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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르미의 서재입니다.

너무 강해져도 인생이 피곤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녀르미
그림/삽화
Copilot GPT
작품등록일 :
2024.01.30 17:17
최근연재일 :
2024.05.15 19:15
연재수 :
180 회
조회수 :
198,894
추천수 :
3,228
글자수 :
1,325,007

작성
24.05.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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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추천
10
글자
22쪽

166화.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이들.

DUMMY

* * *



- 제니스, 시뮬레이션을 종료할게.


호텔방에 돌아와 자스민이 녹화한 직전의 전투를 빠르게 재생해 본 제니스 맥로린은, 자스민에 기록된 이진서의 스펙과 그녀가 마지막에 살짝 선보였던 상대의 무기를 조종하는 능력까지 반영해서 생성한 가상의 적과 벌써 두 시간째 가상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자스민, 물 좀 마시고, 한 번 더 하자.”


- 알았어, 제니스. 방금 중력 조종과 염동력을 함께 사용해서 상대의 균형을 흐트러트리는 것 아주 좋았어. 이참에 아예 연계기로 만들면 좋겠어.


“Got it.”


자스민을 통한 전투 시뮬레이션은 제니스 맥로린이 전투 경험을 축적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함께 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만 수련했음에도, 그녀가 오늘 이진서와 그 정도라도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자스민의 도움으로 수없이 가상전투를 벌였던 덕분이기도 했다.


통합제국 제르온의 제국군 최고사령관 보좌용으로 만들어졌다던 자스민은, 제국군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것부터 인간의 육체와 냉병기, 화기를 이용하는 근, 중, 원거리 전투는 물론이고, 대규모 함대 운용에 이르기까지 전투와 전쟁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그녀에게 제공해 주었다.


아울러, 자스민이 그녀의 신경계에 완전히 동기화된 이후로 수행할 수 있었던 가상전투 시뮬레이션은 그녀가 그 오랜 세월을 수련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다만, 마법에 관해서는 자스민이 보유한 정보가 턱없이 적어 마법을 혼용하는 가상전투를 벌이는 것만큼은 아직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도 제니스 맥로린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정보가 꾸준히 쌓이고 있어서 최근에는 마법을 활용한 가상전투도 가끔 하던 참이었다.


침대에서 일어선 제니스 맥로린이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하나 꺼내 마시려 할 때, 여태 잠자코 있던 지니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주인, 가상전투도 좋지만, 좀 자두는 것이 어떠냐? 이제 곧 해가 뜰 시간이고, 오전 11시에는 공항에 클레어라는 여자를 마중 나가야 한다.


“됐어. 하룻밤 안 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다종족연합 소속 행성에서 만들어진 지니는 인간의 육체를 사용하는 근접전투 시뮬레이션을 보조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서 그녀가 자스민을 이용해 가상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면 투덜대기 일쑤였기에 그녀는 평소처럼 지니의 말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니의 말에 그녀는 입으로 가져가던 물병을 다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 주인, 그 여자의 방어를 뚫을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한 가상전투를 아무리 열심히 한들 그 여자를 이길 방법은 없을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 그 여자가 주인의 공격을 거의 다 피해버리거나 막아내기는 했지만, 분명 몇 번은 그 여자에게 적중했다. 그 여자의 옷이 찢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그 여자에게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했다. 주인은 그게 무얼 뜻하는 거라고 생각하냐?


- 확실히 몇몇 공격은 적중했어, 제니스.


“그래서 지니, 네가 보기엔 어떤데?”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고 리플레이까지 본 터였으니, 제니스 맥로린도 자신의 공격 중 몇 번은 적중했던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 분명히 몸에 적중한 공격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 말은 즉, 그 진서 리라는 여자는 피부 바로 위에 주인이 가했던 공격으로는 뚫어낼 수 없는 방벽을 두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여자가 제대로 반응해서 피하거나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순간적인 빈틈을 노렸던 주인의 공격에 그때그때 방벽을 만들었다고 볼 수도 없으니, 처음부터 피부 바로 위에 방벽을 만들어 둔 채로 싸웠다고 봐야 한다.


“아이템 효과일 가능성은?”


- 물론 아이템 효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분명 아이템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고 주인보다 강한 그 여자가 굳이 거짓말을 했을 리도 없으니, 능력으로 방벽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인다. 그리고 설령 아이템 효과라고 하더라도 결과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 확실히 지니 말이 일리가 있네.


