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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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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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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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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400년의 기다림 (5)

DUMMY

꼬리별 도시는 지금 미증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수많은 적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던 이 역사 깊은 도시도 설마 괴물을 한 마리도 아닌 다섯 마리에게 협공을 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문은 이미 뚫린지 오래다.

두 라이칸스로프가 전심전력을 다해 들이받은 결과, 성문은 비참한 신음을 토해내며 반으로 부숴지고 말았다.

공성추가 오더라도 이토록 빨리 뚫리진 않았을 것이다.


"모두 내성으로 대피하시오!"


사방에서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병사들은 사람들이 속히 대피할 수 있게 열렬히 팔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 얼굴로 앞다투어 달려나갔다.

그 와중에 발이 얽혀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끝내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골목길에만 한정되었다.

도시 한가운데에 가로지르고 있는 커다란 도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큰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속히 내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도로를 이용하는 건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크아아아!"


원체 강인한 능력을 갖고 있는 라이칸스로프였기에 이런 잘 닦인 길에서는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내성까지 쭉 뻗어 있는 길이라면 더더욱.

그들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이 난듯 내달렸다.

하지만.


"정신 차려! 우리가 예전부터 해왔던 훈련을 떠올려라!"


아벨린은 충혈이 된 눈으로 검을 휘둘렀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경비조장들과 병사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이토록 길게 뻗은 도로가 전시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아군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당연히 적도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다.

그러니 꼬리별 병사들은 적들이 이 도로를 쓸 경우 어떻게 하면 막을 것인지에 대해 정기적으로 훈련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훈련 때처럼 완전한 방비책을 세울 수는 없었다.

아간이 한바탕 날뛴 덕분에 발리스타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비책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서 화살을 쏴라!"


일단 아벨린은 궁사에게 사격을 명령했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진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라이칸스로프의 속도를 줄일 목적이었으니.

다행히도 라이칸스로프는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잠시 멈칫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라이칸스로프는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앞에 있는 라이칸스로프와 부딪혔다.

괴물들은 서로에게 으르렁거렸지만 재차 쏟아지는 화살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화살을 뚫고 달려올 줄 알았던 아벨린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누구처럼 무작정 강인하진는 않은 모양이다.

확실히 이들 중에서 아간 같이 전투 경험이 많은 자는 없었다. 다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오래도록 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저함이 오히려 괴물에게 또 다른 길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내성으로 대피하기보다 제 집에 얌전히 있는 걸 선택한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린 것이다.

저 내성은 나중에 쳐들어가도 상관없었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먹이를 포식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그 결과, 괴물들은 건물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먹어치웠다.

외성 성벽에 서서 이를 지켜보던 경비조장과 병사들은 절규 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만둬!"


그들은 남아 있는 화살을 모조리 썼다.

저 무자비한 학살을 막기 위해서라면 제 몸도 바칠 것 같았다.

야수는, 그 오만방자한 태도를 꺾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아간 한 라이칸스로프가 그대로 성벽에 발톱을 박았다.

그리고 단 몇 번의 도약만으로 성벽 위로 뛰어올라서고 말았다.

그 라이칸스로프는 한쪽 눈에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저주에 걸리기 이전부터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후에 생긴 것인지는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는 이 흉터의 역사에 대해 친절히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손을 휘둘러서 병사 여럿을 성벽 너머로 떨구었을 뿐이었다.


"우어어어!"


부하 병사들이 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걸 본 경비조장은 침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사각에서 휘두른 탓인지 놀랍게도 라이칸스로프의 허벅지를 찌르고 말았다.

경비조장 본인도 조금 의외였던지 놀란 얼굴을 지었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지은 표정이었다.

라이칸스로프는 잠깐 눈가를 찌푸리고는 경비조장을 붙잡았다.

발버둥치는 경비조장을 간단히 양분한 괴물은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를 맞았다.

황홀한 냄새. 사람이었을 적에는 결코 겪어보지 못한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변에 남아 있는 병사들은 제 몸을 타고 흐르는 창자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였다.

애꾸준 라이칸스로프는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 없다는 듯이 굴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더니 성탑에 앉아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그 자는 다섯 라이칸스로프를 이 자리로 부른 장본인이었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걸까.

