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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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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6.22 21:55
연재수 :
308 회
조회수 :
137,582
추천수 :
3,292
글자수 :
1,713,963

작성
20.05.25 01:01
조회
348
추천
6
글자
9쪽

유디트 황국

DUMMY

“저게 황국인가.”


하마터면 재채기할뻔한 가름은 코에 붙은 흰 깃털을 떼어내며 말했다. 평범한 깃털로 보이는 그것은 땅에 닿기 전 녹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 원래 주인인 가브리엘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려는 천사의 깃털은 린에 의해 요긴하게 쓰여, 벌건 대낮에 마왕군 본거지를 습격하고도 뻔뻔히 살아 돌아간 성기사 계집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가름 일행이 서 있는 곳은 작은 언덕으로, 황국의 수도로 들어가는 관문과 멀지 않은 곳이다.


“여기 작전지역 지도입니다, 준장님.”


아인이 건넨 지도를, 가름이 보기 좋게 펼친다.


“대놓고 쳐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기왕 선수를 치는 것 한번 은밀하게 가보자고.”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지점이 바로 천벽인광 놈들이 숨어있는 곳ㅡ시청이다.


시청은 황국의 수도인 에브닌에 들어가서도 제일 중심에 있는 건물. 별 생각 없이 들어가다 중간에 발각될 경우 수도, 아니 황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건 불보듯 뻔했다.


마족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 국내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면 눈에 불을 켜고 군대가 출동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전이한다 한들 한 번에 시선을 끌 테니 역시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수상쩍은 군복을 입은 자를 수상쩍게 여기지 않을 리도 없을 테고.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은 가름은 물론 다 생각해둔 게 있었다.


자잘한 마법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그가 유일하게 능숙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마법ㅡ착란 마법으로 우리가 입은 군복을 저들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일정 시간의 준비작업이 필요했기에 전투에는 크게 쓸 일이 없다만 이번엔 꽤 유용하게 써먹을 생각이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마왕군의 군복을 황국 성기사단의 복장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 작전을 위해 군복에 기본으로 걸어둔 착란 마법에는, 황국 성기사단과 매우 다른 마족의 인상착의는 무시할 정도의 가벼운 최면 또한 걸려 있었다.


물론 이번에 쓰는 것은 보는 이를 대상으로 자동으로 발동하는 착란 마법치고는 위력과 범위가 매우 약한 축에 속한다. 그것도 전부 계산대로였다.


상대는 황국. 일정 레벨 이상의 정신마법에 대해서는 대책을 세워놓았을 수도 있으니 그 정도가 한계인 것이다. 너무 욕심을 부리다간 바로 들통나 경보가 울릴 수도 있었다.


최면의 효과 범위 밖인 꼬리는 바지 속에 넣고 귀는 모자로 가렸으니 변장은 완벽하다. 인간들이 보는 가름 일행은 존중받아 마땅한 성기사들로 보이겠지.


“물론 들킨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어. 전부 불사르면 그만이니.”


가름은 준비 만전인 상태로 그의 명을 기다리는 부하들을 살피다, 눈썹을 모았다.


“근데 천사 너. 그 차림으로는 너무 눈에 뜨지 않냐? 네 역할은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다주는 것 아니었어? 같이 오려고?”


옛 신화책에 나올만한 토가를 걸친 맨발의 소녀. 거기까지만 해도 수상쩍지만, 등 뒤에 날린 거대한 날개는 절대 보고 지나칠 만한 것이 아니다. 특히 종교에 미쳐 날뛰는 황국 놈들이라면 더더욱.


“가능하면 황국을 직접 보고 싶다.”


가브리엘은 짧게 말했지만, 보통 정해진 명령밖에 수행하지 않는 천사가 이렇게 의지를 표현하는 건 매우 보기 드문 일이었다.


류셀ㅡ보스가 시키는 일이 없을 때는 어두컴컴한 지하 예배당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종일 무릎을 꿇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자신의 의지가 있는지도 불확실했던 천사가 이리 말한 것은 가름에겐 놀랄 노자였다.