지니와는 앙숙에 가까운 자스민까지 동의하고 나서자, 제니스 맥로린도 더는 부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지니, 네 말은, 처음부터 그냥 몸으로 때워도 그만인 내 공격들을 피하거나 적중하기 전에 막아낸 것도 피부 바로 위에 두른 방벽을 감추기 위한 연막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 그럴 수도 있고, 내구성이 낮아 많은 공격을 받아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그냥 완전히 날 가지고 논 거네. 처음부터 내 공격 같은 건 무시하고, 나를 바로 잡아 죽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 그건 마지막에 그 여자가 주인의 단검으로 장난질을 쳤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뼈아픈 경험이기는 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제니스 맥로린도 더는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쳇! 그래서 나한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주인이 그 여자와 정면 대결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뭐, 암살이라도 하라는 얘기야?”


-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내가 지금 주인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꼭 싸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잊고 있는 모양인데, 그 여자도 이길 수 없다고 했던 미르 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주인이 그 여자를 죽인다면 다음엔 미르 유가 주인을 잡아 죽이려 할 거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 숨어서 힘을 더 기르든지, 아니면 그들과 같은 편이 되든지. 내가 봤을 때 주인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 둘 중 하나다.


- 제니스, 지금 제니스가 속해 있는 쎄븐 씨즈는 앞서 시아 정에 대한 암살시도 건 때문에 그들과 적대관계가 된 지 오래야. 제니스 네가 시아 정에 대한 암살 임무를 받았던 것도 있으니, 계속 쎄븐 씨즈 소속으로 남아 있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그들과 싸우게 될 수밖에 없어.


“쎄븐 씨즈를 집어삼키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살고 싶으면 탈퇴해라, 이 말이네. 숨으려고 해도 탈퇴해야 하고, 그들과 같은 편이 되려고 해도 탈퇴해야 하고.”


- 뭐, 쉽게 생각하면 그런데...


- 숨는다는 선택지를 제외하면 탈퇴만이 정답인 건 아니다.


“스파이 노릇을 하거나 쎄븐 씨즈를 먹고 노선을 바꿔서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거나 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 맞다, 주인.


“그런데, 그게 내 뜻대로 될까?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한들 받아주겠냐고?”


- 일단 주인이 오늘 죽지 않은 것만 봐도 가능성은 있다. 만약 주인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아까 그 여자와 싸우고 있을 때 그 미르 유가 난입해서 바로 손을 썼을 거다. 그런데, 그 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싸움을 멈추게끔 한 것만 보더라도 당장 주인을 죽이려는 마음은 없는 듯하니 말이다.


“음...”


제니스 맥로린은 물병을 손에 든 채로 깊은 상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일로 시작된 일이,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며 예상 밖으로 너무 커져 버린 탓이었다.



* * *



제1야당인 다함께민주당 당사 5층에 위치한 당대표실에는 토요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당대표와 당의 중진 국회의원 예닐곱 명이 모여 당대표와 회동하고 있었다.


“중국이 차원전함을 두 척이나 동원했어요, 대표님. 이대로라면 언제 서울 상공에서 전함끼리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그렇게 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것도 한순간일 게 분명합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3선인 김태형 의원의 성화에, 당대표 박태훈은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씀인가요?”


“어서 빨리 임시회를 소집하고 정전결의안이라도 만들어서 청와대를 압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김태형 의원의 임시회 소집 제안에 박태훈이 턱을 감싸 쥐려니, 그 옆에 있던 4선 이정후 의원이 말을 보탰다.


“김의원 말이 맞습니다, 대표님. 그나마 북한은 아예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고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이야 지금 당장은 다들 전쟁뽕에 취해 있다지만, 지금도 좋지 않은 경제가 곧 파탄 날 것이 분명해요.”


이정후의 말까지 더해지자, 박태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찻잔을 집어 들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위태위태하기는 하죠?”


검찰총장 출신으로 속내를 알기 어렵기로 유명한 박태훈이 아리송한 말로 반문하자, 그의 보좌진 중 한 명인 하상철 초선의원이 테이블 양쪽의 소파에 줄지어 앉은 의원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김 의원님 말씀도, 이 의원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전쟁이 이대로 계속 흘러가면 우리 당이 완전히 들러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실상은 다들 내년 총선에서 뱃지를 반납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렇게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모이신 것이고요, 그렇죠?”


“흠흠, 그, 그렇지.”


“맞아요, 맞아. 하 의원 말이 정답이야.”


정곡을 찔러주는 하상철의 직설적인 말에 김태형, 이정후을 포함한 의원들 모두 헛기침을 하면서도 누구 하나 부인하지 못했다.


