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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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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1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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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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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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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4쪽

절망

DUMMY

처음 디아프를 보았을 때만 해도 엔라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째서 어린아이가 저곳에 숨어 있는 것일까.

어린 하인은 아닌지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용인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대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설령 하인이라 해도 이곳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 사태에 불행히 휘말린 아이란 말인가?

엔라는 라이칸스로프와 남자가 싸우는 걸 힐끗 보았다.

어쨌든 저들은 아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아예 모르는 모양이다.

기나긴 고민 끝에 엔라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마을의 복수도 중요하지만 무고한 희생자를 살리는 것이 더욱 값진 일이었다.

무엇보다 저 소년이 자신처럼 악몽에 쫓기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다.

엔라는 저들이 다른 곳으로 한 눈을 파는 때를 노려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소년에게 다가간 엔라는 곧 놀랐다.

소년이 밧줄에 묶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방 중앙에 세워진 벽과 한 몸이 된 듯 묶여 있었다.

무슨 인질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이다.

소년은 처량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지가 축축히 젖어 있는 걸 보아 지린 듯했다.

엔라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도 못 버틸 상황을 아이가 견딜 리 만무하니까.


"풀어줄게."


단검을 꺼낸 엔라는 먼저 아이의 입부터 풀어주었다. 혹여 소년이 비명을 지를까 싶어 긴장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소년은 분명 공포에 젖어 있긴 했지만 이성을 완전히 놓지는 않고 있었다.

이내 몸을 묶고 있는 밧줄마저 잘라버린 엔라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걸을 수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다만 엔라 옆에 꼭 달라붙은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엔라는 아이 등에 손을 올린 채 조심히 나아갔다.

밖에 있는 자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돌아올 작정이었다.

하지만.

엔라가 복도로 나가려는 그 순간, 방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엔라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간이 이곳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몸, 특히 오른팔은 쓰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지만 흉흉한 기세는 여전했다.

엔라는 아이를 뒤로 숨기고는 늑대포식자를 들어올렸다.

아간과의 싸움은 예전부터 고대하고 있었기에 두렵다 해도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지켜야 할 아이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엔라는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며 속삭였다.


"도망가. 어서."


엔라의 바람과 달리 소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짧게 혀를 찬 엔라는 갑자기 크게 외쳤다.


"가!"


아이는 퍼뜩 놀라더니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간은 으르렁거리더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게티아르가 고집스럽게도 앞을 터주지 않았다.

다미달의 새파란 이빨이 아간을 물어뜯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았소? 얼른 나타나시오, 주술사!"


그때 게티아르가 목청을 높였다. 그는 사방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녀석은 중상을 입은 상태요! 하지만 나 또한 마찬가지요.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소! 그러니 지금 나타나서 괴물을 묶으시오!"


아간은 게티아르를 쳐다보았다. 저 영주가 하는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술사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혹시 푸실에서 봤던 그 주술사인가? 설마 라자살라는 아닐 거 아냐.

하지만 게티아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외쳐보려던 게티아르는 급히 상체를 숙였다. 격한 기침과 함께 피가 나왔다.

아간이 눈을 빛냈다. 방금 전에 한 말이 무슨 말이었건 간에 일단 그건 중요치 않다.

지금이었다. 게티아르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는 지금이, 다미달을 밑으로 떨어뜨린 지금이 바로 절호의 기회였다.

아간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구 잔해를 게티아르에게 던졌다.

게티아르는 가까스로 검을 들었지만 충격을 상쇄시킬 수는 없었다.

요란스레 바닥에 엎어지고 만 게티아르. 아간은 그런 그를 무시하고서 바닥을 박찼다.

한순간에 엔라 앞에 도달한 검은 라이칸스로프.

복도에는 창문 대신 동굴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래서 눈발 섞인 바람이 그들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머리가 요란하게 휘날리는 가운데, 엔라는 늑대포식자를 겨눈 채 아이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길고 커다란 주둥이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나왔다.

오래간만의 재회였지만 두 사람 모두 소회를 밝힐 마음은 없었다.


"비켜."

"이 아이에게 볼일이 있나 보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냐."

"있다고 보는데."


엔라가 강하게 쏘아보았다.


"악몽을 꾸는 건 나 하나로 족해."


아간은 넌더리 난다는 듯 머리를 홰홰 흔들었다.

차라리 엔라를 저리로 치워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손을 뻗던 아간은, 그러나 별안간 터져나온 비명에 절로 움츠렸다.

