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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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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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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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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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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귀향(1)

DUMMY

세유라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하일리겐 봉우리의 안에는 흑룡들의 본거지가 있다. 용들의 거대한 덩치에 맞게 봉우리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까지가 전부 흑룡들의 집이었는데. 그 봉우리의 중앙에는 죽거나 행방불명되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동포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거대한 기둥이 있었다.


아무리 용이라 해도 친우와 친족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지극한 슬픔으로 다가왔기에. 늙고 병든 용들은 대부분 이 기둥에서 죽은 전우들을 추억하며 슬픔에 잠기고는 했다.


그리고 야건 코지의 아내. 야건 페르나도 그 기둥에 매일같이 들러 남편의 이름을 바라보는 용들 중 하나였다.


스으윽..


기둥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새겨진 기둥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차갑고 딱딱한 기둥의 질감이 그녀의 손에 전해지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기둥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손짓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 야건 코지의 이름과 차가움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녀는 주먹을 쥐며 그의 남편이 끌려갈 때를 다시 떠올렸다. 벌써 수천년 전의 이야기다. 혼돈의 신들과 그 종자들이 세상을 불태울 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비롯한 수많은 용들은 질서를 다시 대륙에 불러오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불을 뿜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을 다짐육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너무나 많았고. 혼돈의 종복들은 너무나 강력했다. 결국 날갯짓을 할 최후의 여력까지 소진한 야건 코지는 혼돈의 종복들에게 끌려갔고. 그것이 그녀가 본 그의 마지막이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지만. 페르나는 코지가 살아있다면 죽여주는 것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려 사랑했던 자를 그리 쉽게 죽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인간이나 용이나 똑같다. 특히나 다시금 혼돈의 기운이 대륙에 퍼져가고 있는 이 시기에는 더욱 더 말이다.


페르나는 조용히 기둥에 새겨진 야건 코지의 이름을 두 손으로 덮고. 신에게 기도했다.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몇 만년이 걸리든 상관없으니 부디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


-인간들은 멍청이가 아니다.-


문지기를 맡고 있는 젊은 흑룡. 카라페이스 아르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들이 멍청이라면 혼돈에 맞서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린스킨과 네크로틱이라는 두 강적에 맞서 문명을 번창시키고 왕국을 지켜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멍청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아르곤은 이렇게도 생각했다. 어느 종족이나 수가 많아지면 멍청이들이 나타나듯이. 지성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인간들이라면 멍청이들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아마도 흑룡의 전체 인구수보다도 많으리라고. 아르곤은 생각했다.


-모든 종족은. 단 하나의 영혼만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문지기가 생각한 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상식이었다. 영혼을 다루는 군령자들조차도 드러나는 영혼은 단 하나뿐이다. 의식을 유지하는 영혼이 여럿이라면. 발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저 인간에게는 동족의 영혼이 느껴지는가?-


이제 생각의 범주를 넘어서 질문의 범주에 들어섰다. 아르곤은 인간의 앞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았다. 판금 갑옷 위에 두터운 코트를 입은 인간이었다. 아마도 저들 스스로 '기사'나 '귀족'이라 부르는 이들임이 틀림없었다.


[...]


아르곤은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 인간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모든 흑룡들은 기본적으로 상호존대를 하기에. 옅기는 하나 동족의 기운을 풍기고 있는 저 '인간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대는 인간인가?]


고심 끝에. 아르곤은 반 존대를 이용해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체에게 육성을 전달했다. 자그마한 저 인간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너무나 조그마해 제대로 달싹이는게 보이지도 않는 입으로 제 의지를 전달하였다.


"그렇소. 흑룡의 일족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줄 것이 있어 이곳에 왔소."


[처녀를 바치러 온 것이라면 돌아가라. 우리는 너희 족속들에게 그다지 흥미가 없으니.]


흉폭한 용을 처녀로 달랜다는 어처구니 없는 루머는 수천년간 용에 대한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주범이었다. 고작해야 400년 가까이 문지기를 맡아온 아르곤이 거의 수십번이나 찾아온 인신매매범들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처녀를 바치러 온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그대가 우리에게 줄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고개를 젓자 이제는 아르곤이 궁금해할 차례였다. 과연 저 작은 인간이 거대한 용의 흥미를 동하게 할 귀한 물건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검? 갑옷? 아티팩트?


스윽.


[....맙소사..]


그러나 아르곤의 모든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 빛. 저 모양. 저 기운. 모든 것이 용임을. 그 중에서도 자신과 같은 흑룡의 그것임을 증빙하고 있었기에.


"난 이 영혼의 주인되는 용과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을 이행하러 왔소이다. 대답이 되었소이까 하일리겐의 문지기여?"


아르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족의 귀환을 알리는 포효를 외치느라 육성으로 대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허튼 짓을 한다면. 너는 죽을 것이다.]


"마음대로 하시오."


아마도 수백년은 될 것이다. 인간이 용의 초대를 받은 것은 말이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자신이 새로 쓴다는데. 괜한 분란을 일으키기는 싫었다.


