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새글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5.02 21:14
연재수 :
204 회
조회수 :
1,083,616
추천수 :
33,857
글자수 :
1,891,834

작성
21.08.03 21:25
조회
2,596
추천
83
글자
28쪽

144. 쉬운 상대는 없다

DUMMY

“주목.”


지역 라이벌을 완벽히 제압하고 승리에 도취해 있던 선수들의 시선을 단번에 한곳으로 모아버린 감독의 한마디였다.


평소라면 분명 이러한 대승에 만족함을 표했을 텐데. 짧은 순간 드러났던 어조와 표정에는 심각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우선 잘했다.”


시선들을 마주 응시하던 이탈리안이 대뜸 웃음을 지었다.


“이번 경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훌륭했어. 상대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야. 주전이 제대로 나오면 다를 거라 예상이야 했겠지만, 설마 이 정도로 심하게 벌어질 줄은 몰랐을 테니.”


그러면서 차분한 걸음걸이로 라커룸 안에 들어선다.


“몇 달 전만 해도 호각세였던 상대가 오늘 처참히 무너졌다. 왜 그런 것 같나? 저들이 약해져서? 글쎄. 내가 보기엔 이전과 똑같았어. 강해지지도 약해지지도 않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지.”


“그동안 대처하기 어려웠던 칼레 시슬의 방식이 뚜렷하게 보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눈이 새로 뜨이면서 몰랐던 걸 알게 된 것처럼.”


“그래. 리차드, 자네 말이 정답이야. 로스 카운티의 주장은 역시 다르군.”


감독이 브리튼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간 우리는 디나모 모스크바를 넘어 볼프스부르크마저 꺾어냈다. 나폴리라는 거함을 침몰시키고 나서 얻은 자신감은 현시점에서 그 누구도 쉽사리 깨뜨리기 어려울 테지.”


발걸음을 멈추니 앉아있던 선수들의 몸이 그가 서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돌아갔다.


“2월에 하일랜드 더비를 치르고 나서 많은 일이 있었어. 그리고 오늘 다시 만나서 유럽 대항전을 나간 팀과 못 나간 팀의 차이를 보여준 거다. 바로 자네들이 말이야. 훨씬 더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기분 좋은 칭찬이었지만, 그 누구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본론이 나오지 않았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에 만날 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게 축구란 것이고.”


감독의 목소리가 다시 무거워졌다.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자네들은 이 시기를 가장 경계해야만 할 거야.”


“······.”


“왜 그런지 알겠나, 에이든?”


“저, 저요?”


갑작스레 지명받은 딩월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굉장히 잘나가는 중이고······ 이럴 때 한 번 미끄러지면 쭉 미끄러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미끄러진다?”


“기세를 타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말하는 딩월을 지켜보던 감독의 눈이 옆에 서 있던 스튜어트에게로 향했고, 스튜어트는 그 시선에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감독이 짧게 미소를 짓고 나서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 미끄러지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지.”


그가 계속 말했다.


“알다시피 우리는 유로파 리그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는 중이고, 프리미어십 또한 순항하면서 스코티시의 대표이자 희망이 되었다. 그 전성기를 직접 일구어낸 자네들의 자신감이야 당연히 충만해져 있을 수밖에.”


다시금 날카로워진 눈이 선수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렇게 연승을 거두며 최고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래서 상대가 누가 됐든지 이길 것만 같은 기분이 온몸을 뒤덮고 있을 때. 그런 상태에서 이제껏 붙었던 팀들보다 만만해 보이는 전력을 만나게 되면.”


감독이 잠시 멈추었다가 서서히 입을 떼었다.


“······보통 자만이라는 감정이 발생하곤 하지.”


듣고 있던 선수들의 분위기가 좀 더 진지하게 변했다. 그 뒤에 올 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우리가 붙을 다음 상대는 드니프로. 자네들이 자만하기 아주 좋은 상대야.”


“······.”


“무슨 말인지 알겠나? 분데스리가 팀과 세리에 A 팀을 연달아 잡아냈으니 우크라이나 팀쯤이야 간단히 이길 거라 생각하고 있거든 당장 그 오만한 마음을 버리라는 거다. 상대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그가 천천히 팔짱을 끼며 말을 이어나갔다.


