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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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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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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26. 결집하는 마음 (2)

DUMMY

[ Scottish Sports ] 유로파 리그 16강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하일랜드의 전사들


[ The Scotsman ] 로스 카운티, 불굴의 정신력으로 혹한을 이겨내다



에이든 딩월의 결승 골을 지켜내며 진출을 확정 지은 그 순간, 언론사들은 마치 승전보를 본국에 알리는 전령이라도 된 것처럼 써둔 기사를 앞다투어 올리기 시작했다.


유로파 리그 16강, 그것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유럽의 수많은 구단들에게 있어 단지 동네북에 지나지 않았던 스코티시 리그의 인식을 조금이나마 흔들어낼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자국 내 모든 팀이 벌벌 떨었던 올드 펌, 셀틱과 글래스고 레인저스마저도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21세기 들어서는 두 팀 모두 챔피언스 리그에서 16강 이상을 올라간 적이 없었으며, 유로파 리그 역시 확실한 성과를 냈던 해가 다섯 손가락을 꼽지 못할 정도.


레인저스는 2007/08 시즌에 유로파 리그의 전신인 UEFA 컵 준우승을 맛본 뒤로 쭉 하락세만을 걸었고, 셀틱의 경우는 2002/03 시즌에 준우승, 2003/04 시즌에 8강을 이뤄낸 바 있었는데, 이 시기에 결과물을 거두지 못하여 계속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2010년대 이후로는 본선은커녕 예선 문턱에서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암흑기의 절정을 달렸으니 크게 언급할 거리도 없다.


스코티시를 대표하던 올드 펌이 이러하니 다른 팀들은 오죽하겠는가?


애버딘이 이뤄낸 2007/08 시즌 32강이 그나마 최고 성적이었다. 당시 그들이 만났던 상대가 분데스리가의 강호 바이에른 뮌헨이었기에 그 이상은 역부족이었겠지만.


한때 스코티시 축구가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 찬란한 과거는 소멸한 지 오래. 이제 그들은 승리를 내놓는 자판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디나모 모스크바 감독,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가 경기 전에 로스 카운티를 살짝 업신여겼던 것도 뿌리 깊게 박힌 인식에서 가져온 자연스러운 처사였다.


그렇게 위상이 까마득하게 추락해버린 시점에서 쟁쟁한 유럽의 팀들을 헤쳐내고 16강 대열에 스코틀랜드의 이름을 올렸다. 또한 올드 펌 이외의 팀에서 21세기 최초로 유럽 대항전 32강 이상의 성적을 달성하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시합은 단순히 승리했다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오늘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전 원래 애버딘 팬이지만, 로스 카운티를 세컨드 팀으로 함께 응원하는 중이에요. 근데 모르겠어요. 이러다가 이 팀이 제 퍼스트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요. 그만큼 매력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에요. 여기 감독님도······ 상당히 매력적인 것 같고요. 러시아까지 와서 응원한 보람이 느껴지는 하루였어요.” - 애버딘 서포터 ‘로라 그레이시(Laura Gracey)’ -


“날이 갈수록 로스 카운티를 지지하는 여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보가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는 얘기죠. 무슨 갈증이냐고요? 그야, 그동안 셀틱의 독재에 지쳐있던 사람들의 갈증이죠. 거기에 점차 잃어가던 유럽에서의 경쟁력까지 되살려 놓았으니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반 셀틱 평론가 ‘딘 맥팔랜드(Dean McFarland)’ -


몇몇 애버딘의 골수팬들은 당시 그들이 32강에서 만났던 바이에른 뮌헨과 디나모 모스크바의 격차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시에 로스 카운티가 대진운이 좋았던 것이라며 비하하기도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건 눈에 보이는 기록과 결과뿐이다.


그리고 로스 카운티가 본선에 들어서는 관문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꺾어내고 올라왔었던 사실은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물론 이것도 극소수의 의견이다. 셀틱 팬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스 카운티의 승리에 기뻐했다. 직접 러시아까지 따라와 지켜보았던 관중들도, 펍에서 잔을 닦던 술집 주인도, 곁눈질로 중계를 시청하며 일과를 진행하던 상점 주인도, 심지어 언론사들까지.