그들의 반응에 피식 웃은 하상철이 입꼬리만 비틀어 웃으며 말을 더했다.


“그리고 이 나라가 고작 괴수 도축이나 하던 스물한 살짜리 중졸 손에 좌지우지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겠고요.”


“그래요. 아무리 강한 이능력자고 차원항모를 사 온 공이 있다지만, 어떻게 그런 근본도 없는 애새끼한테 하루아침에 준장 계급장을 달아 주고 우주군 사령관 자리까지 내어주냔 말이외다. 지금 군의 불만이 장난이 아니에요. 진짜 이대로 놔뒀다간 쿠데타라도 벌일 분위기라니까요.”


“어허! 김의원!”


“어디 가서 그런 말씀하시면 큰일 나요, 김의원.”


쿠데타라는 금기의 단어까지 입에 담은 이는 예비역 중장 출신에 2선인 김치영 의원이었다.


막강한 인맥과 3대째 정치 가문인 처가 덕으로 2선 의원이 되고 당의 중진까지 올라왔지만, 애초에 대장 진급을 코 앞에 두고 군복을 벗은 것도 설화(舌禍)에 휘말려서였던 주제에 아직도 몹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험험,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후배들이 하도 성화인 탓에 그만...”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그의 태도에, 박태훈이 나지막한 소리로 그를 나무랐다.


“지금 우리 군의 불만이 엄청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릴 천금 같은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채로 뒤치다꺼리만 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다들 군복까지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말이죠. 하지만 입에 담아도 될 말과 담아서는 안 될 말이 따로 있다는 것쯤은 구분하셔야지요.”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의 질책에 김치영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김치영이 뚫어준 기회를 다른 의원들은 놓치지 않았다.


“대표님, 재계나 의학계의 불만도 만만치 않습니다. 차원항모로 진행한다는 자원산업에도 우리 기업들이 죄다 원천적으로 배제된 데다가, 난데없이 완전 회복이니 하는 것을 들고나온 바람에 종합병원이고, 의사들이고 간에 죄다 문을 닫거나 아니면 동네 구멍가게 장사나 해야 하게 생겼잖습니까. 또 아이템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삼정이 한 발 걸치고는 있다지만, 이 나라에 삼정만 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기업들은 죄다 죽으라는 말 아닙니까?”


“그뿐입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땅의 자주국방에 기여했던 방위산업체들이 이제는 줄도산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한전하고 발전회사들은 또 어떻고요. 그 회사들이 고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난리도 아닙니다. 죄다 휴지조각이 되게 생겨서 지금 수많은 주주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요.”


“지금 원 달러 환율이 얼만 줄은 아십니까? 무려 6백 원대에요, 6백 원대. 오십 년 전인 80년 이후로 처음 보는 환율이란 말입니다. 당장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죄다 곡소리를 내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직원들 월급도 못 준다고 말이에...”


가만 놔두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성토의 홍수에 박태훈이 손을 들어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그가 손을 들자, 끝도 없이 떠들어대던 의원들이 곧바로 입을 다물고 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 의원님들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전해주신 말씀들이 어떤 뜻인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선열들께서 피땀으로 일군 이 나라가 어리디어린 이능력자 한 명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하는 충정도 잘 알고 있고요. 그래서 저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 그럼?”


다들 눈을 빛내며 자신을 쳐다보는 가운데, 박태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는 중국의 침략행위에 분노한 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서 우리 당도 이 전쟁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방금 여러분들께서 말씀하신 것들만 하더라도 그 며칠 사이에 이통이 선을 넘은 것도 모자라서 너무 나간 것만은 사실이잖아요. 어제저녁에 갑자기 진군을 멈춘 것만 봐도 다 잡은 이기동이를 멀쩡하게 보내줄 생각인가 본데, 솔직히 말도 안 되고 말이죠.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나서서 다시금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일단 세를 더 모아야지요. 한목소리를 내는 이들부터 많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 당 의원들부터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저쪽 당 의원들 중에서도 우리와 함께 할 의원들을 찾아 모으세요. 다들 아시다시피 저쪽 당은 서현우 대표가 실종되면서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있잖습니까? 저쪽이 사분오열되어 있는 이참에 우리 쪽으로 끌어올 분들도 찾아보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대표님.”


“그럼 부탁들 드리겠습니다.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이만.”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의원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선 박태훈은 그를 뒤따르는 하상철과 함께 대표실을 나섰다.




“에효, 저 모지리들.”


