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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술 쓰는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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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이기준
작품등록일 :
2024.05.21 21:54
최근연재일 :
2024.06.20 22:30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26,250
추천수 :
810
글자수 :
149,729

작성
24.05.21 21:59
조회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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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9쪽

상서로운 꽃 (0)

DUMMY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가난했던 집은 숟가락 들 힘조차 없던 나를 동전 세 닢에 팔아치웠다.


날 사간 사람은 자하선사라 불리는 도사였다. 그는 늘그막에 말동무가 필요했는지, 시덥잖은 이야기로 사사건건 귀찮게 굴었다.


"평아, 잠깐 와서 여기 좀 보거라."


"어떤 거요?"


"이파리가 참 예쁘지 않느냐?"


노인의 집은 산중턱에 위치한 작은 도관(道觀)이었다. 고개만 돌리면 꽃이 피어있고, 귀만 기울이면 새가 지저귀는 곳이다.


처음에는 노인네가 흰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언제부턴가 그의 곁에서 새와 꽃을 논하고 있더라고.


나도 사람이 고팠던 모양이다. 아니면 사랑이거나.


노인은 내 맥도 짚어주었다.


"네가 앓는 병은 한음절맥(寒陰絕脈)이라는 것이다."


노인에 따르자면 내 병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정도로 재수가 없는 놈만 걸리는 괴질이라고 한다.


온몸에서 냉기가 뻗쳐올라, 나이가 스무살쯤 되면 결국 한 송이 얼음꽃이 되어버린다나.


그래서 내가 어릴 때부터 손발이 차가웠던 것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을 뒤집어쓴 듯이 하얀 것이고.


"다행이라면 네가 선재(仙才)라, 도움이 될만한 재주를 가르칠 순 있겠다."


"선재가 뭡니까?"


"도 닦는 재능이 있다는 게야."


"저한테 재능이 있다고요?"


나는 노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게 뭐라도 쓸모가 있었더라면 가격이 세 닢은 아니었겠지.


"네 상상 이상일게다."


노인이 끌끌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한 건 먼 훗날의 일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노인에게 술법까지 배우게 되었다.


노인에게 배운 술법은 병의 진전을 늦추는데엔 도움이 되었으나, 병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병을 이겨내려면 등선경(登仙境)을 이루어야하는데, 등선경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 세계는 무척 오래되었단다."


노인이 기력이 쇠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네가 상서로운 생물의 내단이나 열매를 구할 수만 있다면······그러면 병을 극복하고 신선이 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늙어빠진 세계에서 약으로 쓸만한 것이 남아있을지 모르겠구나."


"오래 살아서 뭐합니까? 전 그냥 생긴 대로 살다 가렵니다."


나는 삶에 큰 미련이 없었다. 노인의 말벗이나 해주다 적당할 때에 숨을 거두는 게 운명이겠거니 싶었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라. 살아있으니 이렇게 좋은 경치도 보는 게야."


노인은 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날 데리고 운남의 정글에서 신강의 사막까지, 천하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는 나의 친구였고, 스승이었으며, 아버지였다. 약을 구할 수 없어도 좋았다. 그저 그와 함께하는 날이 하루라도 더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가 가르쳐주는 삶이란 너무 달콤해서 맛보기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노인은 길림의 한 골짜기에서, 잠을 자던 중에 조용히 소천했다.


나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감겨있는 그의 눈이 지금이라도 뜨이고, 다물린 입술이 언제나처럼 시시한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가 다시 숨을 쉬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는 그곳에 움막을 지었다. 묫자리는 그의 생전 취향을 따라 꽃나무가 무성한 장소를 썼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잃은 탓인지, 나의 병세는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나는 노인의 곁을 내가 누울 곳으로 정했다.


그리고 그가 이승을 떠난지 정확히 마흔아홉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날도 나는 버릇처럼 묘소를 찾았다.


"영감님, 거기서도 꽃을 좀 봅니까?"


넋두리를 늘어놓던 와중이었다. 문득 무덤가에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풀이 돋아난 게 보였다. 부러질 듯이 가느다란 줄기의 끄트머리에 빨간 꽃봉오리를 매단 풀이었다.


아직 다물린 꽃봉오리의 틈새로는 은은하고 포근한, 오색영롱한 광채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우담화(優曇華).


노인이 죽는 그날까지 찾아 헤맸던 상서로운 식물이었다.


눈시울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일단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은 몰랐다.


살고 싶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난 살고 싶어.


생의 의지가 산처럼 부풀어올랐다.


노인의 넋이 내게 온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길을 열어준 것인지, 진실은 모를 일이지만, 이것이 내 마지막 기회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진법을 펼쳐서 무덤 주변을 겹겹이 둘러쌌다.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고 삼 년이란 세월이 지났을 때였다.


