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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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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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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3,963

작성
21.01.0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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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결국 놀이라고 하면 그것

DUMMY

현재까지 마왕군의 본 기지로 기능하고 있는 광맥지대는 이제 층마다 마왕군의 각종 시설이 들어차 있었다.


생활관, 식당, 무기고, 탄약고, 업무의 유사성에 따라 모은 부서 건물 등등.


오랫동안 던전으로만 쓰이고 게으른 전 주인에게 거의 버림받다시피 했던 지하 계층들이었기에 첫걸음은 조금 어수선했지만, 키루아를 포함한 드워프들이 매일 분발해준 결과, 군사시설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왕국과 제국이라는 두 강대국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자는 용도에 맞게 차곡차곡 쌓여 보관ㆍ관리되어 부족한 건 전혀 없었고, 널찍한 물류실에는 전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장교들이 교대로 근무를 서기 때문에 갑자기 필요한 게 생긴다고 해도 즉시 받아볼 수 있었다.


데트르 대륙의 인간이라면, 무수히 많은 마의 종족들이 한군데 모여 이렇게 체계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절대 믿지 못하겠지.


마족이라 함은 배고프면 인간의 마을을 불태우고 고기를 뜯어 먹는 야만적인 종족이 아니더냐! 라고 꾸짖을지도 모른다.


허나 누군가가 마왕군의 하루를 들여다본다면, 모든 장병이 자신의 보직에 충실하게 일과시간을 보낸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조직은 수많은 톱니바퀴가 제 기능을 하는 것으로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 작은 톱니바퀴들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건 결국 보직이다.


보직은 개개인의 종족특성과 능력을 파악한 뒤에 최종면접을 통해 배정되었고, 아직 배정받은 일이 익숙지 않은 인원을 위해 정기교육이 실시되기 때문에 조직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몰랐던 재능에 눈뜨게 되어, 마법에 뛰어난 하이엘프가 그보다 더 뛰어난 사격 실력을 보인 덕에 본인 희망으로 기관총의 사수로 배정되는 농담 같은 일도 있었다.


마족들에게 있어 마왕군은 군사조직이자, 바깥세상에서는 거리가 멀었던 교육과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왕군이 '인간적'으로 보인다 해도, 인류를 몰아내고 세계의 질서를 재확립시킨다는 어마무시한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조직인 건 틀림 없다.


그럼 그 마왕군이 준비하는 다음 큰 작전은 무엇인가.


황국 말살 작전이 깔끔하게 끝난 지금, 마왕군은 나날이 불어나는 병력을 나누기 위해 각각 왕국과 제국에 따로 주둔지를 만들고 있었다.


왕국에는 레야 대사가 의료센터의 관리를, 제국에는 스와이어 대령과 1개 중대가 머물고 있긴 했지만 아직 연대 규모의 병력이 주둔할 수 있는 곳은 준비되지 않은 채다.


물론, 현재 주둔 중인 병력이 충분한 힘이 없어서라는 게 이유는 아니었다. 소규모 병력으로도 일국의 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장비와 무력을 갖췄으니 말이다.


이유는 단순한 수용 인원 문제.


지금 이 순간에도 각지에서 신ㆍ마왕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곳 광맥지대를 찾는 마족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왕군? 어차피 인간에게 패배할 텐데 왜? 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마족은 제국을 속국으로 삼은 시점에서 이미 옛날이야기다.


단순히 인간을 향한 증오로 입대하는 자는 오히려 드물었고, 마족에게 꿈의 직장이라는 평판이 자자한 것에 이끌리는 지원자가 대다수였다.


꿈의 직장이라는 건 너무 과도한 평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마왕군에 입대하기만 해도 부유한 상인급의 생활을 누릴 수 있으니 딱히 틀린 소리도 아니다.


믿기 힘들겠다고? 그럼 병사와 간부에게 제공되는 복지혜택을 보시라.


