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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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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작품등록일 :
2019.12.12 15:15
최근연재일 :
2020.01.16 23:59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303
추천수 :
95
글자수 :
127,994

작성
19.12.12 15:22
조회
529
추천
5
글자
11쪽

이세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DUMMY

그곳은 어둡고 기묘한 방이었다.

마치 어떤 생물의 몸속에 들어 와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방은 검붉고 공기는 축축하다.

벽에는 촉수인지 내장 덩어리인지 모를 붉은 것들이 엉겨 붙어있어 흉흉함을 더한다.

그러나 이질적이라는 점은 부차적인 문제다.


“뭐야, 이게!?”


어떤 전조도 없이 어느새인가 주변의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현민은 사고의 한계를 다해 온갖 종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꾸, 꿈인가?’


볼을 잡아당겨도 보고 머리를 후려치기도 해봤으나 아프기만 할 뿐 바뀌는 것은 없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위대한 예술가들은 모두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글쎄···.


‘설마 크툴루 신께서 부름을?’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해가며 하나하나 검토해나가던 현민의 머리에 빠르게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이세계(異世界)!’


어쩌면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추론이기도 했다.

자다가 가든, 트럭에 치여서 가든, 넘어져 땅에 머리를 부딪쳐 가든.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이 어떻게든 다른 세계로 넘어가 새 삶을 손에 넣게 된다···.


‘이세계라면 지금의 상황도 납득이··· 될 리가 있냐.’


현민은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도리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

차에 치이거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강렬한 경험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세계라니, 막상 자기 일로 닥치게 되면 곧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


-타닥, 타닥, 타닥···.


한참을 길게 이어지던 타자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책상 위에서 손을 뗀 현민은 안경 너머로 모니터의 글자들을 한참 동안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마우스 포인터를 등록 버튼 위로 옮겼다.


-우우웅, 우우웅···.


휴식을 취하고 있던 현민의 귀에 책상 위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의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예, 조현민입니다.”

“조 작가님? 저 이전에 잠깐 인사드렸던 앤트미디어 한영민 피디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실지요?”

“아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쩐 일이세요?”

“하하, 작가님 좀 전에 업로드하신 작품, 올리시자마자 알림이 떠서 바로 읽었습니다. 진짜 뒤로 갈수록 더 손에 땀을 쥐고 읽게 되네요.”


작품이란 방금까지 현민이 쓰고 있던 웹소설을 말하는 것이었다.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좋게 보다니, 그 이상이죠! 역시 현민 작가님. 명불허전이랄까요. 이야기의 끝까지 긴장감을 요리하는 솜씨가··· 어후! 완전 셰프십니다. 하하하. 아, 바쁘실 텐데 제가 시간을 빼앗고 있는 건 아니겠죠?”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현민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피디는 헛기침을 하며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흠흠, 본론으로 돌아가서 용건을 말씀드리자면 작가님, 혹시 차기작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는가요?”

“차기작이요?”


지금 연재 중인 작품은 앞으로 일 주, 이 주 안에 끝이 난다.

작품이 끝나도 당장에 수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느긋하게 고민해봐도 될 일이었지만, 현민은 쉬고 싶지 않았다.

한 달 안에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생각이다.


“따로 휴식기를 가질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아서 아마 금주부터 바로 구상에 들어갈 듯싶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그럼 매니지먼트는요?”

“지금 같이하는 곳이 있긴 한데, 다음 작품도 자연스럽게 이어가지 않을까요.”

“확정은 아닌 거죠?”


한 피디의 어조가 지금까지의 칭찬 때와는 다르게 다소 진지해진다.


“실은, 저번에도 살짝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작가님이랑 한 번 일을 해 보고 싶어서요.”


흔히 말하는 러브콜이었다.

현민으로서는 전화가 울렸을 때부터 대강 예상했던 것이었고,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조건은 이전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해서, 좀 더 신경을 좀 썼거든요. 하하. 전체 플랫폼 팔 대 이에 종이책 보장 인세도 드리겠습니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전속계약도 가능하시고요. 계약금은 다시 이야기해봐야겠지만···.”

“좋은 제안 감사드립니다.”


앤트미디어는 웹툰과 웹드라마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이었으니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다.

이곳과 계약을 맺는다면 현민의 작품도 더 푸쉬를 받을 수 있겠지.

그러나 여기서 덥석 무는 것은 현민의 의도와는 다르다.


“그런데 제가 좀 더 알아보고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다른 피디님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하셔서.”

“예? 아아, 그럼요. 그럼요. 물론이죠.”


파격적인 제안에 곧바로 승낙하길 고대한 모양이지만, 그렇지 않자 피디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다.


“하하, 작가님 그럼 쉬시면서 한번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현민은 전화를 끊었다.


“후!”


그리고 크게 숨을 내쉬고는 다시 모니터를 돌아봤다.

조회 수는 매분 매초 십 단위로 오르고 있고 댓글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오전에 올린 글은 순항 중.

댓글을 하나하나 읽는 현민의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웹소설 사이트에서 지난 몇 달간 베스트 10위권 안에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이 부동의 작품.

벌써 전개 후반에 접어들었고 초창기보다 순위가 조금은 내려왔지만 만족하지 않고 작품이 끝날 땐 더 높은 순위로 마감하기 위해 공을 들이던 참이다.

