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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작품등록일 :
2019.12.12 15:15
최근연재일 :
2020.01.16 23:59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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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6
추천수 :
95
글자수 :
127,994

작성
20.01.1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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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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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DUMMY

-후우우우웅

-콰광!


마크의 대검이 공기를 가르고 노면에 내리 찍힌다.

바닥에서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큭!”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선공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당혹감이 앞섰다.

그러나 무수한 실전과 훈련으로 갈고 닦여진 그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먼저 베야만 한다.

그래서 겁만 줄 생각이 아닌, 정말 벨 각오로 검을 날렸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본다.


두 번째 당혹감.

스쳤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피했어도 이해할 수 있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검을 들어 자세를 고쳐 잡는다.

먼지가 전부 가라앉고 그가 고개를 돌리자, 에이바가 어느새 마크와 크게 거리를 벌린 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어디까지나 여유로웠다.


“···무슨 눈속임을 쓴 것인진 모르겠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선공에 나서는 마크.

이번엔 무턱대고 베는 것이 아니라 검 끝을 에이바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치켜세우고, 달려든다.

우직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둔중한 찌르기.

그러나 이것은 준비 동작에 불과하다.

느릿한 검의 궤적을 피하고자 몸을 돌리거나 낮추면 그때는 가차 없이 검에 속도를 붙여 참할 요량이었다.

에이바가 고개를 살짝 틀었고, 검은 에이바의 금색 머리칼 사이만을 갈랐다.

팔의 힘을 모두 동원하여 에이바의 한쪽 어깻죽지를 양단하려던 찰나,


“뭣···.”


그녀의 모습은 다시 한번 사라지고 대신 엄청난 전류가 갑옷을 입은 사내의 몸을 헤집어놓는다.


“크아아아악!”


마치 벼락을 맞는 듯한 격통 후에 온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검을 기둥으로 삼아 겨우 쓰러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지만···.


마크는 망연하게 뒤를 돌아봤다.

에이바가 여전히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그에 뒤에 서 있었다.


“생채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네놈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왕실 수호기사에 적을 두고 있는 자신이 무기 하나 없이 이런 묘한 기술로···.


경악의 감정은 마크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안은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다.


“에, 에이바 선배님···?”


몸을 풀듯이 손목을 돌리던 에이바가 경고하듯이 말한다.


“이번엔 이쪽에서 가볼게요.”


에이바가 빠른 속도로 뛰어나갔다.

정확하게 마크의 정면만을 노려오는 교과서적인 공격.

마크는 그 거대한 대검으로 그것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콰앙

-콰앙

-콰앙


안뜰에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진다.

분명 쳐내는 검의 날카로움에 진작 잘려 나갔어야 할 에이바의 팔은 그 묘한 전류에 감싸여 강철과도 같은 강도를 자랑하고 있다.


‘무엇인가! 이 기술은, 이 속도는!’


십 합쯤을 주고받았을 때, 에이바의 상체가 뒤로 뒤틀렸고 이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검으로 겨우 몸을 방어했지만 3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밀려나야 했다.

그 독특한 동작.

퍼뜩 마크의 머릿속에 스쳐 겹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머나먼 과거 그가 아직 왕실의 수호기사가 되기 전, 검술 생도였던 무렵의 기억이다.


에이바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마크는 후들거리는 팔로 에이바의 손을 쳐내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려 그녀를 발로 찼고, 그것으로 또 한 번 거리를 두는 데 성공했다.

뒤로 튕겨 나간 에이바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낼 뿐, 데미지를 입은 것 같이 보이진 않았다.


“하하하, 너의 그 기묘한 마법, 그 움직임. 이제야 알겠어. 과연 보통 무인은 아니었군.”


무엇이 우스운지 허탈한 웃음을 내뱉기 시작하는 마크였다.


“내가 아직 생도였던 시절, 일일 교관으로 초빙되어 온 자가 있었지. 그는 생도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우리 앞에서 전투 시범을 보여줬었어.”


그러더니 검을 땅에 꽂아두고 자신의 손으로 갑옷 투구를 벗었다.

