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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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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56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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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3,963

작성
20.10.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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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추천
7
글자
11쪽

지켜보는 눈

DUMMY

“한번 죽고도 살아나는 건가, 용사란 것들은.”


전직 용사라는 시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상식을 벗어나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가름의 마안을 무력화시키기까지 한 걸 보고 내가 감탄 아닌 감탄을 내뱉었다.


겨울의 신인 스카디의 권능이 빙결과 깊은 연이 있는 것처럼, 원래는 저승을 지키던 가름이 가진 마안이 죽음과 연결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죽어야 할 자를 죽이고, 이승으로 나오지 못하게 지키는 게 녀석의 일이었으니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구분하는 아주 막중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신처럼 권능을 갖고 있진 않아도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였고, 한때는 그 신들과 대등하게 싸우던 마수인만큼, 그 많은 망자를 관리하려면 그런 눈을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가름ㅡ헬하운드가 가진 유일무이한 마안은 산자를 저승으로의 직행열차에 태워버리는 막강한 능력.


이 세계에서 가름의 마안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 위의 것이든 상관없다.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이 뭔지 모른 채 세 번, 그 붉은 눈을 들여다본 순간 이미 죽음은 확정된다. 그건 기묘한 속임수나 마법 따위가 아니다.

잘 익은 나무의 사과가 밑으로 떨어지듯, 당연한 자연현상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 세계의 것이라면 이 세계의 법칙에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저항조차 할 수 없어야 한다.


내가 고유스킬을 발동시키지 않는다면 나조차 그 눈에는 이길 수 없다. 이 세계의 모든 걸 부정하는 불합리한 결계를, 그 그리운 공기를 품지 않고서는 후회할 순간도 없이 끝이다.


가름은 붉은 유령을 놓친 후, 몇 번이나 마안을 진작 써야 했다며 후회했었다.


중간이 없고 죽음만이 있는 마안이었기에, 전략적 이용 가치가 있는 제국의 중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발했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알아서 자제한 모양이지만.


결국엔 천계의 방해를 받고 용사 후보를 놓쳐버린 건 그답지 않게 신중하게 움직인 게 오히려 독이 버린 케이스다.


범위의 대상을 골라서 적용할 수 있는 내 절대복종의 마안과는 다르게, 가름의 마안에 예외란 없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 번 보기만 했으면 모두 죽어버린다.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않으니, 강력하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큰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군과 나란히 싸우는 전장에는 절대 적합하지 않다.


자신의 부관이 나머지 계집을 쫓아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이기에 비로소 쓴 것이겠지.


어찌됐든 웬만해선 쓰지 않는 카드를 꺼내들었으니 가름의 승리로 끝났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게 파훼 됐다.


천벽인광의 첫 번째 빛ㅡ블레이즈는 확정된 죽음을 맞고 나서도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가 좀비마냥 일어나는 장면에 놀란 표정을 지은 자들도 적지 않다.


“죽은 상태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천벽인광과의 전투는 실시간으로 이곳, 마왕군 회의실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두 마리의 쥐새끼가 나의 영지인 제국령에 숨어들었다는 정보를 받은 시점에서, 일이 이렇게 될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와이어 대령이 방위군을 이끌고 제도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기습을 받을 것도, 지금까지의 적보다 월등히 강할 것도 전부 염두에 두었다.


현지의 영상을 비추는 마법수정들을 일대에 미리 설치해둔 건 첩보부 부장인 린의 제안이다.


바쁜 일정에서 억지로 시간을 짜낸 그녀는 단지 적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는 추후 확실하게 있을 현직 용사와의 싸움에 모두를 교육시킬 수 없다며 발을 벗고 나섰다. 린과 첩보부 요원들이 밤잠을 새가며 사각지대가 없도록 꼼꼼히 설치작업을 벌였지.


이런 린의 노력 덕분에 마왕군 고위 간부들은 용사와의 전투를 견학할 수 있었다.


신ㆍ마왕군 창설 이래 이 정도의 적과 싸우는 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전투데이터 분석을 위해 시간이 비는 간부들은 전부 입회해있다.


연구부 일등공학자인 키루아 덴트도다.


부재인 건 마침 연구소 정기순회를 돌고 있는 피아넬 비 코르니아스나, 아직 제국 정벌의 지휘를 맡은 류라이스 엘로이 정도다. 모든 영상은 녹화 중이었기에 크게 상관없었지만.