엔라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무려 디아프가 살려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아니.."


아간은 충격 받았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디아프는 한 번도 아간이 라이칸스로프로 변한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아간은 배신을 당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아간!"


그때 엔라가 고함과 함께 늑대포식자를 휘둘렀다.

얼결에 오른팔을 든 아간은 살이 찢기는 고통에 콧잔등을 찌푸렸다.

다시 샘솟는 분노. 아간은 디아프가 엔라에게 매달려 울고 있건 말건 상관치 않기로 했다.

나중에 데려가서 본모습을 보여주면 되었으니까.


"저기 있다!"


그때 귀청이 떠나가라 외치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병사들이 저만치서 뛰어오고 있었다.

성 입구를 막고 있던 잔해를 필사적으로 뚫은 결과, 마침내 사람 한 명이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만 것이다.

아벨린이 떡이 진 머리칼을 하고서 병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아무래도 투구가 걸리적거려 어딘가로 벗어던진 모양이다.


"화살 준비!"

"잠시만, 애가 있어!"


엔라가 손바닥을 펼치며 외쳤다. 하지만 아벨린은 듣지 않았다.

라이칸스로프를 죽일 기회를 간신히 잡았는데 몇 사람이 죽는 게 무슨 대수랴.

이미 저놈으로 인해 병사 수십 명이 죽어나갔는데.


"쏴라!"


화살이 날아갔다.

화살 한두 개라면 모를까 십수 발이 동시에 날아오는 건 엔라도 막을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짧은 순간, 그녀는 마침내 행동으로 옮겼다.

그녀는 디아프를 감싸고서 등을 내보였다.

적어도 화살이 머리만은 꿰뚫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화살이 살에 박히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든 엔라는 검은 벽이 우뚝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아간이 두 사람을 대신해 화살을 맞고 있었다.


"아니.."


엔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자신이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아이?'


아간이 갑작스레 몸을 수그렸다.

아무리 오른팔이 타들어갔다 해도 어디까지나 다미달에 의한 것이었다. 고작 화살 따위로는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아간은 곧 비명을 토해냈다.

우연찮게도 날아온 화살 한 발이 그의 왼쪽 눈을 파고 들어간 것이다.

새빨갛게 물들여지는 시야에 아간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했다.


"맞았다! 돌진하라!"


그 틈을, 아벨린은 놓치지 않았다.

선봉장을 자처하며 먼저 달려나가는 경비대장의 모습에 병사들은 고취되었다.

그들은 시나 노래에서나 나올 법한 역전의 용사라도 된 것마냥 용기 있게 앞장섰다.

실상은 골목길을 전전하는 불량배들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지만.

어쨌든 아간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아간은 알지 못했다. 본인이 한 가지 큰 실수를 범했다는 것을.

게티아르가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부상을 입은 건 맞다.

그렇다고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게티아르는 반쯤 상체를 일으키더니 다미달을 움켜쥐었다.

검날을 쥐고 있는 탓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게티아르는 손을 부여잡고 아픔을 호소하지 않았다.


'지금이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는 순간, 아간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눈부신 빛이었다.

빛은 아간에게로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다미달이 뿜어내는 빛이었다.

세차게 날아간 다미달은 아간의 허벅지를 깊게 찌르고 들어갔다.


"크아아아!"


아간이 고통과 신음을 단번에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게티아르는 고소를 머금었다.

희미해져가는 정신 속에서도 어떻게든 온힘을 다해 던졌는데 그게 제대로 적중한 모양이다.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던 강대한 적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아벨린과 병사들은 의기양양한 기세를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네놈을 죽여서 말라비틀어버릴 때까지 피를 짜낼 것이다.

그리하여 그 피를 내 전우의 묘에 뿌리며 언제고 넋을 달랠 것이다.

그들은 잔인하고 처절한 소망을 마음에 내걸고서 아간에게 창과 검을 휘둘렀다.


"여기까지로군."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그러자 부지불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전장에 서 있으면 반드시 따라오기 마련인 것이 바로 고양감이다.

이는 모든 전투가 끝나야 그제야 서서히 가라앉는 감정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갑작스레 사라지지 않는다.

전장에 고양감이 있기에 사람은 사람을 죽여도 망설이지 않는다.

설령 입에도 담지 못할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해도 아무렇지 않다.

그렇기에 고양감은 전투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감정이 갑자기 사라지고 만 것이다.

