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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447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20.06.08 00:41
조회
276
추천
7
글자
8쪽

꼬리

DUMMY

정각이면 경건한 종을 울리는 시계탑을 중심으로 세워진 벽돌 건물 앞에는 역시나 황국의 국교인 루미아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성스러운 자태로 인간을 굽어보는 여신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힘을 준다고 했다.


가름은 못마땅하다는 듯 여신상을 올려다보았다.


나름 시청이지만 이따금 지나다니는 민원인을 제하면 을씨년스럽게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여기는 어느 건물이든 전부 교회 같아 보이는구만.”


밖으로 나온 가름의 속마음은 그 자리 전원이 동의할만한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여기서 폭파해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잠자코 있던 부하 하나가 의견을 내었다.


“좋은 생각이야.”


가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조용히 들어왔는데 갑자기 터뜨리는 것도 좀 그래.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보자고.”


실은 안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조금 궁금한 마음도 있었지만.


“어서 오세요, 성기사님.”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 시청에 들어선 가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안내원.


역시 가름 뒤에선 가브리엘을 보고 조금 눈썹을 올리지만 그걸 집어 말하지는 않는다. 주제를 잘 아는 공무원이라고나 할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름이 미리 걸어둔 착란마법은 황국의 최심부에서도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나지막이 웃음지은 가름은 몸을 숙여 상체를 안내원에게 더 가까이 가져다댔다.


“그러면 사양 없이 단도직입으로 묻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선 적진에 잠입한 사람같지 않은 여유가 묻어났다. 설령 착란마법이 없더라도 당연히 황국 내부자로 착각할 정도의 뻔뻔함이다.


“천벽인광 나으리랑 볼 일이 있는데 말이야.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첫 번째라든지, 두 번째라든지.”

“저, 죄송하지만... 그런 것은 시청에 없습니다.”


칼같이 거절의 답변이 돌아오지만, 이것도 예상한 반응이다. 비밀결사가 이곳에 진을 치고 있다는 건 공무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걸 입에 담는 건 금지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발뺌해도 소용없어. 우리는 레인 추기경의 명을 받고 여기 온 거니까. 너도 나랏밥을 먹고 사는 공무원이니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자신 직할의 기사단으로 월권행위를 일삼는 추기경에 대한 정보는 가름이 앞서 황국의 정치적 상황을 사전 조사하며 얻은 것이다. 그렇게 깊이 파고들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에 대한 소문은 만연했다.


가름이 그 이름을 꺼내기로 한 이유는 레인 추기경이 거느린 수많은 추종자 때문에 교황조차도 쉽게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금이 무슨 상황이신지는 추기경께서도 잘 아실 텐데요.”


안내원의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지금 이러셔도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꼭 그들과 만나시겠다면 대주교님 중 한분과 직접 얘기하심이...”

“그 말은 즉, 레인 추기경의 명에 반하겠다는 소리겠지?”


그 말에, 안내원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못했다.


시청에서 안내원으로 일할 뿐인 공무원이 황국 최대 실세의 눈밖에 나는 건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혹시나 있을 출셋길이 전혀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


“천벽인광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입니다... 그걸 제가 어떻게 답변드릴 수는.”


겨우 항변을 하는 상담원. 하지만 가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온 건 천벽인광과의 면담을 위해서다. 순응하지 않으면... 알지?”

“...”


절대 물러서지 않는 가름의 기세에 안내원도 한풀 꺾였다.


“저도 공식 명부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가끔 지나다닌다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위치로 짐작 가는 곳은 있지만, 그곳은 출입금지라...”

“그걸로 충분해.”


가름은 상큼하게 웃었다.


“그래서 그 위치는?”


◆ ◆ ◆ ◆ ◆ ◆ ◆ ◆ ◆ ◆ ◆ ◆


“어이, 자꾸 사람들이 널 쳐다보는데. 들킨 건가?”


가름은 가브리엘에 묘한 시선을 보내는 공무원을 흘낏 보고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가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무리 신기하다 해도 저 시선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면 여기 놈들은 그런 취미라도 있는 건가?”

“황국민은 전원, 성마법에 높은 적성을 갖고 있다.”


가브리엘이 무심하게 대답한다. 가름이 억지로 씌운 모자는 여전히 쓴 채다.


“저들은 무의식적으로나마 내가 천사인 것을 느끼고 있다.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

“참 대단한 나라구만. 신앙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건가.”


복도 끝에 다다른 가름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 적혀있는 팻말이 달린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낙후된 연결통로가 하나 나왔다.


언뜻 보기에는 배관 따위가 있는 별 볼 일 없는 통로지만 가름은 자신 있게 들어섰다.


“그 안내원이 얘기해 준 거에 따르면... 이리로 내려가면 되거든?”


가름은 한명이 겨우 통과할 만한 작은 계단을 가리켰다.


몸을 비집고 들어가 한참을 내려가자니 겨우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의 통로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이 층의 유일한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가 있다는 것이다.


