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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F 님의 서재입니다.

무공으로 내 인생 만만세!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공모전참가작

HBF
작품등록일 :
2024.05.09 15:56
최근연재일 :
2024.07.01 21:29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95,461
추천수 :
4,189
글자수 :
263,363

작성
24.05.12 18:05
조회
5,629
추천
109
글자
12쪽

노력하다

DUMMY

.




미처 예기치 못한 깜짝 선물은 때때로 깊은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특히나 4년 동안 방안에 갇혀 지낸 누군가가 이런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이미선은 지금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바라보며 벅찬 감동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다 뭐야?”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자 고봉이 어색하게 웃었다.


“옷부터 갈아입고 나오세요. 다 젖었잖아요.”

“그럴까?”


얼떨떨한 마음으로 안방으로 들어간 그녀가 젖은 옷을 벗고 편안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고봉이 살짝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앉으세요.”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눈동자는 식탁위에 고정돼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요리들이 갖가지 놓여 있었다.

한식과 중식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비주얼이었다.

담음세도 정갈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고급 요리란 생각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질 않았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운동 나갔다가 사왔나?’


분명 주문 요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겠네? 고마워, 아들.”


반대편에 앉은 고봉이 긴장한 표정을 풀지 않은 채로 젓가락을 손에 쥐어주었다.


“한 번 드셔보세요.”

“그럴까?”


시선을 돌려 천천히 요리를 훑어보았다.

밑반찬을 제외한 총 4가지 요리가 준비돼 있었다.

짙은 갈색 빛이 감도는 돼지고기와 싱싱한 채소 볶음, 먹음직스러운 완자, 그리고 맑은 탕 요리였다.

이 중, 이미선은 완자 요리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맛있게도 생겼네.’


본연의 모양대로 채 썬 버섯과 대파, 청양고추 등의 채소 위로 동그랗게 생긴 완자 네 개가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위로는 반투명한 갈색 소스가 덧입혀져 있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요리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모양과 색감이 뛰어나 보였다.

속으로 은근히 감탄하며 젓가락을 움직여 완자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무슨 맛일까?’


살짝 기대한 얼굴로 완자를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간장의 짭짤하고 녹진한 향이 감도는 가운데 바삭한 식감 안으로 완자의 속살이 더없이 부드럽게 씹혔다.

으깨진 살결 안에 배어있던 풍성한 육즙이 흘러나와 입안을 가득 맛의 풍미를 더했다.

완자를 우물거리던 이미선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으음!’


맛있다!

담백하면서도 균형 있는 맛의 조합이 너무 훌륭했다.

지금까지 먹었던 완자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맛이었다.

돈 주고 사먹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일품요리였다.

입안에서 감도는 극상의 맛에 감탄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비쳤다.


“너무 맛있는데?”


진솔한 감상평에 긴장한 눈으로 바라보던 고봉의 경직된 표정이 사르르 풀어졌다.


“다른 것도 한 번 드셔보세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3가지 요리를 천천히 음미해보았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맛의 향연에 감탄을 거듭했다.

모두 장인의 손길이 담긴 맛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풍성한 향과 그 안에 담긴 균형감과 조화가 놀랍도록 뛰어났다.

입안에 넣는 순간부터 삼키는 그 과정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미선은 진심으로 놀란 나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짜 너무 맛있는데? 대체 어디서 사온 거야?”


만점짜리 성적표를 받은 것처럼 고봉이 환하게 웃었다.


“제가 했어요.”


다소 들뜬 목소리에 이미선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응? 누가 했다고?”

“집에 남아 있는 재료로 해봤어요.”


헛웃음을 지은 그녀는 속으로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고민했다.

평소 요리에 ‘요’자도 모르던 아이가 이런 대단한 요리를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됐기 때문이었다.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터넷을 뒤져서 레시피대로 요리를 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비주얼과 맛을 구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요리를 사온 다음에 몇 가지를 더 추가한 건가?

그래서 요리를 했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둔 그녀는 4년 만에 찾아온 좋은 분위기를 깨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하며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 아들 대단한데?”

“아니에요.”


쑥스러워하는 고봉의 모습에 미소를 지은 그녀가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맛있게 드세요.”

“응.”

“저기....”

“괜찮아. 할 말 있으면 해. 엄마가 뭐든 들어줄게.”


살짝 머뭇거리던 고봉이 용기를 얻는 얼굴로 말했다.


“내일부터 제가 준비하면 안 될까요?”

“응? 뭘?”

“요리요.”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저런 소리를 한다고 판단한 그녀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힘들 텐데 괜찮겠어?”

“꼭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허락해주세요.”


진심이 묻어난 눈빛에 그녀는 자기가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으면 해.”

“감사합니다.”


고개까지 숙이는 고봉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미선은 진심으로 기쁨을 느꼈다.

단순히 예의바른 모습 때문이 아니라 변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대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와 행복이 깨질까봐서.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듯 말했다.


“요리든 운동이든 뭐든 다 해. 엄마는 우리 아들이 하고 싶다는 건 뭐든 좋으니까.”


진심이었다.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엄마가 네 곁에 있으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제 두 번 다시는 그 좁고 어두운 세상 속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부모로서 지금까지 해주지 못한 것들을 모두 선물해주겠다고 다짐한 그녀가 팔을 뻗어 고봉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엄마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일 있으면 해. 알겠지?”

“네.”