병사들은 멍한 얼굴로 제 손에 들린 무기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걸 들고 있는지 기억조차 못하는 듯하다.

심지어 오래 무기를 쥔 채 생활해온 아벨린조차도 하마터면 검을 놓을 뻔했다.

마법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간 말고는 없었다.

아간은 어느새 눈앞에 서 있는 노인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놀란다면 한다면 어째서 모습을 드러냈는가겠지.

아간은 라자살라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힘을 쓰며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당신.."


라자살라는 수평으로 뻗고 있던 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눈동자만 굴려 아간을 쳐다보았다.

아간은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잘됐다.

라자살라의 힘이라면 자신과 디아프를 데리고 아무렇지 않게 벗어날 수 있겠지.

그러나 라자살라는 아간과 대화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한 번 곁눈질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라자살라는 말 붙이는 일도 없이 곧장 게티아르에게로 다가갔다.

게티아르는 바닥에 누운 채로 라자살라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약속을 지켰군. 고생 많았네, 꼬리별 영주."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난, 거요?"

"그야 확실히 잡지 않았으니까. 잡을 능력도 없으면서 나에게 매달리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으니."


라자살라는 끌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게티아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다, 끝났소.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요."

"그래. 그러지."


라자살라는 여유로운 발걸음을 놀리며 아간에게 다가갔다. 아간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자살라?"

"한심한 녀석.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도 결국 붙잡히다니. 아니면 본인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게냐?"

"조롱은 밖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내가 왜?"


아간은 잠시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으르렁거렸다.


"장난치지 마십시오. 이 상황에서도 그딴 장난치고 싶습니까?"

"장난?"


주변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라자살라의 그림자가 사방에 뻗어나간 탓이었다.

마음을 옥죄는 듯한 불길한 소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병사들은 직접 마주하는 것도 아닌데 두려움을 느꼈다.


"애송아. 네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도 이제 끝이다. 그동안 네 눈에는 내가 대책없는 늙은이로만 보였겠지만 난 네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살아왔다. 네 조악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말이야. 그런데 장난이라고?"


숨 쉬기도 버거울 정도의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아간은 거의 조아릴 듯이 바닥에 엎드렸다.

그럼에도 아간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러면, 아들이라도 데리고, 나가 주십시오.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잖습니까."

"여기에 네 아들이 어디 있지?"


라자살라가 조소을 지으며 되물었다. 아간은 발끈했다. 설마 그것마저 들어주지 않을 작정인가.

그때 라자살라가 아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오싹한 기운이 전해지는 순간 아간이 단말마를 내질렀다.

사람들은 당황한 얼굴로 귀를 막았다. 이전까지 들었던 쩌렁쩌렁한 포효와 완전 달랐다.

철필로 돌바닥을 긁어내리는 것처럼 소름 돋는 울부짖음이었다.

엔라는 옷을 벗어 디아프 머리에 감싸주었다.


"아아아!"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이 삭풍처럼 몰아쳤다.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아간은 몸을 웅크렸다.

그 순간 다른 이들은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마냥 거대하기만 했던 괴물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몸을 두르고 있던 흰 뼈가 가루가 되어 부숴지고,

공성 무기가 아니고서는 흠집도 내기 어려웠던 검은 털가죽이 사람의 부드러운 살결로 변해갔다.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던 몸집은 얼마 안 가 한 인간 남성의 몸으로 변했다.

그는 나신을 한 채 바닥에 엎드렸다.

추운 바람이 연신 몰아치고 있었지만 남자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남자, 아간은 힘겹게 고개를 올렸다. 희뿌연 세상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라자살라.

그러나 결코 온화한 미소가 아니다.

예전에 처음 라자살라와 대면했을 때. 그때 아간이 보았던 바로 그 미소였다.

라자살라는 입꼬리를 귀까지 찢은 채로 말했다.


"정신 차려라, 괴물아. 네놈에게 대체 아들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내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아간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디아프가 엔라 품에 꼭 안겨 있었다.

겁을 먹었는지 잔뜩 두려운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간은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술이 좀체 떼어지지 않았다.

고통의 잔재와 함께 피로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디아프!"


뒤를 돌아본 아벨린은 웬 처자가 병사들 사이를 뚫고 들어오려는 걸 발견했다.

산발머리를 한 처자는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아벨린은 식겁했다.


"오, 오지 못하게 해!"


병사들은 처자를 붙잡는 걸 성공했다. 하지만 그 밑으로 빠져나가는 소녀는 미처 보지 못했다.

