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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르미의 서재입니다.

너무 강해져도 인생이 피곤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녀르미
그림/삽화
Copilot GPT
작품등록일 :
2024.01.30 17:17
최근연재일 :
2024.05.15 19:15
연재수 :
180 회
조회수 :
194,240
추천수 :
3,130
글자수 :
1,325,007

작성
24.02.13 19:00
조회
1,243
추천
20
글자
20쪽

41화. 뜻밖의 플러팅?

DUMMY

유미르는 내가다해먹어를 지향 사격 자세로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눈으로는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던전은 어떤 괴수들이 나오는지에 따라 공략 방법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괴수마다 주변 환경에 남기는 흔적들이 다르니, 그 흔적들을 보고 상대할 괴수를 추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동글동글한 짐승 발자국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곧 땅바닥에 온통 비슷한 발자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미르는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가리키며 정시아에게 말했다.


“여기, 이걸 봐. 이 발자국들은 하운드 발자국이야. 체중도 그리 많이 나가지 않는 데다가 발바닥이 부드럽고 탄성이 강해서 발자국이 선명하지 않고 이렇게 뭉툭하게 남아. 네발짐승이고 많게는 백 마리가 넘는 규모로 무리 생활을 하니까, 얘네들 발자국은 한 번 보이면 수백 개씩 보여.”


“글쿠나.”


가까이 다가선 정시아가 바닥의 발자국을 살피고 있을 때, 유미르는 흙을 한 꼬집 정도 집어 들어 손가락으로 살살 비비면서 바닥으로 뿌려보았다.


바람의 방향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람이 우리 등 뒤에서 숲 쪽으로 불고 있으니까 곧 놈들이 우리 냄새를 맡고 나타날 거야. 개랑 비슷하니까 후각도 엄청나.”


“아!”


그렇게 상대할 괴수와 바람 방향을 확인한 유미르가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넓은 공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하운드떼를 상대할 때는 보통은 마법 스킬 중에 넓은 범위에 불을 지를 수 있는 화염마법이 있으면 준비해 두는 게 좋아. 하운드들이 다가올 수 있는 통로를 조금만 열어둔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불로 장벽을 치는 거지."


"오호라!"


"대지계열 마법으로 공략대원을 감싸고 보호할 수 있는 장벽을 쳐도 되지만, 확실히 짐승들이라 그런지 불을 두려워하는 게 더 커서 화염마법이 좀 더 효율적이야. 그리고 또 쉴드 마법을 본인한테 쳐두는 것이 좀 더 안전하기도 하고.”


“오케이, 마법은 맡겨 두라고.”


“근데 사실 시아, 너 정도 되면 그냥 몸으로 때워 가면서 잡아도 그만이야. 어차피 저놈들 공격력이라는 게 고만고만해서 네가 걸치고 있는 아이템 방어력이면 물려도 이빨도 안 박힐 테니까.”


“그럴까?”


“당연하지. 나도 지금 입고 있는 장비면 하운드 정도는 몸으로 때우고도 남아. 심지어 나도 그 정돈데 너는 그냥 몸빵하면서 큰 마법으로 쓸어버리는 걸로 충분하지. 좀 전에 말한 건 그냥 보통의 공략팀이 정석대로 공략할 때 쓰는 방법일 뿐인 거고.”


“오케이. 그래도 이번엔 정석대로 화염 장벽을 칠게. 통로는 어느 쪽으로 열어?”


“당장은 정면의 숲을 기준으로 3시 방향, 아니면 9시 방향 밑으로. 떼로 달려드는 놈들이 직선으로 달려들지 못하도록 각도를 꺾어주면 놈들의 스피드를 확 줄일 수 있어. 중간중간 무리가 어느 쪽에 많은지 살피면서 통로를 옮기는 것도 포인트지.”


“아, 그렇구나.”


처음 던전에 들어와 본 정시아는 주변에 남은 흔적을 보고 아직 직접 목격하지도 않은 괴수의 종류를 알아보거나 바람이 부는 것을 가지고 괴수가 언제 나타날지 예측하고, 공략방법까지 제시하는 유미르가 무척이나 대단해 보였다.


