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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좀 쉬엄쉬엄 가세나.

독수리자리 너머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판타지

구라백작
작품등록일 :
2021.02.02 18:03
최근연재일 :
2021.04.05 22:32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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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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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6,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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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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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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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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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독수리자리 너머(1)

DUMMY

「······정말 미안하구나. 아비를 용서해 다오.」


개인용 태블릿으로 도착한 메시지를 다 읽었을 때 참담함보다는 ‘그래 결국 이렇게 끝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16년이라는 기간을 이 페럼 우주 사관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합격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떠나갈 듯 기뻐했다.


사관 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아시아 연합 우주군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 간다는 것은 앞길이 창창하게 보장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입학식에서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표정의 부모님에게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기는 했었다.


그러나 페럼 우주 사관 학교는 전원 기숙사 제도였기 때문에 그 후로는 집안 사정을 내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동생도 숨기고 부모님도 숨기니 이 지경이 되도록 내가 알 수 없었겠지.


3학년 2학기를 끝마치고 4학년에 우주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A반에 들어갈 거라고 확정된 시점.


부모님으로부터 ‘파산’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다. 요점은 사관 학교에 다닐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우주 사관 학교는 지상과 달리 꽤나 많은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4학년이 되면 졸업을 위한 실제 운행 연습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주선 임대비, 우주복 구매비까지 학생이 마련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엄청났다.


아무리 장학생이 되었더라도 생활비와 다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당연히 학교는 다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일부 과정에 대한 비용을 무료로 해 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 하긴 했다.


입학 무렵 중산층이었던 우리집 사정으로는 힘겨우셨을 법 하지만 내가 졸업하고 힘껏 갚아드리기로 약속했었다.


물론 죄송한 일이지만 최대한 빨리 조기 졸업해서 부모님에게 효도하자는 목표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메시지가 원망도 되었지만, 어떻게든 비밀로 하고 결사적으로 파산을 막으려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기에 어금니를 굳게 다물었다.


원망보다는 부모님의 괴로우셨을 그 고통이 회선을 타고 넘어와 내 마음에 멍울을 만들고 있었다.


한 자 한 자 메시지를 적으실 때의 마음이 애잔하고 서글프게 와 닿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모님께서 나 때문에 짊어져야 할 부담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 이만 나도 마음을 놓자. 더 이상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말자.’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을 누가 볼까 재빨리 팔꿈치로 훔쳐 가렸다.


그간의 고통과 노력을 보상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은 보존이 될 테니까.


한숨을 크게 뱉으며 그날 사관 학교에 자퇴서를 담당 사관에게 제출 했다.


“······무슨 일인가. 이환 생도.”


담당 사관님이 계시는 사관실에서 자퇴서를 조심스럽게 드리자 나를 향해 미간을 좁히며 물으셨다.


“갑작스럽게······. 나에게 설명을 좀 해 주었으면 좋겠네. 이대로 자네가 자퇴를 한다면 우리나라로서도 이 연합으로서도 훌륭한 인재를 놓치게 되는 과오를 범하게 될 거야.”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애써 인자한 표정으로 바꾸는 담당 사관님을 보며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흘러 나왔다.


고마우신 분이셨다. 나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부모님처럼 기댈 수 있는 고목이셨고 우러러볼 수 있는 모범 장교의 케이스셨다.


“이쪽으로 앉아 이 차를 들어보게. 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게나.”


사관님이 챙겨주시는 따뜻한 차를 의자에 앉아 한 모금 넘기니 부드러운 향과 함께 목으로 넘어갔다.


잠시 후, 숨을 돌린 나는 집안의 상황을 설명 드렸다.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퇴를 하고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까지.


1학년 때 소형 우주 항공기 라이선스를 땄기 때문에 작은 소형 화물선 정도는 조정할 수 있었다. 땅에서 버는 것보다야 분명 수입이 좋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사관님이 조용히 입을 여셨다.


“다음주에 17광년 떨어진 독수리자리에 위치한 이오타 항성계로 떠나는 우주선이 있네. 납품받은 것들을 안전하게 개척 행성까지 수송하는 일을 내가 관리 감독을 하게 되었지.”


“······.”


무슨 말씀인지 몰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를 보며 사관님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알겠지만 이오타 항성계 바너드 행성은 개척 행성치고는 위험 등급이 B-급이라서 책정된 과업 수행 비용이 꽤나 높더군. 사실은 안전한 곳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부관이 필요하지.”