소녀는 빨빨거리며 달려나오더니 디아프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타샤!"

"디아프!"


서둘러 엔라에게서 빠져나온 디아프는 소녀를 부둥켜 안았다.


"뭐해! 얼른.."


아벨린은 타샤를 붙잡으라고 명령하려 했다. 그러나 라자살라가 조용히 팔을 들어 제지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차마 거스를 수 없었다.

방금 보인 능력으로 봤을 때 분명 이 노인은 주술사임이 틀림없다.

상대가 주술사인 이상 대드는 건 의미가 없었다.


"가서 주인이나 챙기게. 집 지키는 개야."


라자살라가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

아벨린은 노려보는 것으로 소심한 반항을 한 뒤 게티아르에게 달려갔다.

한편, 타샤는 힘껏 재회의 기쁨을 즐겼다. 정말 자신이 알던 그 디아프가 맞긴 한 건지 연신 검사했다.

다만 기쁨을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얼마 안 가 바닥에 누워 있는 아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간은 한 눈에 보기에도 처참했다.

여전히 눈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고 오른팔은 새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게다가 허벅지에도 칼침을 맞은 바람에 계속해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타샤는, 그럼에도 기절하지 않았다. 흠칫 놀라고는 디아프를 안은 채로 물러나기만 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아간은 왠지 긴장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면구스럽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타샤."


타샤는 한 차례 몸을 떨었다. 아간은 타샤가 보내오는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저씨. 정말 괴물이었군요."


아간은 침묵했다.


"언제부터 괴물이었어요?"


여전히 답은 없었지만 타샤는 연거푸 질문했다.


"디아프가 왜 아저씨를 기억 못하는 거죠?"

"..뭐?"


타샤는 아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디아프를 보았다.


"디아프. 누구야?"


디아프는 보지 않았다. 타샤가 억지로 머리를 잡아 돌리려고 해도 끝까지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지 마, 타샤! 괴물이잖아! 넌 안 무서워?"

"제대로 봐. 네 아빠잖아!"

"뭔 소리야. 아빠 아냐! 절대 아냐!"


아간은 자신이 잘못 들었길 바랐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디아프는 눈을 질끈 감고서 외쳤다.


"난 아빠 없다고!"


아간은 멍하니 디아프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하리가 병사를 물리치고 곁으로 다가왔음에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리는 타샤와 디아프를 품에 안은 채, 아간을 바라보았다.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하리는 꿋꿋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당신, 디아프 친부 아니었어요?"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수녀님. 디아프는 제 아들이.. 맞아요. 확실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디아프가 내 아들이 아니라니.

잠시 혼돈이 왔을 뿐이다. 당연하다. 라이칸스로프가 사실 아버지라니.

믿고 싶지 않은 게 지극히 정상이다.

하리도 그리 생각하는 건지 디아프가 아간을 보게 했다.

디아프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하리가 어르고 달랜 덕분에 조금 침착을 찾았다.

디아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간은 혹여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싶어 화살이 꽂힌 부위를 왼손으로 가렸다.

울 것처럼 인상을 찌푸린 디아프는 매정히 고개를 돌렸다.


"수녀님. 정말 몰라요. 아빠 아니에요. 제 아빠는 이미 마을이 무너졌을 때 죽었어요. 저 사람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에요."

"알았어, 미안해. 이제 그만 봐도 돼."


하리는 디아프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얼어붙어 버린 아간을 쳐다보았다.

아간은 심하게 더듬거렸다.


"아니. 왜, 왜 디아프 왜.. 아빠를.."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말이 안 되는 게 당연하죠. 자기 아이도 아닌데 매주 꼬박꼬박 보육원에 찾아올 리는 없잖아요. 그러니 당신 아들이라고 생각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거예요."


엔라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디아프를 쳐다보았다. 바로 저 아이가 아간의 아들이었을 줄은.

엔라도 예전에 그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아간이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다.

아니, 부정을 넘어서 아예 존재 자체를 믿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여기 오는 동안 기억을 되새겨봤어요. 그러자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아냈어요. 디아프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아빠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디아프는 절 보고, 확실하게 말했어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어쨌든 디아프가 당신에게는 반응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쩌면, 어쩌면 자주 봤으니까 그랬던 걸지도 몰라요. 모르는 얼굴만 있는 곳에 있다가 그나마 아는 얼굴이 나타나니까 반응을 한 거죠."

