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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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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인간
작품등록일 :
2019.12.12 15:15
최근연재일 :
2020.01.16 23:59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302
추천수 :
95
글자수 :
127,994

작성
20.01.14 23:59
조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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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법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DUMMY

헤나는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에이바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책을 손에 들었다.

그녀가 표지를 힐긋 본다.


“이상한 제목은 둘째치고, 작가가··· 론? 처음 듣는 이름인데.”

“무명작가 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합니다.”

“흐으음···.”


책을 펴 한 장 한 장을 넘겨보는 헤나.

헤나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읽어봐도 되죠?”

“물론이죠.”

“왕녀 전하, 설마···.”


그녀의 옆에서 갑옷의 사내는 염려스럽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괜찮잖아요, 읽는 것 정도는.”

“하지만 왜 그런 불경스러운 책을 구태여 읽으시는 건지 저는 ···.”

“내가! 읽고! 싶으니까요!”


또박또박 말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말하는 헤나.

그런 헤나의 반응에 마크는 마지못해 조용해진다.


“그럼 저희는 다음에 다시···.”


방 안에 감도는 묘한 긴장감.


“아니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니.”


일어서려는 주안과 에이바를 헤나는 막았고, 자신은 책을 들고 문밖으로 팽하니 나가버렸다.

커다란 응접실에는 이제 에이바와 주안, 그리고 그녀를 쫓아가지 않은 마크만이 남아있다.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진다.


“선배님···.”


주안이 에이바에게 손수건을 건네 왔다.

마크의 검이 닿았던 에이바의 볼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마워요.”


에이바가 그것을 받아 흐르는 피를 닦는 모습을 마크는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진 모르겠다만 왕녀 전하를 도발하고, 검이 눈앞에 들어와도 겁먹지 않는 모습까지. 어디 가서 자랑할 정도의 담력은 되는구나.”


갑옷 안에서 울리는 그의 말은 낮고 침착했다.

하지만 분명한 적의가 깃들어있다.


“행여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다면 접는 것이 좋을 것이야. 호기심에 보셨다고는 해도, 저런 책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지.”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그가 비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저희 길드원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만든 결과물이라고요. 읽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흥.”


주안이 소심하게 항변해보지만 그는 그것을 간단히 무시해버린다.

에이바가 갑옷투구 안의 어둠을 응시하며 물었다.


“만약, 왕녀 전하께서 그래도 ‘하겠다’고 답하시면요?”

“그럼 내가 막을 것이다. 왕실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

“그게 왕녀님의 의지에 반하는 거라고 해도?”

“나의 임무는 법의 수호자이신 국왕 전하께 부여받은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왕녀님의 수호기사라면서요? 그럼 왕녀님을 제일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더더욱 참견할 수밖에 없지. 주군이 길을 잘못 들 때, 목숨으로 간언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니까.”


마크의 생각은 확고했다.


“당신은 좀 더 왕녀님을 믿어주시는 게 좋겠어요.”


이후로 이들 사이엔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헤나 왕녀가 돌아온 것은 몇 시간이 흐른 뒤였다.

처음 그녀가 들어왔을 때처럼, 두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헤나의 얼굴엔 기분 좋은 미소가 가득 걸려 있었다.


“왕녀 전하, 책은···.”

“여러분의 전략이 통했네요.”

“네?”

“이런 글이라면 왜 내 그림을 넣고 싶어 했는지 알 것도 같네.”


음식의 맛을 음미하듯이 헤나는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가벼우면서 종잡을 수 없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깊이가 느껴져요. 읽는 내내 신기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도 이걸 쓴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지는걸요.”


에이바와 주안은 서로 눈을 끔뻑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웃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그럼···?”

“그리겠어요, 삽화. 신나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프히히···.”

“정말 그래 주시겠어요?”

“그림은 어디로 보내면 되죠?”

“아, 그럼 주소를 적어드릴게요. 아, 아니 필요한 기한을 말씀하시면 저희가···.”


하지만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왕녀 전하, 그만두십시오.”


예고했던 대로, 마크가 제동을 걸어왔다.


“일국의 왕녀가, 왕국의 적인 마왕을 소재로 삼은 글을 돕겠다니요.”

“그게 왜 안 돼? 여기 나오는 마왕은 나쁜 마왕도 아니던데? 마크도 한 번 읽어보든가?”


그러면서 녹색 표지의 책을 마크에게 건네는 헤나.

그러나 마크는 그것을 받아들지 않는다.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그 자체가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으음.”


헤나가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는 듯하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듯 손바닥 위를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럼 이건 어떨까? 삽화가의 이름은 익명으로 하는 거로!”

“괜찮으시겠어요?”

“오히려 그편이 더 재밌을지도?”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계속 고집을 부리신다면 전하께 보고를 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헤나가 삐죽 내민 입으로 볼멘소리를 냈다.


“삽화 몇 점 그리는 거로 왜 이렇게 겁을 줘?”

“왕녀로서 자각을 좀 가지십시오.”


그 말에 헤나의 인상이 눈에 띄게 잔뜩 찌푸려진다.


“몰라···. 난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아버님께 보고하든 말든 네 맘대로 해!”


그리곤 씩씩거리는 모습으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선배, 어떡하죠···?”

“······.”


주안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왕녀를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

헤나가 저렇게 떠나버린 마당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더는 없었다.

