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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님의 서재입니다.

침략자들의 천재 망나니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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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5.18 22:0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45
추천수 :
19
글자수 :
57,014

작성
22.05.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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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최악의 죄수 (3)

DUMMY

네이즈의 말처럼 오비탈의 구성원들은 범위기에 능했기에,

역으로 닫힌 공간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일 능력을 타고난 동물이,

팔다리가 묶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때문에 건물의 내부가 아니라, 탁 트인 전용 광장에서 모임을 갖는 것은 오비탈 내에서 흔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같은 정적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히 여기서, 이 시간에 만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널찍한 원형광장의 어디를 둘러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자리의 객석에 드러누워 있던 울크는 휘잉 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끼들, 대체 언제 와?”


“확실히,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군요.”


“오케이. 그럼,”


울크는 곧바로 미풍을 일으키고 정신의 한가닥을 그 흐름에 집중시켰다.


제어 하의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그 흐름이 훑고 지나간 것의 형상이 울크의 머릿속으로 전해져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예의바르다고 받아들여지는 행동은 아니었으나, 뭐 어떤가.


높으신 분(추정)의 허락이 떨어진 참인데.


범위는 대충 사방 십 미터.


조금 더 신경을 썼다면 열 배는 더 늘릴 수 있겠으나, 전시도 아닌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되었다.


“찾았다.”


바람이 특유의 화약 냄새를 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징집자는 아니다.


소거법으로 인해 걸려든 형체의 정체는 하나로 좁혀졌다.


“진월교도군.”


다음 순간, 바람에 걸리던 진월교도의 형상이 스위치를 끄듯 사라졌다.


울크는 곧바로 제어 하의 바람을 확 일으켰다.


날뛰는 질풍 속에서, 하얀 키톤을 차려입은 진월교도의 형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허공, 그것도 울크의 바로 앞으로부터 3미터 떨어진 곳에.


“거칠어, 오빠.”


“꺼져, 임자있는 몸이야.”


예쁘장하긴 했지만, 네이즈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다.


무엇보다 얼마나 속이 시커멓길래 겉으로 다 티가 날 정도인지.


진월교도 중에 속이 깨끗한 놈이 없다더니, 그건 울크가 감옥에 처박혀 있는 동안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 했다.


울크가 계속해서 노려보자, 진월교도 여자는 쳇 하고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허공에서.


“발 아래의 국지적인 공간의 시간을 동결시켜 고체화하는 기술이었지, 아마?”


“그렇게 어려운 말은 잘 모르는데.”


시치미를 떼며 뒤로 물러서는 여자의 손에는 두 자루의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럼 그렇지.


울크의 의지에 따라, 몰아치던 바람이 조금 더 강해졌다.


진월교도의 금빛 단발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린다.


“무기를 꺼냈다는 건 한번 해보자는 뜻인가? 그렇다면 기꺼이-”


“아 좀! 그냥 장난 좀 쳐본거였어!”


“-상대해 주지.”


휘잉!


한 차례 돌풍이 휘몰아치며 건방진 진월교도를 맞은편의 기둥에 내동댕이쳤다,


안 그래도 금이 쩍쩍 가 위태위태하던 기둥이 충격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뭐 어떤가, 진월교도 하나 불러다가 시간 좀 역행시키면 원상복구 될 텐데.


아니나다를까, 바닥에 털썩 떨어진 채 피를 흘리던 몸은 조금 지나자 고장난 영상처럼 이리저리 찌그러지다 멀쩡하게 돌아왔다.


“너무하네!”


“시간역행 쓸 수 있는 거 알고 한 거다. 엄살 피우지 마라.”


울크는 코웃음을 치며 바람을 가라앉혔다.


“아, 이걸 안 속네.”


진월교도는 툴툴거리며 원형 광장의 한쪽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한 명 더 있지 않나? 언제 온데?”


“나도 모른다. 쟤도 모를걸.”


“잠시.”


네이즈는 양해를 구하고는 눈앞으로 날아든 잠자리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그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잠자리를 잠시 응시하던 네이즈는 녀석을 도로 날려보내고는, 일행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양치기의 권속과의 텔레파시를 통해 정보를 전달받은 듯 했다.


“틸드 씨는 이번에는 합류하기 힘들 것 같군요.”


“뭐야뭐야, 그 징집자 이름이 틸드였어?!”


진월교도가 꺅 소리를 내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뭐지, 유명한 놈인가?”


“물론이지, 아르제의 대참사를 진압한 일등공신이잖아! 그 전에도 징집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전사였데.”


“이 분은 클라리아. 진월교 내에서 최연소 주교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인재입니다.”


핑크빛 단발을 찰랑이며, 클라리아라 칭해진 진월교도 여자가 브이를 해 보였다.