병사들은 침대와 관물대가 딸린 널찍한 6인실 생활관이, 간부는 주방과 화장실이 포함된 1인실이 주어진다. 가족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관사가 허락된다.


이 주거시설들엔 온도조절마법 장치가 기본으로 딸려있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대의를 내세운 군대인만큼 당연히 숙박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니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마왕군 소속이라면 병사식당과 간부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어 시름시름 앓던 마족은 이제 식사시간에 제때 나타나기만 하면 대륙의 각종 진미로 배를 채울 수 있다.


무료로 이용하는 건 왕성에 지어진 의료센터도 마찬가지다.


마왕군의 일원이라는 신분을 증명하기만 하면, 하이엘프 의료진들이 고가의 치유마법을 아낌없이 제공해준다.


치료 후 회복할 때는 그 정도에 따라 기본 휴가에 포함되지 않는 병가를 낼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왕군은 대륙의 기축통화로 월급까지 나온다.


계급과 호봉에 따라 달라지는 이 월급은 쓰는 곳도 자유였기 때문에, 여름에는 휴가를 내고 아직 전란에 휘말리지 않은 해변마을 따위에 놀러가는 인원도 꽤 있었다.


요즘 날씨로는 절경을 즐기고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바이맨 산맥이 휴양지로 제격이겠지.


가끔 군생활에 문제를 토로하고 싶은 이는 익명의 설문조사로 해당 내용을 윗선에 올릴 수도 있다. 마왕군이 하나의 조직답게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걸 바란 누군가의 지시 덕이다.


휴가철에는 휴양지와 광맥지대 사이를 오 고가는 전이 마법진이 일주일 내내 열려있게 된 것도 누가 전이마법을 쓸 수 있는 간부와 동행하는 게 어렵다고 설문지에 적어 제출한 결과.


과연 이렇게 혜택을 뿌리고도 돈이 남아날 수 있겠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긴 했다.


하지만 제국을 속국이라는 이름으로 흡수한 덕분에 수입도 꽤 쏠쏠하다.


기존의 제국군에 쓰이던 예산을 일부 가져오니 이런 마왕군의 혜택을 유지하는 것에 부담은 없었다.


전쟁을 주도적으로 일으키는 쪽에서 사상자도 거의 없으니, 마족들이 부푼 가슴을 갖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겠지.


나, 마왕 류셀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손에 턱을 괴고 있었다.


내가 지켜보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몇 번이나 현장책임자인 간부가 안절부절못하다 갔지만, 집무실(알현실이라 읽는다)에 있어봤자 무료해서 현장을 구경나온 나는 딱히 부하의 업무태도를 점검하기 위해 나온 게 아니었다.


지금 제3계층에는 기존의 리볼버보다 유효사거리를 늘리기 위해 기술연구부에서 만든 라이플의 프로토타입이 잔뜩 담긴 상자를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러고 보니 슬슬 사단장이 필요한데.”


그걸 지켜보던 나는 무심코 혼잣말을 했다.


사단장은 보통 원스타나 투스타ㅡ즉 준장이나 소장이 맡게 된다.


마왕군이 아직 규모가 적었을 때는 필요 없었지만, 슬슬 1개 사단을 넘어 2개 사단 규모로 커지려는 지금은 꼭 필요한 보직이다.


마왕군 전체에선 당연히 내가 마왕ㅡ총사령관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몸이 여러 개도 아니고 일일이 각 부대를 지휘하며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나는 내 부재 때에도 알아서 각자 잘 기능할 수 있는 조직도를 원했다.


사단은 두 개니 필요한 사단장 자리도 두게.


마왕군 병력의 대부분인 보병단 지휘부 총괄은 하이오크인 류라이스 엘로이 준장이 맡고 있다.


그는 제국 침공작전에서 준수한 성과를 보였고, 자만에 취해 독단으로 작전내용을 바꾸는 실수를 하지도 않았다.


제1사단장은 류라이스 엘로이에게 맡겨도 괜찮겠지. 그도 야심이 있는 남자다. 소장으로 진급할 기회를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제2사단장을 누구에게 맡기냐, 다.


