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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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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작품등록일 :
2019.12.12 15:15
최근연재일 :
2020.01.16 23:59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304
추천수 :
95
글자수 :
127,994

작성
20.01.13 17:58
조회
80
추천
3
글자
11쪽

재밌네

DUMMY

소녀의 시기를 막 지난 것 같은 무렵의 여성.


“왕녀 전하!”


에이바와 주안은 즉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왕녀, 헤나는 잠시 들어온 문 앞자리에 서서 에이바와 주안을 훑어봤다.

밤색의 머리에, 짙은 송충이 눈썹.

의도적으로 갈고 닦인 것이 아니라 타고난 애교나 젊음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있는 미인이라는 인상이다.

엘레노어 부인의 묘사를 듣고 상상했던 자기주장이 강한 인물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녀도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아, 제가 왕녀 헤나입니다!”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 같은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였다.

에이바와 주안은 뜻밖의 환대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으로는 왕궁의 실내에 있으면서도, 전신에 갑옷을 걸쳐 입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에이바의 눈이 그에게 닿자 헤나는 지나가듯이 그에 대해 소개한다.


“이쪽은 제 경호를 맡은 수호기사 ‘마크’. 이야기는 저랑 하실 테니, 신경은 안 쓰셔도 되어요!”


갑옷 안의 인물은 가볍게 묵례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헤나가 그들의 앉아 있던 자리 앞, 상석에 앉았다.

그제야 두 사람도 따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 그럼. 엘레노어 부인의 소개로 찾아오셨다고요?”

“네.”

“부인께선 건강하신가요? 안 뵌 지가 좀 되어 가는데 갑자기 기별을 주셔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왕궁의 미술 교사로 일하고 계시지만 제게 개인적으로 이러신 적이 없으셨거든요.”

“저희가 실례되는 걸 알면서 부탁을 드렸어요. 꼭 만나 뵙고 싶어서···.”

“그랬구나아.”


통상적으로 주고받는 인사말들.

왕궁의 시종 하나가 그녀가 마실 차를 내왔다.

그러나 헤나는 차에 입도 가져가지 않은 채 쉼 없이 재잘거렸다.


“엘레노어 부인의 말씀으로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신다던데요?”

“네, 맞습니다.”

“와, 멋지다! 저도 책 많이 읽거든요. 주로 로맨스 소설이지만. 프히히···. 그런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 거죠?”

“실은, 이번에 저희가 책을 내는데···. 거기에 왕녀 전하의 그림을 쓰고 싶어서···.”

“제 그림을요? 그게 마음에 드시나요?”

“네.”


에이바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헤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요?”

“···네?”


헤나의 어조가 예상외로 차가운 것이어서 에이바와 주안은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헤나의 말.


“잘 알고 계시겠지만, 왕가에 대한 책을 내는 것은 금지라는 불문율이 있어요. 소재를 찾으셔도 저도 전하나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고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 보니 에이바는 헤나가 어떤 의도로 물음을 던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헤나의 그림을 이유로 그녀에게 알현을 청했지만 뒤에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계산.

그녀의 의심은 합리적이다.

아무래도 그녀가 그린 그림을 생각하면··· 통상적으론 도저히 감탄하고 칭찬할 정도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겉으론 밝고 순진해 보여도 그 속까지 그렇진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긴장이 더해졌다.


“이러시면 못써요, 여러분~ 여러분을 소개하신 그분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겠으니 알아들으셨으면···.”


말하며 일어나려는 것을 얼떨결에 주안이 붙잡으려 한다.


“아, 아니에요! 왕녀님. 저희는 정말 왕녀님의 그림이 궁금해서 찾아온 자들입니다···악!”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주안의 비명.

왕녀에게 닿으려던 주안의 손이 갑옷을 입은 자의 손에 붙들려 있다.


“왕녀 전하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려 하다니.”

“아아아악!”

“주안 씨!”

“놓아줘, 마크.”


