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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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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6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3.02.2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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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꼬리별과 늑대 (5)

DUMMY

"수녀님, 수녀님."


하리는 머리에 큰 통증을 느끼고는 잔뜩 눈가를 찌푸렸다.

차갑고 딱딱한 바닥과 흙먼지 내음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괴로운 건 메스꺼움이었다.

거센 물살에 떠 있는 조각배에 있는 것처럼 온 세상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일어나요, 수녀님!"


누가 흔들고 있는 건지 몸이 자꾸 움직였다. 왈칵 짜증을 내려던 하리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수녀님!"


흐릿하게 보이는 천장, 어디선가 들려오는 장작 타오르는 소리.

그리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한 소녀.

하리는 소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타샤?"


타샤는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리의 목을 감싸며 품에 안긴 타샤는 몸을 떨었다.

하리는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이마에 피가 나고 있어요."


어쩐지 머리가 아프더라니.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조금 따끔거리기만 할 뿐이야. 그보다 벤 아저씨는?"

"몰라요. 다른 사람들이 끌고 갔어요. 아저씨도 수녀님처럼 머리를 맞고 기절했어요."


아아, 벤 아저씨. 결국 당신도 저 때문에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군요.

하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품으며.

차라리 이쯤에서 가만히 숨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찰나.


"디아프는?"


일순 디아프가 떠오른 하리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격렬한 저항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물감이 터져 벽면을 물들이고 있는 건 기본이요, 새하얀 화지가 구겨지거나 찢긴 채로 바닥에 굴러다니기까지 했다.

이제 보니 타샤 볼에도 붉은 자국이 맺혀 있었다.

아마 디아프를 끌고 가는 병사에게 대들다 손찌검을 당한 모양이었다.

하리는 다시금 타샤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수녀님. 바깥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봐요. 뭐가 부숴지는 소리도 막 들리고 짐승이 우는 소리도 들려요."

"걱정 마. 여기엔 오지 않을 거야. 잠시만, 지금도 그 소리가 나고 있니?"

"지금도 계속 나고 있는 걸요. 들어보세요."


몸을 추스리느라 정신이 없던 터라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미처 귀를 기울이지 못했었다.

과연, 타샤의 말대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자니 다급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 온몸에 있는 털이 쭈뼛 솟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오랜 잠을 깨고 일어난 태고의 괴물이 낼 법한 울음 소리였다.

하리와 타샤는 얼른 서로를 감싸 안았다. 그럼에도 공포감은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제가 아까 들은 그 소리예요."


타샤가 잔뜩 숨을 죽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마음속으로 독백했다.


'설마 저 소리가..'


"정말로 저 괴물이 아간 아저씨인 걸까요?"


하리가 고개를 돌렸다. 타샤는 두려우면서도 올곧은 시선으로 하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예전에 지나가다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 초상화, 괴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린 알잖아요. 그게 누굴 그린 건지."

"그렇다면.. 혹시 디아프도 알고 있었니?"

"모르는 것 같았어요. 넌지시 떠봤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더라고요."


그리고 타샤는 입을 다물었다. 하리는 왜 타샤가 말을 하다 말았는지 알았다.


"왜 디아프가 그런 말을 한 걸까요? 정말로 자기 아빠를 까먹은 걸까요?"

"모르겠어, 타샤. 나도 모르겠어."


말을 하지 않고 언제나 멍하니 앉아만 있던 때도, 디아프는 아간만 보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했었다.

어설프게 말을 했었을 때도 아간을 보면 미숙하게나마 아빠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일까.

하리는 눈을 꼭 감았다.

듣기만 해도 절로 신을 찾게 만드는 무서운 울음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하리는 단지 몸을 움츠리고만 있지 않았다.

그 울음 소리가 어디서 나오고 있는가.


"..물어봐야 해."

"네?"


하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내가 나가면 꼭 빗장을 지르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해. 알았지?"


타샤는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싫어요. 저도 갈래요. 여기서 웅크리고 있느니 움직이는 게 더 나아요."

"타샤."

"아빠도 그래놓고 안 왔죠. 기다리라고만 했지 언제 온다는 얘긴 안 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안 오고 있죠."