관망하는 듯한 자세로 아까부터 가만히 자리에 앉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보통 라이칸스로프는 서로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볼 수는 있지만 냄새가 나지 않아 마치 허상처럼 느껴지는 게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저 검은 라이칸스로프는 달랐다.

냄새가 나지 않는 건 여전했으나 뚜렷이 인식할 수는 있었다.

애꾸눈 라이칸스로프는 그 사실에 무척 의아해했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제껏 꾹꾹 참아왔던 욕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 얼마나 오랫동안 숨어 살았던가. 얼마나 홀로 외로이 지내왔던가.

자신이 달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던가.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쳐지는 지난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참을 필요가 없었다. 저 검은 라이칸스로프가 그러지 않았는가.

여기에 포식할 것이 있으니 마음껏 즐기라고.

그는 그 욕망에 충실하기로 했다.

애꾸눈은 짧게 포효를 지르고는 성벽 위를 따라 달려갔다.

꼭 대로를 통해 내성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차라리 이 성벽 위를 내달리는 게 더 편했다.

어쨌든 대로는 여러모로 눈에 띄어서 화살 맞기도 쉬웠기에.

그렇게 내성 근처까지 다다른 애꾸눈.

살육의 본능에 몸을 맡긴 그는 침으로 번들거리는 이빨을 내보였다.

얼른 기름과 피로 물든 살점을 씹고 싶었다.


"캬아아아!"


입을 쩍 벌리고 바라볼 가공할 도약력으로 내성 안쪽으로 침범하려던 애꾸눈은, 그러나 의도치 않은 방해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이미 잡혀버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애꾸눈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눈만 껌뻑였다.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지만 전혀 풀리지 않았다.

대체 이 강인한 괴물을 막은 자가 누구인가!

그때 애꾸눈의 귀에 분개하면서도 슬픈 음성이 들려왔다.


"아가야. 악몽은 그만 꾸고 편히 자거라."


애꾸눈은 누가 말을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나는 건 한 가지였다.

웬 보라색 안개가 자신에게로 쏟아진다는 것뿐이었다.



*



아벨린은 초조함에 몸을 가만두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도시 안에 상주하는 사람만 해도 천 명은 가까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외부인까지 합치면 수는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많아졌을 것이다.

아벨린은 대로로 시선을 던졌다.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괴물이 여럿 보였다.

하지만 모든 괴물이 다른 건 아니었다. 저기 대로 한가운데에 떡하니 서 있는 남색 라이칸스로프 한 마리.

아간보다는 덩치가 작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었다.

아마 이전에 아간을 보지 않았더라면 저 괴물이 라이칸스로프 중 가장 크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순간 아벨린은 덩치 큰 라이칸스로프와 시선이 얽히고 말았다는 걸 알았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포식자의 강렬한 시선은 그 거리를 무시하고도 남았다.


'온다.'


아벨린이 마음속으로 그렇게 읊조리던 그때, 덩치 큰 라이칸스로프가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오건 말건 무조건 돌진하겠다는 듯 무자비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벨린은 황급히 소리쳤다.


"그만! 이제 그만! 당신들은 다른 곳으로 대피하시오! 문을 닫아라!"

"예? 하지만 아직.."

"멀쩡한 사람 분사시키고 싶지 않으면 명령대로 해!"


그 말을 이해한 내성 경비조장은 몸을 떨면서도 명령대로 이행했다.


"성문을 닫아라! 그리고 주머니를 터뜨려라!"


느닷없이 위에서 철문이 내려오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앞에 있는 자들은 자기만이라도 들어가기 위해 억지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곧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소리질렀다. 하지만 이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내성 성벽에 매달려 있는 기름과 물 주머니. 그것을 위에 있는 병사가 창을 휘둘러 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주머니 두 개가 동시에 터지더니 물과 기름이 밑으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좌우로 물러났다.

기름과 물은 마치 냇물처럼 대로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섞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어쨌든 물과 기름은 앙숙이었기에.

아벨린은 기다렸다는 듯 소리쳤다.


"불화살을 쏴라!"


불화살이 유성처럼 날아가 대로에 꽂혔다. 불의 물결이 곧 형성되었다.

덩치 큰 라이칸스로프는 급히 멈췄다. 흘러내려간 물기름이 괴물의 발을 적셨다.