“아······.”


지금 사관님은 내게 부관직을 제안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서 일할 것이면 이곳에서 일을 해 보라는 배려였다.


당연히 이제 4학년으로 올라가는 올빼미에게 그런 고위 직함을 내줄 정신 나간 사람은 없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사관님에게 누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하여 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사관님은 고개를 흔들고 말씀을 이었다.


“고작 한 달짜리 임무가 될 거네. 그리고 고작 화물선일 뿐이고. 만약 여객선이었다면 제안을 하지 않았을 것이야. 게다가 이것은 나에게 부여된 임무. 모든 결정권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네. 그리고 본관은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자네에게 임무를 내리고 싶은 것이고.”


“사관님······.”


“그래. 부디 내 결정을 따라주게. 부담될 것도 없을 것이야. 게다가 이런 초장거리 워프는 분명 자네의 경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네. 무려 독수리자리로 향하는 17광년의 워프니까.”


사실 사관님 말씀이 맞았다. 사회에서는 이런 초장거리 경험을 가진 사람이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경험의 유무에 따라 내가 벌 금액의 단위가 결정됐다.


“이 자퇴서는 자네가 임무를 완료하고 돌아오면 그때 수리하겠네.”


“······알겠습니다.”


사관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웃었다.


“임무이긴 하지만 한 달 동안 여행 겸 머리도 식히게. 사회는 우리 조직보다 더 치열하고 냉정할 테니까. 자네가 머리를 식히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야.”


사관님의 말씀에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출발은 다음주 월요일 13시 정각이네. 그때까지 셔틀장으로 오면 되고 더 필요한 것은 개인 태블릿으로 보내주겠네. 이제 가 봐도 되네. 이환 생도. 아니 이제 부관이군.”


사관님의 말씀에 난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하하. 그럼 차주에 보겠네.”


경례를 마치고 내 기숙사로 돌아왔다.


한바탕 태풍이 불고 간 느낌이다. 갑작스런 집안의 파산. 그리고 갑작스런 한 달간의 장거리 임무.


원래라면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있어야 할 시기였지만 비용 때문에 집에는 학업 때문에 시간을 내기 힘들다고 변명했었다.


최대한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었는데······. 허탈하군.


동기들에게 말을 해야 하나. 우혁이와 진석이가 화를 낼 것 같은데. 부자 친구 이런 때 써먹으라고 역정을 낼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애초에 친구들의 그런 위치를 써먹으려고 사관 학교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럴 염치도 없었고.


다음주 월요일. 초장거리 워프라면 항행은 인공 지능이 처리하겠지만 군수 물품이 잔뜩 실린 개척 행성으로 향하는 화물선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반드시 중요 군수 물자의 경우 2인 1조 이상의 군인이 선적과 하역을 관리하게 되어있었다.


선적은 이미 된 것 같으니 나는 사관님을 따라 하적 관리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보니, 굳이 부관도 필요 없으신 거 아닌가. 이미 선적도 부관 없이 하셨는데.



그게 아니라면 나 때문에 누군가 부관에서 밀려 났을 수도 있다.


정말 미안하게 됐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 누군가에게 한 잔 바쳐야 할 것 같다.


짐 정리를 하다가, 스마트워치에 메시지가 와서 살펴보니 다음주 출발하는 화물선의 물자 외에 승선하는 사람들 리스트였다.


‘······.’


씁쓸했다. 리스트에는 약 30명의 동기들과 선배들이 있었다. 사관 학교에서 힘 꽤나 쓴다는 부잣집 자제들이다.


그들이 개척 행성에 가는 것은 아마도 첫 번째 엘리트 코스로써 해외 유학을 가는 것처럼 개척 행성에서 남들보다 나은 경력을 쌓기 위해서였다.


개척 행성에 가는 승선비부터 그곳에서 생활하기 위한 비용 등. 모두 합쳤을 때의 비용은 나 같은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단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월요일 승선 시간이 다가왔다.


사관 학교의 기숙사에서 짐 정리를 하고, 한 달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품들과 개인용품을 커다란 백팩에 담아 왔다.


마치 신병이 끙끙거리며 어깨에 더플백을 멘 어설픈 모습이었다.