투구 안에서 붉은색의 짧은 머리, 다부진 얼굴을 한 사내의 얼굴이 드러난다.


“무기 하나 들고 있지 않았는데도 그는 상급생도 스무 명을 상대했고··· 상처하나 입지 않은 채 그들을 전부 제압했지. 세상엔 괴물 같은 놈들이 득시글거린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에이바를 바라본 채 말을 맺는다.


“네가 쓰고 있는 그 기술들이 꼭 그자가 쓰던 것과 같군. 그리고··· 그는 용사였다.”


마크의 말에 에이바는 긍정도, 부정도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용사···?”


주안이 그 단어가 낯선 듯 중얼거린다.


용사.

천 년 전,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 마신을 봉인한 인류의 구원자.

용사의 힘에 버금가는 특수한 힘을 타고난 자들 가운데서도 정의로운 마음씨를 지닌 소수의 인물만이 혹독한 훈련을 견뎌 이 용사라는 칭호를 이어받는다.

용사가 된 이들은 이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신의 뿌리를 뽑는 일에 제 한 몸을 투신하게 된다.

마족과 얽힌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말하자면 마족에 대항하기 위한 인류 최강의 병기들.


주안이 알고 있는 에이바는 상냥하지만 어딘가 여무지지 못한 구석도 있는 인간이다.

그런 무지막지한 존재일 리가 없다.


‘하지만 방금 저 마크란 기사를 압도하는 그 모습은···.’


주안은 에이바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말해봐라, 용사씩이나 되는 작자가 정체마저 감추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용사가 된 이후로는 통상 세상을 떠돌며 고행의 길을 걷게 되는 이들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수도 중심부의 왕궁에서 마주치는 일은 없다 해도 좋았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에이바가 머쓱한 듯 손사래를 쳤다.


“일하고 있잖아요.”

“일? 왕궁에 마족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니요, 출판 길드원으로서 하는 일이요. 전, 용사는 그만뒀다고요!”


그 말에 마크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장난치는 거냐?”

“장난이라니요.”

“그게 그렇게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성질의 일이더냐? 너희는 자신의 평생을 마족을 퇴치하는 데 바치겠다고 맹세했을 터.”

“누구에게나···.”


하지만 마크와 정반대로 에이바는 진지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다시 출발할 기회는 있는 거예요.”

“보아하니 너 역시 법도를 거스르는 자였구나. 그러니 왕녀 전하를 간사하게 유혹했던 것이겠지.”

“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만, 자기가 속한 자리 때문에 그러기 힘든 사람도 있어요. 왕녀님이 그렇죠. 그럼 그 자리를 버리는 것은 못해도 적어도, 하고 싶은 일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건 왕녀 전하가 처한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처한 상황?”


에이바의 되물음에 마크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시 말을 끊고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외부인인 너희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지.”

“우린 왕녀님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쪽이 해야 할 일도 정해져 있다.”


투구를 한쪽으로 집어 던지고는 마크는 도로 검을 집었다.

낮은 하단 자세에 도신을 뒤로 늘어뜨리고 비스듬히 서서 에이바와 대적한다.

방어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마크는 앞으로의 일격에 승부를 걸 셈이다.

마크의 각오를 본 에이바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넘치는 전류를 한데 모아 검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용사들만이 다룰 수 있다는, 저 유명한 빛의 검이다.


마크가 우렁찬 소리를 내지르며 에이바에게 달려나갔다.

대각선을 긋는 올려치기.

그녀가 만약 사각으로 피한다 해도 몸의 회전력을 이용해 바로 이어서 사각마저 벨 생각이었다.

거대한 대검이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속도로 에이바의 얼굴을 덮쳐온다.

에이바는 태연하게 자신의 검을 들어 그것 앞을 막을 뿐이다.

대검을 상대하기엔 작고 얇은 중검.

그러나,


마크는 무예의 길을 걸어온 자로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검에 닿는 순간 대검은 나무토막처럼 두 동강 나고 만다.