“4강까지 올라온 이상 어떤 팀이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아. 드니프로도 엄연한 우승 후보다. 그들을 존중하면서 진지한 태도로 상대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시원해서 좋군. 하지만 그것만으론 어림없어. 태도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만심은 의지와 달리 은연중에 들러붙는 법이니까. 뭐, 쉽게 해결될 문제라면 이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었겠지.”


감독이 다시 옆으로 눈길을 돌리니 수석코치가 이번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그래서 난 자네들이 그들을 얕봐선 안 된다는 걸 몸소 느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우리 코치진부터 솔선수범해야겠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스튜어트가 기다렸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선수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몇 장을 스테이플러로 찍어 놓은 제법 두께가 있는 서류. 들여다보니 그 내용은 드니프로의 상세 정보로 감독의 주관하에 스카우트 아서 마틴의 조언이 살짝 곁들여져서 완성된 전력 보고서였다.


볼프스부르크, 나폴리 같은 강적과 붙을 때도 나눠준 적 없던. 본래는 시청각 훈련을 할 때만 잠깐 스크린 화면을 통해 보여주곤 했던 보고서를 이렇게 개별적으로 하나씩 전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어서 스튜어트가 구석에 있던 화이트보드를 끌고 왔는데, 보드의 자석들은 인버네스 CT의 포메이션에 맞춰서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랬었지만, 지금은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깨닫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받아든 보고서 첫 면에 표기된 드니프로의 주력 포메이션과 보드의 자석 배치가 정확히 일치했으니까.


“이제 앞으로 5일.”


감독이 화이트보드 위에 손을 얹어놓으며 말했다.


“남은 시간이 많다고 할 순 없지. 이제부터 우리는 철저하게 드니프로전을 준비한다.”


“······.”


“지금부터 당장. 불만 있나?”


“없습니다!”


“좋아.”


선수들의 눈에서 열의를 읽은 감독은 그제야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곧장 설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이제 내일이면 당신의 팀이 4강전을 치르게 됩니다. 긴장되십니까?”


“당연히 긴장됩니다. 유로파 리그의 4강전이라는 건 결코 가벼운 무대가 아니니까요.”


“상대는 로스 카운티입니다. 나폴리를 잡아낸 그 화제의 팀이죠. 그들의 경기를 본 소감이 어땠는지 한 말씀 가능한가요?”


“정말로 강한 팀입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이기도 하고······. 차라리 나폴리를 만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 상당한 극찬인데요.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하는 건가요?”


“나폴리의 탈락은 우연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잖아요? 그런 팀을 상대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며 전세를 뒤집어냈어요. 대단한 거죠. 그만큼 인정받을 만한 팀입니다.”


“그건 그래요. 다들 그들의 행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니까요.”


“빠른 기동력에 강인한 에너지까지 갖췄어요. 그들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8강전의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아마 다음 타깃은 우리가 되겠죠.”


*******


미론 마르케비치(Miron Markevych)는 명성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우크라이나 내에서만큼은 나름대로 유명세를 갖춘 인물이다.


메탈리스트 하르키우(Metalist Kharkiv)에서 9년간 집권하며 디나모 키예프와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양강에 대항해볼 수 있는 팀으로 만들어낸 감독.


비록 우승컵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소련 체제 리그에서도 고작 한 번 정상에 올라본 게 전부였던 팀을 2005년에 부임하여 2006/07 시즌부터 지휘봉을 내려놓았던 2013/14 시즌까지 쭉 3위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았다는 건 충분히 높이 살만한 업적이다.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을 역임하기도 했고, 현재는 드니프로까지 성공적으로 이끌며 주가를 높이는 중이었다.


불꽃이 최고로 활활 타올랐던 2012/13 시즌, 리그 2위가 아니라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그의 이름은 좀 더 널리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번 평판을 드높일 기회가 눈앞에 찾아왔다.


유로파 리그 4강. 꽤 오랜 커리어를 쌓았던 그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스케일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무대.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간다면 역사 한 페이지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것. 이 얼마나 환상적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그의 의욕은 최고로 들끓어있었다.


‘산 파올로의 기적’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처음엔 솔직한 심정으로 기뻤다. 그래도 우승 후보였던 나폴리와 만나는 것보단 로스 카운티가 나을 테니까. 그러나 그 뜻밖의 이변을 터뜨린 경기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나서 마르케비치의 생각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세리에 A 탑 팀을 궁지에 몰아넣던 압박 축구.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었다.