고봉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따스한 온기를 느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럼 우리 같이 먹을까?”

“네.”


잘 차려놓은 식탁위로 담소가 오가며 잔잔한 행복이 피어올랐다.



*



‘일어나라.’


새벽에 눈을 뜬 나고봉은 졸린 눈을 비볐다.

한심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지 권왕이 바로 면박을 주었다.


‘그런 썩어빠진 정신 상태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간절히 원하고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돼야만 목표에 한걸음 더 빨리 다가······.’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단지 너무 고리타분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머릿속에서 웅웅 울려대는 권왕의 목소리를 들으며 병든 닭처럼 ‘네, 네. 알겠습니다.’를 반복했다.

슬쩍 시선을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03 : 10]

‘......’


아침이 아니라 이른 새벽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욕지거리가 치밀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잠은 제대로 자야 할 것 아닌가.

자기는 차려주는 밥 먹고 세상 구경이나 하면 되니 별 걱정 없겠지만 가정주부로 전락한 입장에서는 피로만큼 큰 적도 없었다.

삼시 세끼 준비를 비롯해서 집안 청소, 그리고 살까지 빼야하는 처지였으니까.

신경 쓸 일이 이렇게 많은데 최소한의 수면은 보장해줘야 옳았다.


이른 새벽 운동 결사반대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고봉은 군말 없이 일어났다.

발육 좋은 고딩 퇴치 사건 이후로 그가 얼마나 지독하고 대단한 인간인지 깨달아서였다.

말만 잘 들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거라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추리닝을 입고 부스스한 머리위에 모자를 대충 눌러쓴 다음 밖으로 나왔다.

비가 그쳐서인지 상쾌한 공기가 얼굴에 스쳤다.


“좀 춥네.”


옷깃을 여미려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권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마라. 이제 곧 펄펄 끓게 될 테니.’


덥기는커녕 으스스해진 몸을 부르르 떤 나고봉은 앞으로 입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어제와 같은 속도로 뛰듯 걸었다.


“훅훅!”


환한 달빛을 받은 동네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고요하고 차분한 정취가 묻어난 풍경을 감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더 빠르게!’


간만에 분위기 좀 잡으려했던 생각을 미련 없이 걷어 차버린 나고봉은 속도를 올렸다.

전신의 살들이 푸딩처럼 통통 튀어 올랐다.

얼마못가 추위가 가시더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정말 저질 체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런 몸뚱이로 발육 고딩을 퇴치한 권왕이 괴물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좀 자극도 되는 기분이었다.

똑같은 환경일지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물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으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뛰듯 걸었다.

어차피 쉬기는 글렀으니 끝까지 뛸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곧바로 한계에 부딪쳤고 속도 역시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권왕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로 납득하고 쉽게 타협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욱한 마음에 소심하게 반박했다.


“헉헉! 이, 이건, 헉! 타협이 아니라, 헉헉! 생존본능이.....헉헉! 저절로 발동한.... 헉헉!”


이 소소한 의견을 권왕은 비웃었다.


‘말대꾸를 하는 걸 보니 아직 살만한가 보군. 5바퀴 더!’

“.....”


가벼운 주둥이를 책망한 나고봉은 그렇게 2시간 내내 뛰어야만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나머지 현기증이 났고 동시에 눈앞이 뿌예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외마디 의문과 함께 정신이 뚝 끊겼다.



*



바닥에 널브러지려는 육체를 가까스로 차지한 권왕은 본능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단순히 그 동작만으로도 축 늘어진 육체가 기존의 감각들을 되찾아나갔다.

몇 번 더 호흡을 가다듬으며 육체를 정상범위 내로 돌려놓은 그가 돌연 피식 웃었다.


“그놈답군.”


25년간을 함께한 나고봉란 인간은 항상 저런 식이었다.

매사에 소심하고 겁 많은 것 같아보여도, 한번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푹 빠져 지냈다.

늘상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인간이었다.

다만 손이 많이 가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고 넘어갈 용의가 있었다.


무려 3번이었다.

나고봉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것이.

그뿐인가?

강호를 주유하며 심심할 틈도 없었다.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현대문명이 어쩌고저쩌고.

가장 좋았던 점은 뭐라 해도 그의 특별한 요리솜씨였다.

그런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에 이르렀기에 그는 이제 남이라기보다 가족에 가까웠다.

형제.

그는 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단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권왕은 더없이 잔잔해진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세상이라.’


복수까지 끝낸 마당이라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 후에 가만히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후우-”


누적된 피로와 뭉친 근육을 풀어줄 요량으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곧 명경지수에 이르러 깨달음의 영역으로 진입해나갔다.

찰나지간 무의식으로 접어든 그가 만물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광활한 심상의 세상을 순항했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육체와 정신을 잇는 고차원적인 단계로의 진입이었다.

곧바로 호흡으로써 기(氣)를 이끌어 부드럽게 순환시켰다.

단전형성이나 기맥 타동의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육체적인 피로를 몰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그는 서서히 사라지는 달빛을 벗 삼아 물아일체의 경지에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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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력하다 +5 24.05.12 5,630 109 12쪽
4 세상 밖으로(2) +5 24.05.11 5,926 106 13쪽
3 세상 밖으로 +4 24.05.10 6,443 105 14쪽
2 시작 +6 24.05.09 7,722 112 13쪽
1 돌아오다 +6 24.05.09 9,780 1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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