"말도 안 됩니다!"


아간이 온몸을 들썩일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

주변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병사들은 식겁했다. 이러다 다시 괴물로 변하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런 그들에게, 라자살라는 단지 물러나라고 손짓을 했다.


"분명 디아프는 나에게 말했어요. 아빠, 아빠라고! 나에게 팔을 벌리며 다가오기까지 했단 말입니다!"

"그땐 디아프가 제대로 말을 하기 전이었죠."


아간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하리는 디아프를 더욱 강하게 안았다.


"아간, 디아프는 당신에게 아빠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아기 옹알이처럼 몇 번 되뇌이기만 했을 뿐이죠. 물론 부모는 아기가 의미 없이 웅얼거린 말에도 알아들을 것처럼 행동하죠. 어떨 때는 그게 자기 이름을 불렀다고도 얘기해요. 그러니 그 심리는 이해해요. 하지만."


하리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른 뒤에야 힘겹게 말을 꺼냈다.


"디아프가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 당신을 아빠라고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심지어 찾은 적도 없어요. 기억나요? 언제부턴가 보육원에 오지 않았던 때가. 그 이후로 디아프 말솜씨가 좋아졌어요. 전 그때 디아프가 아빠 얘기를 많이 할 거라고 기대했어요."


아간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라자살라는 그를 묘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동정심이면서도.

동시에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전혀 하지 않았어요. 매주 왔던 아빠가 갑자기 안 왔는데도 말이죠. 울면서 찾으려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럴 일도 전혀 없었어요. 가끔 장난감이 부족하다는 말만 했을 뿐이에요. 이상하지 않나요? 말이 안 되잖아요. 당신이 진정 아빠였다면 디아프가 찾았을 텐데. 그런데도 디아프는 당신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어요!"

"그런 말하지 마십시오!"


아간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라자살라의 손짓에 다시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다.

아간은 그런 라자살라를 질책하기보다 하리에게, 정확히는 디아프에게 다가가기 위해 팔을 뻗었다.


"대체 왜 그런 망발을 하는 겁니까! 디아프는 내 아들이 맞아요. 저 얼굴을 보십시오. 내 얼굴과 똑같잖아요! 그런데 왜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까!"

"오지 마!"


디아프가 앙칼지게 외쳤다.

누가 뭐라 해도 들은 척도 안하던 아간이, 디아프의 말 한 마디에 바로 멈췄다.

디아프는 하리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가요, 수녀님. 여기 있기 싫어요. 보육원에 가서 친구들하고 같이 있고 싶어요."


그말이 누군가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아간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나하나씩 보이는 얼굴들.

아간은 그들에게 호소하듯이 손을 뻗어보았지만 호응은 없었다. 다들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그러다 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로 라자살라였다.

아간은 라자살라의 발치에 매달릴 것처럼 기어갔다.


"당신은 알고 있겠죠. 가서 말해주십시오, 라자살라. 저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내 소중한 아들이라고 말이에요. 당신은 다 알잖습니까. 그러니.."


문득 아간이 위를 쳐다보았다.

라자살라는 여전히 불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그저 온화한 인상을 가진 노인처럼 보일 테지만.

아간에게는 아직도 라자살라의 입꼬리가 찢어져 있는 걸로 보였다.


"라자살라?"

"쯧쯧. 멍청한 녀석.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느냐?"


라자살라가 허리를 굽혔다. 그의 주름진 입술이 어떤 말을 그려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간은 모든 걸 이해했다.


주술. 한계. 대가.

모든 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렇기에 주술도 무한정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로지 마법만이 대가가 없을 뿐.

그러니.

신중하게 해야 한다.


-명심하게, 아간.


라자살라가 입을 벌렸다.

누구에게도 들릴 리 없는 말이, 지금 아간의 귓가에 스며들어왔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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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400년의 기다림 (2) 23.03.01 55 3 15쪽
115 400년의 기다림 (1) 23.02.28 59 3 14쪽
» 절망 23.02.26 59 3 24쪽
113 꼬리별과 늑대 (5) 23.02.25 65 3 17쪽
112 꼬리별과 늑대 (4) 23.02.24 62 3 18쪽
111 꼬리별과 늑대 (3) 23.02.22 71 3 15쪽
110 꼬리별과 늑대 (2) 23.02.17 71 3 18쪽
109 꼬리별과 늑대 (1) 23.02.16 61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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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계획 시작 (13) 23.02.13 58 3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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