“클라리아, 이 분은 쿠아 울크. 아시다시피···,”


네이즈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을 골랐다.


“···스톰링이십니다.”


“그래, 스톰링이지. 잘 부탁한다.”


썰렁한 수식어에 울크는 씩 웃어 보였다.


그의 시선을 받은 클라리아는 힉 하며 시간 조작을 통해 몇 걸음 뒤로 순간이동했다.


“어, 잘 부탁해?”


네이즈가 손을 들어 휘젓자, 허공에서 큼직한 괴수 한마리가 튀어 나왔다.


키틴질의 갑각을 뒤집어 쓴 코뿔소를 연상케 하는 모습과 크기.


양치기들이 그러한 이름을 얻게 된, 그들이 부릴 수 있는 수많은 권속의 하나였다.


권속은 주인이 쉽게 자신에게 올라탈 수 있도록 발 앞에 머리를 낮추었고, 네이즈는 사뿐사뿐 움직여 코뿔소 괴수의 등 위로 올라가 걸터앉았다.


“그럼 틸드 씨를 빼고는 모두 모였으니 이제-”


“잠깐, 잠까안!”


클라리아가 손을 번쩍 들며 네이즈의 말을 가로막았다.


“왜 당연하다는 듯이 네가 리더 역할을 맡는 건데?”


“오.”


울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오비탈에도 이런 발칙한 인재가 나오게 되었나.


“그래, 물론 양치기가 스쿼드의 리더를 맡는 게 오랜 전통이고, 역사적인 기여에 대한 존중의 의미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건 특별한 스쿼드라며? 왜 그런 데에서까지 그런 관행을 따라야 해?”


시작부터 하극상이라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클라리아의 시선이 울크를 향했다.


“쿠아 울크, 당신은 스톰링이잖아? 오랜 옛날부터 양치기들이랑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


“워우, 워우, 워우.”


울크는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며 양 손을 허공에 휘저어 보였다.


“일단, 스쿼드의 리더가 꼭 양치기여야 하냐는 데에 있어서는 동의하는 바야.”


“그렇지? 그럼-”


“근데 그건 그거고, 이 스쿼드의 리더를 네이즈한테 맡기는 건 난 찬성이라서.”


네이즈가 울크를 훽 돌아보았다.


변함없이 고요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자세히 살피면 확실히 일말의 놀란 기색이 보였다.


클라리아는 양 주먹을 꼭 쥐었다.


“아니, 대체 어째서? 다름아닌 양치기 장로들의 결정 때문에 감옥에 갇힌 거 아니었-”


“어허, 그렇다고 선은 넘지 마시고.”


울크가 씩 웃어 보이자, 클라리아는 잽싸게 조용해졌다.


“이유라. 뭐 별건 없고.”


공중으로 떠오른 울크는 투명의자에 앉은 듯 허공에서 다리를 꼬며, 양 팔에 뒤통수를 기댔다.


이유라,

별거 없었다.


그저 저 맹랑한 여자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한번 봐두고 싶을 뿐.

하지만 곧이곧대로 대답해 주는 것도 재미가 없는 노릇이다.


“미인한테 점수 좀 따 둘까 싶어서 말이지.”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는 클라리아의 모습은 봐 둘 가치가 있었다.





***



“인간들의 방식을 이용해 보죠.”


네이즈는 그리 말했다.


인간들의 방식.

마침 울크도 매우 좋아하는 방법이었다.


네이즈와 클라리아는 십 미터의 간격을 둔 채 서로를 마주본다.


물론 인간들이라면 서로 간의 간격을 이것보다 좁게 잡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오비탈의 구성원들은 인간들보다 근접전을 꺼리고 원거리전에는 훨씬 강했으므로 이 정도 거리가 적당했다.


그들 사이에서 결투는 서로의 범위기를 맞부딪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통상적이었으므로.


“이기는 쪽이 스쿼드의 지휘권을 갖는 것으로 하죠. 이 결정은 영구적입니다.”


“저기, 중재관님? 진짜로? 진짜로 인간들 식으로 맞짱을 뜨자고?! 무력 대 무력으로?”


“안될 건 또 뭔가요.”


“아니, 네이즈 당신 함부로 권속들 풀어놓으면 귀찮아지는 거 아니었어? 서류 잔뜩 써야 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알아서 합니다.”


아무래도 저 클라리아라는 양반, 입이 대단히 가벼운 모양이었다.

숨쉬듯이 가볍게 있어 보이는 정보를 풀어놓는다.


“결투의 시작 타이밍은 쿠아 울크 씨가 정하는 걸로 하죠.”


“저 양반 너랑 더 친한데 불공평하지 않아?!”


“내분의 해결에 스쿼드와 무관한 3자를 끌어들이실 생각인가요.