스무 살 생일을 사흘 앞둔 날,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 채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열고 움막 밖으로 나가보니, 어슴푸레한 여명 속에서 웬 중년의 사내가 서있는 게 보였다. 사내는 검은 죽립을 쓰고 검은 옷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긴 장검을 한 자루 차고 있었다.


"참으로 공교롭군."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중얼거렸다.


"설마하니 이런 외진 곳에서 기연을 만날 줄이야."


사내의 손에서 꽃대가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꽃대를 따라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우담화가 있어야할 자리엔 끊어진 줄기뿐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새끼야."


"어린 것이 입이 더럽구나."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어!"


"무덤을 보아하니 사연이 있어보인다만, 재보에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다. 우담화는 네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잊고 살아라."


"도둑놈 주제에 뭐? 잊고 살아?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끓어올랐다.


"나는 도둑이 아니라 검성(劍聖) 공융이라는 사람이다. 근자에는 천하제일인이라는 별호로 더 자주 불리지."


"그래서? 천하제일인이면 남의 물건을 훔쳐도 돼?"


"주제를 알라는 뜻이다, 무례한 것아."


나는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분노 때문에 기혈이 뒤틀렸다. 역류한 피가 고드름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한음절맥인가."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법을 설치한 건 죽은 네 스승이겠군. 나조차도 뚫기 쉽지 않았을 정도로 고절한 수법이었다. 선배에 대한 경의로 오늘은 네 무례를 눈감아주겠다만, 다음에는 예의를 차리는 게 좋을 게다."


"닥쳐!"


나는 왼손으로 오른팔뚝을 쥐었다. 오른손 끝으로 놈을 가리키자, 거대한 불꽃이 일어나 놈을 휘감았다.


"이게 무슨 - !"


놈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불과 벼락, 얼음을 퍼부었다. 분신을 쏟아내고, 땅과 하늘을 거꾸로 뒤집었다.


놈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검기를 충만하게 실은 장검이 내 목을 노렸다. 그러나 검 한 자루만으로는 결코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 없었다.


노인이 내게 가르쳐준 술법은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몸부림이었다.


"허억······ 허억······ 쿨럭, 쿨럭···!"


결국 나는 꽃 도둑놈을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아니, 얼려버렸던가?


···모르겠다. 너무 하찮은 놈이었고, 의식을 더 이어갈 수 없을 만큼 고통이 끔찍하다.


모든 힘을 쏟아부은 대가는 한음절맥의 폭주로 돌아왔다. 이제는 설령 우담화가 있더라도 몸이 얼어붙는 걸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노인의 무덤에 몸을 기댔다. 고개를 숙이고는, 피 섞인 얼음을 한움큼 토해냈다.


"······하."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기왕 얼음꽃이 되어야한다면 노인이 보기에 좋은 모습이었으면 한다는.



**



한동안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설마 죽음이라는 게 어둠 속을 영원히 떠도는 상태를 의미하는 건가.


그런 의문이 들 때였다. 장막이 열리듯 머리 위 어둠이 걷히며, 차갑고 축축한, 불쾌한 감각이 엄습해왔다.


"에고, 이를 어째!"


"마님께서 피를 흘리고 계세요!"


수천 개의 칼날이 몸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내가 무간지옥에라도 떨어진 줄로만 알았다. 사람을 죽였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이 있었다.


"마님!"


젊은 여성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피가, 피가 얼어붙고 있어요!"


"치유사를 불러와라, 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계속되었다. 일이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음은 느껴졌다. 나는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도력을 끌어올렸지만, 느껴지는 건 오로지 공허뿐이었다.



작가의말

시작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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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상한 애완동물 (1) +4 24.06.08 896 29 13쪽
17 경매 (0) +3 24.06.07 868 28 15쪽
16 용돈벌이 (3) +3 24.06.06 900 30 13쪽
15 용돈벌이 (2) +2 24.06.05 929 26 14쪽
14 용돈벌이 (1) +1 24.06.04 986 28 11쪽
13 가정 교습 (3) +2 24.06.03 1,023 33 10쪽
12 가정 교습 (2) +2 24.06.02 1,035 35 10쪽
11 가정 교습 (1) +1 24.06.01 1,076 31 10쪽
10 불과 얼음의 노래 (3) +1 24.05.31 1,123 33 11쪽
9 불과 얼음의 노래 (2) +2 24.05.30 1,126 31 12쪽
8 불과 얼음의 노래 (1) +1 24.05.29 1,151 37 11쪽
7 뜨겁고 화끈한 것 (3) +1 24.05.27 1,168 32 9쪽
6 뜨겁고 화끈한 것 (2) +2 24.05.26 1,210 37 11쪽
5 뜨겁고 화끈한 것 (1) +1 24.05.25 1,262 34 9쪽
4 형제애 (2) +1 24.05.24 1,315 32 11쪽
3 형제애 (1) +2 24.05.23 1,379 32 12쪽
2 윤회의 굴레 (0) 24.05.22 1,458 35 10쪽
» 상서로운 꽃 (0) +2 24.05.21 1,615 3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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