당의 중진이라는 작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우르르 몰려와 대책도 없이 불평불만만 쏟아내는 것에 질려버린 박태훈은, 차 안임에도 담배를 꺼내 신경질적으로 불을 붙였다.


“후우. 우리 후배님들 같으면 그 중졸 새끼 사돈의 팔촌까지 죄다 뒤져서 어떻게든 끌어내릴 건수를 벌써 수십 건도 넘게 잡아 왔을 텐데, 내가 저딴 것들을 데리고 당의 대사(大事)를 논해야 한다는 게 참...”


그의 푸념을 웃는 낯으로 듣고 있던 하상철이 속삭이듯 그에게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후배님들이 지금 열심히 뒤지고 있습니다. 벌써 월척도 하나 건졌던데요?”


월척이라는 말에 박태훈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을 냈다.


“뭔데? 그 어린놈한테 그런 게 있어?”


“그게, 5년쯤 전에 강도미수로 반 년짜리 보호처분을 받았던 적이 있더라구요. 미성년자 성매매 미끼로 남자 하나를 유인해서 강도짓을 벌이다가 잡혔습니다. 하하.”


“크크크. 그러니까 소년원 출신이란 말이지? 그래서 고등학교도 중퇴해서 고작 중졸인 거고?”


“네, 맞습니다, 선배님.”


“하여튼 이래서 범죄자 새끼들은 아예 싹수부터가 다르다니까. 애비, 애미한테 대체 뭘 물려받으면 그 나이에 그딴 짓거리를 하냐고.”


검찰총장 출신으로 범죄자들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가진 박태훈은 가뜩이나 백안시하던 유미르에 대한 혐오가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애비 쪽은 함부로 구설수로 올렸다간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게, 육사 출신에 잘나가던 군바리였는데, 75경비대대장으로 있다가 최초 게이트 방어전에서 청와대를 지키다 전사한 모양이던데요? 유족이 가까운 곳에 유골을 안치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지는 못했지만, 충무무공훈장에 대령으로 추서된 기록을 저도 봤습니다. 또 하필 그때가 어르신께서 거기 계실 때 아닙니까? 분명 어르신께서도 기억하고 계실 테니, 아무래도 애비 쪽은 건드리면 안 될 듯 싶습니다.”


“그래? 허허, 그건 또 별일이로구만. 그럼 애미 쪽이 문젠가?”


“아무튼, 고려일보와 아태일보 쪽에 전달해서 월요일 조간에 터트릴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그래, 그렇게 하게. 출처 가리는 거는 따로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이를 말씀을요. 저희가 어디 한두 번 작업 치나요? 그나저나 선배님, 바다 건너에서 온 연락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당 대표 서현우가 실종된 뒤로 한국의 정치권에 행사해 오던 영향력이 급감한 중국공산당이 엊그제 급히 박태훈 쪽으로 협조를 요청해 온 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요청 사항은 크게 두 가지, 중국에 대한 정전을 서두르도록 청와대를 압박해 달라는 것과 우주군 사령관에 대한 불만 세력을 결집시켜 준동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고, 그들이 대가로 제시한 것은 한화로 조 단위의 돈이었다.


“원래 그쪽은 서가네 나와바린데, 왜 그쪽 쫄따구들이 아니라 나한테 그딴 걸 부탁한다고 그래?”


“그 서가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오리무중이잖습니까? 그리고 그 인간을 따르던 인사들 중에 화요일 이후로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 이들도 꽤 많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명단을 확보했는지 모르지만, 이수국하고 국정원 상급 요원들이 고작 하루 만에 죄다 싹 훑었잖습니까?”


선전포고 직전부터 진행된 이수국과 국정원의 간첩 체포 작전에 걸려든 인사들은 정치권에도 많았고, 특히 서현우 계파의 인사들 중에 중국으로부터 뒷돈을 받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하여튼, 서가 그 인간도 좀 적당히 해 처먹을 것이지, 돈독이 올라도 너무 올랐어.”


지난 월요일, 선전포고를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이윤문 대통령과의 비밀회담에서 박태훈은 서현우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중국공산당과 오랜 기간 내통해 온 증거들을 직접 보았고, 이윤문에 대한 암살 시도 직후에 그들이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말까지 들었던 터였다.


“나중에 다 써먹을 데가 있지 않겠습니까?”


박태훈으로부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던 하상철이 나중에 여당을 공격할 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박태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약해. 특히 이통을 잡기엔 택도 없지.”


