄을 잘 서는 게 어때? 지난번에도 자네에게 말했지. 나와 함께 일하는 것 말이야, 잘 생각해보라고.”


그가 최용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만년 말단 기자로 있는 자신과 줄을 잘 서서 방송사의 실장으로 있는 황철순과 비교가 되는 것 같았다.


“언론인의 소명을 다 하는 것뿐이네, 누구처럼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 같은 글은 쓰고 싶지 않네!”


막말로 대답하였지만 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황 실장이 아니다.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며 능글맞게 대꾸했다.


“허허 성삼문이 울고 가겠다. 일편단심뿐인 자네 고집은 알아줘야 해! 대단해! 그래서 내가 자네를 존경하지, 하지만 고리타분한 선비는 조선 시대 이야기야. 자네도 현대에 맞게 처신하는 게 좋을 거야.”


최용호는 더 이상 상대하기 싫어 돌아섰다.


“우리 내기 골프나 한번 함께 치세, 자네가 이기면 내가 새나라당 편이 되고 내가 이기면 자네는 우리 방송사로 와서 일하고···. 어때?”


최용호가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황 실장이다.


“좋아, 내기 골프 하지” 최용호는 뒤돌아서서 대답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우리 골프클럽을 서로 바꿔서 치기로 하세.”


황 실장은 바로 대답했다.


“그래, 좋지 뭐. 그런데 내 클럽은 핑 아이언에 캘러웨이 드라이버인데, 자네 것은 무엇인가?”


최용호의 황 실장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마디 내뱉고 돌아섰다.


“나는 곡괭이와 삽으로 골프 친다네.”


최용호는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뒤에서 황 실장의 다급하게 소리쳤다.


“젠장 최용호다운 소리야! 한 방 먹었군! 골프 말고 술이나 한잔 같이하세! 할 이야기가 있네. 그럼, 이따가 보세!”


최용호는 성큼성큼 걸어서 방송사 취재팀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로 걸어갔다.

황 실장하고 할 이야기가 없다고 느꼈다. 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상대를 안 하는 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자,자, 빨리빨리 움직여. 시간 없어.”


방송팀에게 재촉하는 황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최용호는 입구에서 담배를 구둣발로 비벼 끄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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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황철순의 비밀 17.01.19 317 1 10쪽
20 세기의 결혼식 17.01.16 319 3 8쪽
19 취임식 +1 17.01.11 285 2 9쪽
18 대사남 16.12.14 334 2 8쪽
17 한사대 +1 16.11.12 629 2 10쪽
16 최용호의 취재 16.10.17 343 2 12쪽
15 기자회견 16.10.12 337 5 10쪽
14 고사범 +1 16.10.09 343 5 8쪽
13 사자성어 게임 16.10.02 511 3 12쪽
12 동구몽 대사 16.09.27 455 3 9쪽
11 두 번째 도피 16.09.25 407 3 11쪽
10 특종 폭로 사건 16.09.23 340 4 11쪽
9 콩나물 국밥 16.09.21 655 3 12쪽
8 만남의 밤 +3 16.09.18 449 3 10쪽
7 제보자 16.09.15 454 4 9쪽
6 노교수의 강의 16.09.11 432 3 11쪽
5 목포항 16.09.10 554 1 10쪽
4 대통령 후보 추대식 +1 16.09.09 706 4 10쪽
» 한강 +1 16.09.06 963 5 11쪽
2 방문자 +1 16.09.04 1,190 12 9쪽
1 프롤로그 +4 16.09.04 1,276 9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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