이능력 각성 이후에 보여주던 약간 얼빵하고 모자란 듯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온다!”


그르르르. 그르르.


짐승이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하운드들이 무리 지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작은 송아지만한 체구를 잔뜩 낮춘 채로 두 사람을 노려보면서, 벌린 입에선 굵은 침을 뚝뚝 흘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하운드 무리는, 게이트에서 미친 듯이 튀어나올 때와는 또 다른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던전에서 하운드떼는 상대하기가 꽤나 어려워. 다이어울프 무리들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늑대떼나 개떼가 각자 역할을 정해서 무리 사냥하는 것처럼 공격해 오거든.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와서 무턱대고 달려드는 하운드들하고는 차원이 달라.”


“응, 오빠!”



정시아가 화염 장벽 마법을 빠르게 캐스팅해서 공터에 둘렀다.


지름 20미터 남짓, 두께 1미터에, 높이도 3미터는 족히 되는 거대한 불의 장벽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둘러쳐졌다.


그녀는 유미르가 말한 대로 4시 방향에 폭 2미터 남짓한 통로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미르는 정시아가 친 불의 장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화염 마법에 엄청나게 익숙하고, 마력도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다.


어지간한 공략대에서 화염 마법을 담당하는 이능력자들은 직선으로 여러 번에 나눠서 화염 장벽을 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장벽을 길게 치지 못해서, 공략대원들이 자리 잡을 공간이 부족해 장벽이 주는 열기에 역으로 공략대원들이 고생하던 적도 숱하게 보았고, 장벽을 높고 두껍게 치지 못해서 하운드가 뛰어넘어 오는 경우까지 간혹 있었다.


컹. 컹. 컹.


곧 정시아가 만들어 둔 통로로 하운드 세 마리가 뛰어 들어왔다.


그걸 본 그녀가 외쳤다.


“오빠!”


“나도 봤어!”


짧게 대답한 유미르는 오른쪽 어깨에 견착한 내가다해먹어의 조종간을 단발로 바꾸고 빠르게 타겟을 옮겨가며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탕. 탕. 트앙.


다쏴주겠어로 쏘아내는 속사였다.


격발음 한 번에, 하운드가 한 마리씩 뒤로 터져나갔다.


거의 동시에 불길 사이로 터져나간 하운드 세 마리의 육편과 피안개가 거센 불길에 타오르며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었고, 고기 타는 냄새가 훅 밀려들어 화약 냄새를 덮었다.



던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마주친 하운드 무리는 십여 분 만에 처리할 수 있었다.


정시아가 친 화염 장벽은 그 시간 내내 꺼지지 않고 화력을 유지했고, 일부러 열어둔 통로로 끊임없이 기어들어오는 놈들은 유미르가 내가다해먹어로 줄줄이 쓰러트렸다.


내가다해먹어에서 총성이 한 번 울릴 때마다 최소 한 마리 이상의 하운드가 쓰러졌다.


강화철갑탄의 관통력이 워낙 강해서 첫 번째 타겟을 완전히 관통한 탄자가 뒤따르던 하운드까지 타격하는 경우가 꽤 빈번했던 탓이었다.


정시아는 열어둔 통로에 하운드 사체가 쌓이면 유미르의 신호에 따라 불의 장벽을 유지한 채로, 통로는 물론 장벽까지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마법에 능숙했고, 하운드 수가 적당히 줄어들었을 때는 아예 장벽을 해제하고 단검을 꺼내 들고는 총검을 휘두르는 유미르와 등을 맞대고 함께 하운드들을 도륙하기까지 했다.


여느 짐승들 같으면 그 거대한 불을 보고 곧바로 도망가거나, 또 무리가 많이 죽거나 다치면 나머지는 도망가거나 했을 테지만, 태생이 괴수인 하운드들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두 사람을 노렸기에 전부 소탕할 수 있었다.