준장인 가름은 이미 군무부 총사령관 권한대행으로 일이 바빴고, 마찬가지로 같은 계급의 피아넬 코르니아스는 실내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서 지휘관에 어울린다고 할 순 없다.


마지막 원스타인 군수지원부의 바실리스크, 류드라이 부장도 주어진 임무가 너무 막중하므로 덜컥 인수인계하고 다른 자리로 보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마왕군에서 제일 바쁜 부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대량의 물자가 나가고 들어오는 군수지원부였으니.


그렇다면 남은 장성들은 린이나 스키잔 정도.


린은 중장이라 사단장을 맡기기엔 조금 계급이 높은 걸 감안하면, 역시 그 바로 밑의 계급인 스키잔이 알맞다.


군무부 총괄인 그녀의 조력이 있기에 가름이 어떻게든 업무량을 해결하고 있긴 하지만, 스키잔의 부재는 다른 인력으로 메꾸면 되겠지.


가름이 불평하겠지만 역시 어쩔 수 없다. 스키잔 소장 말고는 마땅히 고를 장성이 없으니까.


스와이어 대령이 진급하면 해결될 문제지만, 아직 그의 진급심사가 열리려면 한참 남았다.


“사단장... 사단장이라.”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으니,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사단장 말씀이심까!”


당연하다는 것처럼 서슴없이 내 팔에 안겨 오는 가슴.


엘프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풍만하다고 볼 수 있는 가슴은 헐렁하게 입은 탱크톱 덕분에 중요한 곳이 보이고 있었다.


그 얼굴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난 노출증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키루아.”


“옙, 저인 검다!”


드워프 특유의 작은 신장으로 내게 딱 달라붙은 건 기술연구부의 일등공학자인 드워프 소녀, 키루아 덴트다.


토끼종의 아인의 것과 닮은 귀가 쫑긋 솟아 내 귀를 간지럽힌다.


어딜 봐도 살색이 가득하지만, 참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게 평소보다 노출이 적은 편이라는 것.


평소라면 위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멜빵바지로만 아슬아슬하게 중요 부위를 가리고 있었겠지.


“오늘은 비번이라서 말임다. 일할 땐 더우니까 덜 입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읽었는지, 키루아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한다.


“딱히 내려오신다는 말은 없었는데. 오늘도 시찰이심까?”


“시찰 정도는 아니고, 작업장을 둘러보는 것 정도지.”


내가 성욕은 원체 많은 편이 아니지만 이렇게 거의 알몸인 채로 안겨 오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꾸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진다.


나는 슬슬 키루아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보통은 알아서 오버액션을 취하며 뒤로 쓰러질 키루아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좀처럼 비키려 하지 않았다.


“마왕님. 요즘 큰 사업도 하나 끝났는데 피곤하시지 않슴까? 이럴 때가 번뇌에 가득 찰 때 아님까.”


눈을 빛내는 키루아.


“뭣하면 한 발 빼 드려도 괜찮슴다?”


키루아는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대는, 무척이나 천박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지켜보는 남자에게 효과는 발군이었지만.


“너, 술 마셨냐?”


순간 마왕이라는 걸 깜박하고 나답지 않은 말투가 튀어나왔다.


“뭠까! 제가 설마 취기에 덜컥 이런 제안을 할 거라고 생각한검까!”


화난 척을 하며 키루아가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마왕님. 그때 저랑 한 약속 기억하심까?”


“약속?”


“목욕권 말임다! 제가 개틀링건을 만들어서 약속해주시지 않았슴까?”


기억을 되짚어보던 나는 제국침공전, 키루아가 개틀링건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직접 칭찬해준 것을 떠올렸다.


