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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르미의 서재입니다.

너무 강해져도 인생이 피곤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녀르미
그림/삽화
Copilot GPT
작품등록일 :
2024.01.30 17:17
최근연재일 :
2024.05.15 19: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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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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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62화.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DUMMY

* * *


“하하하하하하. 하필 사 와도 그걸 사 왔어. 하하하하하하.”


막 함장실로 돌아와 문을 닫은 유미르는 방금 전 함교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여태 참았던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호호호호.



전장이 끝나고 6시간 뒤.


중국 북경 외곽 상공에 로레인 바로 아랫급의 차원전함 두 척이 나타난 것이 로레인의 탐지망에 포착되었다.


전함이 등장함과 동시에 세라를 통해 그 사실을 보고받은 유미르는 대기권 내에서 함대전을 벌여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그럴 일은 아예 없었다.


중국이 사 온 차원전함 두 척이 하필 제르온에서 만들어진, 지금 지구 곳곳에서 온실가스와 자원을 쉬지 않고 채집하고 있는 스물일곱 척의 전함과 같은 함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라를 통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전달받은 유미르는, 그 즉시 세라로 하여금 중국이 선보인 차원전함 두 척의 지휘권을 강탈하도록 했고, 세라는 그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만물상에서 함선의 운용 권한을 초기화한 덕분에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제르온에서 만들어진 모든 인공지능체들은 내게다맡겨에게 뒷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차원전함의 운용 또한 인공지능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상, 무조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지휘사령부에는 곧바로 비상이 걸렸고, 이천공장에 나가 있던 유미르도 행사 막바지에 비상 연락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로레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로레인으로 돌아온 유미르는, 함교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미 지휘권을 확보해 둔 중국 차원전함 델드란, 제토스와 통신을 연결해, 두 전함을 로레인 휘하에 함대 전력으로 편제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레인의 인공지능체가 중국이 동원한 두 전함이 자신의 휘하 함대로 완전히 편입되었음을 보고하는 순간, 이윤문 대통령 이하 지휘사령부의 모든 이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만, 그렇게 지휘통제권을 확보한 두 차원전함은 일단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차원전함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있을 중국공산당 수뇌부에, 결정적인 순간에 더 큰 절망을 안겨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금, 델드란과 제토스는 유미르의 명에 따라 북경 상공에서 장오진 주석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인민해방군 수뇌부 전원을 태우고 그들의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위장한 채로 대기 중이었고, 유미르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탑승해 있는 인원 모두를 포로로 잡은 채로 기함인 로레인 근처로 날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튼 이번 주에 만물상에서 제르온 산 우주선이나 전함을 사 온 나라들이 최소 몇 나라는 될 테니까 신경 좀 써줘, 세라.”


이천공장 행사에 참석해 있던 중에도 미국에 제르온제 구축함이 한 척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것에 더해, 중국에서 확보해 온 차원전함까지 제르온제라는 사실에, 유미르는 지금 만물상에서 파는 우주선들 중에서 차원이동이 가능한 고성능 전투함선들은 대부분 제르온에서 만들어진 것일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의 가치가 가차 없이 평가절하되는 만물상인 만큼, 상상 이상의 화력과 설비들을 갖춘 우주전함을 헐값에 만물상에 넘길 존재는 거의 없거나 설령 있더라도 많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일이 카탈로그를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망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제르온 제국에서 과거에 사용되던 것들이나 과거에 인류연합이 아그리마를 노획했을 때 아그리마에서 빼낸 우주선들 위주로 판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또한 인류연합 소속 문명 중에서 외우주 항행이 가능한 우주선에 차원이동 기술까지 적용할 수 있는 문명이 제르온 외에 그리 많지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 네, 알겠어요. 그런데 델드란과 제토스를 우리가 빼앗아 온 것을 다른 나라들이 알게 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응, 알아. 그래도 전쟁 중에 적국의 군사자산을 파괴하거나 탈취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누구도 우릴 비난할 명분은 없어. 또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에서 사 온 것들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기도 하고.”


실제로 아까 미국에서 잠깐 등장했던 구축함은, 미국이 적성국이 아닌 만큼 함선의 존재를 확인했음에도 지휘권을 빼앗지는 않았다.


-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만, 자기들이 사 온 것들을 빼앗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저희를 더 경계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더 경계해야지. 그래야 우리에게 더 강한 힘이 실릴 테니까. 뭐, 우리만큼의 전력을 갖출 수 있는 나라도 없겠지만, 여차하면 자기들이 가진 것마저도 빼앗길 수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확실히 우리 눈치를 보게 될 거야.”


국제정치의 비정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그의 말에, 세라는 그가 이제 군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네,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 * *



평양 주석궁 지하 벙커 안, 최고사령관 이기동이 자신의 방 가운데 놓인 소파에 기대앉아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던 차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자동문이 열리며 참모총장 조영일이 들어왔다.


그를 본 이기동은 손에 든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상체를 세웠다.


“최고사령관 동지, CIA에서 회신이 왔습네다.”