[ Daily Telegraph ] 잭 마틴은 자신이 왜 선발에서 계속 빠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 Daily Mail ] 익명의 구단과 이적 추진? 블랜차드의 마음은 떠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모두가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2015년 2월은 로스 카운티를 쭉 지켜봐 온 팬들에게 가장 특별한 달로 기억될 것이다.


가뜩이나 핵심 선수가 부상당하여 스쿼드 운용도 어려운 형편에 퇴장을 당하기도 했고,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고갈되어 에이든 딩월이 급하게 자리를 메우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탈을 겪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난항 속에서 로스 카운티가 끝내 거두어낸 것은 리그 4경기 전승.


인버네스 3 : 4 로스 카운티

로스 카운티 2 : 0 하이버니언

파틱 시슬 1 : 4 로스 카운티

로스 카운티 3 : 0 레이스 로버스


인버네스 CT와 격돌한 하일랜드 더비에서는 후반에 통쾌한 역전극을 일궈냈고, 퇴장으로 나오지 못하는 대런 케틀웰의 자리를 대체해 들어간 딩월은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승리에 일조했다.


굳이 컵 대회나 유로파 리그까지 끼워 넣을 필요도 없었다. 리그로만 한정해도 그들은 스코티시 내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한 팀이었으니까.


최악의 달을 최고의 달로 만들어낸 셈이다.


대단한 결실을 거뒀으니 그에 마땅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법. 모스크바에서 의기양양하게 귀환한 그들에게는 곧바로 또 다른 희소식이 찾아왔다.


매달 진행하는 수상식, 이달의 상을 로스 카운티가 전부 휩쓸어버린 것이다.


먼저 이달의 골은 하일랜드 더비에서 시원한 장거리 프리킥을 꽂아 넣은 리차드 브리튼에게 주어졌다.


셀틱의 윌프리드 자하가 두 명의 수비를 뚫어내며 넣은 득점도 제법 많은 표를 얻었기에 충분히 선정될 만했지만, 성사되기 어려운 거리에서 터졌다는 희소성과 더비전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시초였다는 극적 요소까지 더해져 우위의 점수를 얻어낸 듯했다.


이달의 감독은 당연히 안토니오 델 레오네.


4경기 전승이라는 지표만 놓고 봐도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부상이나 퇴장 등 구단에 닥쳐온 문제를 뛰어난 용병술과 전술로 해결하면서 분위기를 뒤집어낸 장본인이다.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달의 선수는 공교롭게도 제임스 블랜차드였다.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대는 언론 때문에 논란과 루머의 중심에 서야 했던 그였지만, 4경기에 5골 1어시스트를 기록해버리면 상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혹자는 그 언론의 성가심이 오히려 자극제로 작용한 것이라 평하기도 했다. 미묘하게 슬럼프를 겪고 있던 차에 승부욕이 발동한 것이라면서.


물론 수상 자체에는 딱히 반발하고 나설 이가 없었다.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은데.”


아니, 한 명 있었다.


“궂은일 죄다 도맡고, 포지션도 땜질하고······. 진짜 온갖 쇼란 쇼는 내가 다 했었던 것 같은데. 상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리네?”


에이든 딩월은 모스크바에서 열정적으로 셀레브레이션을 하다가 그만 감기가 악화되어 하루 휴가를 부여받았었다. 하지만 괴물 같은 회복력 덕분인지, 블랜차드의 수상 소식을 듣고 이불을 박차고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완쾌하여 멀쩡한 모습으로 라커룸에 와 있었다.


“불만 있으면 더 잘하든가.”


“으으······ 유로파 리그 활약까지 더했으면 그 상은 내 것이었는데.”


딩월은 약이 오른 듯 어금니를 꽉 깨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이달의 상은 리그만을 기준으로 따지기에 의미가 없다.


참고로 에이든 딩월의 2월 리그 스탯은 4경기 3어시스트다.