"돌아온다고 약속할게."

"절 버리고 가지 말라는, 그런 연약한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가만히 있는 게 싫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수녀님이 절 두고 간다면 전 혼자서라도 갈 거예요."


치기 어린 반항이다. 하리는 그렇게 여기고서 단호히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득 자신과 타샤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가 저기 가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혼란의 중심에 휩쓸려 무의미하게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창이나 검을 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괴물에게 맞서 싸울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슴속 깊이 숨어 있는 의문을 끄집어 내기 위해 가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리나 타샤나 다른 점이 없었다.

크아아아..

도시를 뒤흔드는 울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하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타샤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하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



성이 흔들린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담백한 사실이었다.

일찍이 아간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라이트를 구하기 위해, 성의 아랫 부분을 박살낸 적이 있다.

거기에 더해 성탑을 무너뜨리고 내부까지 파고 들어간 탓에 성은 전체적으로 불안정해졌다.

물론 모래성처럼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험한 지형 위에 자리했다면 모를까 이곳 지반은 전체적으로 안정돼 있다.

하지만 때때로 우르릉, 하고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길한 생각이 피어오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빨리 파내야 한다! 어서!"


아벨린은 막 돌덩이를 뒤로 집어던지고는 외쳤다.

병사들이 다급한 움직임을 보이며 성 내부에 쌓인 돌덩이를 치웠다.

그럼에도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돌덩이를 치울 때마다 위에서 어설프게 걸쳐 있던 잔해가 밑으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아벨린은 분노했다. 용병들 대부분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다.

상상을 벗어나는 라이칸스로프의 괴력에 기가 질린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용병들이 있었지만 실력으로나 판단력으로나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은 이미 괴물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대장님! 여기 틈이 났습니다!"


경비조장 한 명이 먼지를 잔뜩 묻히고서 소리쳤다.


"들어갈 수 있나!"

"조금 비좁아서 들어가기가 힘듭니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갈게요."


그러면 좀 더 파라고 지시하려던 아벨린은 고개를 돌렸다. 여자 용병이 날랜 움직임을 보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용병, 이름은?"

"엔라. 나이도 물을 거예요?"


톡 쏘아붙는 말투였지만 아벨린은 꽤 시원한성격이라고 평가했다.


"아니, 그럴 시간은 없으니. 좋소. 안에 들어가서 돌덩이를 치워주시오. 양쪽에서 치운다면 훨씬 빠르게 진척이 될 테지."

"미안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뭐요?"


엔라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민첩하게 틈 사이로 몸을 던지고는 반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벨린은 엔라가 성 안쪽으로 달려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젠장, 용병 나부랭이 년이! 뭐해, 빨리 치워!"


아벨린의 외침이 엔라에게도 들려왔지만 그녀는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이 순간을 고대했던 건 바로 엔라였으므로.

쿠오오오!

윗층에서 아간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피부가 찌릿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엔라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으려는 다리를 보며 호되게 꾸짖었다.


"움직여!"


그녀라도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어쩌면 남들보다도 더욱 두려울지도 모른다.

괴물에게 마을을 빼앗긴 자이기에 누구보다도 무력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엔라는 두려움에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헤쳐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한 번에 서너 계단씩 밟으며 올라간 엔라는 순간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휘청였다.

성이 전체적으로 위아래로 들썩인 탓이었다. 설마 성을 아예 박살낼 생각인 건가.

어쩌면 그것도 무리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 무렵.

귀를 멀게 만드는 엄청난 소음과 함께 무언가가 벽을 뚫고 튀어나와버렸다.

엔라는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뒤로 물러났다. 강풍이 불면서 안 그래도 어지러운 성 내부를 더욱 어지럽히게 만들었다.

간신히 팔을 내린 엔라는 그 물건이 한때 귀부인의 화장대였다는 걸 알아챘다.


"크아아아!"


훨씬 선명하게 들리는 울음 소리. 엔라는 잔해를 밟으며 복도를 가로질렀다.

벽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민 엔라는 곧 눈을 크게 떴다.

