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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님의 서재입니다.

침략자들의 천재 망나니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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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5.18 22:04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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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57,014

작성
22.05.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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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최악의 죄수 (2)

DUMMY

하얀 도시 너머로 비치는 하늘은 밝은 핑크빛이었다.


몽환적인 파스텔 톤의 도화지를, 점점이 박힌 원반형의 우주선들이 수놓고 있다.


잠시 그걸 바라보던 울크는 다시 네이즈의 등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동맹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지. 그런데 왜 거기에 끼지 못하면 멸망할 거라는 거 지?”


“아르제 점령에 나섰던 징집자 소대가 집단 광기에 빠져 인신공양을 벌이다가 발각되었습니다.

서부에서는 마도 기반 도시국가였던 칼 타르다이의 주민들이 좀비로 변해 난리가 났었죠.

남부에서는 행성의 일부가 소실되어, 마치 구멍난 구체처럼 변한 것이 확인되었고요.

세계 각지에서 이상현상이 발생 중입니다.”


그리하여, 옛 멸망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는 단언한다.


“고대의 악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울크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집단 광기, 좀비 발생, 지반의 소실.

셋 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는 해. 그런데 그것만으로 단언할 수 있겠어?”


“집단 광기에 의한 인신 공양은 징집자들의 원래 문명이 멸망하기 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현상입니다.”


“처음 듣는걸.”


“기밀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멸망 직전의 문명들이 맞이했던 당시 상황들의 대부분과 마찬가지로요.”


“오우.”


기밀에까지 접근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다니, 어지간히 직급이 높은 모양이었다.


“나머지 두 현상도 마찬가지로, 고대 문명들이 멸망하기 전에 자주 목격되었던 것들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최악을 상정해야겠지요.”


공중에 둥둥 떠서 한쪽 다리를 반대쪽 무릎에 올린 채로, 울크는 턱을 톡톡 두드렸다.


“동맹에 가담하지 않고 고립주의 노선을 걷는 세력들이 먼저 공격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대멸망은 가장 외진 지역의, 가장 고립된 행성들을 잠식해 가며 시작되었습니다. 고대 문명들이 위험을 알아차리고 연합하여 오비탈을 결성하였을 때는 너무 늦었죠.”


울크는 고개를 돌려 저물어 가는 고리 행성을 흘끔 쳐다보았다.


후끈했던 바람이 어느새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침침해진 햇빛에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어느 동맹에 가담할 생각이지? 아니면···.”


네이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울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직접 새로운 동맹을 만들겠다고?”


볼수록 맹랑하다.



***



어느덧 기나긴 직진이 끝나고, 둘은 어느 그리스식 건물의 입구를 통과해 들어갔다.


발을 대디딜 때마다, 복도에 설치된 등에 불이 들어오며 어둠을 밝혔다.


말없이 걷던 울크가 문득 입을 열었다.

“평소에 주변 감지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해 놓지?”


“네? 오 미터 정도.”


“좀 더 늘려두는 게 좋겠어.”


네이즈가 뭐라 대답을 하기 전에, 울크는 그녀의 어깨를 자기 쪽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네이즈 역시 갑작스런 행동에 화를 내거나 하는 대신, 차분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귓가를 스쳐간 단검이 댕그렁 소리를 내며 돌바닥 위로 떨어졌다.


“놀라지 않는군.”


“워낙에 적이 많은 몸인지라.”


기습은 실패했다고 판단했는지, 암살자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고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울크가 쏘아낸 강풍을 맞고 뒤로 튕겨 나갔다.



꿈틀거리는 암살자의 모습을 보며, 울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귀찮게 되었다.


스톰링과 양치기가 괜히 유목 문명을 이루고 있던 것이 아니다.


이런 좁고 밀폐된 공간은 그들 종족과는 언제나 상성이 나빴다.


게다가 멀리 날려보낸 바람의 흐름으로 봐서는, 대량의 인원이 추가로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군은 없을 거 같나? 누가 이쪽으로 바글바글하게 달려오는데.”


네이즈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이미 당한 것 같습니다.”


“좋지 않구만.”


그럼 진짜로 저게 싹 다 적이라는 건데.

어쩔 수 없지.


울크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살짝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거 건물째로 날려버려도 되나?”


“감당 가능한 선입니다.”


“아, 너가 책임자였냐. 잘 됐네.”


울크가 벽 쪽을 향해 허공에 주먹질을 하자, 동작을 따라 일어난 돌풍이 벽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돌조각들 사이로 생겨난 구멍을 가리키며, 울크는 네이즈에게 손짓을 해 보였다.


“이쪽이 암살자 놈들 몰려오는 머릿수가 제일 적을 거야. 서너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굳이 안 도와주셔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됐어, 암살 타깃씩이나 됐는데 암만 그래도 일단 대피해야지.”


“그러면···알겠습니다.”


네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할까요.”


“글쎄, 십미터 정도로 할까?”


힘을 자제해도 그 정도는 거뜬하다는 듯한 말투.


오만하게 들릴 법도 했으나, 네이즈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구멍을 향해 돌아섰다.


“십 초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끌 수 있지.”


네이즈가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살자 무리가 건물 내로 들이닥치는 것이 바람을 타고 느껴졌다.


이토록 쉽게 감지되는 걸 보면, 전투력은 어쩔지 몰라도 역설적으로 은신 관련 능력은 그저 그런 모양이다.


“읏차.”


양 무릎을 굽혔다 폴짝 뛰어오르자, 그 동작으로부터는 예상하기 힘든 높이로 몸이 튀어오르며 천장을 박살냈다.


순식간에 문제의 건물 위로 부상한 울크는 본격적으로 능력을 활성화시켰다.


