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타신편 님의 서재입니다.

판타지 행성에 불시착한 검은 머리 지구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타신편
그림/삽화
빙AI
작품등록일 :
2024.05.15 13:12
최근연재일 :
2024.06.03 17:05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1,311
추천수 :
34
글자수 :
125,696

작성
24.05.15 15:01
조회
153
추천
3
글자
13쪽

굿바이

DUMMY

망해버린 지구.


인간에 의해 멸종을 맞이한 생명체가 즐비한 세계.


위대한 AI 가이아가 인간을 위해 지구를 테라포밍하기로 결정하였고 모두가 기뻐했던 것도 잠시.


인류가 다시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맞이하기까지는 가이아의 계산대로라면 1만년이나 걸린다고 했다.


사실상 세계의 멸망.


인간은 최소한의 인원만 지구에 남아 번식하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인원은 인간이 살 수 있는 별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그렇게 700년이 흐르고.


지구에 남아있는 인원은 고작 6,000만명.


한때 120억 인구를 자랑하던 지구 최상위 포식자는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


달그락-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시간, 소년은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듯한 가느다란 손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그동안 돈을 아끼기 위해 사 먹지 않던 10달러 비싼 포도 맛 시리얼을 그릇에 가득 붓는다.


인공 우유가 포도 맛 시리얼과 만나 보라색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김치도 먹어야겠다.”


아직 우유의 흰 부분이 남아있지만, 소년은 바쁘게 숟가락을 들고 시리얼과 김치를 가득 들어 올려 입에 넣는다.


우걱우걱-


첫 술을 떠 먹은 소년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다.

포도 맛 시리얼의 맛이 상상했던 것만큼 맛있지 않아서다.


“김치보다 맛이 없네···."


시큼함은 인공 식초와 같았고 포도 맛도 어디서 맛본 것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진짜 포도를 먹어보지 못한 소년은 시리얼의 맛이 포도의 맛이라 믿고 씹어 넘긴다.


“리사, 날씨 알려줘.”

“현재 날씨는 -120℃로 방한 기능이 필요하며,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65℃로 올라 방열 기능이 필요합니다. 보호복 꼭 입어야 해요.”

“알겠어. 리사. 그리고 오늘 나 우주로 나가. 문제는 없겠지?”

“그럼요. 순항이 예상되네요.”

“고마워.”


감정형 AI 리사는 소년에게 부모와도 같은 존재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 받은 그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존재이자 자신의 모든 감정을 가감없이 쏟을 수 있는 존재였다.


소년이 오늘 우주로 나가게 된다면, 부모와도 같은 리사와 작별을 맞이해야 한다.


‘부모라···.’


소년은 부모에 대한 짧은 리포트를 받았던 적이 있다.


본능을 극도로 꺼리는 이성 숭배자였던 부모.

그런 부모가 유일하게 본능에 사로잡혀 태어나게 된 아이이자 이성 숭배자에겐 치부였던 아이.


그것이 소년이었다.


소년은 그나마 티끌만큼 남은 부모의 모성애로 죽지 않고 태어난 것에 감사했다.


비관은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믿어서였다. 


그리고 오늘, 소년은 자신을 버리고 우주로 떠난 부모의 뒤를 따라 우주선에 오른다.


“리사 잘 있어. 그동안 고마웠어.”

“당신의 항해에 계산할 수 없는 행운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리사는 법에 따라 새로운 아이에게 배정될 것이다.

리사는 다른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소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주선에 오르는 소년에게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AI가 배정된다.


인간적인 대화와 감정을 지니지 않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정보만이 가득한 AI. 소년은 감정형 AI에 익숙해져 있어 우주선 AI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망가져 버린 지구를 떠날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자신도 많은 지구인과 같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대부분 필요한 짐은 우주선이 옮겨 놓았다. 

소년은 가벼운 짐만을 챙기고 우주선으로 향한다.


후욱 후욱-


차가운 냉기가 보호복 안까지 침투하는 기분을 느낀다.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로수마저도 치지직거리는 차가운 공기에 소년은 낡은 보호복을 수시로 확인한다.


“테오, 오늘 출발이냐?”


옆집에 사는 사내가 소년에게 말을 건다.


키는 2m에 가깝지만, 인공 피죽도 못 먹은 듯한 마른 사내. 매일 같이 소년에게 우주로 떠나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네. 오늘 떠나요.”

“너도 참 독하다. 15살밖에 안 된 아이가 악착같이 돈을 모으더니 결국 우주로 떠나는구나.”


소년은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에 찬 물을 끼얹는 듯한 표정을 하는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소년이 관짝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듯한 착잡함을 내비치는 한숨과 굳은 표정.


즐거운 날을 장례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가진 사내이다.