“사람들도 내 이름을 외치면서 기뻐했었는데······. 다들 내 활약을 칭송했었는데······. 거기에다가 뉴스에서도······.”


“그래, 그래. 잘했네. 나는 상을 받으러 가야 해서 이만.”


“기······ 기다려!”


시큰둥한 반응으로 툭 던지며 일어서려는 블랜차드를 다급하게 불러 세운 딩월은 삿대질하듯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의미심장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 3월의 선수상은 내 꺼야.”


“······.”


블랜차드는 비장한 얼굴의 딩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퍽이나.”


“지······ 진짜야!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다음 달은 에이든 딩월의 달로 만들고 말 테니까!”


거의 부르짖음에 가까운 외침이었지만, 블랜차드는 라커룸을 나가버린 후였다. 딩월은 그가 나간 문 쪽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주장······. 저 갑자기 열이 다시 생긴 거 같은데 들어가서 쉬면 안 될까요?”


이에 옆에서 가만히 앉아 지켜보고만 있던 브리튼이 천천히 일어나 딩월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글쎄. 열이 하나도 없는데? 내가 보기에는 다 나은 것 같아.”


“······이 몸뚱어리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건강한 걸까.”


“에이든, 네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딩월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브리튼이 말했다.


“미안한데 나도 지금 촬영을 하러 가야 할 것 같아. 이달의 골 수상자가 됐거든.”


“······.”


주장마저 떠나고 라커룸에 덩그러니 남겨진 딩월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


“다들 미워.”


*******


빅토리아 파크 바로 앞에서는 스코티시 리그 사무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한창 수상자들을 모아놓은 채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트로피 잘 보이게 위로 올려주시고요. 블랜차드 선수, 좀 더 환하게 웃어주세요.”


차례대로 단독 촬영이 끝나고 그다음 순서는 이번 달의 메인을 장식하게 될 선수상과 감독상을 받은 두 인물이 나란히 서서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보통은 각기 다른 구단에서 수상자가 갈리게 되므로 그냥 넘어가는 편이나, 한 구단에서 동시에 배출되는 경우에는 자연스레 시행하는 과정이다.


“좀 더 환하게요. 좀 더.”


태생적으로 무뚝뚝한 성격 탓에 혼자서 찍을 때도 사진기사로부터 계속 환한 표정을 요구받던 블랜차드였지만, 이번에는 그가 유일하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가 곁에 다가와서일까. 더욱 딱딱하게 굳어져서 어색한 웃음만 남발할 뿐이었다.


“너무 안 웃어도 사람들에게 매력 없어.”


이내 감독이 그의 어깨에 팔을 사뿐히 얹어놓으며 나지막이 말했고,


“웃어, 제임스.”


그제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일정은 거기서 끝이었지만, 사무국 사람들은 한 가지 제안을 더 꺼내놓았다.


“단체 사진도 하나 찍는 게 어떨까요?”


사무국이 주관하는 이달의 상. 그 모든 부문을 한 구단에서 전부 쓸어가는 건 설령 셀틱이라 해도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흔치 않은 사례였기에 기념사진을 남겨두자는 제안이었다.


“좋습니다.”


더불어 구단의 끈끈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강조하여 보여줄 수 있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로스 카운티와 이번 달을 빛낸 네 명의 위인들이 훗날에 회자될 만한 역사적인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이달의 골 수상자 리차드 브리튼과 이달의 감독 수상자 안토니오 델 레오네, 이달의 선수 수상자 제임스 블랜차드, 그리고.


“더 가까이 붙어야지, 앤드류.”


“아······. 네, 감독님.”


생전 처음 받아보는 수상에 아직도 얼떨떨한지 쭈뼛거리며 서 있던 이달의 유망주 앤드류 톰슨까지.


“자, 그럼 찍습니다.”


이 사진은 수년간 로스 카운티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료 중 하나가 되었다.


*******


“너는 오른발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소피앙 부팔의 말이었다.