미풍에 불과하던 바람은, 빠른 속도로 그 몸집을 키워 거센 회오리바람으로 화했다.


거칠게 회전하는 돌풍이 건물 전체를 감싸안자, 빠각 빠각 소리와 함께 건물의 장식들이 먼저 떨어져 나가며 바람에 휩쓸렸다.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암살자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이 통째로 덜컹거리면 그럴만도 하지.


울크는 씩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바람이 더욱 거세지며 건물이 위아래로 요동친다.


점점 심하게 흔들리던 건물은 급기야 뿌리채 뽑혀 돌풍을 타고 날아오르고---


바람이 갑자기 멎었다.


높이 떠올랐던 하얀 건물이 빠른 속도로 다시 낙하해, 돌이 부서지는 굉음을 냈다.


더 이상 암살자들이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 건 해결.”


공중에 높이 떠올라 폭발을 내려다 보던 울크의 신영도 땅으로 내려왔다.


흩어지는 먼지구름 사이로, 뒤늦게 달려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울크는 건물의 파편 위에 걸터앉아 기절한 암살자들을 구속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누구인지를 미리 전해들었는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대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나 꽤 유명한가 봐?”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온 네이즈가 시선을 잠시 하늘로 돌렸다.


십 미터 밖으로의 대피가 살짝 늦었는지, 옷 여기저기에 먼지가 묻어 있었다.


“유명한가 보구만.”


울크는 몸을 뒤로 젖혀 파편에 기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기야, 잡혀 들어갈 때도 꽤나 떠들썩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심 악명이 오래오래 전해지길 바라기야 했지만, 이건 기대 이상인걸.


그리고 그러한 명성에도 동요하지 않는 네이즈는, 더욱 기대 이상이었다.


빙글빙글 웃는 울크를 바라보던 병사들은, 하던 일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 옆에서 까불지는 않는 법이니.




***



“미련한 자였습니다.”


모닥불을 뒤적이던 네이즈가 문득 말했다.


양치기 식으로 친 원뿔형 천막의 위에서 망을 보던 울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음?”


“암살을 사주한 자 말입니다.”


“아.”


전투의 여파 위로 내려앉은 어스름 아래에서도, 하얀 바위들은 어렴풋하게 그 형체를 알아보는 게 가능했다.


병사들은 네이즈를 다른 건물로 모시려 했지만, 네이즈는 이 건물이 뚫렸을 정도면 안전한 곳은 없다며 차라리 전투에 유리한 탁 트인 공간에 있기를 택했다.


“그래서, 뭐가 미련했다는 거지?”


“어중간한 실력의 암살자 다수. 사주한 자가 오비탈의 사람이었다면 이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전제를 해 보겠습니다.”


네이즈가 부지깽이로 모닥불을 뒤적이자, 한차례 크게 불기둥이 올라왔다.


“이 경우, 오비탈 문명은 광범위한 영역에 가하는 전방위 공격에는 대단히 뛰어납니다.

우리와 자주 충돌하는 인류의 그것을 월등히 상회하는 수준이죠.”


“허어. 그래서?”


“반면, 비슷한 급의 강자와의 일대일 대결을 논한다면···오비탈의 병력이 낼 수 있는 전력은 효율이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인류 계열 세력들보다 현저히 저조한 수치입니다.”


차라리 수치상 더 강한 병력이라도, 단일 개체보다는 다수로 이루어진 집단을 상대할 때 승산이 현저히 높습니다.


네이즈의 설명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울크는 휙 하고 천막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모닥불 근처에 내려섰다.


바람을 조작해 반작용을 상쇄시켰기에, 천막이 발 아래에서 무너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비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어중간한 암살자 여럿이 아니라 강력한 암살자 한 명을 보냈을 것이다?”


“네. 특히나 제가 당신을 고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쿠아 울크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리 말하며, 네이즈는 모닥불로부터 고개를 돌려 울크를 마주보았다.


“말씀드렸다시피, 스쿼드를 하나 꾸리려 합니다. 거대 세력들 간의 판도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정예부대를 말입니다.”


“새로운 동맹을 창설하기 위해서 말이지.”


“외우주의 인류는···기묘합니다. 군대를 키우는 데에는 비교적 소홀한 대신, 단신으로 일개 사단을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과하게 많아요.

반면에 오비탈은 그런 강력한 인원을 많이 보유한 편은 아닙니다.”


“아, 일인군단. 그것 때문이었구만.”


일찍이 홀로 전 오비탈에 맞섰던 사내가 피식 웃었다.


네이즈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조심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외우주의 인류의 상무 풍조는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물론 쿠아 울크 당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끼를 걸어서 합류시켜놓고 걱정해 주는 거야?”


네이즈의 침묵에, 울크는 혀를 차며 장난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그나저나, 그 정도야?

우리 이웃 인류도 전투력이 그리 낮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기대되는걸.

심심하진 않겠어.”



네이즈는 살짝 가라앉은 눈빛으로 울크를 바라보았다.


진심 그 자체였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분이 안 풀린 모양이다.


말 돌리기 작전이 안 통했음은 자명하고.


“내일 스쿼드의 나머지 멤버들을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야, 자려고?”


“예. 좋은 밤 되십시오, 쿠아 울크.”


아까보다는 조금 누그러진 말투에, 울크는 그녀의 등에 대고 우스꽝스럽게 절을 해 보였다.

숙인 얼굴에는 미소가 걸린 채였다.


“기꺼이.”



***


햇빛이 금간 기둥들 위로 내리쬔다.


하얀 돌 사이로 듬성듬성 풀이 자라난 원형 광장의 입구에서, 쿠아 울크는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나머지 멤버란 놈들은 다 어디갔어?”


늘 고요하던 네이즈의 눈빛이, 조금은 딱딱해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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