130여 마리의 하운드떼 사냥이 끝난 후, 유미르는 그나마 온전하게 남은 하운드 사체들을 골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체했다.


즉사기로 사용하는 것은 아직까진 조금 꺼려지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도축 대신에 사용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또 나중에 어찌 될는지 알 수 없으니, 해체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최대한 성장시켜 둘 필요도 있었다.


정시아가 해체의 진면목을 본 건 처음이었다.


일전에 냉동실에 있던 생닭을 해체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비록 사체지만 피를 빼지도 않은, 그나마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던 것들이 핏물과 체액, 가죽, 근육, 뼈 등으로 풀어헤쳐지며 주변을 피바다로 만드는 것을 본 그녀는 입을 다물고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피를 다 뺀 생닭을 해체하는 것과 갓 죽은 괴수 사체를 해체하는 것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


일전에 지나가는 식으로 유미르가 해체를 쓰기가 좀 꺼려진다는 말을 했을 때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는데, 막상 그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피비린내를 참아가면서 마흔세 구의 하운드 사체를 해체한 유미르는 가슴이 뻐근해지고 두통이 이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영력을 비롯한 능력치들이 낮아 해체의 사용횟수가 제한된다던 기록의 주의 사항은 숱하게 봤지만, 실제로 이렇게 몸에 이상이 올 때까지 해체를 사용해 본 경험은 그도 처음이었다.


유미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본 정시아가 그에게 다가왔다.


극심한 피비린내에 그가 사체를 해체하는 동안 그녀는 한쪽에 몸을 피해 있었다.


“와! 피 냄새! 진짜 장난 아니다, 오빠.”


코를 부여잡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정시아를 돌아보며, 유미르가 말했다.


“뭐, 던전 안에서 도축하고 할 때는 어쩔 수 없어.”


“공장에선 또 다른 모양이네?”


“그치. 공장에선 도축라인으로 사체를 보내기 전에 미리 피를 빼내는 공정을 거치거든.”


“아항!”


“그나마 1급 던전 같으면 가슴만 갈라서 심장 주변만 확인하고 땡이라 조금 덜하거든. 근데 2급이나 3급은 포터만 해도 수십 명씩 들어가서 괴수 사체를 전부 발골하니까, 사냥 한 탐 끝나면 진짜 장난 아니지. 초짜 포터들은 기절하는 경우도 간간이 있어, 피 냄새 땜에.”


“진짜, 그렇겠다. 전장에서 어지간히 구른 나도 이 정돈데. 후우. 그나저나 만약에 오빠 혼자 들어왔으면 방금 하운드 무리 같은 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었어?”


“궁금해?”


“그치, 방금 같으면 오빠 혼자 어떻게 다 잡아? 장벽도 없는데?”


유미르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잘 봐.”


“어?”


유미르는 정시아를 남겨두고 갑자기 삼십여 미터 떨어진 숲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갑자기 그가 달려가 버리자, 정시아가 고함치듯 물었다.


“아, 어디 가는데?”


“보면 알아!”


곧 숲 언저리에 도착한 유미르는 둘레가 두 아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무를 한두 번 타본 것이 아닌 듯 순식간에 올라간 그는, 지상에서 십여 미터 정도 높이의 커다란 가지 위에 멈춰서서 등을 나무줄기에 기댔다.


그리고 바로 자세를 잡아 소총을 견착하고 지상으로 사격하는 자세를 취했다.


“아!”


그 모습을 본 정시아는 그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올라갈 때와는 다르게 유미르는 날개로쏴라를 써서 정시아 곁으로 날아와 내려섰다.


“나무를 탈 수 없는 괴수를 사냥할 때 보통 포터들은 저런 나무 같은 곳으로 피해 있거나 아주 멀찍이 떨어져 있어. 여건이 좋지 않으면 이능력자 한 명 정도가 보호해 줄 때도 있고."


"아하, 글쿤."