그의 저력을 반영하듯 10위까지 내려갔던 것이 지난주엔 7위, 이번 주엔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오늘 올린 것은 승부를 굳히는 회심의 일격.

이제 남은 것은 1위로 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


“후후후, 후후후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는 이 남자.

다른 사람이 보면 미친 사람인가 싶겠지만 데뷔작에서 지금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을 성공시킨 인기 작가, 조현민의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가 쓴 작품은 웹툰, 웹드라마로도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매니지먼트는 그와 전속계약을 맺기 위해 그에게 막대한 돈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쓰는 원동력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화도 결제했습니다. 충성충성 ^^7]

[진짜 ㅈㄴ 재밌네. 어케 뒤로 갈수록 재밌냐. 매일 이거 결제해서 보는 게 낙이다.]

[아 ㅋㅋㅋ 진짜 방에 가둬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음.]

ㄴ[너는 좀 방에서 나가]

[한 번 더 연참 안 됨? 제발.]

[조현민 그는 신인가? 조현민 그는 신인가? 조현민 그는 신인가?]


-우우웅.

-우우웅.


다시 울려대는 스마트폰.


[작가님, J스튜디오 정태규 피디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N출판사 김상철 팀장입니다. 이번 중쇄 관련해서 논의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

[작가님. 미팅 한 번 하시죠.]


온 세상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다.


‘이 인기! 이 관심!’


이 능력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면 느껴지는 희열!

그것에는 어떤 과일보다도 달콤한 풍미가 있었다.

한 피디의 제안을 단번에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도 이 달콤함을 더 즐기기 위해서다.


활동적이지 않은 성격 탓에 어린 시절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왔던 그였다.

시작은 초등학생 때, 재미 삼아 반 아이들을 소재로 썼던 글.

조악했던 그의 글을 반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즐거워했고 그는 일약 학급의 인기인으로 떠올랐다.

남몰래 짝사랑해오던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붙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자기도 보여 달라는 한 마디뿐이었지만 어린 현민은 그 한 마디에도 설레 밤잠을 설쳤었더랬다.

지금에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현민에게 있어서 글은 특별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창이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글을 갈고 닦아 이제는 그것으로 먹고사는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성공한 작가지.’


시간이 지나 소심한 성격도 많이 고쳤고, 돈도 제법 많이 모았지만 그는 글 쓰는 일을 계속했다.

그것만큼 그에게 짜릿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이대로 노년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해서,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국민 작가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 목표는 결코 허황한 것이 아니었고 그에게 있어선 예정된 일이었을 뿐이었다.

미래는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랬는데.


***


그는 갑자기 낯선 곳에 오게 된 것이다.


“으음···!”


현민은 가만히 서서 이세계물의 특징을 떠올려봤다.

이것이 정녕 이세계물이라면 왜 넘어왔는지 따윌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갔느냐, 왜 갔느냐가 아니라 가서 무엇이 되었느냐 하는 것.


“······.”


가만히 있어도 그대로인 것을 보니 기억이 흘러들어오거나 하는 종류는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무엇이 되었느냐를 확인하기 위해선 먼저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현민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각오를 굳히고 목소리를 크게 냈다.


“저어기, 아무도 없습니까···. 흡!”


그 목소리도, 입에서 나오는 언어도, 원래 현민의 것과 다르다.

깜짝 놀라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보니 손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당황하여 온몸을 더듬고 있는 찰나.


“아이고, 일어나셨습니까.”


저 멀리에서 다른 존재의 말이 들려왔다.

그 말도 현민이 아는 어떤 언어와도 같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에서는 그 의미가 재조립되어 들려왔다.

그걸 신기하게 여길 겨를도 없이, 극도의 긴장 상태로 현민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푸른색 안광이 도깨비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크기를 키우며 현민 앞까지 다가왔다.


“우와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슬며시 뜨니 그 앞에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늙은 늑대 한 마리가 사람처럼 서 있었다.


“허허, 마왕님 잠이 들 깨셨습니까?”


늑대가 그 입으로 말을 했다.


“아니면 이 야칸을 놀리시기라도 하는 겝니까.”


동물이 말을 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현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잠깐.’


그리고···.


‘마왕이라고!?’


경악은 끝이 없었다.


잘 나가는 웹소설 작가, 조현민은 마왕에 빙의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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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벽돌이 아닌 성으로 +2 20.01.03 109 3 11쪽
16 물러설 수 없는 싸움 +3 20.01.02 173 3 12쪽
15 왕을 향한 도전 +2 19.12.30 160 3 11쪽
14 시험 +3 19.12.27 140 6 12쪽
13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2 19.12.26 152 4 11쪽
12 거짓과 진심 +3 19.12.25 140 4 12쪽
11 그런 취급 받아도 될 사람 아니니까 +1 19.12.24 151 5 12쪽
10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1 19.12.23 162 4 11쪽
9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2 19.12.20 190 4 11쪽
8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 +2 19.12.19 191 3 11쪽
7 뜻밖의 선물 19.12.18 196 4 12쪽
6 천직이 작가인지라 +5 19.12.17 223 4 13쪽
5 그녀의 천직은 +2 19.12.16 230 4 12쪽
4 일탈 19.12.13 241 4 12쪽
3 마왕님의 우울한 여름 19.12.12 236 6 12쪽
2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12.12 301 4 11쪽
» 이세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1 19.12.12 530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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