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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바이의 서재입니다.

인생 삼세번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스터바이
작품등록일 :
2018.04.09 16:42
최근연재일 :
2018.05.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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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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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혐의

DUMMY

6. 혐의


“장철호씨,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사고 나던 순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일승이 재촉했다.

하나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대응하지 않았다.

지금 굳이 말을 섞을 필요는 없었다.

좀 더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장철호 환자는 목을 다쳐서 아직 말을 할 형편이 못됩니다.”

특실 담당 간호사가 나를 변호하고 나섰다.

놀랍게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김이현이 담당간호사로 배정되었다. 내가 수백억대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병원 측의 배려였는데, 김이현은 환자의 상태와 입장을 가장 잘 배려하는 최고의 간호사라고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 나서준 김이현이 고마웠다.

그리고 경추와 요추 수술을 하고 목 또한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또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너구리 김일승 형사가 몇 번 더 물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아직 회복이 덜 되신 것으로 알고 오늘은 물러가겠습니다. 아, 조만간 다시 올 겁니다. 몸조리 잘하십시오.”

그렇게 김일승이 물러갔다.

나는 경찰을 상대하기에는 특실보다 4인실이나 6인실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으면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또 아무리 유력한 용의자라고 해도 아무래도 조심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마나호흡을 생각하면 또 1인실이 편하다.

뭐 어쨌든지 병실은 언제나 만원이었고 또 행여 병실이 나오더라도 좀 더 형편이 열악한 환자들에게 배정되었다. 무려 수백억의 재산을 상속받을 나에게는 그런 일반병실보다는 VVIP를 모시는 특실이 더 어울렸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흐르고 너구리 김일승 형사가 다시 찾아왔다.

“장철호씨, 사고 나던 순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번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물음이다. 김일승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능의 눈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참 나, 어이가 없다.

당신이 절대자를 알아?

절대자를 느껴보기나 했어?

그러면서 무슨 절대자처럼 구는 거야?

절대자에게 직접 대놓고 따지기까지 했던 난데 어디서 감히 깝치고 있어..

말은 못하고 내심 그렇게 너구리 김일승을 이죽거리고 있는데 예쁜 목소리가 들렸다.

“장철호 환자는 아직,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김이현이 나섰지만 이번에는 김일승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온 겁니다.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뵙게 될 겁니다.”

헐, 내가 걷는 건 또 언제 본 거야?

그나저나 이건 뭐,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경찰서에 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나를 쳐다보는 김일승의 눈초리가 아주 매섭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아니, 아주 조그만 허점이라도 보이면 그 즉시 물어뜯을 것처럼 그는 이를 갈아대고 있었다.

하나 나는 킬러 중에서도 최고를 달리던 전생이 있다. 그리고 피의자를 피고로 만들어 내던 누구보다도 뛰어난 심문 기술 또한 갖췄다.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킨 뒤 입을 열었다.

“병원에서 깨어나고 나서 사고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고 나기 전에 깜빡 졸았던 것 같습니다.”

말이 되어 나오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많이 탁했다.

목이 아프다는 듯이 침을 삼켰다.

김일승의 눈에는 내가 목이 많이 아픈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하지만 너구리 김일승 형사는 닳고 닳은 베테랑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장명호 회장이 로열로드 바에서 양주 한 병을 마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장철호씨도 동석하고 있었지요?”

“네, 동석은 아니지만 로열로드에 있었습니다.”

장 회장이 장철호와 술잔을 주고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런 걸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바에서 나온 뒤 어디로 갔습니까?”

“곧바로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한남대교로 진입하려던 차가 난간을 들이받고 20미터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그런 사고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냐는 물음이다.

아니, 살아난 게 죄야?

막말을 던지고 싶었지만 킬러의 인내를 가진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몸을 내가 차고앉은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일승이 말을 끌었다.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가려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말끝을 흐려서 긴장감을 조성한 김일승은 단 한 순간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김일승이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부검 결과 김진모 씨의 몸에서 타박상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혹시 아는 게 있습니까?”

김진모..? 아, 김 기사!

김 기사의 풀네임이 김진모다.