한 인간이 거대한 괴물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온몸을 내던진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그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장면이건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라이칸스로프가 물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체격 차이로만 보면 일찍이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승부다.

대체 저 인간에게서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길래 라이칸스로프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쨌든 기회다.'


엔라는 늑대포식자를 꺼내들었다. 아간이 저 인간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때가 절호의 기회였다.

숨통을 끊지는 못하더라도 치명상을 입힐 수는 있을 테지.

그렇게 생각한 엔라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커다란 가죽이 걸려 있는 벽. 그 벽 뒤에 웬 소년이 몸을 벌벌 떨며 숨어 있었다.



*



게티아르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의자를 보고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다미달로 간단히 두 동강을 내고는 핏발 선 눈을 한 채 달려나갔다.

아간은 분한 마음에 재차 씨근거렸지만 오래도록 노려볼 수 없었다.

해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눈이 아팠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린 아간은, 그러나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아간은 주먹으로 단번에 창문을 깨버리더니 유리 파편을 게티아르에게 던졌다.

하지만 게티아르는 회피하지 않았다. 파편이 몸에 박히건 말건 따라잡는 걸 멈추지 않았다.


"같잖은 수작은 그만둬라!"


게티아르는 가히 증오의 화신이었다. 증오라는 원념이 인간이라는 형체를 뒤집어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떨어뜨리려 해도 기어코 찾아와 검을 휘두르는 걸 보면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둘의 싸움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한 쪽이 물러나면 다른 한 쪽이 쫓아가는 형국이 반복되었다.

물론 아간이라고 해서 물러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저 역겨운 월장석 검에 찔리는 한이 있더라도 게티아르를 붙잡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처음 맞붙었을 때 그가 앞으로 돌진한 것도 그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간은 실패했다. 잡아채기 위해 팔을 뻗는 순간, 게티아르가 몸을 수그려 피하더니 다미달을 휘두른 것이다.

그 바람에 안쪽 겨드랑이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다행히 주저하지 않고 물러난 덕에 깊이 찔리진 않았다.

문제는 월장석 검에 찔렸다는 것이겠지.

아간은 시시각각 상처가 갉아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격하게 움직인 터라 상처는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었다.

마치 독을 바른 무기에 당한 것 같았다.


"고통스럽나? 분한가? 이것 때문에 나를 대적할 수 없어서 치가 떨리더냐? 웃기지 마라! 네놈이 갖고 있는 그 모든 감정을 합하더라도 내것에 비하진 못할 것이다. 차라리 실리스 대신 내가 저주에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네가 알 것 같으냐!"


다미달이 푸른 눈물을 흘렸다.

악에 받혀 소리를 지르는 주인의 격한 감정에 동조한 건지 더욱 서슬퍼런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


"더 이상 이 땅에 혼란을 주지 말아라. 순순히 목을 내놓아 자신의 죄를 뉘우쳐라. 적어도 네놈의 아들이 평범하게 살길 원한다면 기필코 그리 해야 할 것이다. 듣고 있나, 라이칸스로프? 아니. 무두장이 아간!"

"시끄럽다!"


아간이 포효와 함께 바닥에 손을 찔러넣었다. 단숨에 아간 발치까지 다다른 게티아르는, 그러나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실금이 죽죽 그어진 바닥이 원래도 불안정했다는 건 그도 알고 있다.

그러나 설마 바닥을 뜯어내어 위로 들어올릴 줄이야.

바닥이 벽처럼 솟아오르는 기가 막히는 광경에 게티아르는 잠시 넋을 잃었다.

그 바람에 아간이 벽을 박살내며 달려드는 걸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게티아르는 잇소리를 내며 검을 앞으로 당겼다.

다미달을 몸에 가까이 붙이고 있으면 직접 피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판단은 일견 타당해보인다. 아간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망설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끝내 본능을 이겨내었다.

게티아르가 고통에 젖은 신음을 내었다. 아간이 오른손으로 게티아르와 다미달을 동시에 붙잡은 것이다.


"크아아아!"


비명은 둘이면서도 하나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질렀기 때문이다.

