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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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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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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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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6.1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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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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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0쪽

평범 (12)

DUMMY

" 로만 베르스. 볼일은 잘 알고 있겠지? "


흉흉한 흉터가 인상적인 사내들이 한 사내를 둘러쌓다. 페투나에서 이름난 폭력조직, 베라 바투스. 우리말로 술 상자 파의 조폭들이다. 뭔가 대충 지은듯한 이름과 달리 한다하는 주먹들이 모인 50명 규모의, 페투나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대조직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둘러쌓인 사내는 시종일관 느긋한 표정이었다. 그것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사내를 포위한 다섯 명의 조폭들을 이끄는 행동대장이 걸쭉한 욕설과 함께 포문을 열었다.


" 이 새끼봐라? 뭘 믿고 이리 당당해? 앙!? 어쭈, 눈 안깔아!? 이 새끼 이거 말로는 안될 새끼네? 아직도 상황파악 안되나? 꼭 뒤지게 한번 맞아봐야 알아? 앙!? "


눈을 부라리며 엄포를 놓는 행동대장의 말은 전혀 허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주일이 멀다하며 시체를 만드는 악독한 자들로, 수 틀리면 얼마든지 위험한 짓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꾸했다.


" 상황파악? 됐지. 됐고말고. 너네한테 빌린 돈만 갚으면 되잖아. 뭘 주절주절 말이 많아? "


당돌한 대꾸에 행동대장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는 품속에 숨겨둔 짧은 칼을 만지작거리다 화를 꾹 누르며 손을 뺐다. 아직 이놈에게선 받아낼 것이 있다. 죽여버리면 손해인 것이다.


" 아, 물론이지. 우리도 이런 귀찮은 짓은 하기 싫다 이거야. 근데 임마. 애당초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는 생각 안나지? 니가 제 날짜에 돈을 안 갚으니까 이러는거 아냐! 앙!? "


빠악!


칼질은 참지만 주먹까지 참을만큼 행동대장의 인내심은 깊지 않았다. 그의 강인한 주먹이 사내의 아랫턱에 제대로 박혔다. 깔끔하게 들어간 어퍼컷. 얼마나 쌔게 때렸던지 사내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벌렁 넘어졌다.


" 킥, 등신같은 새끼. 입만 살아가지곤. 얘들아! "


자기 주먹을 만족스럽게 쓰다듬던 행동대장이 포위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눈짓을 하자 부하들은 일제히 사내를 밟기 시작했다. 그때, 조폭들의 천적이 뒷골목에 나타났다.


" 꼼짝 마! 지금 뭐하는 짓이냐! "


어떻게 알고 왔는지 순찰 범위에도 없는 골목에 경비병들이 일곱 명이나 나타났다. 조폭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도망치자니 퇴로가 막혔고, 싸우자니 숫자가 밀린다. 로만을 몰아넣기 위해 고른 자리가 오히려 자기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부하들이 행동대장을 보았다. 대로에서 만났다면 형님이고 뭐고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을 놈들이지만 막다른 길에 몰리자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행동대장은 단순했지만 멍청하진 않았다. 현행범으로 걸린 이상, 도주하지 못한다면 그냥 순순히 잡혀주는게 상책이다. 장창에 갑옷까지 입은 경비병들과 짧은 칼 하나만 믿고 싸운다는 건 자살행위다. 그러느니 곱게 들어가 있으면 보스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자기행동을 합리화한 그는 품 속에서 칼을 꺼내 바닥에 던지고 양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도 할 수 없다는 듯, 칼을 내던지고 손을 들었다. 경비병 몇이 다가와 그들의 양 손을 묶고 끌고갔다.


경비병들을 인솔하던 선임 경비병이 조폭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곤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청년을 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 당신 아~주 대단한 사람이군 그래? 참사회도 아니면서 시 경비대를 제멋대로 부리다니 말이야. 베르스 상회 소속, 파투만 베르스의 아들 로만. 당신을 횡령 혐의로 체포한다. "


로만은 경비병의 말에 희미하게 웃었다. 경비병 둘이 그를 거칠게 일으켜 끌고갔다.






캄캄한 심연. 괴물의 뱃속같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횃불 하나가 몰아낸다. 드디어 점심 시간인가? 식사보다는 오늘의 반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반갑다. 예상대로 횃불은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시간이 이르다 했더니 간수의 손에 먹을 것 대신 사람이 끌려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사람이다. 그렇게나 바라던 사람이다! 제발, 신이시여! 제발 간수새끼가 저놈을 이 감방에 처넣게 해주소서. 아니면 하다못해 소리가 닿는 곳에 처넣게 해주소서!


간절한 기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간수의 손이 내가 갇힌 감옥의 철창을 연다. 그리고 기대대로 사람을 거칠게 처넣고는 가버렸다. 어둠이 다시금 감옥을 집어삼킨다. 간수가 가버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쓰러진 죄수에게 달려들었다.


