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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님의 서재입니다.

침략자들의 천재 망나니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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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5.18 22:04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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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57,014

작성
22.05.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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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최악의 죄수 (4)

DUMMY

오비탈의 공항은 하얀 돌을 이용해 만든 널따란 평원과,

마찬가지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을 두른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만 그 코린트식 기둥 안쪽에 자리한 것이, 징집자들 특유의 회로무늬가 잔뜩 들어간 금속 구조물들이라는 점이 약간 달랐다.


비행선의 용이한 이착륙을 위해 행성 성층권을 떠도는 돌조각들의 위에 지어진 탓에, 그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핑크빛 하늘이 펼쳐져 있다.


원반형의 흰 비행선의 주위는, 이륙 전 마지막으로 상태 점검을 하기 위한 병사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시간 역행으로 크랭크 수리상태 복구했습니다!”


그리스식의 차림을 한 진월교도가, 징집자 측에서 만들어낸 미래풍 기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조작을 통해 정밀조정을 하는 모습은 기이한 동시에 이 오비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초상과도 같았다.


“진월교 녀석들은 철저하게 마법 기반으로 문명을 쌓아올리지 않았던가? 모르는 사이에 기계랑 많이 친해졌구만.”


“시대가 변했어, 이 구닥다리!”


“패배자는 조용히 하도록.”


“힉.”


울크가 가볍게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려 보이자, 눈치빠른 클라리아는 재빨리 넙죽 엎드렸다.


“그만 일어나시죠.”


엉덩이를 발끝으로 툭툭 차면서 그리 말하는 걸로 보건데, 감정이 안 남은 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흐려졌다.


네이즈 저 녀석, 사실 쪼잔한 거 아닐까.


실없는 생각을 머리 한구석으로 치우며, 울크는 바람을 일으켜 몸을 거꾸로 뒤집었다.


원래 무료할 때는 몸을 배배 꼬는 법이 아닌가.


“입을 옷이라던가, 무기라던가는 준비 안 해도 괜찮은 건가?”


“의류과 무기류는 선내에 구비해 두었습니다.”


“역시 대장님, 준비성 쩔어!”


패배자는 일찌감치 살살 기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비행선의 준비가 끝나려면 조금 걸릴 듯 하니, 일단 기다리도록 하지요.”


그리 말하며, 네이즈는 한 손을 허공에 들어올려 가볍게 휘저었다.


그에 이어 땅속에서 키틴질의 갑각을 두른 생물체들이 스스슷 하고 솟아올랐다.


전체적으로는 거미를 닮았지만, 다리가 4개뿐이고 몸통이 방사형의 구체인 기묘한 형태.


몸통과 일체화된 머리에는 서너 개의 단추같은 녹색 겹눈이 붙어 있었다.


움찔대거나 하는 일체의 미동도 없이 울크와 클라리아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으니, 묘하게 섬뜩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양치기의 권속들은 생물이라기에는 애매한 존재들이니.”


“뇌가 없어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는 존재도 생물이라고 보는 관점에서라면, 놈들도 충분히 생물 아닌가?”


“그러한 존재를 생물체로 보아야 하는지 자체가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생물조직을 만들어내고 엮는 특유의 능력을 통해 만들어낸, 반쪽자리 생명체 무리들.


그러한 권속들을 무수히 만들어내 이끄는 모습이야말로, 그들이 양치기라 불리게 된 이유였다.


“클라리아 씨가 대화를 못 따라오고 있기도 하니, 이 이야기는 일단은 그만하도록 할까요.”


“그러지.”


네이즈는 가만히 대기하고 있는 거미 권속의 머리-몸통 위에 앉으며, 울크와 클라리아에게도 각자의 앞으로 걸어온 권속들의 위에 앉으라고 권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스쿼드의 목적은 다른 거대 세력들을 회유하여 동맹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일차적으로는요.”


울크가 씩 웃었다.


“‘일차적으로는’이라. 그러면 이차적, 삼차적으로는?”


“이미 한 번 멸망을 불러왔던 것들의 행동 저지, 오비탈의 번영.”


“워우.”


생각 이상으로 거창한 목표에, 울크와 클라리아는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조용해졌다.


침묵이 지나치게 길어질 때 즈음, 네이즈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정적을 끊었다.


“···입니다만, 당장의 일을 먼저 신경쓰는 것이 적절한 일이겠지요.”


“그, 일차적인 목표라는 것도 너무 과한-”


“조용히 해라, 패배자. 스쿼드의 리더가 말하고 있다고?”