물론 온몸으로 아간의 악력을 버텨내는 게티아르와,

한 손에서만 작렬하는 고통을 맛보는 아간의 입장을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간은 몸 전체의 신경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죽인다.'


아간은 오른손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게티아르를 터뜨려 죽일 작정이었다.

오른손 위에 왼손을 겹친 아간은 그대로 힘을 주었다. 아니, 주려고 했다.

가슴팍에 다미달을 대고 있던 게티아르는 검날을 세로로 세웠다.

그러더니 톱을 다루는 것처럼 위아래로 서걱서걱 썰기 시작했다.

화살은 우습게 튕겨버리는 튼튼하고 질긴 가죽이, 검 하나에 의해 무력하게 썰리기 시작했다.

아간은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주둥이 사이로 피와 침이 섞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뼈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났다. 게티아르 왼쪽 어깨 뼈가 함몰되었다.

그럼에도 게티아르는 살을 써는 걸 멈추지 않았다.

써는 것과 동시에 피가 부글부글 끓면서 기화가 되었다.

전에 아라가 마을에서 게티아르가 아간에게 일격을 가했던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핏빛 안개가 주변에 피어올랐다.

들이마시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짙은 피냄새가 둘 사이에 흘렀다.


"놔라!"


게티아르가 피를 토해내며 외쳤다. 아간은 벌게진 눈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누가 먼저 힘이 다 하느냐의 싸움이었다.

싸움은 곧 결착이 났다. 게티아르의 처절한 집념이 이긴 것이다.

아간이 손목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났다. 속살마저도 까맣게 타들어간 오른손에는 피도 흐르지 않았다.

앞으로 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는지 의심이 가는 모습이었다.

게티아르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라고 해서 멀쩡한 건 아니었다.

왼팔에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예전에 당했던 부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던 터였다.

아간과 격전을 벌인 탓에 그 부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럼에도 게티아르는 불굴의 의지로 일어났다.

왼팔을 쓸 수 없다고, 골반이 비틀렸다 해도 무슨 상관인가.

지금 이 순간 움직일 수 있다면,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충분하다.

다미달을 지팡이 삼아 일어난 게티아르는 아간을 겨누었다.

검끝이 떨리고 있었지만 의지는 가득 담겨 있었다.

지독한 인간이다.

아간은 게티아르를 보며 치가 떨렸다. 대부분은 그의 변한 모습을 보면 무서워한다.

무서워 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

아간도 라이칸스로프의 저주에 걸리지 않았다면 당연히 무서워했을 것이다.

간혹 아간을 보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되려 불타오르는 자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게티아르는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그래. 당신도 필사적이란 말이지.'


아간은 이해했다. 그렇기에 혐오감이 들었다.

다른 자는 몰라도 저 자는 무조건 자신의 손에 죽여야했다.

디아프를 찾는 걸 조금 뒤로 물리더라도 반드시 그래야만..

아간이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당혹스러워했다.

뚫어지게 아간을 보던 게티아르는 잠시 집중이 흐트러졌다.

커다란 머리가 별안간 휙휙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뭐하는 거지?"


'냄새가.'


아간은 황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흐릿하게 방 안에 퍼져만 있던 디아프 냄새가 일순 뚜렷해진 것이다.

대체 어디서 나는 것일까. 이를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아간은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엔라가 디아프 손을 잡고 복도로 나가고 있었다.

당황하던 아간은 온힘을 다해 외쳤다.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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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서로를 위해 (2) 23.03.16 43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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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400년의 기다림 (4) 23.03.03 60 3 14쪽
117 400년의 기다림 (3) 23.03.02 55 3 19쪽
116 400년의 기다림 (2) 23.03.01 56 3 15쪽
115 400년의 기다림 (1) 23.02.28 59 3 14쪽
114 절망 23.02.26 61 3 24쪽
» 꼬리별과 늑대 (5) 23.02.25 68 3 17쪽
112 꼬리별과 늑대 (4) 23.02.24 63 3 18쪽
111 꼬리별과 늑대 (3) 23.02.22 72 3 15쪽
110 꼬리별과 늑대 (2) 23.02.17 72 3 18쪽
109 꼬리별과 늑대 (1) 23.02.16 62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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