그와 동시에 불이 빠른 속도로 붙었다.


"크어어어!"


덩치는 괴로움에 젖어 고함을 질렀다.

털이 타들어감과 동시에 불이 속살을 지져댔다.

아무리 갑옷처럼 두텁고 질긴 가죽을 갖고 있다 해도 불에는 버티기 힘든 듯했다.

건물 지붕으로 올라탄 덩치는 타오르는 눈으로 아벨린을 노려보았다.

아벨린은 위축됐지만 꿋꿋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방어 준비!"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덩치가 건물과 건물을 짓밟으며 뛰어왔다.

덩치가 밟을 때마다 디딤돌 역할을 한 건물들은 반쯤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매섭게 위로 솟구친 덩치는 먼저 눈에 들어온 병사에게로 내려갔다.

쿵! 갑옷과 함께 그대로 찌부러진 병사는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덩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 모습에 사기를 잃은 병사들이 속출했다.

라이칸스로프가 이토록 많았다고? 그럼 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온단 말인가.

그들은 당장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도망칠 것처럼 굴었다.

그때였다.


"용기를 잃지 말거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덩치도 옆을 보았다.

한 노인이 무너진 탑 위에 서 있었다. 기이하게도 손에는 보랏빛 기운을 쥐고 있었다.

한 번도 조우한 적이 없는 자였지만 병사들은 저 노인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주술사!"


아벨린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이 여럿 나타난 것도 절망적인데 거기에 주술사까지 나타나다니.

차라리 모든 걸 받아들이고 죽음을 기다리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벨린의 예상은 좋은 쪽으로 빗나갔다. 일단 노인이 주술사인 건 맞았다.

그러나 모든 주술사가 라자살라처럼 음흉하고 불길한 자인 건 아니었다.

노인은 입꼬리를 아래로 내린 채 걸음을 옮기더니 갑자기 덩치에게 손을 뻗었다.

벼락처럼 뻗어나간 보라색 기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기운이 덩치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덩치는 밧줄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지금이 기회야. 얼른 해치우거라!"


다시금 울려퍼지는 목소리.

눈앞에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을 목격한 아벨린은, 그제야 저 주술사가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걸 이해했다.

아벨린은 서둘러 외쳤다.


"공격! 공격하라!"


병사들은 무기를 굳게 쥐었다. 모든 걸 포기하려던 그들의 마음에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각기 고함을 지르며 덩치에게 달려들었다.

덩치는 콧김을 세게 내뿜으며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기운이 꽉 옥죄고 있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으음."


주술사가 땀을 흘렸다. 이곳이 자신의 땅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괴물들을 억압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라자살라의 땅이었다. 주술을 펼치는 것만도 부담이었다.

거기에 더해 생명을 대가로 주술을 펼치다 보니 부담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한 만큼 되돌아온다는 철칙에 따라 강한 주술을 쓰면 쓸수록 그의 생명 또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크라라라!"


덩치는 난자 당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사방에서 공격이 쉬지 않고 들어왔다.

워낙 가죽이 질겨서 공격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지만 병사들은 필사적이었다.


"뒈져라!"


살의등등한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동료의 죽음을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던 그들은, 이참에 품고 있던 분노를 다 터뜨리기로 작정했다.

지근거리에서 화살로 눈을 노리는 궁사들과,

다리를 통째로 베어내기 위해 마치 벌목을 하는 나무꾼처럼 도끼로 사정없이 내려 찍는 병사들과 소수의 용병들.

여기저기서 내지르는 공격에 혼미하던 덩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시간으로 살이 갉아먹히는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길을 돌리자 늑대포식자를 든 엔라가 보였다.

엔라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서 덩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덩치의 분노 또한 극심해졌다.


"크아아아!"

"큭!"


주술사가 돌연 휘청였다. 주술로 대상을 속박하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거기에 더해 상대가 라이칸스로프다 보니 오래도록 묶고 있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주술사가 이토록 힘겨워하는 건 단지 힘에 부쳐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이 상황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주술사는 저 라이칸스로프가 무척이나 가여웠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끔 차분히 달래주었을 텐데.


'미안하다, 아가.'


주술사는 이를 악물었다. 커다란 슬픔이 밀려왔지만 여기서 지체해선 안 되었다.