첫날부터 하극상을 일으키고 외부인에게 중재를 요청한 소수정예 스쿼드라, 대외적 이미지가 참 좋아지겠습니다.”


말투가 상당히 삐딱한 건 기분 탓일까.


기분 탓이겠지, 하며, 울크는 둘 사이의 중점에 섰다가, 그대로 뒷걸음질쳐 뒤로 물러났다.


위에서 보면 완벽한 정삼각형의 세 꼭짓점이리라.


“준비.”


네이즈와 클라리아 모두 어깨가 긴장으로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양 손과 발이 치고나갈 준비를 마친다.


“시작.”


그리고 클라리아가 시야에서 깜빡, 하고 사라지는 순간, 울크는 짝짝 하고 손뼉을 쳤다.


“끝. 클라리아, 네가 졌다.”


“그게 무슨-”


“화내지 말고, 능력을 써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봐라.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


고함을 지르려던 클라리아는 감정을 꾹꾹 눌러 넣으며, 울크의 말대로 자신의 시간을 되감았다.


앞으로 튀어나갔던 몸이 그대로 뒤로 끌려나가다가, 준비 중이던 자리에서 멈춘다.


“···아.”


잠시의 정적 끝에, 클라리아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목의 양 옆.


살을 스치기로부터 단 1밀리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를, 두 자루의 화살이 지나간다.


그 길이가 1.2미터에 육박하는 기다란 화살은 그대로 뒤까지 날아가, 원형광장의 끄트머리에 내리꽂혔다.


시작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합이 끝난 셈이었다.


패배를 실감한 클라리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니, 대체 어떻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수련의 결과입니다.”


네이즈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며 들고 있던 무기를 늘어뜨렸다.


곤충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4개의 긴 가늠자가 달린, 키틴질의 활.


가녀린 네이즈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퍽이나 험상궂은 외양이었다.


울크는 픽 웃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구만?”


클라리아는 그녀가 권속을 꺼낸다면 뒤처리가 골치아플 것이라고 했지만,

네이즈는 권속을 꺼내지도 않고 결투를 마무리지음으로써 그에 응했다.


절묘하다면 절묘한 방법이었고, 압도적인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을 묘기였다.


보통 양치기와 진월교도의 싸움은, 양치기가 자신이 만들어낸 생체 괴수 떼를 풀어놓고, 진월교도는 시간 조작을 통해 괴수 떼의 공격을 피하면서 무리를 지휘하는 양치기에게로 거리르 좁혀 들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활은 양치기들이 그다지 애용하는 무기가 아니었다.


클라리아가 예상하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예측하지 못한 수를 예측하는 거야말로 실력인 것을.


네이즈가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클라리아를 지나쳐, 광장의 반대쪽 끝에 박혀 있는 화살을 회수하러 갔다.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클라리아를 향해, 울크는 껄껄 웃어보였다.


“앞으로 쟤한테 까불기는 글렀어, 안 그래?”


“말도 안돼! 이 내가, 이렇게 쉽게?”


“어어, 승복 못해?”


“누가 그렇데? 충격먹은 것뿐이야! 나 지금까지 져 본 적 없다구!”


“한번도?”


“거의 없어!”


클라리아는 빽 소리를 지르며 광장의 흰 바닥에 발랑 드러누웠다.


등에 메고 있던 단검이 걸리적거리자, 칼집채로 풀어 저만치로 던져 버린다.


“어쩜, 무기부터 다른 걸로 바꿔야겠어.”


“검이 오비탈을 위한 무기가 아니긴 하지. 그래도 손에 익은 무기면-”


“사실 그냥 멋져서 들고 다니던 거라 상관없어, 진심 모드일 때 쓰는 무기류는 따로 있다구!”


울크는 바람을 일으켜 공중에서 자세를 바꿨다.


“허어. 얼마나 쉽게 봤길래 진심 모드일 때조차 아닌 무기로 나섰냐.”


“우씨, 그래서 당황했잖아 아까! 진심 모드였으면 이기는 건데!”


억울하다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클라리아의 모습은 대단히 한심했다.


울크는 한숨을 쉬었다.


"지랄. 넌 쟤 절대 못 이겼다."


"윽."


클라리아는 대번에 조용해졌다.


쿠아 울크의 악명이야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저토록 빠른 공격을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는 십중팔구 저 네이즈와 최소 동급의 강자.


네이즈가 그를 존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클라리아는 울크의 앞에서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서열이 꼴찌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패배자의 모습을 가라앉은 눈길로 쳐다보던 네이즈는 흠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이제 누가 리더인지도 정해졌으니, 하려던 일을 계속 하도록 하죠. 스쿼드의 첫번째 일거리에 대해서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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