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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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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56,375
추천수 :
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6.06 02:56
조회
2,553
추천
23
글자
6쪽

평범 (8)

DUMMY

배고파...


그것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쓰래기통 같은 뒷골목에서 처음 생각난 한마디였다. 초원에서 지겹게 겪었던 배고픔이란 이름의 고통이 다시 숨통을 조여왔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고픔을 해소한 게 아니라 그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뿐이다.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오히려 깨닫지 못했다.


그 끔찍한 고통이 되살아난 것은 거지들의 구타 때문이었다. 신경이 사라진 듯,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던 육체의 감각은 불행히도 극심한 구타에 통각을 필두로 잠에서 깨어나버렸다.


먹기 위해서 일을 구하다가 이런일이 생기다니. 정말 얄궃은 일이다. 왜냐하면, 배고픔이란 놈은 원래 자각하는 순간, 머릿속을 지배해버리는 마물인 까닭이다. 한번 깨달아버리면 위장이 체워지지 않는 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지독한 괴물이다.


나는 머릿속을 정복해버린 마물을 쫒아낼 능력이 없다. 그저 마물이 시키는대로 넝마 같이 너덜거리는 육체를 일으켰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멍든 곳이 욱씬거리고 찢어진 피부가 쓰리다. 그놈들, 아예 때려죽일 생각이었던걸까? 온몸에 성한 곳이 없다.


" 그래도 살아있어. " 하고 악에 받친 외침을 조용히 쏟아붇는다.

네놈들이 아무리 그래봤자 나는 살아남았어. 반드시 살아남아서...

살아남아서...?


" 살아남아서 뭘 어쩌지? "


누군가 머릿속을 하얀색으로 덧칠한 것처럼 생각이 끊어졌다.


" 그래,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그래, 맞아. 돌아가는거야. "


바보처럼 중얼거린다.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 그거면 됐어. 됐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 돌아간다고? 어떻게?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나 있어? '


필사적으로 표지판을 세우는 나를 지켜보던 내가 냉소하며 말한다. 미래를 가르키던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듯이 돌아간다. 뱅글뱅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돌아간다. 의식 속 심해에 처박혀있던 불안이란 물뱀이 또아리를 풀고 수면 위를 향해 솟아오른다. 마침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버린다.


그때, 내 귀에 낮선 노래가 들려왔다.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어설프다는 걸 단박에 알아낼만큼 형편없는 노래였다. 직접 만든 듯한 조악한 기타의 소리도 엉망진창이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눈살을 찌뿌릴 만한, 그런 서툰 공연.


그러나, 상점가 벽에 등을 기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사내의 태도는 너무나도 행복해보였다. 그는 비록 작은 골목에서 연주하고 있었지만 열정으로 빛나는 두 눈은 수만명의 관객과 마주보고 있었다. 비록 어린아이의 작품처럼 엉성하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붇는 그의 모습엔 기교가 서툰 것에 대한 부끄러움 따윈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부르는게 너무나 행복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기타를 연주하는게 황홀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사람들을 향해 보란듯이 음악을, 그의 마음을 쏟아냈다. 그 순간, 사내는 쓰래기통에서 핀 장미처럼 홀로 빛났다.



타앙!


총알이 뱀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냉소적으로 비웃던 '나'의 머리통도 날려버린다. 고장난 나침반의 바늘의 좌우에 침을 박아 억지로 고정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표지판이 가르키는 길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아무래도 좋아.

앞을 향해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나는 빵을 손에 넣었다.

빛나는 마음 속 풍경과 정 반대로 충동적이고 더럽게 손에 얻었다.


나는 사내의 노래를 듣다가 골목 끝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빵 냄새를 맡았다. 동시에 노랫소리에 홀려있던 마물이 정신을 차렸다. 나도 모르게 꿀을 찾는 벌처럼 향기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숨이 막힐 듯이 진한 향기를 뿜는 건물에 도착했다. 낡은 나무문을 바깥 쪽으로 훌쩍 열어젖힌 그 건물 안엔 먹음직한 갖가지 빵들이 나를 유혹하며, 바구니에 담겨 진열되어 있었다.


배고픔이란 마물은 빵의 향기에 홀려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무턱대고 달려들어가 빵을 입안으로 쑤셔넣었을 것이다. 내가 달려나가려던 순간, 나이먹은 부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 있던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빵을 고르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디서 지켜보고 있던 놈들인지 모를 어린 거지들이 순식간에 빵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빵집주인이 아주머니에게 눈이 팔린 사이, 반대편에서 양 팔은 물론,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만큼 무조건 쑤셔넣는 것이다.


" (*&**(!&*(!!!! "


이윽고, 주인이 알아차린 듯, 알아들을 수 없는 노성이 골목에 울려퍼졌다. 빵을 사던 부인이 놀라 소리치고 아이들은 혼비백산 빵을 들고 달아났다. 그러자 빵집 주인은 어디다 쓰는건지 모를, 어른 다리만한 몽둥이를 들고 쫒아나오는 것이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빵집으로 들어가 커다란 빵이 가득 담긴 바구니 하나를 통째로 들고 도주했다. 빵을 사러왔던 아줌마가 소리칠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이 세계의 몰상식함은 나를 도와주었다. 정신을 차린 아줌마도 잽싸게 빵덩어리를 여기저기에 쑤셔넣고 도주한 것이다.


최후의 위협인 빵집 주인은 멀리 가버린 것인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구석진 길을 골라 단숨에 그곳을 벗어났다.


수십개의 건물을 지나, 아까의 빵집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만큼 멀리 와버린 뒤에야 나는 여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빵을 물어뜯었다.


이 얼마만에 먹어보는 음식인가!

나는 먹던 것을 넘기기도 전에 새 것을 입안으로 쑤셔넣었다.

빵이 텅 빈 위장을 어느 정도 달래주었을 때, 불현듯 눈물이 빵을 적셨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자 서러움의 결정이었다.


그 날, 나는 인생을 논할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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