"던전에서 전투는 기본적으로 근접전투에 능한 능력자들이 간단하게나마 방어진을 짜고 방위를 나눠서 공방을 하고, 마법이나 원거리 능력자들이 방어진 안에서 공격해. 또 비행 스킬이나 마법이 있는 사람 같으면 몸을 띄우기도 하고. 나도 비행 스킬이 있으니까 방금 전에 만약 나 혼자였으면 비행 스킬로 공중에서 다 잡아버렸을 거야.”


“응. 그렇게 괴수가 공격할 수 없는 곳에서 공격하면 되겠네. 근데, 서너 명이 들어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방어진을 짤 수도 없고, 비행 스킬도 없고, 나무도 없으면? 그럼 그냥 전멸하는 거 아냐?”


유미르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정시아가 사뭇 궁금한 듯 물었다.


“음, 확실히 네 말대로 대격변 초창기에는 그런 일들도 꽤나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듣기는 했어. 그런데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고 노하우가 많이 공유돼서 던전에서 이능력자가 죽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 일단 길드에서 공략팀을 구성할 때 이런 상황도 다 가정해서 짜니까.”


“하긴 그렇겠네.”


납득한 듯 다시 한 번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시아의 등을 유미르가 살짝 밀었다.


"자, 일단 다시 자리를 잡자. 금방 또 괴수들이 몰려올 거거든. 아까까지는 타는 냄새 때문에 도망쳤던 놈들이 이제는 피 냄새에 홀려서 몰려올 테니까.”


“또 몰려온다고?”


“어, 준비하자. 이번에 올 괴수들은 훨씬 까다로운 놈들일 거야.”


“더 쎈 놈들? 여기 1급 던전인데 더 쎈 놈들이 있어?”


“하나하나는 쎄지 않은데, 숫자가 비교도 안 되게 많을 거야.”


“뭔데?”


“방금 나무 위에 올라갔을 때 보니까 나뭇가지에 날카로운 것들에 긁힌 자국이 꽤 많았던 걸 보면 십중팔구 육식원숭이들이 떼로 몰려올 거야.”


“유, 육식원숭이? 그건 또 뭔데? 그걸 또 오빤 어떻게 알아?”


“생긴 건 침팬지랑 비슷한데, 이놈들 손발톱이 상당히 날카롭거든. 그 손발톱으로 나무를 타고 이동하니까, 이놈들이 있는 숲의 나무들에는 손발톱 자국이 엄청 남아 있어.”


“그, 그렇구나. 근데 난 왜 한 번도 못 봤지?”


“이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게이트에서는 거의 안 나오는 괴수라서 던전에 오지 않는 이상은 모를 수밖에.”


“근데 떼로 덤비면 얼마나? 아까 하운드 정도야?”


“수백 마리가 떼로 덤벼.”


“수, 수백 마리?”


“응. 수백 마리. 그리고 숲 근처에 있으면 이놈들이 머리 위에서 덮쳐들어서 위험하니까 숲에서 벗어나서 공터 같은 곳으로 유인해서 사냥해.”


“으, 응.”


“실제로 사냥할 때는 하운드떼 잡을 때랑 비슷하게 해도 되고. 만약 너 혼자라면 숲에 넓게 불을 질러버리면 간단하고.”


“아!”


“육식원숭이가 있는 곳은 백이면 백, 숲 지형이거든. 근데 많아 봐야 열 명 전후인 소수인원으로 이놈들을 검 같은 근접병기로 일일이 사냥하기에는 좀 많이 위험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보통은 육식원숭이떼를 만나면 그냥 숲에 불을 질러서 멀리 쫓아내 버려. 그리고 빠르게 길을 뚫어서 던전핵만 없애는 식으로...”


끼익! 꺅꺄꺅!


유미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원숭이들이 지르는 소리가 숲에서 울려 나왔다.


“왔네. 일단 뒤로 빠지자.”


유미르가 다시 정시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어? 어.”



손목을 잡혀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본 그녀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새까만 원숭이 수백 마리가 나뭇가지를 건너뛰면서 몰려오고 있었다.


일신의 강함을 떠나, 보는 것만으로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오는 광경이었다.