“그래서 계속 측면으로 벌어지기만 하는 거야.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닌데, 수비수들도 바보는 아니거든. 패턴을 읽히기 쉽다는 거지.”


“그렇지. 나 같은 수비수를 만나면 그런 드리블로는 어림도 없어, 앤드류.”


리 월리스가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작은 축제와도 같던 수상식이 끝나고, 로스 카운티는 곧장 그들의 일과로 돌아왔다.


주변의 경사나 악재가 끊임없이 드나들어도 전혀 흔들림 없이 안주하지 않으며 꿋꿋하게 나아가는 자세야말로 이 작은 규모의 팀이 큰일을 해내고 있는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규 훈련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선수들이 필드에 남아 추가 훈련을 진행하곤 했는데, 이러한 풍경은 벌써 한 달이 되어가도록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코치진이 지시한 게 아닌 자발적인 행동이었고 말이다.


“내가 볼 때도 앤드류, 너는 왼발을 좀 자주 섞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반대 발을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잖아?”


“방금은 왼발을 써서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나았지. 그쪽으로 나가니까 크로스 올리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거야.”


처음에는 한 명의 부탁으로 조촐하게 시작했던 연습이었지만, 그것을 지켜보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이제는 하나의 고정 스케줄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부팔을 필두로 리 월리스와 폰투스 얀손처럼 드리블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선수들의 참여는 물론이고, 그 외에 다른 선수도 다 같이. 아니, 그냥 모두가 이 갑작스러운 보충 시간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직접 지켜보고만 있으려니까 답답하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가르쳐주고 싶은데.”


“워워, 너는 이제 재활에 막 들어간 거야. 무리할 생각하지 마, 알렉스.”


“나도 알아, 스콧.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이라고 한 거잖아.”


심지어 아직 목발을 짚고 서 있어야 하는 알렉산더 캐리도 이 흐름에 동참 중이었다.


모두가 앤드류 톰슨의 드리블 교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미숙한 동생을 가르쳐주고 싶어 안달이 난 형들의 애정이 듬뿍 담긴 모습과도 같았다.


“하하하······.”


톰슨은 어쩌다 부풀려진 이 상황에 부담스러움을 적잖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감내할 필요가 있다.


‘나도 이 팀에 큰 보탬이 되어야만 해.’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던 축구 생활만을 반복하다가 지금의 감독이 부임한 뒤로 톰슨은 그에게서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과분하고도 전폭적인 지원과 신뢰를 받아왔다.


외부에서는 무섭도록 비판을 퍼부어대고 코치진조차 부정적인 내색을 감추지 못할 때마저도 끝까지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이었다.


후반기에는 끝내 믿음에 보답하지 못하여 에드빈 데 루어에게 밀려났음에도 꾸준히 교체 투입을 통해 기회를 이어주려 했던 사람이었다.


올해는 소피앙 부팔이 합류하면서 출전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실력을 따져 보면 자신이 후보가 되는 게 마땅하며, 부팔은 주전을 보장받을 자격이 주어질 만한 선수였으니까.


다만 그의 현란한 플레이를 벤치에 앉아서 지켜볼 때마다 가슴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서 몸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욕구로 분출되었다.


나도 부팔처럼 드리블에 능숙해지고 싶다. 그처럼 뛰어난 테크니션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 팀의 승리에 크게 공헌하고 싶다. 공헌해서 감독님에게 기쁨을 가져다드리고 싶다.


이것이 톰슨의 마음이었다.


후보로 밀려난 와중에도 항상 감독은 벤치 명단에 자신을 빼놓은 적이 없었으며, 컵 대회에서는 꾸준히 주전을 부여해주려 하고 있다. 그런 믿음 덕에 유로파 리그 최종 예선에서 묀헨글라트바흐를 무너뜨리는 결승 골을 만들어내기도 했었고, 그 짜릿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었으나, 어쩌다 에이든 딩월의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다.


