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토펜 님의 서재입니다.

침략자들의 천재 망나니가 돌아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토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5.18 22:0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43
추천수 :
19
글자수 :
57,014

작성
22.05.15 01:11
조회
19
추천
2
글자
12쪽

잊혀진 신, 금지된 주문 (1)

DUMMY

알티파이트 함선의 회의실 내부는 울창한 숲속을 방불케 했다.


지붕과 벽을 대신하는 목질들과 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

바닥에 카펫처럼 깔린 이끼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맞은편 벽에는 녹색의 비단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휘장에 금색으로 수놓인 세 갈래 가지의 십자가 문장을 향해, 에즈라크는 가볍게 성호를 그었다.


“뿌리십자, 우리 알티파이트의 상징이지. 사방으로 뻗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하더군.”


회의실로 들어온 일행이 분재 방식을 통해 의자의 모양으로 키워낸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앉자, 센츄리온은 곧바로 본제를 꺼내들었다.


“지루한 이야기이니 빠르게 넘기도록 하지,

즐거운 건 전투 쪽이지 설명이 아닌 법이니.”


“뭘 좀 아는구만, 너.”


네이즈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에즈라크는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우리는 여기를 점령해야 한다.”


“이유는?”


“괜찮은 바위섬이기 때문에. 좋은 바위덩이가 곧 좋은 배드덱의 용골이 되지. 그리고 두번째로는,”


에즈라크는 입구 쪽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확인해야 할 물건이 저기에 보관되어 있다. 뺏어올 필요가 있어.”


“진격과 점령이라면 알티파이트 군대가 늘상 하던 일이 아닌가요?”


“이미 그리 했다.”


에즈라크가 깍지 낀 두 손에 턱을 올렸다.


“세 척의 배드덱, 세 개의 군단이 세 차례에 걸쳐 그리했다. 그리고 모두 진입 즉시 연락이 두절되었지.”


그 소실된 규모를 고려하면, 절대 작은 일이 아니리라.


일행은 이전보다 좀 더 날카로워진 눈빛을 하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뭔가 상황이 바뀌었어.”


“적은?”


네이즈가 에즈라크를 대신하여 울크의 질문을 받았다.


“지도에 올려둔 말에는 증오장이(Loath smith)들의 상징이 새겨져 있군요.”


에즈라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경멸스럽기 짝이 없는 해적 놈들이지.”


“아, 들어본 적 있어!

특수한 능력을 각성한 대가로, 품에 날붙이를 갖고 있지 않으면 불안증세를 보이는 이상성을 얻었다던데.”


울크는 그루터기에서 뻗어나온 가지-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증오장이라, 꽤 멋진 이름 아닌가. 그만큼 재밌는 상대였으면 좋겠는데.”


“기대하지 마라, 그놈들처럼 재미없게 싸우기도 힘들다.”


“허어.”


입고리가 저절로 치켜 올라간다.


울크의 손가락이, 그루터기 옆에 세워둔 철제 케이스를 톡톡 두드렸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오히려 기대되는데. 얼마나 더럽게 싸우길래?”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겪어보면 내 말을 이해할 거다, 울크.”


두 사내의 대화를 듣던 클라리아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질린 기색을 내비쳤다.


“으엑, 이래서 인간 핏줄들이란. 싸우는 게 대체 뭐가 좋다고 저렇게까지?”


그 직후에 클라리아의 얼굴로 바람 공격이 날아들었음은 당연지사였다.



***



배드덱과 원반형 비행선의 무리는 에즈라크의 인도를 따라 포탈을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한 것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채 반영구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일종의 자연 현상으로,


본래 어느 동굴 속에 위치하고 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배드덱이 드나들 수 있도록 개조하는 과정에서,

동굴은 해체되어 이제는 허공에 뚫린 구멍이 거대한 슬라이드의 끝에 자리한 모양새였다.


[이건 또 색다른 경험이군요!]


슬라이드에 올려진 비행선의 관제인격이 즐거이 외쳤다.


소문과 달리, 알티파이트들은 쇠와 불을 질색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자기들이 사용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배드덱을 통해 비행선을 수송하게 해 준 것은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인 건 확실했다.


배드덱과 비행선이 슬라이드를 가로질러 포탈의 반대쪽으로 빠져나오자, 널따란 푸른 바다가 그들을 반겨 주었다.


비유가 아닌 진짜, 일산화 이수소로 이루어진 바다가.


오비탈의 멸망한 고대 문명들에나 존재했다고 하는 그 바다가.