“굳이 네가 안와도 딱히···”


거절의 말을 담으려던 가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늘이 드리워진 가브리엘의 얼굴을 한번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야 너를 동행시키면 안 된다는 보스의 명은 없었다만···”


가브리엘은 천사. 광신도들로 가득한 황국에 데려가기엔 좀 뒤가 켕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 생각은 부하들도 품고 있겠지. 한솥밥을 먹는 사이임에도 여전히 천사에 대한 거부감을 얼굴에서 지울 수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갑작스레 하늘에서 내려와 마왕의 종을 자처한 대천사, 가브리엘.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부하들이 불신한다 해도, 가름은 이 작은 소녀가 그의 주인의 충실한 종으로서 묵묵히 일해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신뢰해도 좋다는 투의 명령도 있었고.


마음을 정한 가름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았다, 알았어. 그건 그렇다 치고, 들어가서 걷다 금방 교회로 끌려가서 황국 놈들한테 추앙받을 일 있냐? 그 날개라도 좀 숨겨봐.”


고개를 끄덕인 가브리엘은 날개를 접더니, 마치 몸속에 넣기라도 하듯 거대한 날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머리 위에 링은?”

“이건 지울 수 없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고개를 젓는 가브리엘.


가름은 한숨을 푹 쉬고 쓰고 있던 전투모를 벗어 가브리엘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전투모쯤이야 주머니에 구겨 넣은 것이 남아있으니 부족할 일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내 지위를 상징하는ㅡ”

“아, 아. 됐으니까 가기나 합시다잉.”


아무리 변장을 위해서라고 해도 성스러운 고리에 모자를 덧씌운다는 게 아무래도 불만인 가브리엘이었지만, 가름은 일부러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출입을 위해 지어진 성을 따라 길고 긴 성벽이 나 있고, 혹시라도 모를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경계태세는 만전이다.


제국과도 어깨를 나란히 견줄 정도의 나라지만 의외로 나열한 사람들의 줄이 짧은 걸 보고 가름은 의아해했다.


“어이.”


제일 뒤에선 자의 어깨를 툭 치니, 뭔 일인가 싶어 돌아본 상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저, 저는 이교도가 아닙니다! 단지 교회에서 부탁한 물품이 있어 들어가려는 것뿐입니다!”


가름 일행을 황국의 성기사단으로 착각하게 하는 착란 마법이 제대로 걸려 있음에 흡족해하며, 가름은 상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하나 물어보자. 원래 황국 입국 심사줄은 이렇게 짧은 거야?”

“그야...”


상인의 신분으로 성기사에게 말을 하는게 어려워 대답을 잘못한다는 흐름을 읽은 가름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등을 탁탁 쳤다.


“긴장할 것 없어~ 제대로 대답만 해주면 돼. 아니면 말하기 싫기라도 한 건가?”

“아, 아닙니다! 화ㅡ황국은 그, 원래 외지인이 들어가기엔 좀 뒤숭숭한 곳이지 않습니까...”


상인은 말을 더듬으면서도 띄엄띄엄 대답했다.


“자칫 잘못하면 이교도로 몰려 종교재판을 받으니까요... 저, 이만하면 가봐도 되겠습니까...?”

“종교재판이라는 걸 받아서 이교도로 판명나면? 어떻게 되지?”

“그야 화형... 운이 좋으면 교수형 아니겠습니까. 이교도와 마족은 씨를 말리는 게 황국이니까요···”

“그렇구만, 그렇구만.”


이방인에 대한 태도는 대충 알았다. 마족을 배척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동족인 인간마저 그리 쉽게 화형대에 세운다는 건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본 가름은 고위 공직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불만을 담으려던 이들도 가름의 신분을 보고는 군말 없이 고개를 숙인다.


“실례합니다, 기사님. 귀국입니까.”