“꺄악!”


울크가 클라리아의 얼굴에 바람을 쏘아 보내자, 그녀의 핑크빛 단발머리가 우스꽝스럽게 펄럭였다.


클라리아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네이즈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네이즈는 어둡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볼일이 없어진 클라리아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네이즈는 말을 잇는다.


“무언가 받기를 원한다면 이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지요. 저희는 그 선발대 역할을 합니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른 많은 세력들이 느슨하게나마 동맹을 형성해 가고 있습니다. 이미 나아갈 길을 정한 이들을 포섭하긴 어려울 겁니다.”


그러기엔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메리트가 너무 약하니까요, 라고 말을 잇는 네이즈의 얼굴에 잠시 그늘이 드리웠다.


한차례 고개를 저어 그늘을 털어내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간다.


“저희가 동맹으로 끌어들여야 할 것은, 다른 이들입니다.

아직 어느 동맹에도 들지 않은 자들.

자신의 세계 내에서 눈에 띄게 이질적이고,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반목하는 고독한 늑대들.”


“그렇게만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은데?”


“네, 그들의 대부분은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이니까요.

우리 오비탈과 마찬가지로요.”


“침략자들의 연합인가?”


울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참, 클리셰대로인걸. 재밌어.”


“무슨 소리야?”


“인간들 사이에 유행하는 소설들에서는, 우리 같은 외계인들은 대체로 침략을 일삼는 사악한 족속이거든.”


인간과의 혼혈이기에 인간의 사회에도 밝은 울크가 클라리아에게 설명해 주었다.


잠시 둘을 바라보던 네이즈는, 양 손으로 권속의 등을 짚으며 다리를 꼬았다.


“네. 저는 침략자들의 동맹을 창설할 것이고, 그걸 위해 우선 다른 침략자들의 침략을 도울 겁니다.”



***



원반 모양 우주선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


한참 걸려 들어온 내부는 도시와 마찬가지로 온통 흰색이었다.


하얀 철제 벽과 바닥, 하얀 테이블과 의자, 하얀 빛을 내뿜는 등.


울타리처럼 둥그렇게 둘러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핑크빛 석양만이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이륙은 아직인가? 오래 걸리는구만, 어차피 관제인격이 맡아서 조종할 텐데.”

“안 그래도 관제인격을 최종점검 중이라고 하는군요.”


동그란 거미들이 테이블 위로 기어올라와, 네이즈 쪽에 놓여 있던 기다란 케이스를 울크의 쪽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이건 뭐지?”


“기록을 토대로 과거에 사용하시던 무기 종류를 조금 조사를 했습니다.”


울크는 의자 등받이에 팔을 기댄 채로 놀랍다는 시선을 보냈다.


“허어. 장로들이, 그 장로들이 벌써부터 내가 무기를 쓰는 걸 허락했다고? 너 진짜 능력 좋구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네이즈가 인정했다.


“그리고 아마 기대하시는 정도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칠 겁니다. 제약이 걸린 채로 내려진 허락이기에.”


울크는 철제 케이스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닫았다.


“이게 전부?”


네이즈는 대답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울크는 킥 하고 웃었다.


“제약이 걸렸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만. 뭐, 말 잘 들으면 조금씩 풀어준데?”


“비슷합니다.”


“뭔데뭔데!”


클라리아가 케이스를 열어보겠다고 시간조작까지 써가며 다가왔지만, 곧바로 울크가 쏘아보낸 바람을 맞고 왔던 자리로 도로 날아갔다.


“간단히 말하면, 범위기의 잔여 에너지를 모아서 죽창 쏠 수 있게 해주는 무기.”


"대나무가 거기서 왜 나와?!"


"네가 알 건 없어, 패배자."


“너무해!”


“너무하긴, 누가 시작부터 하극상 각 보랬나.”


울크는 킬킬댔고, 네이즈는 따로 제지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클라리아의 수난은 계속될 모양이다.


“클라리아 씨 당신을 위해 준비된 물건도 있습니다마는···별로 필요없으실지도.”


클라리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높으신 분.

특별한 스쿼드.

빵빵할 게 분명한 자금.


지급되는 무기도 아주 특별하고 고급진 물건일 게 분명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정은 빠르게, 실행은 더 빠르게.


“주인니이이이임!!!”


바닥에 쾅 소리가 나게 넙죽 엎드린 클라리아의 모습은, 사람보다는 개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울크는 클라리아의 뒤통수와 네이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너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구나.”