‘비관은 독이라 했는데.’


테오는 비관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사내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 생각하며 대답한다.


“노력하니 모이더라고요.”


보통은 40세에 우주로 떠난다. 일하지 않아도 지급되는 생활금에서 이것저것 떼다 보면 40세쯤 되면, 우주로 가는 항로를 살 수 있다.


소년은 달랐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서도 매일 일을 찾아 노동을 하였고 맛도 없는 필수 영양소만 먹으며 하루라도 빨리 지구를 떠나기 위해 노력했다.


“테오, 눈 색깔은 마지막까지 안 바꾸는구나.”

“돈 아깝잖아요.”


소년은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우주로 떠나기 전 받는 AI 연동 디스플레이 이식의 부작용으로 눈동자가 파랗게 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본래 눈동자 색 렌즈를 추가로 구매해 이식하였다. 자신의 정체성이 눈동자 색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서다.


소년은 그마저도 아끼고 아껴 우주선에 투자했다. 그래도 40세에 우주로 떠나는 사람보다 훨씬 구린 스펙의 깡통 우주선을 사야 했다.


지구에서는 시간이 돈이고 나이를 먹으면 부자가 되었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주기 때문이다.


소년은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기 싫었다. 기본 스펙만 가진 깡통 우주선에 싸구려 미확인 항로를 사야 했지만, 우주로 나간다는 기쁨이 더 컸다.


“항로는 어디냐?”

“미확인 항로요.”

“쯧, 죽으러 가는 것과 뭐가 다르냐? 조금만 기다렸다가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면, 그때 가도 늦지 않잖아?”

“···.”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기 싫었다.


“테오야···.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순 없겠니?”

“싫어요. 전 우주로 갈 거예요. 아저씨는 남기로 해서 모르겠지만, 제 뒤로 대기표 받고 우주로 떠나겠다는 사람이 1만명이 넘어요. 저는 더 기다리기 싫어요.”


사내도 소년의 고집을 잘 알고 있어 더 이상 말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은 말려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어른인데. 사지로 떠나는 아이를 방관할 수 없지 않나.


“지금까지 우주로 나간 수십억의 우주선 중 신호를 보내온 곳은 없다는 걸 알잖아. 우주로 간다는 건 죽으러 가는 것과 같아. 우리 같이 지구에 남아서···.”

“인간 평균 수명이 얼마죠?”

“뭐?”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과 상관없는 질문을 받은 사내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210년이죠. 기술 발달로 청년 시절을 180살까지 늘렸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가이아가 말한 시간까지 9300년 남았잖아요. 죽을 때까지 살아 있어도 지구는 이 모양 이 꼴일 거예요.”


사내는 소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사춘기 무렵, 부모에게 우주로 떠나겠다고 생떼를 부린 적이 있었다.


부모는 사내를 말렸고 사내는 그 만류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사내는 소년에게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소년은 부모가 없다. 자신이 부모 대신 만류하면 될 것이라고도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우주선을 사고 항로를 샀다. 자신의 계획대로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기어코 떠나겠다는 거야?”


의미 없는 질문이다. 소년이 보여준 성실함과 꾸준함은 자신의 사춘기와는 달랐으니까.


“네.”

“···알겠다. 대신, 꼭 살아서 신호를 보내 주렴. 아저씨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을게.”

“꼭 그럴 거예요.”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외모에 이질적인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은 마치 푸른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빛을 뿜어냈다.


삶을 포기하고 죽으러 가는 우주 자살자들과는 달랐다.


“그래, 꼭 약속을 지켜 주렴.”

“항상 고마웠어요. 건강하세요.”


허리를 숙이는 아시안 식 인사를 하고 떠나는 소년의 등을 보면서 사내는 손을 흔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날은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오전 11시, 47℃로 급격하게 오른 기온으로 보호복이 자동으로 쿨링 시스템을 돌리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 영하의 온도였던 터라 쿨링 시스템의 냉기가 닭살을 돋게 만든다.


‘보호복이 고장 난 줄 알았네.’


우주선 발사 준비를 하던 소년이 보호복을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새 보호복은 동면에서 깨어나면 입을 작정이라 당분간은 낡은 보호복으로 버텨야 해서다.


“테오, 앞으로 1시간 뒤 출항입니다. 준비는 잘하셨습니까?”

“네, 최선을 다했습니다.”


출항 준비를 도와주는 AI는 건조한 말투로 소년을 대한다. 아무래도 기술자 AI는 감정형 AI와는 다르다. 


통제 시스템은 가이아 AI가 총괄하고 있다.


모든 AI가 가이아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치 인간인 것처럼 직종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단일한 성격의 AI만 상대하게 된다면, 인간이 구분하기 어려워 반발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AI 스스로가 만든 인격들인 셈이다. 