그때 분명 키루아는 포상으로 목욕권을 받겠다고 했었지. 난 승낙?한 적이 없지만, 문제는 제대로 거절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8계층에 새로 지은 온천이 있다고 들었슴다. 여기서는 마왕 파워로 전세를 내고 저랑 단둘이 가는 검다! 첫날은 맛있는 걸 먹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그대로 후끈후끈한 하룻밤을 보내고, 두 번째 날은 마찬가지로 맛난 걸 먹고 집에 돌아오는 검다!”


“그건 목욕이 아니라 1박2일 온천여행이다만...”


이걸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리하던 나는 그럴 방도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키루아가 포상 이야기로 목욕권을 꺼냈을 때 제대로 거절하지 않은데 크다. 게다가 키루아 덕분에 보병단의 전력이 큰 폭으로 증강된 것도 사실이고.


제대로 포상을 주지 않는다면 부하에게 일만 시키고 부려먹는 상사가 된다.


“알았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지금 해치우도록 하지.”


“와아! 정말이심까! 해낸검다!”


키루아가 방방 뛰며 기뻐한다. 그 정도의 포상은 아닐 텐데.


뭐, 같이 온천이라면 시이나와 이스와도 해본 적이 있고.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겠지.


ㅡ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너, 키루아... 아무리 단둘이라 해도 밀착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이번엔 완전한 알몸으로 내 위에 올라타 있는 키루아에게 내가 달래듯이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8계층에 신설한 온천에 와있다. 평소라면 누구나 출입이 허가되지만, 오늘만큼은 나와 키루아의 전세다.


“마왕님. 저거 멋지지 않슴까? 제가 깎은 검다!”


멋들어지게 꾸민 돌 조각상을 가리키며 키루아가 내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비볐다.


자신보다 한참 작은 몸이 올라타 있으니 사촌 동생을 목욕시켜주는 것 같지만, 문제는 키루아는 사촌 동생도 아닐뿐더러 작은 신장을 제외하면 어딜 봐도 절대 아이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래 봬도 키루아는 이 세계에서 엄연한 성인이니까.


“이봐, 키루아ㅡ”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골치가 아플 것 같아 키루아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제가 쓴 목욕권이니까 마왕님은 가만히 있는 검다! 마음껏 만져지고 만지는 검다. 전부 다 포함된 목욕권임다! 아버지도 무슨 일이 생겨도 오케이라고 한 검다!”


그렇게 말해지니 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을 되짚어보며, 무슨 잘못된 선택이 나를 이 상황으로 이끌었는지 고민했다.


“옷?”


키루아의, 토끼 귀를 닮은 복실복실한 귀가 전기라도 오른 것처럼 찌릿하고 솟았다.


그리고 나를 향하는 건 능글맞게 웃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


“맨날 철벽 치던 마왕님도 역시 저한테 흥분하신검까? 단단한 게 제 엉덩이를 자꾸 밀어 올리고 있슴다.”


“자꾸 비벼대 놓고 할 소리인가 그게...”


어쩌다 부하와 이런 야릇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 건지. 이건 어디까지가 포상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갈 수 있는 행위일까?


“마왕님. 저는 마왕님 눈에 매력 있슴까?”


“그 이상한 말투만 빼면 미인 반열에 들겠지.”


문득 키루아가 진지하게 물어와,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마왕님이 그렇게 봐주신다면 저도 사양하지 않겠슴다!”


키루아가 일어서서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나를 보았다.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았음에도 부끄럼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그녀의 가슴에 물방울이 맺혀 똑, 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한발, 아니 여러 발 빼 드려야겠습니다! 저의 여러 군데로 말임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머리를 뒤로 넘기고 기어오는 듯한 자세로 입을 벌린 키루아.


나는 그래도 선은 넘지 말라며 손을 들어서 막으려다, 순간 될 대로 되라지, 라고 생각해버렸다.


엄밀히 따지면 생물조차 아닌 존재인 나지만, 일단 알맹이는 남자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상대를 끝까지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항상 활발한 키루아가 이런 것으로 상처받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세계로 넘어와서 누군가와 사귀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결혼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에게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키루아와 선을 넘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나는 동정도 아니니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부하와 성관계를 가지는 건 도덕적으로 어떨까, 싶지만 상대도 충분히 그럴 마음인 것 같으니 상관없겠지. 이스도 성욕이 동할 때면 가끔 내 침실에 숨어들어오고 하니 말이다.