부팔은 필드 위에서는 꾸준히 드리블을 교정해주고, 지난 경기에서 톰슨이 뛰었던 비디오 자료를 통해 지적해주기도 하는 등 성심성의껏 도왔으며, 다른 팀원들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얀손이나 월리스는 톰슨의 드리블을 직접 막아주는 상대역을 자처하면서 강하게 키우려는 열의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 덕인지 최근에는 볼을 잡았을 때 점점 자신감이 붙고 있는 걸 체감하고 있으며, 공격 포인트도 차곡차곡 쌓아 이달의 유망주상까지 받고야 말았다.


작년만 해도 시즌을 통틀어서 불과 2골밖에 넣지 못했던 톰슨으로서는 한 달, 4경기 만에 2골 2어시스트를 뽑아낸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물론 그의 은사에게 보답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난 네가 오히려 부러워.”


부팔이 말했다.


“너는 엄청난 다리를 가지고 있거든. 내가 너처럼 그렇게 빨랐다면 어떤 리그를 가더라도 최고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을 거야.”


“······.”


“그만큼 넌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고마워요.”


부팔도 느린 선수는 아니지만, 그런 그가 부러워할 정도의 스피드. 자신이 가진 무기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톰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순 겉치레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 앤드류. 넌 재능이 풍부한 녀석이라고.”


“너는 언젠가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될 거야.”


다른 사람들이 늘 해오던 이런 말도 처음엔 장난이라 여겼으나, 이제는 그 속에 진심이 담겼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한테 정말로 그런 재능이 있는 걸까?’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즘 우리 팀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지 않아?”


멀리서 지켜보던 고든 스미스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좋으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스티브 샌더스가 옆에서 대꾸했다.


“위기를 극복해서 이달의 상까지 받았고, 유로파 리그는 16강 진출까지 했는데.”


“하긴,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안 좋으면 이상하겠네. 확실히 감독님이 오고 나서부터 이 팀은 계속 상승세를 타는 것 같아.”


스미스가 말했다.


“이 과정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겠지.”


“글쎄.”


샌더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게 좋아하기만 해야 할 일일까?”


“무슨 소리야?”


스미스가 되물었으나 샌더스는 대답 없이 뒤돌아 라커룸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


[세비야가 16강에서 붙을 상대는······.]


“제발.”


[피오렌티나입니다.]


“오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구단주실에서는 로이 베넷이 TV를 틀어놓고 다시 한번 작은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유로파 리그 16강에 진출하는 팀이 모두 결정되고, 이제 다음 대진 상대를 추첨해야 하는 시간. 방금은 작년의 유로파 리그 챔피언이었던 세비야가 피오렌티나와 성사되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16강까지 간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 할 수 있겠으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기왕이면 그나마 해볼 만한 팀과 이어져서 8강 진출의 희망을 이어가는 것도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변방 우크라이나에 자리한 드니프로(Dnipro FC)나 벨기에의 클리프 브뤼허(Club Brugge)와 붙을 수만 있다면 베넷은 행복에 겨워 비명을 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도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인테르나치오날레, 비야레알, 로마 같은 팀들과 엮이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테니까.


“제발, 제발, 제발······.”


[다음 클뤼프 브뤼허와 붙을 상대는······.]


“제발!”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입니다.]


“아······. 아냐, 아냐. 그래도 나쁘지 않아.”


원하던 대진을 하나 잃어버린 건 아쉽지만, 가장 무서운 대상을 데려간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터키의 베식타스(Besiktas)도 나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다음은······ 볼프스부르크가 나왔군요.]


“제발, 제발······.”


[현재 분데스리가 2위에 있는 팀이죠. 이 팀과 맞붙을 상대는······.]


“하느님 아버지.”


[로스 카운티입니다.]


“제······.”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하게 여기까지 올라온 팀이죠.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매치업이네요.]


TV 화면에서는 로스 카운티가 들어 있던 추첨 볼을 뽑아 든 사람이 얄궂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베넷은 기도하던 손을 풀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내뱉었다.


“······기랄.”


