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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님의 서재입니다.

침략자들의 천재 망나니가 돌아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토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5.18 22:0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47
추천수 :
19
글자수 :
57,014

작성
22.05.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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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최악의 죄수 (1)

DUMMY

중력도 공기도 없는 진공 속에, 괴물들의 시체가 끝도 없이 널려 있었다.


괴물들의 시체 사이사이로 보이는 소행성들 중 하나에, 왠 사내가 걸터앉아 있다.


진한 눈썹과 매서운 눈매가 인상적인 사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조용하군.”


끝없이 괴수들이 쳐들어오는 이 곳에 유폐된지도 한참,

이제 더 이상 이 루트를 향해 고향을 침범하려는 괴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사내는 얼굴 앞으로 손을 들어올려, 한번 쥐었다 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마법적 시야를 통해 미시세계를 살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수소와 헬륨이 생겨났음을 알 수 있으리라.


사내를 그 오랜 시간 괴수들 사이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준 힘이었다.


"그럼 돌아갈 좌표도 확보했겠다..."


사내는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소행성의 우둘투둘한 표면을 가볍게 박차고 일어섰다.


중력이 없는 탓에 격하지 않고 부드러운 동작이 되었지만,

중력과 대기가 있는 상황이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는 스톰링(Stormling),

기체 행성으로부터 기원해 바람과 기체를 다루는 일족이었기에.


사내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탄탄한 육신으로부터 활성화된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괴수들의 시체로부터 분리되어 사방에 널려있던 무수한 혈석이 그에 반응한다.


사내의 노란빛 마력과 혈석의 붉은 마력이 서로 뒤섞이며 요동쳐 댔다.


이윽고, 까맣기만 하던 허공에 핑크빛 하늘이 보이는 구멍이 열렸다.


사내는 씩 미소를 지었다.


"기다려라 새끼들아, 쿠아 울크가 돌아왔다."



***



수백년 전의 과거에는 연합,

이제는 오비탈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자들의 도시는 대혼란에 빠졌다.


핑크빛 하늘에 떠 있는 장발의 사내의 존재가 그 이유였다.


"하하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며, 그를 진압하기 위해 달려드는 병사들을 너무나도 쉽게 제압해 낸다.


날개 갑옷을 입은 장교들이 쏘아낸 십자포화는 광풍에 휩쓸려 서로를 맞추며 폭발해 버릴 뿐.


"수백 년만에 돌아왔는데, 겨우 이 정도? 시시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군!!"


“그렇게 되면 제가 곤란해요.”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뒤를 돌아보자, 후드를 깊에 눌러 쓴 여인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쿠아 울크."


"허어. 마치 내가 돌아올 걸 알았기라도 했다는 투인데."


"말씀대로입니다."


"호오?"


그에 맞춰, 그 자리에 서 있던 여인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리고 울크는 살짝 감탄했다.


“워우.”


그가 살면서 본 것 중 최고의, 압도적인 미인이 거기 있었다.


허리 위까지 흘러내리는 검고 찰랑이는 머리칼이 걸음에 맞춰 흔들린다.


옆트임이 길게 올라간 원피스와, 곤충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허리띠.


워 페인트마냥 양 뺨을 붙잡은 비슷한 모양의 장식.


손발목과 머리 옆을 큼직한 생화로 장식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런 장식보다 얼굴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게 사실이었다.


가만히 서 있던 여인이,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사슬을 밟아 이쪽으로 다가온다.


“미인이시구만.”


여인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쿠아 울크, 맞나요?”


사내, 울크는 피식 웃었다.

미인의 앞이니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도 그리 태평한가?”


한때 천재라고, 혹은 망나니라고 불리웠던 자가 물었다.


“두려워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여인의 주황빛 눈이 울크의 눈을 응시했다.


한 점의 흔들림 없는 시선.


흥미가 조금 더 생겼다.


울크는 그녀의 장단에 맞춰 줘 보기로 했다.


“그 꽃장식들이랑 인디언 같은 옷차림을 보니까 알겠군. 종족 이름이 양치기였던가? 곤충형 종족으로터 기원하는?”


“공부를 열심히 하신 편은 아니셨군요.”


“하! 말뽄새 하고는.”


하긴, 명색이 연합을 이끄는 종족인데 잊어버리면 안되는 상식이긴 했다.


그저, 이 곳에 너무 오래 죽치고 있었을 뿐이다.


“연합, 요즘은 또 어떻게 굴러가냐?”


“연합의 명칭은 ‘오비탈’로 바뀌었습니다. 우주가 개척되면서, 비슷한 이름을 쓰는 세력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었거든요.”