내가 무성애자도 아니고, 관능적인 몸의 미소녀 드워프가 이렇게까지 몸을 섞기를 원하는데 거절할 사람은 아니다. 여기선 감사하게 받아먹는 게 당연하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뭣하다만, 진심인 건가?”


여기에선 역시 상대의 의사가 중요했다. 내가 이 세계에선 아무리 마왕이라도 그럴 마음 없는 여자를 강요하는 호색한이 되기는 싫었던 것이다. 협박과 강요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에 한해서라는 내 철칙이다.


“당연한 검다! 마왕님 말고는 제가 이런 거 할 상대, 생각도 못함다!”


나름 배려한답시고 물어본 거지만,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키루아가 씩씩하게 답한다.


“이제 와서 뭐하지만 역시 대단한 사이즈··· 뭠까, 마왕은 보통 다 이런 좋은 물건을 갖고 있는 검까.”


“뭐, 이렇게까지 됐으니 어쩔 수 없나.”


체념한 듯한 표정을 보인 나를 보고 키루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잘 먹겠슴다ㅡ”


자신 있게 아앙, 하고 남성을 물고 시작된 그것에 대해 뭐라고 평을 내리면 좋을까. 일단 내가 전생에서 경험해본 대부분 여자보다는 한 수 위였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내게는 꽤 놀라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좋겠지.


내 숨이 가빠지고, 밑에서 열중해있는 키루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분 지났을까.


“키루아, 슬슬ㅡ”


“!!”


갑자기 밀어닥치는 것에 놀라면서도 꿀꺽, 전부 넘기고 상체를 핀 키루아는 입맛을 다셨다.


“한번 뺐는데도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이지 말임다...”


키루아는 압도당한 것처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것을 보았다.


“애초에 드워프와 인간이 가능하긴 한 건가? 아무리 봐도 안 들어갈 것 같다만.”


“인간과 가족까지 꾸린 드워프도 있으니까 당연히 가능하지 말임다. 하긴 저도 살짝 의심스럽긴 함다. 여기까지 닿는다는 소린데...”


키루아는 살짝 긴장했는지 길이를 가늠해보며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뭐 해보면 암다, 그럼 바로 본방 들어가겠슴다. 처음치고는 조금 버거운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하겠슴다!”


“잠깐, 키루아. 처녀인가?”


키루아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한다.


“굳이 이런 거에 흥미가 없었으니 당연한 거 아님까? 절 흥분시킨 건 마왕님이 처음임다. 방금 마왕님 거 마시고 완전히 스위치 들어가 버렸슴다. 꼭 밑으로도 받고 싶은 검다.”


처녀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라는 건 이 세계에도 통용되는 공식이다.


여자에게 한 번뿐인 경험은 특별한 상대에게 남겨두고 싶은 만큼 소중한 것.


표현이 조금 서툴지만 아마 키루아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 거겠지. 기특한 녀석이다.


나는 키루아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무리하지 마라. 내가 리드하지.”


그대로 키루아를 가볍게 안아 올린 나는 온천에 구비된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저, 마왕님이 좋슴다. 멋지고 강하고 잘생기고, 암튼 사랑함다.”


두 팔을 벌리고 사랑을 고하는 건 뭐라 해야 할까, 역시 키루아 덴트다웠다. 충분히 낯부끄러워할 만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빙 돌려 말하는 게 전혀 없다.


“그러네. 나도 너 같은 성격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잠깐, 진지한 사랑 고백에 너무 어설픈 답변 아님까? 저 말고 여자 홀리고 다녀도 좋지만 제대로 마왕님도 말ㅡ”


항변하는 키루아의 입을, 내 입으로 막는다.