*******


< Scottish Cup Quarterfinals >

로스 카운티 : 마더웰

2015년 3월 1일 (일) 13:0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295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필립 로스 / 잭 마틴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에이든 딩월 / 맷슨 클락 / 앤드류 톰슨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대런 케틀웰의 퇴장 징계는 오늘 경기까지 유효합니다. 그는 이제 다음 리그 경기부터 출장이 가능하게 될 겁니다. 에이든 딩월 선수가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모습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스코티시 컵 8강, 로스 카운티의 경기는 직관하러 온 사람들에게 최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곧장 경기장으로 이동해 관람하기 좋은 시간이었으니까. 꼭 그 이유 때문에 많은 인파가 몰려든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대다수는 최근 경이로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이 팀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분명 로스 카운티와 마더웰의 시합이었으나,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한 팀에만 치우쳐져 쏟아지고 있는 듯했다.


철썩 -


그 분위기에 찬물을 쏟은 건 마더웰의 이아인 비거스(Iain Vigurs)가 아크 서클 바로 바깥에서 날린 중거리 골.


전반 6분을 막 넘긴 시간에 터진 이른 득점이었다.


궤적이 훌륭하게 휘어져 들어간 슛이었기에 먹힐만하다고 봐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게다가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아 있기에 뒤집어낼 여지는 충분하다.


“······이거 좀 골치 아프겠는데.”


하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탈리안 감독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작가의말

적어도 주말에는 올리고 싶었는데

또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그래도 계속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속도로 보답하겠습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foir 님

g5095_cjiseok 님

모아두상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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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9 149.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14 21.12.04 2,030 75 30쪽
148 148. 평범했던 그 날의 오후 +11 21.10.31 1,975 85 25쪽
147 147. 공공의 적 (3) +11 21.10.05 1,937 76 28쪽
146 146. 공공의 적 (2) +9 21.09.16 1,877 76 20쪽
145 145. 공공의 적 +12 21.08.28 1,950 87 22쪽
144 144. 쉬운 상대는 없다 +13 21.08.03 2,597 83 28쪽
143 143. 벌어진 격차 +24 21.06.21 2,195 88 26쪽
142 142. 미끼와 덫 +15 21.02.26 2,416 90 24쪽
141 141. 클래스의 차이 (6) +23 21.01.05 2,438 118 34쪽
140 140. 클래스의 차이 (5) +4 21.01.05 2,011 63 20쪽
139 139. 클래스의 차이 (4) +5 21.01.05 1,980 57 24쪽
138 138. 클래스의 차이 (3) +18 20.10.02 2,280 96 33쪽
137 137. 클래스의 차이 (2) +16 20.08.04 2,326 81 29쪽
136 136. 클래스의 차이 +22 20.05.19 2,550 103 29쪽
135 135. 첫 라이벌 (2) +11 20.03.22 2,467 89 27쪽
134 134. 첫 라이벌 +11 20.02.13 2,651 98 27쪽
133 133. 볼프스부르크 (2) +14 20.01.20 2,532 104 32쪽
132 132. 볼프스부르크 +9 20.01.10 2,462 87 21쪽
131 131. 잃어버렸던 이름 +18 19.12.29 2,675 107 30쪽
130 130. 돌풍의 팀 (2) +10 19.12.16 2,568 103 26쪽
129 129. 돌풍의 팀 +13 19.12.07 2,649 114 23쪽
128 128. 골 넣는 수비수 +11 19.11.27 2,597 102 29쪽
127 127. 결집하는 마음 (3) +11 19.11.14 2,564 99 25쪽
» 126. 결집하는 마음 (2) +8 19.11.04 2,567 88 22쪽
125 125. 결집하는 마음 +8 19.10.23 2,697 95 22쪽
124 124. 미스터 딩월 (2) +8 19.10.08 2,728 100 27쪽
123 123. 미스터 딩월 +11 19.09.25 2,766 106 22쪽
122 122. 사냥개와 들개들 (3) +13 19.09.14 2,710 113 26쪽
121 121. 사냥개와 들개들 (2) +6 19.09.05 2,774 101 23쪽
120 120. 사냥개와 들개들 +8 19.08.25 2,900 99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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