나중에 다시 기회를 잡는 수밖에···.


“···나가지. 내가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주마.”


한숨을 쉬며, 왕녀가 나가버린 문을 지켜보던 마크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


짧은 시간 동안 가졌던 알현이었지만 에이바는 헤나의 모습을 보고 한 이미지를 쉽게 그려볼 수 있었다.


‘크기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아이.’


속에는 아이 같은 순박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왕녀라는 자리가 그녀에게 어른스러움을 강요하고 있다.

그녀도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아이의 인내심이란 게 다 그렇듯 매번 샛길로 새고 마는 것이다.


“······.”


마크는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그들 앞을 걷고 있었다.

그때마다 왕녀를 잡아주는 역할을 맡은 것이 국왕이 임명했다는 이 마크란 사내.

억누르는 것처럼 보여도 마크는 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뿐이다.

충성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 그는 나름대로 왕녀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왕녀의 스트레스는 겹겹이 쌓여만 간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심리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일그러진, 수도의 전경.

그녀가 보고 있던 세계.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데 돌연, 앞서가던 마크가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곤 어떤 미동도 하지 않는다.


“···?”


둘러봐도 들어왔던 길과는 다르다.

그들은 어느새 성 내에 있는 작은 안뜰에 들어와 있었다.

주변에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저기··· 무슨 일이죠?”

“이곳이라면 방해받을 일도 없겠지.”


갑자기 마크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네?”

“한 번 마음을 정하시면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분이신데 너희가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었구나.”


뒤를 돌아본 마크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평온했다.


“이런 시답잖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셔선 안 되는 분이시다. 왕녀 전하께선 쉽게 포기하지 않으실 것 같으니, 대신 네놈들이 포기하게 만드는 수밖에···.”

“무, 무슨 소리예요?”


주안은 경계하며 에이바를 보호하기 위해 그 앞을 막아섰다.


“그 책을 내고자 하는 길드를 폐업시키거나, 작가를 심판대에 세우거나 뭐,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있지.”


다시 마크의 손에 검이 들린다.


“포기하고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면 무사히 되돌려 보내주지. 그래도 거부한다면 이번엔 생채기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마크의 진심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그의 검에 형형한 오러가 빛이 난다.

주안은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용기를 쥐어짜내며 그와 마주 보고 서 있다.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기특한 에이바였다.


“괜찮아요···. 주안 씨.”

“네···?”


에이바는 주안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그를 지나쳐 마크에게 다가왔다.


“당신은 그렇게 모시는 분의 마음을 무시할 셈인 건가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바른길로 인도해드리는 것이다.”

“그 바른길이란 건 누가 정했는데요?”

“오랫동안 왕실의 역사에 아로새겨진 왕실의 법.”

“그 길을 따르면 왕녀님이 행복해지기라도 하나요?”


마크를 노려보고 당당히 말하는 에이바.


“법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사람을 봐주세요.”


에이바의 당돌한 반응에 마크도 헛웃음을 내더니, 이내 으르렁거린다.


“외부인인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 상관 말고 꺼져라.”

“그렇겐 못 하겠다면요?”


마크가 오러를 띈 검으로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나서는 것도, 검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 무인(武人)인가?”


그리고 금방으로 휘두를 기세로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하지만 왕실의 수호기사에게 무기도 없이 대적하려 들다니, 오만하구나! 날 원망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 주안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선배님?”


에이바는 뒤를 흘긋 돌아보며 주안에게 눈을 깜빡여 보였다.


“여기서 본 거, 다른 길드원들에겐 비밀이에요.”


그 말을 신호로 에이바에게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곧 강렬한 전격의 줄기로 형태를 바꾸어 나간다.


-파지직

-파지지직!!!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현상에 투구 속에 감춰져 있던 마크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이건···!”


스파크가 튀어 불꽃을 일으킨다.


“어디 한번 해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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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재밌네 +2 20.01.13 80 3 11쪽
21 황금색 지붕의 여인 +2 20.01.10 104 3 10쪽
20 작은 디테일이 차이를 만든다 +2 20.01.08 126 3 12쪽
19 연결된 꿈 +1 20.01.08 110 3 12쪽
18 해후 20.01.06 104 3 10쪽
17 벽돌이 아닌 성으로 +2 20.01.03 109 3 11쪽
16 물러설 수 없는 싸움 +3 20.01.02 173 3 12쪽
15 왕을 향한 도전 +2 19.12.30 160 3 11쪽
14 시험 +3 19.12.27 140 6 12쪽
13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2 19.12.26 152 4 11쪽
12 거짓과 진심 +3 19.12.25 140 4 12쪽
11 그런 취급 받아도 될 사람 아니니까 +1 19.12.24 151 5 12쪽
10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1 19.12.23 162 4 11쪽
9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2 19.12.20 190 4 11쪽
8 이 세상 소설이 아니다 +2 19.12.19 191 3 11쪽
7 뜻밖의 선물 19.12.18 196 4 12쪽
6 천직이 작가인지라 +5 19.12.17 223 4 13쪽
5 그녀의 천직은 +2 19.12.16 230 4 12쪽
4 일탈 19.12.13 241 4 12쪽
3 마왕님의 우울한 여름 19.12.12 236 6 12쪽
2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19.12.12 301 4 11쪽
1 이세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1 19.12.12 52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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