카니앗이 변변찮은 공격도 못 해보고 리타이어했음에도 그녀를 질책하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가름을 저리 고전하게 만들고 있는 놈이다. 위그드라실의 마법을 얻었다고 한들 카니앗이 근접전투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블레이즈와 먼저 맞닥뜨렸다는 건, 천벽인광의 부단장을 향한 칼날을 잔뜩 벼르고 있던 그녀에게는 안 된 소식이었다.


“스스로 부활한다니. 농담 같지도 않군. 저건 정말로 인간인가? 용사라는 건 저런 게 보통인가.”


“인간이면서 인간의 한계를 한참 벗어난, 괴물 같은 놈들이죠.”


류드라이가 내 말에 동의한다.


“놈은 마법진 없이 마법을 쓰고 있습니다. 저게 아마 놈의 고유스킬이겠지요.”


“분명 죽었음에도 다시 살아난 건?”


“불사조의 가호입니다.”


내 질문에 대답한 건 가름의 분투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는 린이다.


“하루에 한 번,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해주는 가호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보는 건 처음입니다만, 아마 몸의 시간을 하루 전으로 되돌리는 방법이라고.”


요컨대 시간조작의 응용이라는 거다.


시간을 되감는 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 대상을 몸뚱어리로 한정시킨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그렇다 해도 그런 술식을 상시 대기시켜두는 건 체내 마나가 없는 인간의 몸으로는 힘들겠지만 역시 신이 내린 가호, 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그럼 매일 한 번씩 죽기만 하면 나이도 안 먹고 살 수 있는 거 아님까?”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던 키루아가 귀를 쫑긋거리며 묻는다.


꼬일대로 꼬인 발상, 이라고 생각되는 질문이었지만 회의실의 전원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20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블레이즈가 비치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지난 인마전쟁은 70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용사로 활약한 그가 저런 외모인 것은 역시 이상하다.


키루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말이 되지 않을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자살이라니, 제정신이 박힌 자라면 할 리가 없지만 상대는 그 천벽인광의 광신도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 놈이 정말 그런 수단으로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해도 지금과 상관은 없다.”


나는 빨리 주제를 잘라버렸다.


“하루에 한 번 제한이라는 건 확실한 거겠지, 린?”


“예. 아무리 신이 내린 가호라 해도 무한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럼 됐어. 요컨대 두 번 죽이면 된다는 소리다. 나도 궁금하니 생포가 좋겠지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은 안 해.”


영상에서는 가름이 불타는 꼬리를 한창 펼치는 중이었다.


“역시 한 방에 끝나지는 않는 건가. 이전의 송사리들보다는 훨씬 더 크게 말썽을 피워대는군. 기껏 닦아놓은 제도의 도로가 다 박살 날지도 모르겠어”


내 표정을 읽은 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것 치고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기분이 좋아? 그건 당연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스크린에 비치는 블레이즈를 가리켰다.


“저건 적이다. 나의, 우리의, 마족 모두의 적이다.”


나는 사랑스럽게, 내 손을 펼쳐 영상을 어루만지듯 움직였다.


“나를 죽이려 하고, 나를 부정하고, 나를 가로막는 적이다. 나의 적은 언제나 환영이다. 결과의 성취를 더 보람있게 하는, 그런 존재다. 누군가의 목숨을 노린다는 건 뼛속 깊은 증오와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난 내 앞에 선 적들을 전부 소중하게 생각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내 입가에 걸린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게 대적하겠다고? 그만큼 고마운 일은 없지. 생명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싸움이 있었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 곧 인간의 본질, 그리고 나아가 생명의 본질인 것이다. 하나의 뜻이 다른 하나의 뜻을 꺾는 순간 우월성이 증명된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것. 그런 당연한 법칙을 나는 부정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쌍수 들고 환영하지.

이건 시작일 뿐이다. 저놈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더 강대한 적이 나타난다. 우리들의 비원을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는 자들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아주 보람차게 그들을 짓밟아주는 것이다.”


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레야는 흥미로운 눈을 했다. 류드라이는 혀를 날름거리며 눈을 빛냈고, 키루아 덴트는ㅡ


“...”


엄청 기괴한 걸 본 것처럼 한동안 입을 벌리고 있더니,


“역시 마왕님은 머리에 나사가 한두 개, 아니 좀 많이 빠졌슴다. 이건 뭐 저랑 필적할 레벨ㅡ”


“덴트 일등공학자!”


