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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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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작품등록일 :
2019.12.12 15:15
최근연재일 :
2020.01.16 23:59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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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7
추천수 :
95
글자수 :
127,994

작성
20.01.0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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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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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해후

DUMMY

현민은 당분간 내정에 힘쓰기로 했다.

그동안 마족의 일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인간 세계를 들락날락한다면 자신이 했던 말의 진정성을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도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밀려있던 서류들의 결재를 쳐내고 있었다.

불쑥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왕님. 잠깐 시간 괜찮으신지요.”


고개를 돌렸다.

야칸 영감이 차라도 들고 왔나 했더니 의외의 인물이 서 있었다.


“어···.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진지한 표정을 한 나가 공주, 벨라였다.

이번 대회의 사건 때 가장 먼저 사건을 알려 마왕을 곤경에 빠뜨렸던 그녀였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번 일에 대해 정식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모두 제 오해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처벌하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고개 숙여 사과를 해왔다.


“아뇨, 아뇨. 이러실 필요 없어요. 다 제 불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현민은 손사래를 쳤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녀는 마왕군의 간부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녀는 마왕이 해명하자 앞장서서 그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 보였으니까.

그것에 원한 같은 것은 없다.


“······.”

“······.”


현민이 불편한 것은 그 일보다도 그 이전의 일 때문이었다.

야칸이 찾는다는 말에 비어있는 방을 찾았다가 당했던, 한밤중의 습격.

얘기를 잘못 전해 들었나 싶어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돌진해왔던 것이다.

하반신이 뱀인 여자의 구혼이라니.

그때는 이세계의 마왕이 된 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으니, 충격이 대단했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걱정마시고···.”

“제 처분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마왕님께서 제게 실망하셨을까 봐요.”


그러면서 벨라는 눈치를 살피듯 곁눈질을 해온다.

돌직구였다.


‘스읍···.’


그녀가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왜 모르겠는가.

현민도 일에 집중한 삶을 살아오긴 했지만 남녀관계에 관해서 아예 숙맥도 아니었다.

마왕을 믿었기에 배신감을 느꼈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일을 벌였다.

이것을 계기로 가뜩이나 자신을 어려워하는 마왕이 더 자신을 멀리하진 않을까 겁이 났던 거겠지.

그래서 일부러 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이 다소 간사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마왕군 간부 일부가 이탈한 시점에서 마왕성의 전력은 크게 약화 되어 있다.

벨라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나가 부족의 신임마저 잃게 된다면 이는 뼈아픈 일이 된다.

그럼 이대로 살살 구슬리며, 괜찮다고 다독여줘야 하는 걸까?

별로 그러고 싶진 않았다.


“예, 실망했습니다.”

“네···?”


현민은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각오를 굳힌 채 벨라를 향해 몸을 틀었다.


“벨라 님이 저를 생각해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그 방식에는 실망했습니다.”

“······.”


벨라는 역으로 날아온 돌직구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썹을 올린다.


“우리가 원래 서로 가까운 사이던가요? 아니면 죽고 못 사는 사이던가요?”

“···아니죠, 원래부터는.”

“그래요, 전 벨라 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외형, 종족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같은 것은 차치하고, 일말의 호감이라도 느끼려면 그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알고, 함께 정답게 시간도 보내고 해야 자연스럽게 여러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전 벨라 님과 그런 시간을 가진 적도 없고요.”

“······.”

“저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상대를 존중하며,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뒤를 캐고, 압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하고 그럴 게 아니라··· 존중을 하고 진심을 다해야한다고요. 전 당신이 왜 저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마왕이라서요?”

“아니··· 그건···.”


하지만 선뜻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찔리는 것이 있단 거겠지.

기존의 부족장이 죽고 비교적 젊은 새로운 벨라가 새로이 리더 자리에 오르면서 나가족의 권력은 계속 불안정한 상태였다.

마왕과의 혼인을 통해 그것을 공고히 하고 싶은 속내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날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뿐인가요?”


너의 진심을 말해보라는 이야기.

벨라는 고개를 홱 들었다.

그러고는 입을 오물거리다가 힘겹게 말했다.


“처음엔 그랬어요. 그랬는데···. 왜 옛날에··· 기억 안 나시나요?”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그녀의 표정은 붉게 되었다.

뭔가 현민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이런 때면 좀 답답하기도 했다.

진짜 마왕이 아닌 현민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

다른 것들은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넘어가고는 있지만 마왕의 개인적인 체험마저 현민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로드릭이 마왕이 아닌 아직 왕자였을 시절, 둘은 제법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장래에 나가의 부족장이 되었을 때, 힘을 빌릴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을 만들라고.

어린 소녀가 생각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은 당돌하게도 마왕성에 있는 왕자였다.