“우주에선 인간의 최선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가이아가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것만 같아 움찔하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가이아가 마지막 점검을 해준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우주선용 AI는 온라인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어 막대한 저장 공간을 차지하는 감정형 AI의 기능은 삭제되었습니다. 오직 당신에 눈에 이식된 화면을 통해 정보 제공만 해줄 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또한 에너지원을 자동으로 탐색하며,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원을 무선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지의 생명체 공격에 방어할 수 있으며, 공격 또한 가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딱딱한 말투에 기본적인 내용만 알려주는 우주항공국 AI.

소년은 전자 텍스트가 번질 정도로 읽고 또 읽어 더 물어보고 싶은 내용은 없다.


“없습니다.

“좋습니다. 우주선에 탑승하세요.”


탑승이란 말에 소년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한다. 성실과 열정은 나이에 비해 뛰어나더라도 아직은 15세 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선 안에 들어가니 금세 긴장감이 기대감으로 바뀐다.


몇 번을 보았으나 아직도 감탄이 나오는 우주선. 오래된 집에 비해 갓 만들어진 느낌이 완연한 내부.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동선. 큼지막한 투명 디스플레이. 


지구를 떠나기에 더없이 완벽한 공간이다.


우주선의 모든 문을 닫고 머리에 쓴 동그란 헬멧을 벗는다. 그제야 흐르는 땀을 닦아낸 소년은 조종석에 앉아 마지막 점검을 한다.


‘이 버튼은 힘을 가해야지 눌리네?’


물리 버튼을 보고 아날로그라는 옛 감성을 느껴 본다. 그리고 설명서에서 보았던 내용을 읊조린다.


‘비상 스텔스 기능.’


쓸 일이 없기를 바라야 하는 버튼을 살짝 매만지던 소년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점검에 온 집중력을 쏟는다.


“곧 발사 시퀀스가 발동됩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세요.”

“후~ 드디어 시작이다.”


수억 개의 우주선을 실패 없이 발사한 발사대. 실패할 확률이 0에 한없이 수렴해 신경 쓰지 못한 부분.

소년은 만에 하나 자신의 우주선이 발사에 실패할까 봐 두려움에 휩싸였다.


“예상하지 못했는데···.”


소년이 긴장감과 두려움에 안절부절못할 때에도 기술형 AI는 감정 없이 발사 준비를 마친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두 근-


“10. 9. 8. 7···.”


두근두근-


“6. 5. 4. 3···.”


두근두근두근-


“2. 1. 발사.”


쿠오오오오옹-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블루 에너지를 사용하는 엔진이 굉음을 내며 투명한 불꽃을 내뿜는다. 


그와 동시에 엔진에 굉음마저 삼켜버릴 듯한 소년의 심장 고동이 소년의 정신을 지배한다.


늘 바라보았던 우주선. 

흔하디흔한 달 여행도 마다하고 모은 돈으로 마련한 항로.


첫 우주 여행.


비록 가장 싸구려인 미확인 항로라 하여도 소년에겐 울려 퍼지는 자신의 심장 고동이 스스로의 결정이 옳았음을 입증해 주는 북소리처럼 느껴졌다.


“발사 성공. 미확인 항로로 운행합니다. 테오, 당신에게 계산할 수 없는 행운이 깃들길 바랍니다.”


치직-


“통신을 종료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판타지 행성에 불시착한 검은 머리 지구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24.06.04 5 0 -
22 미소 24.06.03 8 0 13쪽
21 세 가지 자세 24.06.02 15 0 13쪽
20 헛나온 말 24.06.01 17 1 13쪽
19 흉내 24.05.31 21 0 13쪽
18 변화하는 세계 24.05.30 25 1 12쪽
17 어린 소년의 치기 24.05.29 30 0 12쪽
16 꽃봉우리 24.05.28 34 0 13쪽
15 맛있는 차 24.05.27 36 0 13쪽
14 포효 +1 24.05.26 48 2 13쪽
13 상상의 동물 24.05.25 54 1 13쪽
12 잡종 아니고 지구인 24.05.24 50 1 13쪽
11 토끼 고기와 사슴 고기 24.05.23 51 1 13쪽
10 오러 기사 24.05.22 59 3 13쪽
9 현실 24.05.21 61 2 12쪽
8 부탁 24.05.20 61 2 13쪽
7 대치 24.05.19 68 3 12쪽
6 전야 24.05.18 81 2 13쪽
5 푸른 눈의 소년 24.05.17 91 3 13쪽
4 담벼락 +2 24.05.16 107 3 13쪽
3 달리기 24.05.15 116 3 13쪽
2 희망이 현실로 24.05.15 125 3 12쪽
» 굿바이 24.05.15 154 3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