나폴리의 취약점인 3선을 집요하게 노리는 건 그도 고민했던 전략이었다. 하지만 로스 카운티가 보였던 만큼 해보라 한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어설프게 따라 했다간 삼각편대의 역습에 무참히 찢겨버린다. 그렇기에 다들 시도할 엄두를 못 냈던 것인데. 오히려 그날 경기에서 역습에 더 많이 흔들렸던 쪽은 나폴리였다.


라인을 높이 올리면서 후방을 압박하는 동시에 삼지창의 날을 무뎌지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위협적인 역습 횟수까지 앞선다고? 대체 이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이건 정말로 체력과 기동력이 경이로운 수준이었기에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체적인 능력은 떨어질지라도 그 두 개만큼은 상대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무기 삼아 싸우는 팀은······.


“참으로 골치 아픈 스타일이야.”


조금 전에 차라리 나폴리를 만나는 게 좋았을 거라고 했던 그의 발언은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이었다.


8강전에 이어 16강전 경기까지 찾아보고 나서는 확신이 들었다.


‘로스 카운티의 축구는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


볼프스부르크의 디터 헤킹 감독이 왜 그렇게 말했었는지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전력 분석관은 며칠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며 이렇게 말했다.


‘통계상으로 공중볼 경합 승리 비율이 나폴리보다 앞섭니다. 심지어······ 유로파 리그에 참가했던 본선 팀들을 통틀어서 봐도 상위권에 속하고요. 높은 볼로 공략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공권에서 밀린다는 건 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드니프로의 주요 패턴 중 하나가 막혔다는 의미가 된다.


전력은 둘째 치고, 스타일의 상성을 고려했을 때 어쩌면 나폴리보다 더 까다로울 수도 있는 팀.


어디 그뿐인가. 굳이 팀이 아니라 선수의 면면을 보았을 때도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먼저 가장 주의해야 할 핵심인 제임스 블랜차드, 나폴리와의 중앙 싸움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은 리차드 브리튼, 골문 앞에서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이를 제외한 필드 전체에선 누구보다 성가신 에이든 딩월, 잠깐만 한눈팔아도 수비와 거리를 확 벌릴 수 있는 발을 가진 앤드류 톰슨.


그 외에도 소피앙 부팔, 잭 마틴, 아메드 델샤드, 폰투스 얀손 등등······. 부상에서 복귀한 알렉산더 캐리라는 미드필더까지.


간혹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스 카운티는 조직적으로 잘 만들어진 팀이지 선수 자체는 변변찮은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내세울 게 조직력뿐이었다면 어떻게 4강까지 올라왔겠는가? 우승 후보를 둘이나 깨부수고 올라온 선수들이다. 이미 그걸로 충분히 입증했다. 마냥 무시하는 이들은 분명 경기를 본 적도 없으면서 떠들어대기만 하는 거겠지.


유로파 리그 챔피언의 자리를 노리던 팀들조차 그들에게 고전했다. 드니프로엔 더더욱 버거운 상대가 될 테니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순순히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비야레알을 잡고 올라온 팀이야. 드니프로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말겠어.”


마르케비치는 컨퍼런스에서 마지막 질문이 날아왔을 때 했던 답변을 다시금 중얼거리며 각오를 다진 얼굴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


다음 날.


드니프로 아레나, 원정팀 라커룸.


“다시 말하지만 이전 상대들에 비하면······ 확실히 드니프로 선수들의 개인 능력은 한참 떨어져.”


경기를 들어가기에 앞서 어김없이 델 레오네의 연설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전력이 약한 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직력을 강화하기 마련이고, 이런 팀은 보통 내세울 강점도 없지만 두드러지는 약점 또한 없다. 개개인보다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하거든. 그래서 우리에게 더 까다로울 수도 있지.”


“······.”


“나폴리는 화려한 명성치곤 손발이 잘 맞는 팀은 아니었어. 집요하게 파고들만 한 허점도 있었지. 아마 팀으로서의 끈끈함은 드니프로가 앞설 거다. 그들의 시스템을 파괴하려면 접근 방식을 달리 가져가야 해.”


이탈리안이 계속 말했다.