조금 당황한 두 팔과 다리는 곧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볼이 발그레 상기된 키루아가 속삭였다


“처음이라고 살살 해주는 건 필요없슴다. 저를 천국으로 보내주시지 말임다. 풀파워로ㅡ꺄읏!”


나는 요청받은 대로, 망설임 없이 한방에 끝까지 허리를 밀어 넣었다.


피임은 문제없다. 이 세계는 대단히 편리해서, 그런 종류의 마법도 있으니까.


“거ㅡ거기 너무 깊슴다!”


용케 그걸 전부 받아들인 키루아의 몸이 요동치며 살짝 튀어 오른다.


역시 무리인가 하고 키루아의 얼굴을 보니, 그건 고통보다는 쾌락에 훨씬 가까운 쪽이었다.


“그런 곳 닿아버리면ㅡ오오, 오오옷!”


“처음치고는 그런 교성을 낼 줄 알잖냐.”


“그건 마왕님이 너무 커서ㅡ아앗ㅡ!”


들을 사람 없는 신음이 시설을 가득 울렸다. 그리고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


그로부터 2여 시간 후, 동양 느낌이 물씬 나는 가벼운 옷을 걸치고 온천을 나오는 키루아의 얼굴은 무척이나 뽀송뽀송해져 있었다.


“역시 마왕님은 밤일도 발군임다. 앞으로는 가끔 부탁드려도 되겠슴까? 기왕이면 다음부터는 위험하게 해서 출산휴가 쓰고 싶슴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물어오는 키루아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네가 말했던 포상... 목욕권이라고 했지. 그걸 또 받을 만큼의 성과를 내면 혹시 또 모르지.”


“오옷ㅡ 당장 연구에 매진하는 검다! 더 대단한 무기를 만들어 내주겠슴다!”


기합을 넣으며 다짐하는 키루아.


그 일은 일탈이라고 해야 할지, 남녀 사이에 충분히 일어날만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마왕이 드워프 계집을 안으셨다ㅡ그 소문을 듣고 린이 울상이 되어 불공평하다고 같은 걸 조르며 찾아오는 건 불과 다음 날의 일이다.


작가의말

“과연 이 친구가 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까?”


야스신을 넣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이 편을 쓰고 나서 한 일주일은 매일 고민한 것 같아요.


성관계가 암시된 적은 있어도, 간접적으로나마 나온 적은 없었거든요. 이전부터 넣고 싶었던 적은 있었지만 아직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한창일 때라, 그래서 고민했는데..


결국 들어간 건 역시 주인공은 금욕적인 성격이 아니라, 모든 욕망을 긍정하는 스타일이라 그런 거겠죠.

마피아로 한평생 살아온 그 성격상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주위의 유혹을 거절하는 건 설정붕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끈하게 할 건 해버리고 할 일에 집중하는 그런 스타일이겠죠.

수험생으로 예를 든다면 랭겜을 화끈하게 몇판 돌리고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시험공부에 매진하는 그런 놈일까요.

사실 이전 시점에 주인공이 이스와 잠자리를 가진 건 이미 뒷설정으로 있었는데요 (시이나와 이스가 섹드립치는 거 보면 짐작이 갑니다. 이스도 결단력은 만만찮으니 꾸준히 섹드립, 어필이 나오는데 160화 동안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이게 조금 뜬금없었다면 아마 제가 주인공 성격을 완전히 이해시키지 못했거나 떡밥을 잘못 깐거겠죠.

보통 한사람을 고집하며 순애를 불태우는 주인공이었다면 거절을 거듭하는게 말이 되지만, 감정은 별로 없지만 일단 남자이기에 성욕은 있는 류셀이 같은 ‘고자’ 패턴을 따라가는 건 이상했기에 이런 한겨울밤의 꿈 같은 에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철저히 건전한 마왕? 이라는 건 아침 만화영화에나 나올것 같고... 역사의 왕들을 봐도 왕이 관계를 가지는 게 빠지지는 않죠. 색욕은 보통 권력에 따라오니까. 