“주인님! 제발 경멸스러운 반역자를 용서해 주세요!!”


울크는 뒤로 넘긴 머리를 긁적였다.


“너 더럽게 한심해 보이는 거 아냐?”


“뭐래! 중요한 건 슈퍼 무기를 얻는 거라구!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 당신은 이해 못하는 거야?!”


“그럼 그렇지, 진월교도가 순수한 마음으로 사죄할 리가 있나.”


갇히기 전의 상식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여전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울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이즈.”


“네, 울크.”


“쟤 그냥 봐주지 말자.”


“매혹적인 제안이군요.”


“안돼애애애!!!”


동그란 거미들이 이번에는 다른 철제 케이스를 테이블 위로 끌어올렸다.


“앗 따거!”


저런.


아무래도 거미들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클라리아의 등짝과 머리통을 밟고 올라온 듯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눈 앞의 케이스가 더 중요했다.


이번 케이스는 먼저 열어본 것보다는 더 작은 사이즈였다.


서류 가방 정도의 크기.


잠금쇠를 열고 가방을 열어본 울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야, 추억돋는데.”


“수형 이전에 주로 취하셨다고 알려진 복식을 기반으로 준비했습니다만, 마음에 드셨을런지요.”


케이스에서 꺼낸 민소매 데님 자켓을 걸치며, 울크는 대답했다.


“어. 아주 많이.”


그 다음에는 입고 있던 청바지에 어울리는, 타원형의 금속 버클이 인상적인 가죽 벨트.


그리고 스카프.


발광하는 회로무늬가 새겨진 군청색 타이즈 위에 그렇게 차려 입으니,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인류 녀석들은 나 보고 스페이스 카우보이라고 하곤 했지.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대충 전투 목동처럼 보인다는 의미로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군요.”


“목동은 스톰링의 근본이지. 마음에 들어. 앞으로 난 스페이스 카우보이다.”


“다만 카우보이라 불리시기에는 결정적으로 모자가 없으신 게 걸리는군요.”


“모자, 모자라.”


울크가 진한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 좋아하는 패션 아이템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한번 고려는 해 보지.”


부우우웅.


어느샌가 선내를 돌아다니던 잠자리가 네이즈의 얼굴 곁에서 날갯짓 소리를 냈다.


“관제인격의 점검이 완료되었다고 하는군요. 곧 이륙할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며, 네이즈는 자리을 옮겨 안전벨트를 멨다.


“주인님, 정말로 내게는 뉴 아이템을 안 주는 거야?!”


“으이구.”


울크는 한숨을 쉬며 바람을 일으켜 여전히 엎드려 있던 클라리아를 휘감았다.


그녀를 네이즈의 옆자리로 날려 보내며, 울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간역행 써서 자힐 할 거 아니면, 얼렁 안전벨트 메라.”


“자힐이 뭔데?! 그리고 울크 씨는 벨트 안 메도 되는 거야?”


“공중에서 떠 다니는 게 스톰링한테 뭐가 문제라고.”


창밖으로부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비행선을 행성에서 우주공간으로 전송하기 위한 마법진이 발하는 빛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행성의 중력을 뿌리치고 우주로 나가던 재래식 우주선과 달리,

포탈을 이용해 지표면에서 곧바로 우주공간으로 이동하는 방식.


마법적인 루트건, 기계공학적인 루트건,혹은 둘을 적절히 섞은 하이브리드건 간에 포탈의 생성은 일시적인 것조차도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탑승자가 행성 탈출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는 과정이 스킵되었기에 근래에는 이쪽이 주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픈 걸 피하고자 하는 높으신 분들의 열정은 상상 이상이었던 셈이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와 비슷한, 몸이 붕 뜨는 느낌에 이어, 창밖으로부터 쏟아지던 빛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새카맣지만 어둡지는 않은 하늘과, 그를 수놓은 수많은 빛 알갱이들.


우주였다.


예쁘다고 넋을 잃고 바라보는 클라리아와 달리, 네이즈는 그 광경에 별 감흥이 없는 듯 했다.


성간 여행을 이미 자주 해 본 모양이지.


중력의 소실로 인해 둥실 떠오른 몸을, 울크는 바람을 이용해 똑바로 뒤집어 네이즈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그러게. 그러고 보니 대답을 못 들었네?”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군요.”


한박자 뜸을 들이고, 네이즈는 눈을 감았다 떴다.


“알티파이트(Altiphyte), 고등 나무들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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