“견고하게 설계된 시스템을 파괴하는 방법은 한곳에 균열을 내는 것. 특히 측면에 그런 균열을 낼 수 있는 선수를 투입하는 건데······. 냉정히 보아 우리 팀에서 그 정도 파괴력을 지닌 인원은 없어. 적어도 아직은.”


그의 시선이 한 군데를 빠르게 훑으며 지나간다.


“그렇다고 대책이 없는 건 아니지. 떼를 지어 다니는 초식동물이 맹수들에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법칙. 드니프로만 터득한 생존법은 아니지 않나?”


그 말에 선수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이미 여러 개의 팀이 똘똘 뭉친 사슴무리의 뿔에 들이받혀 나가떨어졌다. 조직력이라는 부분에서 로스 카운티가 꿀릴 게 있는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스콧 보이드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희가 상대보다 훨씬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거다, 스콧! 그런 자신감이야. 상대의 시스템이 견고하다면 더 뛰어난 시스템으로 공략하면 되는 거다.”


감독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저들이 조직력만으로 4강에 올라온 건 아니란 걸 명심해라. 여기까지 왔으면 그 외에도 내세울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어서 보드에 붙어있는 드니프로 측의 자석 하나를 가리켰다.


“예우헨 코노플리얀카. 사실상 저 팀을 4강으로 이끈 핵심. 뛰어난 볼 컨트롤과 빠른 발로 수비를 흔드는 데 능하지. 어떤가, 아메드? 이 걸출한 윙을 잘 막아내면 드니프로의 화력은 절반 아래로 감소한다. 자네가 경기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야.”


“충분히 숙지해두었습니다.”


델샤드가 그렇게 말하며 저번에 나눠주었던 보고서를 높이 들어 보였다.


“난 전적으로 믿네만, 중요한 일전이니만큼 확실히 짚고 가지. 이 윙은 전형적인 드리블러로 골 냄새를 잘 맡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박스 외곽에서 감아 차는 슛은 날카로우니 안으로 접어 들어올 때도 끝까지 쫓아가서 슛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 맞아. 비야레알도 이 패턴에 무너져 내렸지.”


“책임지고 마크해서 외곽 슛과 크로스 각을 정확히 만들 수 없게 최대한 봉쇄하겠습니다.”


“역시 믿음직해. 이 드니프로 에이스는 체격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몸으로 밀어붙이는 수비에 약한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있어. 자네는 날렵하고, 몸싸움에도 능하니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감독의 손가락이 그다음 자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루슬란 로탄. 코노플리얀카가 에이스라면 이 선수는 팀의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다. 유럽 대항전은 물론, 월드컵 경험도 풍부한 베테랑이지.”


그의 손에 의해 자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중앙 포지션을 전부 소화할 수 있어서 3선의 더블 볼란테로 나올지 2선으로 올라올지에 따라 대응 방식을 결정해야 했는데, 상대 라인업을 보니 그대로 가도 되겠어.”


배치를 전부 마친 뒤 감독은 천천히 선수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야레알전과 마찬가지로 이 선수를 2선에 세운다는 건 높은 활동량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의미다. 쉽게 중앙을 내줄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예상대로야. 우리는 연습했던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전부 이해했나?”


“예!”


“코노플리얀카와 로탄. 이 둘을 제어하는 게 승리의 관건. 자네들은 그 준비를 착실히 해왔지. 마지막으로 하나 더 경계해야 하는 존재가 있다.”


“······.”


“그게 누군지 알겠나, 에이든?”


“어······.”


저번처럼 다시 지명받은 딩월은 곧바로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몸을 들썩이며 감독을 쳐다보았다.


“나······ 자신?”


“······.”


“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정답이다.”


“······네?”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야. 자만하지 마라. 내가 누차 강조해왔고, 그 이상을 말해도 한참 부족해.”


이탈리안의 목소리가 그때처럼 진중하게 라커룸을 울렸다.


“자신감은 좋다. 근데 그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 우리 팀이 드니프로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 자네들은 버려라. 그 생각은 경기를 보는 관중들이 하게끔 만들어라. 직접 행동으로.”


“······.”


“알겠나?”


“알겠습니다!”


기합이 잔뜩 실린 대답에 감독은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좋아, 가라.”