그 말에 갑옷은 헤나를 한 번 돌아보더니 천천히 손에 힘을 풀었다.


“아우우···.”


잠깐이었지만 얼마나 세게 잡았던 것인지 주안의 팔목엔 커다란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주안 씨, 괜찮아요?”

“네···. 실례했습니다···.”

“이봐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항의하려는 에이바에게 헤나가 말한다.

헤나의 모습은 다소 진지해져 있었다.


“하지만 왕실의 일원을 업신여기다간 방금 같은 것으론 끝나지 않는답니다.”

“왕녀 전하···. 저흰 정말 왕녀님 그림만 보고 찾아온 거예요. 다른 게 아니라.”


그러나 그들을 헤나의 눈에 회의적인 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에이바가 낮고 진중한 음성으로 호소했다.


“일단, 이야기를 좀 더 들어주세요···.”


간절한 부탁이 통했던 것인지, 헤나는 음음, 입으로 소리를 내며 고민하는 듯하다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에이바는 한숨 돌렸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기회는 많지 않다.

에이바는 입을 열었다.


“엘레노어 부인의 공방에서 왕녀 전하의 작품을 보았어요. 수도의 전경을 묘사한 풍경화였죠. 처음엔 왕녀님의 말씀처럼··· 다른 훌륭한 그림들에 비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여기 있는 주안 씨가 찾기 전까진 이런 그림이 있는지조차 몰랐어요.”


에이바는 눈동자에 진심을 담아 헤나를 똑바로 마주 본다.


“하지만 처음 그것을 보고, 볼수록 이끌리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왜 눈에 보이는 풍경 그대로가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했을까. 이걸 그린 사람이 대체 누굴까. 궁금해졌어요. 왕녀님이란 것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건 그냥 멋대로 그린 그림일 뿐이에요. 저는 엘레노어 부인의 수업도 제대로 못 따라갔는걸요.”

“저희가 찾고 있는 것은 대단한 미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 부분이 포인트였다.

에이바는 잠시 말을 멈췄고 헤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헤나는 눈을 한 번 길게 감았다가 뜨고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럼 뭔가요?”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죠.”


머릿속으로 어제 보았던 그림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왕녀님의 그림···. 우리가 명화라고 부르는 그림과 비교하면 확실히 제멋대로죠. 이게 뭐냐며 박한 평가를 할 사람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에이바는 진심을 전하기 위해선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서 한 이야기와는 상반된 내용에 헤나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하지만 엘레노어 부인은 왕녀님의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하셨어요. 단지 자기만의 색깔이 강할 뿐이라고요. 저는 그래서 그 작품이 못 그린 게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왜 그랬을까? 그걸 알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왕녀님을 뵈니 왜인지 알 것도 같아요. 그게 작가가 가진 예술관인 거죠. 현실의 것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표현하려 한 거예요.”

“이를테면 뭘요?”


에이바는 여기서 한 템포를 끊었다.

헤나는 이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 듯해 보였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거나.”


에이바는 상상해봤다.

높은 곳에 있어야만 보고 그릴 수 있는 수도 전체의 전경.

그런 곳에서 그린 그림이란 곧 그린 자의 권력이 높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어그러지고 기괴한, 상상이 가미된 풍경이다.

누구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풍경이 그러하다면 뭔가 사연이 있진 않을까?


“저희가 내려는 책은 절대 평범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상상력을 발휘해 다채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이 필요해요.”


둘 사이엔 이제 말이 없었고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를 깬 것은 흘리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프히히히히···. 상상력이 풍부한 건 그쪽 이야기 같은데.”

“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서요.”


헤나는 굳은 표정을 풀었고 다시 처음 봤을 때의 밝은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좋아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본 걸 보니 정말 내 팬인가 보네. 하지만 이런 그림을 책을 만드는 데 어떻게 사용하실 생각인 거죠? 왕가의 그림 모음? 그 정도는 왕실의 허가만 맡으면···.”

“삽화입니다.”

“삽화?”