“오, 뭔가 큰 변화가 있었나 보구만.”


“당신이 수감된 이후로 4개의 우주가 새로 발견되었습니다.”


“와우. 그건 정말로 큰 변화인데.”


망할 장로들 같으니.

저런 재밌는 소식을 제때 알려주지도 않은 건 너무하지 않은가.


묶인 팔을 살짝 당기며 몸을 풀자, 사슬이 팽팽해지며 드드득 소리를 냈다.


“그래서, 왜 왔어?”


“제 스쿼드에 합류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기 위해.”


정적.


울크는 한쪽 눈을 살짝 찌푸렸다.

양 팔이 묶여 있지만 않았더라면, 분명히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으리라.


“자, 한번 확인해 보자. 우리의 그 뭐시냐, 오비탈의 전사들은 크게 4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지. 맞나, 아가씨?”


“네.”


“그래, 하나는 나 같은 스톰링들이고, 하나는 시간 갖고 장난치는 진월교 녀석들. 다른 하나는 슝슝 날라다니는 징집자에, 마지막은 너희 양치기.”


“네.”


“그리고 스쿼드는 아마 작전 수행할 때 팀 짜는 단위였지. 네 명. 네 전사 종족에서 한 명씩.”


“네.”


“그걸 나 보고 해달라고? 널 위해서?”


이번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네.”


울크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하하하하하하!”


쿠구구구구.


울크의 주변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요동친다.


“내가 뭘 보고?”

"일찍이 강함을 추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울크. 그 기회를 넘치도록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지옥에서 괴수 사냥을 얼마나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울크는 번개같은 속도로 돌진해 들어가, 여인의 턱을 붙잡았다.


“그래, 보아하니 양치기 중에서도 꽤나 귀한 몸이신 모양이야, 안 그래? 너를 인질로 잡고 여길 탈출하면 딱 좋겠는데.”


쿠과과과.


요동치던 공기는 이제 둘을 에워싸고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희 양치기는 떨거지들 없으면 4종족 중에서도 최고로 물몸 아니던가?”


“반박할 수 없군요.”


“아가씨, 위험합니다!”


키톤, 인디언, 날개달린 갑옷, 하늘거리는 천옷.


다양하게 차려입은 네 종족의 군대가 순식간에 울크와 여인을 둘러쌌다.


울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앞으로 나서려던 병사들은 정작 위협당하고 있는 본인이 제지 신호를 보내는 모습에 멈칫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좋아, 한번 들어보자.”


병사들의 진군을 만류하기 위해 내뻗은 손을 지켜보다, 울크는 그리 말했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즐겁다는 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잠시 울크를 바라보던 여인이 입을 뗐다.


“사면령.”


“허어.”


서서히, 울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젼나갔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는 매우 느릿했다.


마치 사냥을 시작할지를 고민하는 맹수처럼.


“아무리 듣기 좋은 목소리라지만, 너무 어려운 걸 너무 쉽게 말하는걸.”


“그 정도 권한은 있는 몸입니다.”


“거짓말이면?”


“뭘 걸어야 믿어주실런지.”


울크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더 맹랑한 아가씨였구만.”


사방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한순갇에 걷히고, 울크의 신형이 두둥실 떠오르며 뒤로 물러났다.


울크의 손아귀에 붙잡혔던 턱을 잠시 만지작거리다, 여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다 들으셨지요. 물러나 주세요.”


“하지만-!”


“쿠아 울크는 약속을 지킬 겁니다.”


“아니,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신뢰를 보내는데?”


울크는 어이없어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삐딱한 말투와는 달리, 딱히 공격을 감행하거나 하려는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먼저 나가시면 됩니다. 오랜만의 외출이시겠군요.”


“그러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너는 어쩌게?”


“저는 뒷정리를 마치고 따라나가겠습니다.”


여인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양옆으로 갈라서며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구멍으로 향하려 공중으로 떠오르던 울크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잠시 멈춰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름은?”


“네이즈. 최고중재관 네이즈.”


“네이즈, 네이즈. 예쁜 이름이야. 기억하지.”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인 쿠아 울크는, 이번에야말로 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네이즈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마찬가지로 돌아섰다.






***



몰아치는 맹풍에, 남아있던 대련용 로봇들이 전부 내동댕이쳐졌다.


[15레벨, 클리어.]


결계 내에 울리는 안내음을 들으며, 울크는 어깨를 크게 몇번 돌렸다.


“몸풀기로는 그럭저럭이구만.”


바람이 잦아들면서, 같이 휘날리던 기다란 꽁지머리도 다시 내려앉았다.