*******


< 14-15 UEFA Europa League Semi-finals, 1차전 >

FC 드니프로 : 로스 카운티

2015년 4월 30일 (목) 19:45

드니프로 아레나 (관중 수 : 21,698명)



[FC 드니프로 / 4-2-3-1]

FW : 니콜라 칼리니치

AM : 예우헨 코노플리얀카 / 루슬란 로탄 / 발레리 루치케비치

CM : 발레리 페도르추크 / 야바 칸카바

DF : 레오 마토스 / 예프겐 체베르야츠코 / 더글라스 / 아르템 페데츠키

GK : 데니스 보이코


[로스 카운티 / 4-2-3-1]

FW : 에이든 딩월

AM : 소피앙 부팔 / 제임스 블랜차드 / 앤드류 톰슨

CM : 알렉산더 캐리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으음······.”


흘러가는 경기 양상을 지켜보던 마르케비치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길게 흘러나왔다.


점유율 40 : 60.


약간 밀리고 있긴 해도 크게 문제 삼을 정돈 아니다. 점유율로 인한 기록은 경기의 유리함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하니까.


후반 60분이 넘어가는 동안 서로 3 : 5라는 저조한 슈팅 횟수를 기록한 것도 용납 가능한 범위다. 드니프로나 로스 카운티나 화려한 공격보다는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4강 진출을 이뤄낸 팀이니까.


홈에서 골문을 위협한 유효 슈팅이 고작 중거리 슛 한 번뿐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나, 서로 수비적인 운영을 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르케비치가 이토록 심각한 건 필드에서 일어나는 흐름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실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양 팀의 방어 태세로 경기 템포가 느슨해진 게 아니다.


“완전히 읽혔어.”


로스 카운티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우선 그들의 높지 않은 라인. 나폴리와 할 때는 그렇게 저돌적으로 압박을 가하던 팀이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그러니 드니프로 쪽에서도 섣불리 덤빌 수가 없다. 괜히 나섰다가 역습 한 방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로스 카운티의 역습 퀄리티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앤드류 톰슨이라는 특급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라인을 끌어올리길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


드니프로 수비진이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저 젊은 준족 앞에서는 얘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들은 라인 형성만으로도 굉장한 압박을 주고 있는 거다.


그리고 예우헨 코노플리얀카(Yevhen Konoplyanka)를 통해서 공격을 풀어가는 드니프로의 패턴. 아예 효과를 못 보는 중이었다.


패스를 받기도 전에 아메드 델샤드가 잽싸게 튀어나와 가로챈 장면이 다섯 번은 되는 것 같다. 볼을 잡았을 때도 밀착 마크를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저 라이트백만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만 대치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새 리차드 브리튼까지 가세하여 협동으로 몰아세우니 활약할 여건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풀백을 올려서 지원할 수도 없다. 레오 마토스(Leo Matos)는 주발이 오른발인 본래 라이트백이었으나, 팀 사정으로 이번 시즌에 한정하여 레프트백을 뛰고 있는 선수.


공격이 서투르니 지원이 제대로 될 리도 없을뿐더러, 그를 올렸을 때 앤드류 톰슨에게 발생할 뒷공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볼의 흐름을 오른쪽으로 바꾸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코노플리얀카가 공격의 중심이며, 드니프로는 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에게 최대한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로스 카운티 또한 좌측 공격의 비중이 높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어 수비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는 발레리 루치케비치(Valeriy Luchkevych)를 라이트윙으로 두었다.


이제 와서 우측 위주로 공격을 펼치기엔 화력이 너무 떨어진다.


그 사실들을 로스 카운티는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코노플리얀카를 막는 데 거의 모든 전력을 쏟아붓는 배짱을 보이는 것이다.


반면 그들은 계속 출전해왔던 대런 케틀웰 대신 알렉산더 캐리를 중앙 미드필더로 내세웠다. 후방 빌드업과 좌측 공격을 원활하게 풀어가기 위해.


이 정도는 계산 안에 있었다. 그래서 노련한 루슬란 로탄(Ruslan Rotan)을 붙여서 캐리가 나올 경우 그를 괴롭히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그것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파트너인 브리튼이 주변에서 캐리를 돕는 중이며, 그가 없을 때는 제임스 블랜차드가 내려와 커버해준다. 그 움직임이 워낙 매끄럽게 이루어져 로탄 하나만으로는 캐리를 무력화시킬 수가 없는 상태였다.