“처음 보면 저 숫자에 질리기 마련인데, 시아 너라면 그냥 쉽게 잡을 수 있는 놈들이야. 애초에 1급 던전에 시아 너한테 해를 끼칠만한 괴수는 없다고.”


“으, 응.”


아무리 자신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생전 처음 들어와 본 던전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또 위험해 보였다.


능력은커녕 아이템도 하나 없이 맨몸으로 이런 곳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을 유미르가 이전과는 전혀 달리 보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수도 없이 목숨을 걸었음에 분명했다.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남자였다니.


거기에 벌써 손목을 잡힌 채로 끌려다닌 게 두 번째다.


항상 유미르를 리드하기만 하다가 그에게 리드를 당하는 처지가 된 정시아는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녀 눈에 씌워진 콩깍지가 더 두꺼워지는 순간이었다.



공터 중앙까지 빠르게 물러난 유미르는 무의식중에 정시아를 자신의 등 뒤로 잡아 세웠다.


마치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 정시아는 누가, 누굴 보호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외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약간 멍한 눈으로 유미르의 넓은 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반면 유미르는 빠르게 육식원숭이와의 전투를 준비했다.


내가다해먹어를 소환 해제하고, 양손에 다찔러200이 결합된 혼자는 싫어를 소환했다.


배틀코트에서 폭발형 권총탄 탄창 두 개를 꺼내 빠르게 탄창을 교체하고 슬라이드를 당겨 장전하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유미르가 나머지 공략법을 읊었다.


“저놈들은 지상에 내려오면 속도가 오히려 줄어. 또 괴수치곤 맷집도 약해. 그래서 공격할 때는 저놈들 가운데에다가 되도록 광범위 폭발형 마법을 난사하면 좋아. 폭발을 피하거나 운 좋게 살아남은 놈들도 근접전투에 능한 능력자가 쉽게 썰어버릴 수 있어.”


유미르의 설명에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아공간에서 기다란 스태프를 하나 꺼내든 정시아가 힘차게 대답했다.


“오케이!”


곧 숲에서 공터로 이어지는 곳으로 새까만 원숭이들의 물결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간다!”


유미르의 양손에 들린 혼자는싫어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트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권총을 연사로 긁어내는 소리와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이 쭈욱 이어지고, 숲과 공터가 만나는 지점에 폭발의 장벽이 좌에서 우로 길게 이어졌다.


그 폭발의 장벽은 막 나무에서 뛰어내려 공터로 기어나오던 육식원숭이 무리를 말 그대로 쓸어버렸다.


폭발에 휘말린 수백 마리 원숭이들의 육신이 수없이 찢긴 파편으로 비산하면서 마치 숲과 공터 사이에 붉은 장벽이 생긴 것만 같았다.


“참 내! 내가 마법을 쓸 필요도 없잖아, 이거.”


그렇게 단 한 마리의 원숭이조차 넘어오지 못하는 것을 본 정시아가 어이가 없는지 유미르를 돌아보면서 꺼냈던 스태프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허탈해하는 표정에 유미르가 키득거렸다.


“정석대로 공략하면 그렇다는 거지. 여기서 너보고 마법 쓰란 소린 아니었다고. 크크크.”


“칫! 재미없거든!”


투덜대는 말과는 달리, 그녀는 혼자는싫어를 두 손에 들고 난사하는 유미르의 옆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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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안쪽으로 2킬로미터 남짓 들어오니 뜬금없이 반경 50미터쯤 되는 공터가 있었고, 그 한가운데 던전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름 1미터, 높이 2미터쯤 되는 바위기둥 위에 유미르 몸통만한 하늘색 결정체가 박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던전의 핵이었다.


“저게 던전핵이야.”


유미르가 오른손을 들어 던전핵을 가리켰다.


“글쿠나. 난 첨 봐. 근데 보스 몬스터 같은 건 없나 봐?”


뜬금없이 보스 몬스터를 찾는 그녀의 말에 유미르가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야, 이게 무슨 게임인 줄 아냐?”


“피이, 첨인데 모를 수도 있지.”


