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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884 님의 서재입니다.

평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d3884
작품등록일 :
2011.01.16 11:18
최근연재일 :
2011.01.16 11:18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156,357
추천수 :
1,382
글자수 :
816,019

작성
10.06.13 04:02
조회
2,291
추천
19
글자
6쪽

평범 (11)

DUMMY

어리둥절.


지금 내 머릿속을 제일 잘 표현해주는 단어다. 그냥 길가에 쌓아놓은 숯 더미에서 손가락만한 쪼가리 하나 줏었다고 거리에서 구경거리 처럼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가질 않나, 왠 나이 지긋한 늙은이 몇 놈이 와서 뭐라뭐라 묻질 않나, 물론,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고 답답한 마음에 그냥 한국어로 몇 마디 지껄여줬더니. 이젠 지들끼리 오두방정을 떨어댄다. 그래, 결국 어떻게 되나 두고봤더니 또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가서 눈 씻고 찾아봐도 변호사는 보이지 않는 법정에 섰다.


멀쩡하게 잘 지어놓은 법정엔 나이 지긋한 판사 양반이 점잔빼고 앉아서 혼자 지껄여대더니 망치를 탕탕 치고는 판결을 내린다. 말은 못알아들어도 병사들이 날 그대로 감옥으로 끌고 갔으니 유죄 판결이 났다는거야 동내 초딩이라도 알 수 있었다. 병사놈들은 나를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방에 대여섯명씩 들어가 있는 감옥을 지나 조금 더 깊숙한 곳의 독방으로 끌고가 집어넣었다.


철컹!


철창의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한다. 횃불을 든 병사들이 가버리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나를 집어삼켰다. 저번에는 정신을 잃은 체로 들어와서 몰랐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감옥에 끌려와 갇혀보니 불안감이 뭉클뭉클 솟아오른다. 게다가 막장이긴 했지만 정식 재판을 거쳐 들어왔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걸렸다.


난 어떻게 되는걸까?

빵 하나 훔치고 십수년간 갇혀 있었다는 장발장처럼 되는 걸까?

' 설마, 그럴리가. ' 라고 생각하지만 그럴리가 없다고 딱 부러지게 장담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나 서글펐다. 더욱 서글픈 건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득, 지구의 일이 떠올랐다.

이 세계에 떨어진 것도 벌써 보름이 넘었을테니 저쪽은 난리가 났겠지? 객관적으로 봤을땐 밤새 사람이 사라진 괴사건이니 언론에 보도 됐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학교에선 제법 화재가 됐겠지. 하지만 그냥 그 뿐. 학교는 나 없이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간다. 곧 수능이 다가오니 그나마도 금새 잊혀질지도 몰라. 몇 명이나 없어진 날 걱정해주고 있을까? 그래, 부모님이라면 모를까. 부모님...


부모님을 생각하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아들 하나 있는거 어떻게든 잘 키워보시겠다며 고된 일에도 항상 웃으며 대해주시던 아빠. 성적표를 앞두고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지만, 돌아서면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엄마, 아빠... 지금쯤 굉장히 슬퍼하고 계시겠지?


지난번 모의고사 성적이 올랐다며 수능이 기대된다고 그렇게나 좋아하셨는데... 항상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산다고 하셨는데...


" 나는... 이딴데서 뭐하고 있는거야...!!! "


마음은 이미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 난 괜찮다고. 이렇게 잘 돌아왔으니 안심하시라고 말하고 있는데 몸은 알지도 못하는 세계의 차가운 철창 속에 쭈그려 앉아있다. 그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슬퍼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 이 세계에 와서 벌써 몇 번이나 우는 걸까?


어쩌면, 나는 꽤 울보일지도 모르겠다.







감옥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다.


수감된지 벌써 닷새. 이곳에선 아무 할일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고작 궁상맞게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아침엔 가족들을 생각하며 울적해졌다가 기분전환을 위해 과장되게 희망찬 미래에 대한 망상을 펼치며 히죽거린다. 그래도 시간이 안가 눈을 붙였다 뜨기를 세번쯤 반복하면 그제야 뒤뚱뒤뚱 간수가 와서 아침 식사를 던져주는 것이다. 매뉴는 언제나 똑같다. 시커먼 빵 한 조각에 물 한잔. 영양 벨런스 따위는 눈꼽만치도 고려하지 않은 식단이다. 그나마 물은 아껴야했다. 물은 하루에 세번, 식사 때마다 내주는 한잔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몸을 씻는 호사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저 목을 축일 따름이다.


아아, 군대의 내무반이 이럴까?


지루함이 골수에 미치니 지옥이 따로없다. 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창문도 없는 이 시커먼 암흑 속에선 그조차도 사치다. 얻어맞아도 좋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멋대로 지껄여주기만 해도. 아니, 들어주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꼭 인간이 아니라도 좋다. 지금이라면 쥐새끼가 나와도 반가워할 자신이 있다.


" 심심해... "


지루하다 못해 입으로 소리내 지껄였더니 내 목소리조차 반갑다. 재미를 내 혼자 이런저런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불만, 불평, 망상을 다 쏟아내도 비웃음 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허무감이 몰려들어 나는 억지로 눈을 붙였다. 너무 자서 잠도 오지 않는다. 젠장, 이젠 꿈나라조차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한없이 우울해졌다.


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옥. 고작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미쳐버릴 것 같다. 아니, 벌써 미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편할텐데.


" 차라리 죽여 개새끼들아...! "


악에 찬 외침이 허무하게 감옥 속을 울렸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 돌을 집어던진 듯, 파문을 일으켰던 외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히 흘러내려가는 침묵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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