꾸벅꾸벅 졸던 그는 가름 일행을 보고 퍼뜩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기사님. 죄송하지만 여긴 출입금지ㅡ 억!”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경비병이 쓰러진다.


그들이 있는 곳은 시청의 지하 4층. 안내판에는 존재하지 않는 층이다.


가름은 손에 묻은 피를 대충 벽에 문질러 닦았다.


“문이라면 여기밖에 없구만.”


두꺼운 철문이 있는 것을 본 가름은 기세등등하게 문을 열려다, 잠겨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노크라도 해야 하나?”

경비병을 죽여버렸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다. 무슨 원리인지, 굳게 닫힌 철문에는 손잡이조차 없었다.


나름 보안이랍시고 무슨 기믹을 사용한 것이겠지.


똑똑똑.


문을 두드리지만, 안에서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화아악ㅡ


가름의 팔에 생겨난 불이 번지나 싶더니, 철문이 순식간에 휩싸였다.


“녹여버리면 그만이지.”


지옥사냥개의 불에 버틸 수 있는 금속은 현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름이 실실대는 사이 엄청난 고열에 녹은 철이 흘러내려, 그 뒤에 감추고 있던 공간을 보였다. 최소한의 조명으로 밝혀진 20평 남짓한 공간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황국의 비밀부대치고는 굉장히 단출하다고 볼 수 있는 사무실이었다.


회의용 테이블은 필요 이상으로 작았고, 벽은 아무런 장식도 거울도 없이 밋밋했다. 유일하게 있는 조형물은 교회에 가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여신 루미아의 조각상뿐이다.


“여기가 맞아? 예상했던 거랑 너무 다른데.”


여기저기 둘러보던 가름은 대뜸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없습니다.”


문을 다 열어본 부하들이 보고한다.


“다들 어딜 가신 거야. 이쪽은 여기까지 오는 준비과정만 한참 걸렸는데.”


책상을 손으로 쓸어보는 가름의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금방이라도 발도할 것처럼 검에 손을 댄 건장한 청년 하나가 녹아버린 문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보고에 있었던 천벽인광의 차림새와 일치하는 기분 나쁜 사제복이다.


“아무리 같은 성기사라도 여기는 출입제한입니다!”

“같은 성기사라.”


가름이 씨익 웃었다.


그는 양발을 테이블 위에 거만하게 올려놓고, 명령조로 말했다.


“너희 단장과 부단장을 불러와라. 레인 추기경의 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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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늑대의 가보 +2 20.12.28 18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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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마왕의 제안 +3 20.12.23 200 7 13쪽
154 엔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3 20.12.20 362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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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불행은 오늘도 입맛을 다신다 +1 20.12.10 184 9 13쪽
151 데드 맨 워킹 +4 20.12.06 224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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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바이러스 개발 +3 20.11.16 242 8 12쪽
146 불길한 기억 +1 20.11.10 205 6 10쪽
145 상실은 검게 피어 오른다 +2 20.11.01 238 8 10쪽
144 대참사 +1 20.10.28 217 7 11쪽
143 소동의 마무리 +2 20.10.26 257 6 12쪽
142 광신의 끝 +1 20.10.15 234 6 12쪽
141 지켜보는 눈 +1 20.10.13 222 7 11쪽
140 비뚤어진 신앙 +1 20.10.07 236 7 10쪽
139 번견의 눈 +3 20.09.28 249 7 11쪽
138 백과 흑의 격돌 +1 20.09.02 236 5 10쪽
137 흔들리는 빛 +3 20.09.01 252 5 10쪽
136 검은 거탑 +1 20.08.27 216 7 9쪽
135 같은 곳을 보고 있어도 +1 20.08.23 223 8 9쪽
134 더는 묻지 않을 수 없다 +2 20.08.21 233 6 10쪽
133 늑대의 깨달음 +3 20.08.17 258 8 9쪽
132 다음 타깃은 +5 20.08.16 280 7 12쪽
131 그 손을 잡으면 +1 20.08.08 240 6 10쪽
130 마왕의 성 +2 20.07.30 268 7 12쪽
129 그의 직업은 전 용사 +1 20.07.15 256 5 9쪽
128 충돌 +2 20.07.06 272 8 10쪽
» 꼬리 +1 20.06.08 277 7 8쪽
126 유디트 황국 +1 20.05.25 347 6 9쪽
125 신살 +2 20.05.19 322 9 10쪽
124 궁니르 +2 20.05.06 280 8 11쪽
123 그리고 빛이 +1 20.04.18 292 6 9쪽
122 사냥 +1 20.04.06 305 7 8쪽
121 죽음의 문턱. 그리고 거래 +2 20.04.02 288 8 9쪽
120 신살 +1 20.03.29 291 7 7쪽
119 스카디 +1 20.03.22 278 11 9쪽
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86 7 9쪽
117 함락 +1 20.03.15 288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26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86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78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0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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