“다시 세상에 나오면 보이는 풍경이 엄청 나게 달라질 줄 알았더니, 의외로 그렇지도 않아.

당장 이 대련용 로봇도 그 시절이랑 큰 차이는 없는 것 같고. 안 그래?”


울크의 시선을 받은 키톤 차림의 사내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그, 그렇죠.”


“아, 나쁜 의미는 아니었어. 옛날 생각나서 좋은걸.”


사내가 종족 특유의 권능을 발휘해 대련용 로봇들의 시간을 되돌리자,

박살나고 찌그러진 로봇들이 마치 영상을 역재생하듯 도로 원상복구되기 시작했다.


다른 세력들이 보면 말도 안된다고 뒤집어질 광경을 뒤로 하고, 울크는 옷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묶여있을 동안 반라의 상태였던 몸에 와닿는 섬유의 감촉이 기껍다.


기다란 기럭지에 어울리는 밝은 청색의 청바지와, 거기에 대조되는 검은색 스판 재질의 상의.


갈기를 연상케 하는 장발은 뒤로 쓸어넘겨 세워, 긴 뒷부분을 대충 묶었다.


양 팔과 등짝을 휘감은 긴 띠가 공중에 뜬 채로 펄럭였다.


“소문의 실력은 여전하신 듯 하군요.”


“장로들에게는 안된 일이지.”


울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네이즈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울크도 그 뒤를 따라 대련 장소를 걸어나왔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길래 나를 끌어내면서까지 스쿼드를 꾸리려는 거지?”


쿠아 울크.

오비탈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최악의 수형자.


그리고 그런 그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사면을 약속한 네이즈.


대체 무얼 보고, 무얼 위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이즈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앞서가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강물처럼 흔들렸다.


“저희 오비탈이 번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전혀.”


오히려 몰락해 가고 있다고 봐야겠지.


그가 수감되기 전에도 이미, 오비탈의 신 영토 개척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예, 오비탈의 힘은 인류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합니다.”


사실이었다.


인류는 우주 전역에 퍼져 수많은 세력을 일구어 냈지만, 그들은 연합으로 한데 뭉쳐서야 겨우겨우 그들 세력 하나 정도의 규모가 아니던가.


그 사이 우주가 4개나 더 발견되었다고 하니, 아마 그곳에 살던 더욱 많은 잘나가는 인류세력도 함께 발견되었으리라.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고 하지요. 인류에 대해 가능한 한 잘 아는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아무래도 사전 조사를 통해 울크가 인류와 스톰링의 혼혈임을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 잘 알려진 내용이 아니었는데, 나름 고위 인물이라는 게 진짜인 듯 했다.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가 많이 풀린 걸지도 모르지만.


유폐되어 있던 동안 생긴 정보의 공백이 불쾌감을 자극했다.


“혼혈이 필요하다고 죄수를 다시 꺼내와야 할 정도라니, 오비탈은 여전히 종간 혼인에 까다로운 모양이야.”


“이종족 간의 번식은 되는 게 외려 기이한 현상이니까요. 과학적으로 불가능해야 할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니.”


“그야말로 우주의 신비 그 자체지.

그래서, 날 필요로 하는 진짜 이유는?”


다시 정적.


잠시 둘 사이에는 돌바닥을 디디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까다롭게 군다고는 해도, 이미 까마득히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야. 인류와 요괴 문명의 여명기에 오비탈과 교류한 흔적이 많은 걸 모르진 않잖아?”


“무력이 필요합니다.”


오.

이야기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화제가 어디로 향할지를 짐작하면서도, 울크는 일부러 이해 못한 척 엉뚱한 소리를 해 보기로 했다.


“오비탈에도 군대는 있을텐데? 딱히 다른 세력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군사력이 말이야. 외계인이라고 불리는 만큼 오버 테크놀러지 같은 것도 몇개 있고.”


“그걸로는 부족함을 아시지 않습니까.”


역시, 쿠아 울크가 어쩌다 잡혀들어갔는지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기록을 샅샅이 뒤져본 모양이지.


“동맹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전 우주를 몇 덩이로 나눌 거대한 동맹들이요.”


네이즈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오비탈은 그 흐름에서 휘둘리고 있습니다. 장로들은 어느 동맹에 가담할지도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네이즈는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하얀 기둥 위에 살짝 걸터앉더니, 그대로 고개를 들어 울크를 바라보았다.


“이대로라면, 오비탈은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멸망의 길을 걸을 겁니다. 그게 당신이 원하는 바인가요?”


울크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나는--"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베리 언럭키 은둔형 마법사를 감히 꿈꾸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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