구석에 고립되어 도와줄 선수가 없는 코노플리얀카와 다르게 캐리는 언제나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패스 루트가 마련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속수무책.


막으려면 팀 단위로 압박해야 한다. 그러려면 라인을 올려야만 한다. 내려앉아 있는 상대에게 근접할 만큼의 높이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소리다.


먼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들어오라는 로스 카운티의 메시지다.


과감하게 나올 줄 알고 중원 싸움에 힘을 주었는데, 도리어 상대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손짓을 하는 꼴이었다.


지금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 몇몇은 아마 답답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들이 나폴리에게 했던 것처럼 압박을 가하면 되지 않느냐고.


상대 윙이 내려와서 도울 수밖에 없게끔 강하게 압박하고, 후방 3선을 조이면서 사각형으로 가두는 그 전술?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당장 전방 압박부터 문제겠지만, 어찌 딩월과 블랜차드가 하던 걸 칼리니치와 로탄으로 수행하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다. 어설프게 따라 했다간 무참히 찢길 수도 있다. 이미 마르케비치의 머릿속을 거쳐 간 생각이다.


“읽힌 게 아니라 그냥 우리 팀을 꿰뚫어 보고 있었어. 심지어 나까지도.”


전반전은 당황스러웠고, 후반전에 그 의도를 전부 깨달으니 소름이 돋았다.


모든 게 상대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홈에서 원정팀의 페이스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안토니오 델 레오네, 상대의 스타일과 전술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대응력이 뛰어난 인물.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겪으니 더욱이 실감이 났다.


설마 더 약한 전력으로 평가받던 드니프로마저 이렇게 파헤쳐 올 줄은 몰랐는데. 상대가 누구든지 정해지면 독방에서 미치광이처럼 연구한다는 소문이 진짜였던 것인가.


“돌겠군.”


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결국 이득을 보는 건 원정팀인 로스 카운티. 드니프로가 결승 진출의 확률을 높이려면 홈에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지금 상대가 곳곳에 설치해놓은 트랩들에 둘러싸여 쉽게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인데. 판단 하나만 잘못 내려도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마르케비치는 차마 이 생각마저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조차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70분이 되어가도 좀처럼 끝나지 않는 흐름. 이 불쾌함을 견디다 못해 지친 드니프로 선수들의 인내심이 한계치에 달해버린 것이다.


달려들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고 지시해두었던 야바 칸카바(Jaba Kankava)가 급발진하며 캐리가 있는 후방까지 올라가 볼을 뺏으려 하고 있었다.


“안 돼! 자리로 돌아가!”


뒤늦게 외쳤지만, 캐리의 패스가 칸카바를 스치며 그가 비워둔 공간에 들어선 블랜차드에게 도달하니 느슨해져 있던 템포가 순식간에 빨라진다.


좌측으로 찔러 들어가는 패스. 오버래핑해 올라간 리 월리스와 소피앙 부팔의 신속한 원투패스.


그 패스워크에 현혹되어 버린 드니프로의 3선 대열이 엉망으로 된 틈을 타 중앙으로 다시 볼이 돌아갔고, 노마크로 받은 캐리의 왼발이 단번에 오른쪽으로 공격을 전개한다.


수비의 머리를 넘어 앤드류 톰슨의 발에 떨어진 볼. 받자마자 부드럽게 치고 나가며 수비를 떨쳐내는 톰슨.


예리하게 날아가는 크로스. 골키퍼가 뻗은 손에도 닿지 않는 궤적. 먼 포스트 쪽으로 쇄도하는 블랜차드.


풀백과의 경합을 이겨내며 골 에어리어 중앙으로 토스하는 헤더. 그 경로로 달려드는 부팔과 딩월.


그러나 먼저 몸을 던지며 볼을 바깥으로 걷어내는 수비.


“나이스! 다행······.”


철썩 -


마르케비치는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수비가 걷어낸 플레이까지는 좋았으나 다급하게 발로 쳐내면서 멀리 가지 못했고, 그게 하필 월리스의 발로 굴러가면서 중거리 슛을 허용한 게 바로 골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감아 차는 기교 없이 직선으로 발등에 맞힌 볼이 총알처럼 날아가면서 왼쪽 그물을 강타하니 이는 골키퍼도 쉽게 손 쓸 수 없는 슛이었다.