“저희는 이번에 낼 소설에 왕녀 전하의 그림을 삽화로 넣어보고 싶습니다.”

“소설에도 삽화가 들어가요?”

“저희도 시험해 보는 거예요.”

“아항.”


그녀가 반쯤 넘어왔다고 생각하던 에이바.

속에 기쁜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이어진 왕녀의 말에 허를 찔린 사람처럼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거절할래요.”

“네?”

“왕실의 책도 아니죠. 내가 메인도 아니죠. 다른 사람의 글을 꾸미는 데 내 그림을 사용한다니, 제가 이렇게 가벼워 보여도 왕녀로서 가진 체면이란 게 있답니다? 이해해주세요.”

“하, 하지만···.”


입을 오물거리던 주안은 갑옷 입은 남자가 손을 슬쩍 들자 겁을 집어먹고 목을 움츠렸다.


“그림 높게 사주신 거, 고맙게 생각해요. 나중에 다른 제안을 주신다면 고려해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나려 하는 헤나였다.

문득 에이바의 머리엔 엘레노어 부인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분의 흥미를 자극해보세요.’


왕성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히, 헤나의 흥미를 자극할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보는 거야.’


에이바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내렸다.


-탁


“···?”


무언가가 일어나려던 헤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소리를 내며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것.

예의 녹색 표지로 된 책이다.


“이번에 저희 길드에서 내는 책입니다. 왕녀 전하의 삽화를 필요로 하는···.”

“흐음, 그런데요?”

“마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죠.”


에이바는 의도적으로 마왕이란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순간, 그 거대한 응접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헤나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마왕···이라고요?”


여기서 그 얘길 꺼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듯 주안의 입도 턱이 빠질 기세로 벌어져 있다.


-스릉


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오는 소리.

왕녀의 뒤에 묵묵히 서 있던 갑옷의 인물이 에이바에게 검을 겨눴다.


“이 신성한 장소에서 그 불경한 이름을 담은 것도 모자라, 왕녀 전하께 그 그림을 그릴 것을 간청하다니···. 어지간히도 왕실을 우습게 보는구나.”

“서, 선배님!”


서슬 푸른 검 끝이 에이바의 얼굴에 닿는다.

볼에 실금이 그어지고 피가 흘러내렸지만,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나?”


에이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만! 마크, 검을 거둬.”


마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검을 거두라니까!”

“하지만 왕녀 전하, 이 자는···.”

“명령이야. 똑같은 말 않겠어.”


하지만 헤나가 앙칼지게 목소리를 높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마크는 원래 있던 자리로 검을 되돌려 놓는다.

마크의 낮은 신음.

헤나는 생각에 잠긴 듯이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이바를 내려 본다.

잠시 후에 헤나가 말했다.


“재밌네?”


작가의말

21화 일부분(엘레노어 부인과 두 길드원의 대화 부분)이 수정되었습니다.

22화를 읽는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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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해후 20.01.06 10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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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물러설 수 없는 싸움 +3 20.01.02 173 3 12쪽
15 왕을 향한 도전 +2 19.12.30 160 3 11쪽
14 시험 +3 19.12.27 140 6 12쪽
13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2 19.12.26 152 4 11쪽
12 거짓과 진심 +3 19.12.25 140 4 12쪽
11 그런 취급 받아도 될 사람 아니니까 +1 19.12.24 151 5 12쪽
10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1 19.12.23 162 4 11쪽
9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2 19.12.20 190 4 11쪽
8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 +2 19.12.19 191 3 11쪽
7 뜻밖의 선물 19.12.18 196 4 12쪽
6 천직이 작가인지라 +5 19.12.17 223 4 13쪽
5 그녀의 천직은 +2 19.12.16 230 4 12쪽
4 일탈 19.12.13 241 4 12쪽
3 마왕님의 우울한 여름 19.12.12 236 6 12쪽
2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12.12 301 4 11쪽
1 이세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1 19.12.12 5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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