김욱 사관님은 소령이셨다.


셔틀장에서 소령님께 경례를 마치고 옆에 서 있는데 나를 보며 피식 웃음을 삼키셨다.


“왜 그러시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나한테 자네만한 또래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네.”


“······.”


아들이 있었던가. 도통 가족 이야기를 안 하시는 분이라 난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형이라면······.


“자네를 처음 보고 난 아들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어. 그래서 내심 자네에게 더욱 관심이 갔었는지도 모르지.”

소령님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시며 시선을 고정하셨다.


“그래서 자네가 자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로서는 정말 실망이 컸었다네.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지. 그리고 자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심을 해 보니 ‘독수리자리’에 위치한 17광년 떨어진 개척 행성이 떠오르더군.”


“······.”


사관님의 말씀에 다시 난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작전 명령서를 받아 왔네. 작전 과장을 설득하기 위해서 30년짜리 꼬냑을 한 병 바쳤지. 하하.”


사관님은 웃으며 나의 생도복에 붙어 있던 생도 계급장을 떼어 내시고 위관급 ‘소위’의 계급장을 직접 달아주셨다.


“부관은 소위부터 시작한다네. 자네가 지금은 비록 생도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졸업하면 소위를 달 것 아닌가. 그렇게 설득해서 특수하게 자네는 임무 기간 동안 생도가 아닌 이환 소위로서 정식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네.”


“소령님······.”


“소위를 달았으니 이제 자네는 생도가 아니네. 훌륭한 한 명의 군인이지.”


사관님은 나를 바라보며 뿌듯한 웃음을 보이셨다.


“이번 임무를 끝내고 와서 부족한 이야기를 다시 하기로 하세. 임무 기간 동안에는 임무도 좋지만 문제점을 스스로가 한번 진중하게 고민을 해 보게. 한 마디 거들자면 ‘도움’을 받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고 하지. 그것도 용기라고 할 수 있네. 난 자네가 용기가 있는 생도라고 생각하고.”


“······”


“도움을 거북하게 생각하면 끝이 없는 거라네. 왜 사람이 서로 공존하며 살겠는가. 서로 돕고 같이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닌가. 게다가 자네 동기들도 그렇고. 또한 나까지. 그 관계를 부디 가볍게 여기지 말게나.”


“······네.”


사관님의 말씀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결국 알량한 내 자존심 문제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에게 폐를 끼치긴 싫었다. 사관님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이렇게 폐를 끼치고 있는데······.


“이 문제는 내가 자네에게 내주는 한 달간 과제라네. 잘 정리해서 한 달 후에 보고하도록 이환 부관.”


사관님의 말씀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을 드렸다.


인자한 웃음을 보여 주시는, 이제는 장년이 되었을 사관님의 눈가 주름이 오늘따라 더 깊게 보인다.


“저기 셔틀이 오는군. 궤도 방어 스테이션에 도착한 후에 우리가 임무를 수행할 함선은 양무호함일세. 옛 과거 일본의 치욕을 씻어내기 위해 최신형 화물선에 이름을 붙였다고 들었지.”


“그렇습니까?”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이번 선적에 좀 조심할게 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하게 선적한 물자가 무엇인지는 아직 나도 모르겠네.”


나는 사관님과 함께 셔틀에 올라탔다.


무거운 백팩을 끙끙거리고 들어서 오르자 사관님이 다시 웃음을 터트리신다.


“아니, 자네. 내가 태블릿으로 기본 임무용 개인 소지 물품을 받으라고 했었는데 말이야. 혹시 받은 건가? 그거만 있으면 짐도 적을 텐데. 왠지 짐이 많아 보이는군.”


사관님 말씀대로 지급되는 기본 물품을 받아오고 나서, 불안함 마음에 평소 좋아하는 개인 물품까지 모조리 챙겨온 상황이었다. 하다못해 가족사진까지.


“죄송합니다. 혹시 몰라서 기본 물품 외에 개인용품을 조금 더 가져왔습니다.”


“괜찮네. 난 기본 물품 수급을 혹시 안 했나 싶어서 걱정돼서 물어본 거니. 그렇게 한아름 들고 다니니까 마치 신병을 보는 것 같군. 하하.”


사관님의 말씀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병아리라고 놀리시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놀림에도 나는 기분 좋게 입꼬리가 스르르 올라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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