그 시절만 해도 선대 마왕이 정정하고, 로드릭도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있을 시절이었다.

그래서 벨라는 몰래몰래 왕자를 찾았다.

마왕의 눈을 피해 함께 놀던 시절을 로드릭 역시 즐거워했다고, 벨라는 회상했다.


“저도 처음엔 그런 의도로 찾았어요.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왕님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니 당신에게··· 많은 감정이 생겼어요.”


하지만 그 비밀스러운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에게 들통나면서 없어졌고, 벨라도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부족장을 승계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는 잡음이 많았다.

나가 부족 내에서 권력다툼이 있었고, 벨라는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마왕성과는 먼 삶을 살아야했다.

그리고 몇십 년 만에 성에 돌아왔을 때, 왕자는 어엿한 마왕이 되어있었다.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마왕님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시 마왕성에 왔을 땐 어서 마왕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죠. 하지만 단둘이 있을 기회도 없었고, 마왕님은 늘 혼자 숨어계셔서 뵙긴 쉽지 않았어요. 야칸의 견제도 심했고요. 그래서 저도 결심한 거예요.”

‘그게 그날 밤인가.’


현민은 침을 삼켰다.


“기억하시길 바랐는데, 완전 모르는 이를 보듯 대하시더군요. 조바심이 났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내막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벨라와 뛰놀았던 왕자 로드릭은 현민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미친 여자라는 생각밖에 안 했던 것이다.

그녀를 기억 못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방금 쏘아붙이듯이 했던 것에 대해 조금 후회되는 현민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니에요. 마왕님의 말씀대로 저의 진심을 전했어야 하는 건데. 제 접근방식이 나빴어요.”


벨라는 다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마왕님···. 이제부터라도 제가 마왕님과 정답게 지내도 될까요?”

“······.”


마족의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길다.

그녀가 어린 로드릭을 만난 것은 십 년, 이십 년 전이 아니다.

그 마음을 지금까지 간직해오다니, 어떻게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마족의 이미지와는 잘 매칭이 안 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달리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마음에 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로드릭이 아니다.’


그리고 벨라가 좋아했던 그 사람은 로드릭이지, 지금 로드릭의 껍질을 쓰고 있는 인간 조현민이 아니다.

외형이 어떻고 종족이 어떻고를 떠나서, 여기서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기만밖에 더 되겠나.


‘그렇다고 내 말 듣고 용기 내는데 바로 거절하기도 뭐하고···. 어휴···.’


장고하는 현민.

침묵이 길어지자 수줍게 말하던 벨라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그래요. 좋습니다.”


그래서 현민은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벨라의 얼굴엔 화색이 돈다.


‘그래, 나중에 천천히···. 천천히 해결하자···.’


지금 이 문제까지 해결하기에 현민은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답은 미래의 자신에게 미루는 것.


‘그리고 혹시 모르지.’


그녀와 정말 좋은 관계를 맺게 될지.

그게 그녀가 바라는 형태의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위안으로 삼아보는 현민이었다.


***


현민이 마왕성의 일에 집중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대망의 그 날이 왔다.

모두가 바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길드의 사무실.

가만히 서서 자신의 책상 위를 바라보고 있는 안경을 쓴 여인.

에이바가 감개무량하고 벅찬 표정으로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잉크도 제대로 마르지 않은, 방금 길드 사무실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견본이다.

녹색 표지의 그 책에는 금줄로


『SSS급 절대마왕, 회귀하다』


라고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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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연결된 꿈 +1 20.01.08 110 3 12쪽
» 해후 20.01.06 105 3 10쪽
17 벽돌이 아닌 성으로 +2 20.01.03 109 3 11쪽
16 물러설 수 없는 싸움 +3 20.01.02 173 3 12쪽
15 왕을 향한 도전 +2 19.12.30 160 3 11쪽
14 시험 +3 19.12.27 140 6 12쪽
13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2 19.12.26 152 4 11쪽
12 거짓과 진심 +3 19.12.25 140 4 12쪽
11 그런 취급 받아도 될 사람 아니니까 +1 19.12.24 151 5 12쪽
10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1 19.12.23 162 4 11쪽
9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2 19.12.20 191 4 11쪽
8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 +2 19.12.19 191 3 11쪽
7 뜻밖의 선물 19.12.18 196 4 12쪽
6 천직이 작가인지라 +5 19.12.17 223 4 13쪽
5 그녀의 천직은 +2 19.12.16 230 4 12쪽
4 일탈 19.12.13 241 4 12쪽
3 마왕님의 우울한 여름 19.12.12 236 6 12쪽
2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12.12 301 4 11쪽
1 이세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1 19.12.12 5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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