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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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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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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307
추천수 :
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6.10 00:14
조회
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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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6쪽

평범 (10)

DUMMY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럼 몸짓으로 의사를 전하면 그만이다. 몸짓으로 전하기 힘들면 그림으로 전하면 된다. 귀머거리에 벙어리도 자기 의사는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어제도 비록 끝은 안좋았지만, 일하고 싶다는 의사는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나? 할 수 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도시의 바닥을 샅샅이 훝었다. 바디 랭귀지로는 ' 말을 가르쳐 주세요 ' 라거나 ' 말을 가르쳐 줄 선생을 찾고 있어요 ' 같은 말을 전달하는데는 솔직히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릴 도구와 도화지가 필요하다. 도시의 바닥이 그냥 흙바닥이었다면 손가락으로 그리면 그만이었겠지만, 아쉽게도 도시의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렇지, 숯 같은게 있으면 딱 좋겠는데. 가급적 가느다란 걸로.


모르긴 하지만 숯이라면 대장간 같은 곳에 많이 있지 않을까? 나는 최대한 대로를 피하면서 연기를 많이 뿜는 굴뚝을 찾아다녔다. 대장간 같은 3d 업종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위치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아무래도 하루 종일 불을 땔테니 연기가 많이 나올거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연기가 많이 나는 굴뚝을 따라 처음 찾은 곳은 엉뚱하게도 빵집이었다. 향긋한 빵 냄새도 냄새였지만 나무로 만든 조악한 문짝 위에 걸린 빵 그림 덕분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독특하게도, 빵 그림 아랫쪽에 밀인지 보리인지 모를 작물의 이삭이 걸려 있었다. 그렇구나, 빵집도 불을 많이 쓰는 곳이지. 뭐,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내가 원하는건 그림을 그릴 도구일 뿐이니까. 어제 빵을 훔친 그 곳이 아닌가 약간 찔끔했지만 문 안쪽으로 보이는 내부는 어제의 빵집과 전혀 달랐다. 좀 더 작고, 거무튀튀한 빵들을 바구니도 없이 하얀 천조각 위에 아무렇게나 쌓아놓았다. 척 봐도 싸구려 빵을 취급하는 곳이다.


마침 잘 됐다. 어차피 돈의 가치도 알아봐야 했다. 아까부터 누가 훔쳐갈까봐 손에 꼭 쥐고 있던 동전을 새삼 세어본다. 여섯 개, 모두 제대로 있다. 육천원일까 육백원일까, 그도 아니면 육십원일까? 나는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160 정도에 노동으로 다져진 굵은 팔뚝을 지닌 빵집 주인은 왱왱 날아다니는 파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보자마자 눈살이 찌뿌려진다.


" 말레 퀴링. 레 피티아. "


손을 휘휘 저으면서 귀찮은 듯 지껄인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무슨 뜻인지는 한번에 알겠다. 나는 손에 쥔 동전을 꺼내들며 말했다.


" 내가 거지새끼로 보이냐? 미친 돼지새끼, 눈깔을 확 파버릴까보다. "


일부러 평이한 어조로 쌍욕을 늘어놓는다. 어차피 피차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눈치로 때려맞출 수 밖에 없다. 그런 마당에 ' 안녕하세요~ ' 인사하는 것처럼 쌍욕을 늘어놓으면 어떤 놈이 알아차릴까? 치졸하긴 했지만 벙어리처럼 지내다 쌍욕을 내뱉고 나니 속에 쌓인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쌍욕을 들었지만 알 리가 없는 빵집 주인은 조금 당황한 듯 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쌓아놓은, 주인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에 가득 차는 검은 빵 하나를 집어들고 반대편 손으로 네 손가락을 폈다.


" 블랑 갈드. "


블랑이 넷, 갈드가 돈 단위라. 넷이라는 숫자보단 갈드라는 돈 단위를 알아낸게 더 큰 수확이다. 나는 동전 네 개를 들어 보였다. 상대방은 군말없이 빵을 건냈다. 이 갈드라는 동전은 최소한 백 원은 되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따끈한 빵을 한 입 배어물면서 빵을 굽는 화덕을 찾았다. 아쉽게도 얼핏 비치는 화덕 안쪽에는 내 예상과는 달리 까만 숯 덩어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아랫쪽에 있는 것 같은데 꺼내달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나는 그냥 빵 하나만 덜렁 들고 가게를 나섰다.


빵을 먹고 있자니 목이 막혔다. 매번 이럴 때 마다 수돗가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지만 달리 물을 얻을 방도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내심 툴툴거리면서도 목이 메여 걸음은 빨라졌다. 다행히 오전에 물을 떠놓는게 보통인지 지금은 한산했다. 이번에는 아주 수로에 머리를 처박고 배가 터지도록 물을 들이마셨다. 출렁, 뱃속이 다시금 만복을 맞이해 기쁨을 표시한다.


비록 들어간건 빵 하나에, 나머진 물배지만 기분이 절로 풀어졌다. 사람이란, 역시 배가 불러야 마음에 여유가 오는 모양이다. 이 세계에 와선 거의 처음으로 느긋한 마음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배는 부르고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도, 누구 하나 시비거는 놈도 없다. 이 얼마나 평화로운가! 그때, 내 눈에 기묘한 것이 들어왔다. 어디다 쓸 생각인지 큰 저택의 담벼락 밑에 시커먼 숯을 잔뜩 쌓아놓은 것이었다. 난방용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기회였다. 나는 잽싸게 몸을 일으켜 숯 더미로 향했다. 근처에 다가가도 뭐라 말리는 놈이 없는 걸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혹시 버리는 걸까?


뭐, 아무렴 어떠냐? 버리는 거면 잘 됐지. 숯 더미 아래의 바닥이 새카맣게 물든 걸 보면 그림 그리는데는 충분해 보인다. 나는 생각없이 숯 더미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을 하나 집었다.


그때였다.


" (*&*&&&^%&%$!!!! "


어찌나 빨리 지껄이는지 뭐라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귓전을 울리나 싶더니 깜짝 놀란 모습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곤 다짜고짜 뭐라뭐라 지껄이는데 내가 뭔 수로 알아듣겠나? 그냥 멍하니 있었더니 사람들이 갈라지고 왠 병사들이 들이 닥쳤다.


' X 됐다. '


뭔지 모르지만 꼬였다. 튀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몸은 철근같이 단단한 병사들의 팔에 붙잡힌 뒤였다. 다행히 저항을 안한 덕인지 얻어 맞지는 않았지만 끌고가는 폼이 별로 좋은 일로 끌려가는 건 아니겠는데...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래?


나는 그렇게 억울한 마음을 품고 다시금 감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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