날카로운 린의 일갈에 바로 입을 다무는 키루아. 속으로 몰래 생각하던 게 밖으로 나와버린 모양이다. 아차, 하는 표정을 지은 그녀는 재빨리 주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렇게 혼자 싸우게 해도 되는 검까? 역시 가세해야 하는 게 맞지 않슴까.”


“흠.”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너는 가름이 질 거라고 생각하나?”


“그, 뭐... 저 다크엘프도 이미 자빠진 지 오래 아님까. 저런 괴물을 상대로 자신이 있는 게 이상한 검다. 뼈가 다 부러지기 전에 회수해야 하지 않겠슴까.”


가름이 들으면 상처받을 만한 말이다. 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들과 맞서 싸운 라그나로크의 마수라고 하는데도, 그런 이미지가 박혀있는 건 역시 제국에 사자로 가서 큰 성과 없이 돌아오는데 크겠지.


전 용사를 상대로 저렇게 맞서는 것에서 이미 선대 마왕보다는 강하다는 소리고, 철저히 객관적인 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마왕군 전력의 상위 다섯 손가락에 든다. 키루아의 박한 평가에는 가름의 껄렁껄렁한 태도도 반영된 영향이 클 것이다.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가름의 변호에 나선 건 대천사 가브리엘, 이곳의 유일한 천계 주민이다. 내가 의외라는 얼굴을 하기도 전에, 키루아가 갸우뚱하며 나섰다.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검까?”

“그의 눈은, 그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처럼 입을 다문 가브리엘. 회의실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는데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가브리엘, 지금 그 말은 가름의 마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 이외의 무언가가 있다는 건가?”

“그렇다, 주인.”


내가 묻고 나서야 가브리엘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죽인다는 건 움직이던 것을 다시는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 그는 그 능력을 단순히 저승으로 보내는 곳에 쓰고 있지만, 움직이는 건 생명의 원천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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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늑대의 가보 +2 20.12.28 18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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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마왕의 제안 +3 20.12.23 200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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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불행은 오늘도 입맛을 다신다 +1 20.12.10 184 9 13쪽
151 데드 맨 워킹 +4 20.12.06 224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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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불길한 기억 +1 20.11.10 205 6 10쪽
145 상실은 검게 피어 오른다 +2 20.11.01 238 8 10쪽
144 대참사 +1 20.10.28 217 7 11쪽
143 소동의 마무리 +2 20.10.26 257 6 12쪽
142 광신의 끝 +1 20.10.15 234 6 12쪽
» 지켜보는 눈 +1 20.10.13 223 7 11쪽
140 비뚤어진 신앙 +1 20.10.07 236 7 10쪽
139 번견의 눈 +3 20.09.28 249 7 11쪽
138 백과 흑의 격돌 +1 20.09.02 236 5 10쪽
137 흔들리는 빛 +3 20.09.01 252 5 10쪽
136 검은 거탑 +1 20.08.27 216 7 9쪽
135 같은 곳을 보고 있어도 +1 20.08.23 223 8 9쪽
134 더는 묻지 않을 수 없다 +2 20.08.21 233 6 10쪽
133 늑대의 깨달음 +3 20.08.17 258 8 9쪽
132 다음 타깃은 +5 20.08.16 280 7 12쪽
131 그 손을 잡으면 +1 20.08.08 240 6 10쪽
130 마왕의 성 +2 20.07.30 269 7 12쪽
129 그의 직업은 전 용사 +1 20.07.15 256 5 9쪽
128 충돌 +2 20.07.06 272 8 10쪽
127 꼬리 +1 20.06.08 277 7 8쪽
126 유디트 황국 +1 20.05.25 347 6 9쪽
125 신살 +2 20.05.19 322 9 10쪽
124 궁니르 +2 20.05.06 280 8 11쪽
123 그리고 빛이 +1 20.04.18 292 6 9쪽
122 사냥 +1 20.04.06 305 7 8쪽
121 죽음의 문턱. 그리고 거래 +2 20.04.02 288 8 9쪽
120 신살 +1 20.03.29 291 7 7쪽
119 스카디 +1 20.03.22 278 11 9쪽
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86 7 9쪽
117 함락 +1 20.03.15 288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26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86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78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0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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