우주를 보고는 심드렁해하던 네이즈조차 끝없이 펼쳐진 물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알티파이트의 고향 우주에 진입하신 걸 환영하지. 우리는 이곳을 다도해, 외우주들에선 프론티어 라인이라 부른다.”


“이야, 풍경 진짜 죽이는데.”


공중을 가로지르는 배드덱의 선두 끝자락에, 울크가 걸터앉아 있었다.


등에는 네이즈로부터 받은 기다란 철제 케이스를 들쳐멘 채였다.


배드덱의 주위로 떠올라 있는 무수한 마법진의 빛이 반사되어 울크의 얼굴이 연둣빛으로 보였다.


“쩔지 않냐? 오비탈의 행성 선단에서는 꿈도 못 꿀 풍경이잖아, 이거.”


“네.”


언제나처럼 소리없이 사뿐사뿐 걸어온 네이즈가, 울크의 몇 걸음 뒤에서 멈춰 섰다.


나란히 서려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네이즈 다웠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계셨는지요.”


“뭐야, 들켰나?”


평범하게 한량짓 하고 있는 걸로 보일 줄 알았더니.


울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이랄 것까진 없고, 식물들한테 받은 주문 좀 들여다 보느라.”


“투척과 발사였던가요.”


“뭐, 그렇지? 내 죽창을 업그레이드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말이야.”


“장로들이 좋아하겠군요.”


“암, 좋아 죽으려 들겠지. 무슨 생각으로 허락했냐고 최고중재관님한테 난리치는 거 아니야?”


“별로 상관없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네이즈는 결국 다시 입을 열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상관이 있었다면, 이 스쿼드는 애초에 꾸려지지 않았겠죠.”


“오비탈 사상 최악의 죄수를 풀어주면서까지 해야 할 일이라니, 너도 힘들게 사는구만.”


“마검사의 인사 건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 그거.”


네이즈가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와, 울크의 옆에 섰다.


둘은 잠시 그렇게 배드덱의 끄트머리에 서서 물결치는 검푸른 벌판을 바라보았다.


“외람되지만, 수감 이전에는 망나니라는 별명으로 불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어. 그런데?”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봐 온 바로는, 그런 평가와는 거리가 좀 있으신 것 같아서요.”


울크가 작게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아직 내가 작정하고 전투하는 걸 못 봐서 그래. 보고 나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배드덱이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신형이 휘청인 탓에, 둘의 대화는 거기에서 중단되었다.


바꾼 방향의 아래쪽으로는, 왠 섬이 손바닥만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저게 목적지인 바위섬인가 보군.”


호오, 하며 태평하게 바라보는 울크와 달리, 네이즈는 훽 소리 나게 뒤로 돌았다.


“센츄리온, 당장 멈추십시오!!!!”


우우웅.


급제동을 건 탓에, 휘청이며 배드덱 아래로 떨어질 뻔한 네이즈의 몸을 울크가 잽싸게 날아가 떠받쳤다.


나뭇잎이 붙은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온 에즈라크가 네이즈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네이즈는 곧바로 저 멀리 보이는 바위섬을 가리켰다.


“지도상에서는 분명 저 위에 숲이 있는 걸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네이즈가 가리킨 바위섬에서는, 초록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바위와 바다의 무채색뿐.


눈을 가늘게 뜨고 바위섬을 노려보던 에즈라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군. 이 지도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닌데 말이야.”


“더 이상한 건, 너희 정도 되는 마법사들이 이 이변을 더 일찍 감지하지 못했단 거지.”


울크가 부축해 온 네이즈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명색이 군인이기까지 한 마법사들이 경계를 느슨히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고.”


그렇다면 결론은 한가지로 좁혀진다.


“뭔가 마법적인 요소가 발휘된 모양이군요. 그걸 감추기 위한 강력한 암시도 함께.”


센츄리온의 장갑 낀 손이, 들고 있던 목창을 꽉 쥐었다.


“그렇다면 저 바위섬의 근처로 접근하면, 어느 순간-”


“‘뭔가’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겠지. 먼저의 셋은 그거에 당한 게 아닐까.”


네이즈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어느새 그녀의 주위를 멤돌던 잠자리가, 네이즈가 내민 손가락 끝에 내려앉았다.


“클라리아. 일입니다.”




***




클라리아는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우선, 이건 확실히 해야겠어.

진월교도들은 분명히 시간을 뒤틀 수 있지만, 그걸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진 못해.”


“납득할 수 있는 영역이군.”


“그리고, 우리가 시간조작을 개인 단위로 적용되게끔 사용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어-저렇게 넓은 범위에 시간조작을 거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방법이 없나?”


진월교도는 잠시 고민했다.