그리고 빈틈투성이가 된 마크의 안면에 꽂히는, 에이바의 주먹.

머리가 날아갈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정신이 아득히 멀어진다.

마크의 기억이 완전히 끊기기 전 에이바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그래도 나였다면 왕녀님을 도왔을 것 같아요. 그녀와 같은 눈높이에서.”


***


정신을 되찾았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마크는 궁 외부에 마련되어 있는 어느 치료소에서 눈을 떴다.

모두가 잠든 시각인지 북적거려야 할 치료소가 지나치게 고요했다.


“으윽···.”


마크는 자신의 몸을 점검해본다.

온몸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렸고 근육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바로 느껴질 정도의 치명상은 없었다.

용사인 그녀라면 그를 죽일 수조차 있었을 터.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은 그녀가 의도한 일이라고 봐야 했다.

용사와 직접 싸워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메꿀 수 없는 힘의 차이란 게 절절하게 느껴졌다.


“수호 기사가 다 무언가. 나도 아직 멀었구나.”


마크는 자신이 용사처럼 강하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봤다.


‘그랬더라면.’


왕녀 전하를 좀 더 잘 보필할 수 있었을 텐데.

마크는 생각한다.


겉으로는 순하고 맹해 보일지 몰라도 왕실의 일원 누구보다도 총명한 사람이다.

왕은 그런 헤나 왕녀를 다른 형제들보다 특히나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가 왕위를 내심 이어가길 바랐고, 왕실기사단 중에서도 엄격하다고 알려진 마크를 그녀의 수호기사에 임명했다.

그녀가 좀 더 왕의 재목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그녀를 다듬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왕의 편애가 왕좌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다른 형제들에겐 위협으로 다가왔으리라.

형제들은 작당하여 어린 헤나를 따돌렸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왕궁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의도적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날 기회도 빼앗고 왕에게는 이 사실을 감췄다.

그녀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수작이었다.


늙은 왕은 최근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만약, 현재 상황에서 왕이 갑자기 타계한다면 권력을 잡은 형제들에 의해 헤나의 삶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기 전에 왕실의 법도에 따라 더 준비된 군주가 되어야만 했다.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일 수 없는 것이다.

마크는 초조해졌다.


‘내가 용사처럼 강했더라면 왕녀 전하를 상처 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녀를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런저런 감상에 잠기는데 손끝에 까끌거리는 감촉이 느껴져 왔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보니, 침대 한쪽에 낮에 보았던 녹색표지의 책이 놓여 있었다.

아무래도 헤나 왕녀가 그가 기절해 있던 사이에 다녀간 모양인 듯.


‘그래도 나였다면 왕녀님을 도왔을 것 같아요. 그녀의 눈높이에서.’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그 용사의 음성이 묘하게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으윽···.”


마크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한쪽 벽면에 기댔다.

그리고 헤나가 쥐어놓았을 그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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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연결된 꿈 +1 20.01.08 110 3 12쪽
18 해후 20.01.06 104 3 10쪽
17 벽돌이 아닌 성으로 +2 20.01.03 109 3 11쪽
16 물러설 수 없는 싸움 +3 20.01.02 173 3 12쪽
15 왕을 향한 도전 +2 19.12.30 160 3 11쪽
14 시험 +3 19.12.27 140 6 12쪽
13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2 19.12.26 152 4 11쪽
12 거짓과 진심 +3 19.12.25 140 4 12쪽
11 그런 취급 받아도 될 사람 아니니까 +1 19.12.24 151 5 12쪽
10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1 19.12.23 162 4 11쪽
9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2 19.12.20 191 4 11쪽
8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 +2 19.12.19 191 3 11쪽
7 뜻밖의 선물 19.12.18 196 4 12쪽
6 천직이 작가인지라 +5 19.12.17 223 4 13쪽
5 그녀의 천직은 +2 19.12.16 230 4 12쪽
4 일탈 19.12.13 241 4 12쪽
3 마왕님의 우울한 여름 19.12.12 236 6 12쪽
2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12.12 301 4 11쪽
1 이세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1 19.12.12 5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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