마찬가지로 예를 갖춰 깍듯이 고개를 숙이는 문지기.


“부하분들과 함께 통과해주십시오.”


통행증 따위를 내밀 필요도, 입국 목적을 제시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성기사단의 옷이 곧 신분의 증명인 것이다. 종교가 나라의 중심인 황국에서, 교황에 의해 직접 임명된 성기사들은 매우 높은 지위를 가진다.


물론 이 사실을 사전 조사로 미리 알고 있었던 가름은 자연스레 문지기를 지나쳤다.


문지기가 가름의 뒤를 따르는 가브리엘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가름 일행은 별 탈 없이 전부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꽤나 살풍경한데.”


그게 가름의 첫 감상이었다.


황국의 수도, 에브닌은 역시 대국의 도시다웠다.


제국과 견줄 정도로 튼실하게 지어진 건물들. 길은 깨끗하게 닦여있고 쓰레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사람들은 나다니고, 시장도 규모가 크다.


하지만 그런 유동인구에서 오는 왁자지껄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황국민들은 하나같이 멈춰 서거나 하는 일 없이 어디론가 바삐 걸었으며, 눈은 생기를 잃고 퀭해 있었다.


뎅ㅡ뎅


때마침 울린 경건한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춘 사람들의 발길은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큰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첨탑 같은 건물ㅡ교회다.


“망자들의 도시 같구만.”


소리 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고 혼자 중얼거린 가름은 지도를 한번 흘낏 보고 집어넣었다.


“하지만 덕분에 일이 쉬워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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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엔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3 20.12.20 363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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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불행은 오늘도 입맛을 다신다 +1 20.12.10 185 9 13쪽
151 데드 맨 워킹 +4 20.12.06 227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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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임박한 어둠 +2 20.11.20 208 5 11쪽
147 바이러스 개발 +3 20.11.16 243 8 12쪽
146 불길한 기억 +1 20.11.10 206 6 10쪽
145 상실은 검게 피어 오른다 +2 20.11.01 239 8 10쪽
144 대참사 +1 20.10.28 217 7 11쪽
143 소동의 마무리 +2 20.10.26 258 6 12쪽
142 광신의 끝 +1 20.10.15 234 6 12쪽
141 지켜보는 눈 +1 20.10.13 224 7 11쪽
140 비뚤어진 신앙 +1 20.10.07 236 7 10쪽
139 번견의 눈 +3 20.09.28 252 7 11쪽
138 백과 흑의 격돌 +1 20.09.02 238 5 10쪽
137 흔들리는 빛 +3 20.09.01 252 5 10쪽
136 검은 거탑 +1 20.08.27 217 7 9쪽
135 같은 곳을 보고 있어도 +1 20.08.23 223 8 9쪽
134 더는 묻지 않을 수 없다 +2 20.08.21 233 6 10쪽
133 늑대의 깨달음 +3 20.08.17 258 8 9쪽
132 다음 타깃은 +5 20.08.16 280 7 12쪽
131 그 손을 잡으면 +1 20.08.08 241 6 10쪽
130 마왕의 성 +2 20.07.30 269 7 12쪽
129 그의 직업은 전 용사 +1 20.07.15 256 5 9쪽
128 충돌 +2 20.07.06 272 8 10쪽
127 꼬리 +1 20.06.08 278 7 8쪽
» 유디트 황국 +1 20.05.25 349 6 9쪽
125 신살 +2 20.05.19 322 9 10쪽
124 궁니르 +2 20.05.06 280 8 11쪽
123 그리고 빛이 +1 20.04.18 292 6 9쪽
122 사냥 +1 20.04.06 305 7 8쪽
121 죽음의 문턱. 그리고 거래 +2 20.04.02 290 8 9쪽
120 신살 +1 20.03.29 292 7 7쪽
119 스카디 +1 20.03.22 278 11 9쪽
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87 7 9쪽
117 함락 +1 20.03.15 289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26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88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78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0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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