" 이봐, 괜찮아? 어디서 왔어? 이름은 뭐야? "


이곳 말은 아직 모른다. 기껏해야 욕이나 한두마디 들은게 전부. 당연히 내가 지껄이는 건 한국어다. 당연히 못알아듣겠지. 그래도 그게 어디냐? 뭔 소리냐고, 못알아듣겠다고 대꾸하는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내뱉는 소리에 나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 아... 씨발, 아파죽겠네. "


그것은 한국어였다.

비록, 욕지거리였지만 분명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였다!


나는 너무 놀라 뒤로 벌렁 넘어졌다. 어둠 속이라 잘 안보이지만 이놈은 어딜봐도 이 세계 주민으로 보였는데 한국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놀라움은 곧 흥분으로 바뀌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 믿지도 않는 신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신음성을 흘리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내를 거칠게 흔들었다.


" 썅... 벨 루티마 빠티체! 라마 리티안 루벨머. 델 루이아. "


이쪽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정신을 챙겼군. 나는 반가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걸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목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 이봐요. 나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다구요! "








<지루한 사람>


처음의 흥분은 어디갔는지 온데간데없고 남은 것은 한없이 깊어지는 실망 뿐이다. 막상 되어보니 귀족이라는 건 정말 귀찮은 존재였다. 평민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귀족은 작위를 이어받기 전까지는 당최 자유로운데가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제국 법에 따르면 귀족은 장사 같이 천박한 일을 하면 안된다. 그러면서 귀족은 귀족답게 격에 맞는 소비를 해야한다.


그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란다.


쉽게 말해 남작이면 최소한 이 정도 저택에, 이 정도 옷차림이란 식으로 작위에 맞춰 최소한의 척도가 존재했다. 이걸 못하면 어떻게 되냐고? 무시당한다. 사실상 사회적으로 매장이다. 능력없는 자로 낙인찍히고 때문에 휘하의 가신들과 기사들부터 등을 돌려버린다.


즉, 가세가 기운 것으로 판단해 아랫 것들이 독립을 시도하거나 다른 영주에게 붙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실속을 차린다고 해도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귀족으로서는 탈락이다.


귀족들이 기를 쓰고 사치를 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걸 무시하려면 있는 가신이나 기사를 다 쳐내고 평민들을 기용해야하는데 그게 쉽지도 않다. 일단 봉토를 받은 이상,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마음대로 빼앗지도 못하는 탓이다. 그것도 모자라 주군이 결격사유 (가장 대표적인게 이 '기준' 미달이다) 를 갖췄을 경우 봉토를 가지고 남에게 붙어버려도 흉이 되지 않는다.


즉, 어설프게 절약한다고 까불다간 자기 기반이 통째로 옆동내에 붙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출은 뻔한데 일정 이상 소비가 의무화되어 있는데다 새로운 돈줄까지 막아놓았으니 영지가 크게 성장할 수 없다. 당연히 간단히는 왕족에게 대항할 수 없다. 모든 나라가 준수하는 전제하에서, 왕족만 득을 보는 구조이니 이 세계의 왕족들이 짜낸 꼼수라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귀족들이 바보도 아니고 아예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상단을 운용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투자하는 건 가능한 덕이다. 내가 대부분의 지분을 투자한 상회사를 만들면 상업에 손을 댈 수 있다. 그런데 현상유지에 대부분의 비용을 투자하는 영지 사정상 자본금이 클 수가 없다. 적은 자본으로 성공하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법만 있었으면 획기적인 아이템을 만들어 간단히 성공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게 막혔으니...


더군다나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나는 아무런 실권도 없다. 작위를 계승하기 전까지는 깝치지 말고 수양하는게 이 세계의 룰이다. 기껏해야 기사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까? 영지 내정에 간섭하는 건 아버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것만큼은 철저한 룰이라서 아무리 인자한 아버지라도 그래, 너도 일 좀 배워야지~ 하고 덜컥 일을 시켜주진 않는 것이다. 차라리 영지가 썩어나는 무슨 후작가나 되면 작은 영지를 수업삼아 운영할 수 있겠지만 쥐뿔도 없는 남작가의 자제가 뭘 할 수 있겠나?


그저 답답할 뿐이다.


더욱 눈물나는 건 결혼이다. 참고로 나는 벌써 약혼자가 있다. 물론 부모님끼리 멋대로 정한 약혼자다. 까짓, 납득 못할것도 없다. 마음에 안들면 차버리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아버지가 죽고, 작위를 계승하기 전까지는 결혼도 못한다는 점이다. 덤으로 아버지가 죽는 시점을 예상해서 정한 내 약혼녀라는 여자는 이제 고작 세살이다. 기가찬다.


영주의 아들로서, 모든게 자유롭지만 정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 나는 철창없는 감옥에 갇힌 신세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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