핑크빛 단발이 짠 바람을 맞아 흔들렸다.


“국지적 영역에 한정해서라면···가능할지도 몰라. 단, 역행된 시간 내에서 재생되는 술식의 해석까진 동시에 못해. 내 역량이 딸려.”


“괜찮습니다, 여기에 마법사가 몇 명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네이즈의 말에 클라리아는 침을 한번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센츄리온, 조사에 따르면 세 개의 군단을 연락 두절시킨 무언가는 일종의 광역마법이랬지?”


“그렇다.”


진월교도가 울크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오빠, 섬 근처에까지 바람 권능 뻗치는 게 가능해?”


“그 몇 배도 가능하지.”


“그러면 섬 근처의 공기입자들을 이쪽으로 끌어와줘. 요 정도, 면 될 거 같아.”


클라리아가 손으로 만들어 보이는 구체의 크기를 확인하고, 울크는 마력을 움직여 클라리아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흩어지지 않도록 바람으로 격리시킨 공기입자들을 느끼며, 클라리아는 그 바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이상은 계시지 않으나, 그럼에도 저희를 보우하실 주(主) 진월(眞月)이시여.”


마력이 확산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뭉치고, 바람 안쪽의 공기입자들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일종의 사이코메트리.


사이코메트리를 수많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특정 사물에 적용할 수 있다면,

그보다 훨씬 적은 입자로 이루어진 공기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시간이 역행하며, 당시에 공기 입자들이 겪었던 움직임이 재현되기 시작한다.


울크와 네이즈, 에즈라크의 세 마법사는 마법적 시야를 총동원해 공기입자들의 흐름을 살폈다.


툭. 투둑.


네이즈로부터 식은땀이 흘러 떨어지다, 바람에 휩쓸려 그 안쪽의 공기 입자에 닿는 일 없이 날려 사라졌다.


그리고 예고없이, 공기 입자들이 확 흩어지며 마법이 풀렸다.


그 움직임을 관찰하던 셋은 잠시 침묵에 빠졌고, 클라리아는 키톤을 땀에 적신 채로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이건···뭐죠?”


“···모르겠군. 처음 보는 주문이야. 뭘 위한 주문인지도 파악이 안 되는데.”


“모를 법도 하지. 아니, 몰라야 정상이다.”


울크가 허공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울크?”


“아, 미안. 이걸 다시 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잠시 당황했어.”


“이게 뭐길래 그러지?”


울크는 잠시 고민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테루스, 라는 이름을 아나?”


“처음 듣는군.”


“그렇다면 이 다도해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주문은 아닌 모양이군. 다행이야.”


울크는 바위섬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테루스는···어느 고대 문명에서 숭배하던 신이다. 태양신, 그 중에서도 기근과 가뭄의 속성을 강하게 띄는 신이지.


저건 그의 권능을 빌려 행사되었다고 전해지는 주문인 ‘아테루스의 숨결’.


광범위한 영역에 초고열의 열을 가해, 범위 내의 모든 수분을 증발시켜 버리는 기술이지.”


탄소 기반 생명체의 학살 이외에는 용도를 찾을 수 없는 극악한 마법.


훗날 아테루스가 악신으로 간주되어 숭배가 금지되고, 그 신앙이 몰락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잊혀진 신의 금지된 주문이라니요.”


“이 시대에 나와야 할 물건이 아니다.”


기억되지 못한 고대의 지식이 현대에 풀려나고,

있을 수 없는 참사가 발생한다.


“고대의 악.”


“아나테마.”


네이즈와 에즈라크가 동시에 결론을 내렸다.


비록 다른 이름으로 칭할지언정, 같은 존재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쿠아 울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큰 사냥이 되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침략자들의 천재 망나니가 돌아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22.05.19 15 0 -
공지 1화의 내용이 소폭 수정되었습니다. 22.05.18 9 0 -
10 잊혀진 신, 금지된 주문 (4) 22.05.18 9 0 13쪽
9 잊혀진 신, 금지된 주문 (3) 22.05.17 17 0 12쪽
8 잊혀진 신, 금지된 주문 (2) 22.05.16 13 0 12쪽
» 잊혀진 신, 금지된 주문 (1) +1 22.05.15 19 2 12쪽
6 고등 나무 (2) 22.05.14 21 1 13쪽
5 고등 나무 (1) 22.05.13 30 1 14쪽
4 최악의 죄수 (4) 22.05.12 35 2 13쪽
3 최악의 죄수 (3) 22.05.11 40 3 13쪽
2 최악의 죄수 (2) 22.05.11 50 4 11쪽
1 최악의 죄수 (1) +2 22.05.11 101 6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