“당했군.”


마르케비치는 씁쓸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

< FC 드니프로 0 : 1 로스 카운티 >

리 월리스(72‘)


=============================



[ Scottish Sports ] 드니프로의 홈 4경기 연속 무실점 깨지다


[ The Guardian ] 로스 카운티, 드니프로를 가벼이 제압


[ Sky Sports ] 비교적 쉬웠던 상대, 더 수준 높았던 로스 카운티


[ Daily Mirror ] 가벼운 승리, 더 점수를 낼 수도 있었던 시합



경기가 끝나자마자 언론사들은 미리 다 적어놓기라도 했는지 무수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벼운 승리. 모든 기사에 담긴 키워드였다. 그만큼 드니프로는 경기 시작 전부터 이길 만한 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도박꾼들도 로스 카운티에 더 많은 돈을 걸 정도였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오히려 더 점수를 내지 못한 걸 아쉬워했고, 심지어 비판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쉬운 상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브리튼은 뉴스의 제목을 읽었고, 옆에 있던 보이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른 팀원들도 서로를 마주 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쉬운 상대라······.”


브리튼은 다시 중얼거리며 좌석에 편안히 몸을 뉘었다.


며칠간 거듭한 훈련과 시합을 앞두고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몸은 곧바로 휴식을 반기며 그를 곯아떨어지게 만들었다.


작가의말

실망스러운 연재 주기에도

항상 좋게 봐주시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올라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아직 턱없지만

점차 올리는 주기가 잦아질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foir 님

매번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9 149.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14 21.12.04 2,030 75 30쪽
148 148. 평범했던 그 날의 오후 +11 21.10.31 1,975 85 25쪽
147 147. 공공의 적 (3) +11 21.10.05 1,937 76 28쪽
146 146. 공공의 적 (2) +9 21.09.16 1,877 76 20쪽
145 145. 공공의 적 +12 21.08.28 1,950 87 22쪽
» 144. 쉬운 상대는 없다 +13 21.08.03 2,597 83 28쪽
143 143. 벌어진 격차 +24 21.06.21 2,195 88 26쪽
142 142. 미끼와 덫 +15 21.02.26 2,416 90 24쪽
141 141. 클래스의 차이 (6) +23 21.01.05 2,438 118 34쪽
140 140. 클래스의 차이 (5) +4 21.01.05 2,011 63 20쪽
139 139. 클래스의 차이 (4) +5 21.01.05 1,980 57 24쪽
138 138. 클래스의 차이 (3) +18 20.10.02 2,280 96 33쪽
137 137. 클래스의 차이 (2) +16 20.08.04 2,326 81 29쪽
136 136. 클래스의 차이 +22 20.05.19 2,550 103 29쪽
135 135. 첫 라이벌 (2) +11 20.03.22 2,467 89 27쪽
134 134. 첫 라이벌 +11 20.02.13 2,651 98 27쪽
133 133. 볼프스부르크 (2) +14 20.01.20 2,532 104 32쪽
132 132. 볼프스부르크 +9 20.01.10 2,462 87 21쪽
131 131. 잃어버렸던 이름 +18 19.12.29 2,675 107 30쪽
130 130. 돌풍의 팀 (2) +10 19.12.16 2,568 103 26쪽
129 129. 돌풍의 팀 +13 19.12.07 2,649 114 23쪽
128 128. 골 넣는 수비수 +11 19.11.27 2,597 102 29쪽
127 127. 결집하는 마음 (3) +11 19.11.14 2,564 99 25쪽
126 126. 결집하는 마음 (2) +8 19.11.04 2,566 88 22쪽
125 125. 결집하는 마음 +8 19.10.23 2,697 95 22쪽
124 124. 미스터 딩월 (2) +8 19.10.08 2,728 100 27쪽
123 123. 미스터 딩월 +11 19.09.25 2,766 106 22쪽
122 122. 사냥개와 들개들 (3) +13 19.09.14 2,710 113 26쪽
121 121. 사냥개와 들개들 (2) +6 19.09.05 2,774 101 23쪽
120 120. 사냥개와 들개들 +8 19.08.25 2,900 99 2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