“흐이구. 잘났다. 암튼 저걸 깨트리면 던전은 클리어야.”


“가까이 가서 봐도 돼?”


“그러든지.”


처음 보는 던전핵이 신기한 모양인지 정시아가 핵이 있는 기둥 쪽으로 다가갔고, 유미르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예전에 듣기론 저걸 깨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던 것 같던데, 맞아?”


“응. 내가 직접 깨트려 본 적은 한 번도 없긴 하지만, 물리공격이든, 마법공격이든 그리 강하지 않은 공격에도 잘 깨지더라고. 물론 던전 등급이 올라가면 좀 더 단단해지는 모양이긴 해.”


“글쿠나.”


“여기 공터에서 수련하면 되겠다. 육식원숭이도 그렇게나 많이 잡았으니까 이제 남은 괴수도 얼마 없을 거고.”


두 사람이 숲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남은 육식원숭이들이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하지만, 그놈들은 유미르의 사격과 정시아의 마법에 죄다 찢겨졌다.


간혹 두 사람에게 닿을 정도까지 접근한 놈들도 있었지만, 아이템의 방어력을 넘어서는 공격을 가하지도 못하고 곧바로 사냥당했다.


“근데, 오빠. 지금껏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여기 마나 농도가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음, 난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던전 바깥보다는 마나 농도가 높은 것 같아. 오빠는 던전을 그렇게 많이 드나들었는데 못 느꼈어?”


“나야 이전에는 마력 능력치도 낮은 무능력자로 드나들었으니까 던전 안쪽이 마나 농도가 높은지 어떤지 아예 느끼지도 못했지. 또 공략대 이능력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고.”


“그랬구나. 암튼 여기서 마력 수련하면 잘 오를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넌 마력!넌내꺼 수련해. 난 밖에서 못하는 마나 사격이나 하고 있을게.”


“어? 내가 그 스킬 익힌 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유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릴라이가 말해주던데? 그 스킬 너도 배운 대단한 거라고 하면서 나한테도 팔았어.”


“릴라이, 이 썅! 으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사실 주인공은 지금도 게이트나 던전에서는 무쌍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아이템의 위력은 정말 어마어마 하거든요.

방어력 200의 8등급 팬티만 걸쳐도 현재 최고 등급 괴수인 5급 괴수도 이빨도 못 박아 넣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 한 방 부탁드립니다!

(간절, 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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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3화. 돈의 맛! 24.02.24 1,150 25 24쪽
53 52화. 이런 돈은 처음이야! 24.02.23 1,163 22 12쪽
52 51화. 그녀의 선택. 24.02.23 1,181 20 17쪽
51 50화. 너무 쉽고, 너무 힘들다. 24.02.22 1,149 20 18쪽
50 49화. 제게 맡기세요. +1 24.02.21 1,134 20 14쪽
49 48화. 형들이 왜 여기서 나와? +1 24.02.20 1,140 18 13쪽
48 47화. 그녀와 그녀. +1 24.02.19 1,158 22 13쪽
47 46화. 첫 승리. 24.02.18 1,168 19 22쪽
46 45화. 법칙을 벗어난! 24.02.17 1,183 17 14쪽
45 44화. 어쨌든 대박! +1 24.02.16 1,197 22 20쪽
44 43화. 하얀 행운. +1 24.02.15 1,195 20 18쪽
43 42화. 포기를 이기는 것은? 24.02.14 1,217 19 19쪽
» 41화. 뜻밖의 플러팅? +1 24.02.13 1,244 20 20쪽
41 40화. 누가 초보? 24.02.12 1,266 20 16쪽
40 39화. 아줌마였어? +1 24.02.11 1,270 20 13쪽
39 38화. 선택권은 없다. 24.02.10 1,256 20 13쪽
38 37화. 마음이 콩밭에. 24.02.09 1,293 18 14쪽
37 36화. 그녀의 진심(하) 24.02.08 1,311 20 12쪽
36 35화. 그녀의 진심(상). 24.02.07 1,347 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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