일개 국회의원도 아니고 여당의 당대표가 수년 동안 적성국에 국내 정치계의 주요한 이슈들에 관한 기밀정보를 팔아넘긴 이적행위에 관한 정보였으니 만큼 여당을 공격할 최고의 무기이자 명분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이윤문은 애초에 서현우와는 계파를 달리하는 여당 내 소수파에 속해 있었으니, 그를 공격하기에는 약발이 강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이통도 선배님께 그 정보들을 공유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서현우계 좌장인 정진철 라인을 쳐내는 데는 그만한 게 없을 겁니다.”


“뭐 그렇긴 하겠네.”


“여하튼 선배님께서 지금껏 서가 건에 대해 함구하고 계신 것은 잘하신 겁니다. 괜히 까발려서 들쑤셔 봐야 지금 당장은 당과 선배님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기엔 때가 좋지 않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하상철의 말처럼 박태훈은 지금 시점에 서현우의 이적행위가 국민들에게 알려져 봐야 여야를 막론하고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비밀을 유지해 달라는 이윤문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태 비밀로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서가 그자는, 진짜 실종인 것 같습니다.”


진짜 실종이라는 하상철의 말은 서현우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했다는 말이었기에, 그가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알고 있는 박태훈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래? 이통 말로는 그쪽으로 넘어갔다던데?”


“그쪽으로 넘어갔으면 바다 건너 쪽에서 저희한테까지 손을 벌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또 그 밑에 있던 사람들이 저토록 우왕좌왕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요.”


“확실히 그렇겠고만. 그럼, 누가?”


“국내 쪽 관할하는 성호필 3차장 쪽이 유력하기는 한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해외정보부문을 담당하는 민유식 1차장까지도 함께 실종된 것을 보면 확실히 국정원에서 처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뭐, 담당업무만 보자면 방첩 쪽을 담당하는 그쪽이겠지만서도,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단 말이지. 방첩사에서 움직인 것일 수도 있고.”


“예, 누가 처리했는지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번 바다 건너 쪽에서 부탁해 온 건은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그 중졸 범죄자 놈을 족치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 요청은 무시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상철의 제안에 박태훈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졌다.


“그렇게 하지. 돈도 돈이지만, 어차피 그쪽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해. 새벽에 들어보니 티벳하고 신장 쪽이 많이 시끄러워질 모양인데, 이제 집안 단속까지 해야 하니까 말이지.”


간밤에 CNN에서는 신장 위구르족과 티벳이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외치며 무장봉기를 했다는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네, 저도 봤습니다.”


“자네가 알아서 더 잘하겠지만, 괜히 돈도 못 받고 서현우 같은 자랑 같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바다 건너에서 연락온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 입단속 철저히 시키고.”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출발하지. 어르신과의 오찬에 늦어선 곤란하니 말일세.”


하상철과 나눠야 할 밀담을 다 마친 박태훈은 여태 멀찍이 세워둔 운전기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네,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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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6화. 맨땅에 헤딩 +4 24.05.12 382 11 13쪽
176 175화. 준비는 과할수록 좋다. +2 24.05.11 457 13 18쪽
175 174화. 첫 임무 +2 24.05.10 437 12 16쪽
174 173화. 여파 +2 24.05.09 456 14 20쪽
173 172화. 진정한 신위를 보이다. +2 24.05.08 463 13 19쪽
172 171화. 견식시켜 드리지요. 24.05.07 481 10 18쪽
171 170화. 그냥 받아들이세요. +1 24.05.06 491 10 24쪽
170 169화. 해드릴 수 있죠. +3 24.05.05 532 11 19쪽
169 168화. 한국에 한 번 다녀오시죠. 24.05.04 532 13 20쪽
168 167화. 몇 개로 찢어주는 것도. 24.05.03 524 15 17쪽
» 166화.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이들. +3 24.05.02 556 10 22쪽
166 165화. 둘 중 하나지. 24.05.01 563 14 18쪽
165 164화. 간만에 재밌는데? +2 24.04.30 589 13 16쪽
164 163화. 내가 원하는 대로. 24.04.29 572 12 20쪽
163 162화.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1 24.04.28 586 12 24쪽
162 161화. 어림없어요. +4 24.04.27 664 12 25쪽
161 160화.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2 24.04.26 629 13 24쪽
160 159화. 지구는 내가 지킨다? +2 24.04.25 630 15 19쪽
159 158화. 신세계라고? 24.04.24 616 14 15쪽
158 157화. 절망을 안겨주는. +2 24.04.23 637 14 15쪽
157 156화. 각자의 역할 +2 24.04.22 651 15 16쪽
156 155화.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5 24.04.21 652 1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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