이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면 이쯤에서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주술사는 눈물을 흘리며 기운을 더욱 불어넣었다.

그러자 덩치의 사지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돌연 제 팔이 옆으로 꺾이자 덩치는 심히 당황했다.


"쿨럭."


주술사의 입에서 피가 한 움큼 나왔다. 큰 힘을 쓴 나머지 반동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술사는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체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내 그는 허물어지듯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속박하던 기운이 사라지자 덩치는 곧바로 움직임을 재개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와 팔이 분질러진 것에 더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특히 늑대포식자가 갉아먹은 자리가 제일 심했다.

덩치는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무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콰직!

병사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쓰러진 라이칸스로프를 쳐다보았다.

여느 맹수보다도 큰 크기를 자랑하는 야수가 한 차례 경련을 했다. 그러고는 곧 축 늘어지고는 숨을 거뒀다.

이대로 다 끝난 것인가. 그랬으면 좋겠다만, 그들은 초점 잃은 눈으로 도시 내부에 펼쳐지는 참상을 보았다.

비명과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골목길에서 자행되는 괴물들의 살육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성소원에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괴물이 그곳으로 쳐들어가는 걸 본 병사들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거기에는 성기사단이 있었다.

그들은 신의 거처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한편, 아벨린은 바닥에 주저앉은 주술사에게 다가갔다.

껄끄로운 존재라는 건 여전했지만 어쨌든 도움을 받아 라이칸스로프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죽고 말 게야."


주술사가 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여러모로 하고픈 질문이 많았지만 아벨린은 일단 참기로 했다.


"예, 압니다. 주술사 님이 좀 더 힘 써주신다면 저 괴물들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불가능해. 여긴 내 땅이 아니라서 힘을 쓰기가 힘들어. 앞으로 고작 해야 한 번 밖에 못 쓸 게야."

"젠장.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희끼리는 저놈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술사가 눈길을 돌렸다.

다른 라이칸스로프들이 날뛰는 걸 보고 있는 거라 짐작했던 아벨린은, 그러나 그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방법이 있다. 이 일을 벌인 원흉을 막으면 돼. 저기 탑에 서 있는 라이칸스로프가 보이느냐? 저 몸의 주인을 되찾아줘야 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게야."

"그럼 이곳에서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저흰 나갈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나가서 싸웠다가는.."


아벨린이 식겁한 얼굴로 돌연 고개를 돌렸다. 내성 안뜰에서 들려온 괴성 때문이었다.


"괴물이 저기에 있어요!"


성 내 사용인들이 팔을 마구 휘저으며 외쳐댔다.

아벨린과 병사들은 설마 괴물이 내성 안쪽에 나타날 줄은 몰랐는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때 주술사가 아벨린을 잡아끌었다.


"자네가 이곳 지휘관인 것 같으니 말하겠네. 내가 라자살라를 물리칠 동안 자네는 어떻게든 버티게. 농성을 하건 맞서 싸우건 최대한 버텨내란 말일세. 그것 말고는 답이 없어."

"얼마나, 얼마나 버텨야 합니까?"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 버텨야지. 어쨌든 해가 떠오르면 라이칸스로프는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니까. 아니면 내가 그전에 라자살라를 막거나."


아벨린은 그때까지 못 버틴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술사는 그의 넋두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주술사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술사는 즉시 손을 떼더니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라자살라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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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400년의 기다림 (4) 23.03.03 60 3 14쪽
117 400년의 기다림 (3) 23.03.02 53 3 19쪽
116 400년의 기다림 (2) 23.03.01 55 3 15쪽
115 400년의 기다림 (1) 23.02.28 59 3 14쪽
114 절망 23.02.26 59 3 24쪽
113 꼬리별과 늑대 (5) 23.02.25 65 3 17쪽
112 꼬리별과 늑대 (4) 23.02.24 62 3 18쪽
111 꼬리별과 늑대 (3) 23.02.22 71 3 15쪽
110 꼬리별과 늑대 (2) 23.02.17 71 3 18쪽
109 꼬리별과 늑대 (1) 23.02.16 61 3 15쪽
108 계획 시작 (14) 23.02.14 61 3 18쪽
107 계획 시작 (13) 23.02.13 58 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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