켈러가 몸수색을 마치자. 용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무어라 일제히 읊조렸다. 켈러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으나. 이내 그것이 자신의 힘을 억누르는 제어 마법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걸어라. 장로께서 그대를 기다리신다.]


"알겠소."


켈러는 경계심이 뚝뚝 묻어나는 경계룡들의 으르렁거림을 받아내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두 손에는 코지의 영혼을 꼬옥 쥔 채로 말이다. 어쩌면 켈러가 아직도 코지의 영혼을 들고 있다는 것으로 최소한의 신뢰를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다리가 아파올 때 즈음 켈러는 다른 흑룡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흑룡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용이 '장로'라 불리는 흑룡 일족의 지도자일 터였다.


[인간이여. 이리 가까이 오라.]


켈러는 순순히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정확히 10보를 내닫고 다리를 모은 순간. 장로의 거대한 머리가 켈러의 머리 앞으로 다가오더니. 눈을 부릅떴다.


"....크윽..윽..."


순간 켈러는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의 두통을 느끼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도 장로의 눈이 뭔가 마법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리라.


[놀라게 해 미안하군. 하지만 기억을 들추는 것만큼 확실한 보증은 없으니. 그대가 이해해주게.]


"..그러도록 하지요."


이해라. 켈러는 용들이 인간의 개념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 인간의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다시 머리를 치켜세운 장로는 켈러에게도 들릴 낮은 수준의 염파를 이용해 자신의 호위룡에게 명했다.


[가서 야건 페르나를 불러오너라.]


[장로님.. 그럼 설마?]


[그래. 그녀의 지아비가 돌아왔구나.]


장로의 말을 들은 흑룡들이 제각기 반응을 보인 것은 호위룡이 날아간지 제법 된 후였다. 몇몇 용들은 기뻐했고. 몇몇 용들은 경악했으며. 몇몇 용들은 안도했다. 혼돈에게 넘어간 동족이 영혼이나마 자신들에게 돌아왔으니. 수천년을 이어온 기다림도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장로님. 그녀를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의 열매를 수확할 자가 나타났다. 호위룡의 옆에는 호위룡보다 2배는 더 작은 용이 날개를 격렬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


야건 페르나는 자신의 기감을 의심했다.


-그이일리가 없어.-


그 다음. 야건 페르나는 인간을 의심했다.


-혼돈의 종복일수도 있지.-


마지막으로. 야건 페르나는 현실을 의심했다.


-어쩌면 꿈일지도 몰라. 아니면 스스로 최면을 걸었을수도.-


그러나 그 무엇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의심할수는 없었다. 저 자그마한 인간이 들고 있는 영혼의 구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던 야건 코지의 기운이 숨김없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페르나는 애타는 눈으로 장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저 인간에게서 영혼을 낚아채어 자신의 둥지로 가져가 수천년간의 해후를 나누고 싶었다.


그때 아래쪽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인간이 자신에게 걸려있던 마법을 무시하고. 아우라를 끌어올린 것이다.


호위룡이 인간의 행동에 격분하며 브레스를 뿜으려는 찰나. 장로는 그들을 제지하며 인간을 가리켰다. 인간은 뜻밖에도 손에 순결한 아우라를 모으고 있엇다.


너무나 순결하여 순백색의 따스한 빛과 같은 아우라가 코지의 영혼에 들어가자. 영혼구가 밝게 빛나더니 이내 빛을 내뿜어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아아... 나의 반려여... 정녕 돌아오셨군요.]


이제 더 이상 페르나에게 현실을 부정할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날개를 접어 바닥으로 내려오고는. 마법을 이용해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자신의 육신을 바꾸었다. 행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영혼구를 해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페르나는 천천히 계단 위에서 영혼구를 들고 있는 인간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누군지. 어떤 자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악인일지도.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자신 앞에 선 자야말로 신의 사도요 자비로운 천사였다.


그리고 마침내 페르나가 영혼구를 맞잡았을 때. 영혼구는 서서히 빛을 잃어가며 희미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수천년간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페르나....]


[네!...네! 저에요! 당신의 아내에요!]


페르나는 솟아나는 눈물을 훔칠 수 없었다. 그녀의 두 손은 영혼구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흑룡도 그녀가 체통을 어기고 있음을 지적하지 못하였다. 수천년간 떨어져 있던 부부가 다시 합일을 이루는 신성한 순간을 그 누가 방해한단 말인가?


[나의 아내.... 보고 싶었소...]


그 말을 끝으로 영혼구는 모든 빛을 잃었다. 더 이상 영혼구는 빛을 발하지도.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이제 야건 코지의 영혼은 모든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페르나는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남편의 영혼구를 붙잡고서 한참을 울었다. 장로의 거대한 날개가 그녀의 눈물을 닦을 때까지. 켈러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자들은 자신이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을 함께 했노라고 자부하였다.


*


한참이 지난 뒤. 페르나는 말라붙은 눈으로 켈러를 바라보았다.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켈러또한. 붉게 충혈된 눈의 페르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 둘 사이에는 이행해야 할 채무가 남아있었다.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편의 구원자여?]


"내가 원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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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칠신기(2) 20.11.16 12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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