뭐, 아무튼지 사고 전날에도 장 회장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았던 두 사람이니 흔적이야 당연한 거다.

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걸 본 너구리 김일승이 눈을 빛내며 재빨리 말을 더했다.

“세 분이 한 집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진모 씨의 몸에 있는 흔적을 분석한 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사고 전날 밤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일승은 자신이 말한 게 아주 중요한 증거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여기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아직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신체를 컨트롤 할 수가 없다. 내 모습은 아마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었다.

아무튼지 이걸 잘 넘겨야 한다.

그러고 보니 장철호, 아니, 내 몸에도 김 기사와 같은 구타의 흔적이 있을 것이었다.

그걸 경찰이, 눈앞의 너구리 김일승 형사가 알고 있을까..?

이건 정말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김일승이 내 몸에 구타 흔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대답 또한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승이 내가 맞은 걸 어떻게 확인했을까..?

아니, 경찰이 내 몸을 보았을까?

내심 고개를 저었다.

사고현장에서 응급실로 실려 왔을 것이고 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가 중환실로 향했으니 아무리 경찰이라도 내 벗은 몸을 본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의사나 간호사를 통해서 구타 흔적을 알아낼 수도 있다지만 나를 대하는 병원 사람들의 태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아니, 대한병원은 경찰에게 상당히 비협조적이다.

더군다나 조금 전에도 김이현이 나를 위해 나서지 않았던가.

“회장님에게 맞은 겁니다..”

사실을 말했다.

너구리 김일승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한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장철호씨는 장 회장의 수행비서가 아닙니까?”

“수행비서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집이 아닙니까.”

“혹시..”

“저는 맞지 않았습니다. 회장님께 아무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맞겠습니까.”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김진모씨는 뭔가 잘못해서 맞았군요?”

김일승이 허점을 파고들었다.

자기 딴에는 사냥감의 목을 물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왠지 흥분한 기색이 보였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완강히 부인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왔다.

매의 눈을 하고 나를 보던 김일승이 재빨리 추궁하고 나섰다.

“장철호씨, 사실대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김진모씨가 왜 맞았습니까? 아니,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했던 겁니까?”

추상같은 목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나는 얼굴을 무겁게 굳히면서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실수가 따르는 법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세 치 혀에서 비롯된다. 내가 아무리 최고의 킬러라고 해도 지금은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김진모씨가 장 회장의 구타에 앙심을 품었을 것이고 따라서 김진모씨가 고의로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철호씨는 애꿎은 피해를 당한 것이지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십시오.”

은근슬쩍 달래기까지 한다.

김일승은 닳고 닳은 너구리, 아니, 살쾡이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말 한 마디 표정 하나까지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어른다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넘어갔다가는 큰 코 다치는 거다.

나는 이때까지 꼿꼿하기만 했던 태도를 바꿨다.

“휴우.. 모르는 걸 어떻게 말합니까?”

한숨까지 내쉬었다.

완전히 포기한 모습이다.

“이런, 환자분이 많이 지쳤습니다. 이만 돌아가셨다가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

김이현이 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 몸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김일승은 입맛이 썼다.

가뜩이나 환자가 아닌가.

이러다가 자칫 장철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걸 혼자서 다 덤터기를 쓸 판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장 회장에게 구타를 당한 김진모가 홧김에 사고를 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장철호는 피해자인 셈이다. 그것도 죽다가 간신히 살아난 애꿎은 피해자다.

김일승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안 그래도 일어나려던 터였는데 거기에 장철호의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많이 피곤합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조리 잘 하십시오.”

드디어 너구리 김일승이 병실을 나갔다.

나는 나름대로 대처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중간에 김 기사의 잘못 운운했던 것과 내 목소리가 떨렸던 것까지 모두가 의도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 일반인다운 평범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경찰이 내 혐의를 풀고, 장 회장에게 폭행을 당한 김 기사가 원한을 품고 사고를 냈다고 판단하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게 모두 궁극의 부동심에서 나온 연기였다.

원하는 대로 상황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그걸 유지하는 게 바로 궁극의 부동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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