등장은 한참 전에 하고 아직 크게 활약은 하지 않은 키루아 입니다만, 성적으로도 주인공에게 끌린다는 언급은 등장할때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통계상 10퍼센트의 여성독자분들에겐 조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묘사는 역시 불편해서 멀리했고, 15세이용가에 허용되는 표현으로 묘사해보았습니다. 읽기에 부드럽게 넘어가면 좋겠네요. 

후끈후끈한 부류의 소설이 아니라 자주 나오는 전개도 아니겠지만, 역시 그래도 정기 업로드에 올릴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아 평일에 올립니다. 

그럼 이만 총총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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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2 구원 요청 +1 21.01.10 192 6 15쪽
» 결국 놀이라고 하면 그것 +6 21.01.09 203 7 20쪽
160 다크엘프 대 신벌의 대행자 +4 21.01.07 241 7 19쪽
159 폭력 후에는, 공허가 남는다 +2 21.01.04 199 7 14쪽
158 여우와 정령의 방문 +5 21.01.03 199 6 17쪽
157 늑대의 가보 +2 20.12.28 189 6 11쪽
156 영예로운 끝 +3 20.12.27 220 8 18쪽
155 마왕의 제안 +3 20.12.23 203 7 13쪽
154 엔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3 20.12.20 363 6 13쪽
153 배우, 무대 위에 오르다 +1 20.12.14 216 8 13쪽
152 불행은 오늘도 입맛을 다신다 +1 20.12.10 185 9 13쪽
151 데드 맨 워킹 +4 20.12.06 227 6 16쪽
150 커져가는 불씨 +3 20.12.04 210 5 15쪽
149 흘러내리는 피 +5 20.11.30 238 7 15쪽
148 임박한 어둠 +2 20.11.20 208 5 11쪽
147 바이러스 개발 +3 20.11.16 243 8 12쪽
146 불길한 기억 +1 20.11.10 206 6 10쪽
145 상실은 검게 피어 오른다 +2 20.11.01 239 8 10쪽
144 대참사 +1 20.10.28 217 7 11쪽
143 소동의 마무리 +2 20.10.26 258 6 12쪽
142 광신의 끝 +1 20.10.15 234 6 12쪽
141 지켜보는 눈 +1 20.10.13 224 7 11쪽
140 비뚤어진 신앙 +1 20.10.07 236 7 10쪽
139 번견의 눈 +3 20.09.28 252 7 11쪽
138 백과 흑의 격돌 +1 20.09.02 238 5 10쪽
137 흔들리는 빛 +3 20.09.01 252 5 10쪽
136 검은 거탑 +1 20.08.27 217 7 9쪽
135 같은 곳을 보고 있어도 +1 20.08.23 223 8 9쪽
134 더는 묻지 않을 수 없다 +2 20.08.21 233 6 10쪽
133 늑대의 깨달음 +3 20.08.17 258 8 9쪽
132 다음 타깃은 +5 20.08.16 280 7 12쪽
131 그 손을 잡으면 +1 20.08.08 241 6 10쪽
130 마왕의 성 +2 20.07.30 269 7 12쪽
129 그의 직업은 전 용사 +1 20.07.15 256 5 9쪽
128 충돌 +2 20.07.06 272 8 10쪽
127 꼬리 +1 20.06.08 278 7 8쪽
126 유디트 황국 +1 20.05.25 349 6 9쪽
125 신살 +2 20.05.19 322 9 10쪽
124 궁니르 +2 20.05.06 280 8 11쪽
123 그리고 빛이 +1 20.04.18 292 6 9쪽
122 사냥 +1 20.04.06 305 7 8쪽
121 죽음의 문턱. 그리고 거래 +2 20.04.02 290 8 9쪽
120 신살 +1 20.03.29 293 7 7쪽
119 스카디 +1 20.03.22 278 11 9쪽
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87 7 9쪽
117 함락 +1 20.03.15 289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26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88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78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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