“기래? 뭐라 하든?”


빠른 걸음으로 소파 근처로 다가온 조영일이 소곤거리는 소리로 보고했다.


“그거이 남조선 모르게 받아줄 수는 있는데, 전함을 자기들한테 넘기라고 합네다.”


“흠. 일단 여 앉아보라.”


조영일의 대답을 들은 이기동은 그가 앉은 자리 옆에 허리를 숙이고 선 그의 손을 잡아 옆에 앉혔다.


“기래, 미제놈들은 여직 차원전함을 확보를 못 한 모양이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네다, 최고사령관 동지. 자본주의 인민들이 우리 공화국처럼 G를 한군데로 확 끌어모으기가 쉽지가 않지 않겠습네까? 기러니 우리가 차원전함 같은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게 마음에 안들어서 기런 것 같습네다.”


“으음. 확실히 기렇긴 하디. 기나저나 중국이 북경 상공에 똑같은 차원전함을 두 척이나 띄웠던데 말이디.”


지금 중국의 관영매체를 비롯한 모든 중국 언론은 북경 외곽에 떠오른 거대한 차원전함들을 방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대한 우주군 전력을 중국도 확보했으며, 한국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식의 선전방송이 지금 이기동이 있는 방 한쪽의 디스플레이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그 디스플레이에 눈을 돌렸던 조영일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시 이기동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중국하고 힘을 합쳐서 남조선 항모들을 까부수실 생각이십네까?”


“함재기만 빼면, 화력은 항모나 전함이나 거기서 거기라 하지 않았어? 3 대 3인데, 함 붙어볼 만도 하디.”


평소의 건들거리는 말투로 돌아온 것을 보면 진짜 속내는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당장 한국의 항모 전력과 붙어볼 만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기동의 언사에 참모총장 조영일은 똥줄이 타는 것 같았다.


그가 보기에 중국의 차원전함과 힘을 합쳐 싸운들 북조선에 득이 될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중국은 무조건 자기네 차원전함을 앞세우지 않으려 할 게 분명하고, 결국 남조선 항모 세 척의 집중포화를 때려 맞는 것은 북조선 전함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북조선은 크게 득 될 것도 없는 싸움에 비싸게 주고 사 온 전함만 날리는 꼴이 될 것이 뻔했다.


“최고사령관 동지, 대동강 남쪽까지 죄 밀린 터라 지금부터 싸워봐야 답도 없습네다. 또 중국이 우리 전함을 눈독 들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네다. 아니, 우리 전함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지들 것은 온존시킬라고 할 것이 뻔합네다.”


조영일이 다급하게 쏟아낸 의견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길티? 흐음, 총장 동무, 우리가 사 온 차원전함 탑승 정원이 몇이라 했디?”


“800만입네다. 아직 실물을 꺼내 보지는 못했지만서도, 그 만물상 에미나이 말을 들어볼라치믄 최대로는 아마 그 두 배도 더 태울 수는 있을 겁네다.”


조영일의 대답에 이기동이 그와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기럼 전함에 인민군하고 인민들 최대로 태우고 우리는 날아다니면 되는 거 아이야? 기껏 비싸게 주고 사 온 전함을 미제놈들한테 갖다 바치지 않고 말이디.”


“그것도 밑에서 의견이 나왔습네다만, 식량이 문젭네다.”


“아니지, 아니야. 일단 죄다 태우라우. 인민군이고, 인민이고 간에 죄다 깡그리 끌어다가 함선에 태우고 식량도 실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실으라우.”


“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네까?”


대책 없이 인민들을 전함에 태우라는 말에 조영일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이기동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말을 이었다.


“총장 동무, 북조선 땅만 땅이 아니야. 저 아프리카에 주인 없는 땅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야. 남조선 방송에서도 봤다시피 차원전함으로 전기, 물, 자원까지 죄다 확보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이 차원전함으로 그냥 아프리카 빈 땅 중에 골라서 북조선보다 넓은 땅을 차지하면 그만 아이갔어?”


“아! 그런 방법이!”


아예 반도를 벗어나서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이기동의 말에 조영일이 무릎을 탁하고 쳤다.


“미제도 아직 차원전함은 없는 모양이니까, 그치들이 쳐들어오지도 않을 거고, 설사 쳐들어와도 우리 차원전함으로 막아버림 그만이고 말이디. 또 남조선이 쫓아와서 우릴 격침시킬라 하면 떼놈들이 남조선 뒤를 칠 거고, 만약에 우리 전함을 남조선이 실제로 격침시켰다가는 민간인 학살이 될 거니까 우리가 날아가도 남조선은 손 놓고 가만히 있을 거다, 이 말이디.”


“화, 확실히 그렇습네다, 최고사령관 동지.”


이기동이 덧붙인 설명에 이제 확신에 찬 표정이 된 조영일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알아들었으면 일단 죄다 끌어모아서 날래날래 태우라우. 최대한 많이 데려갈수록 좋은 거니까. 아, 젊고 건강한 능력자들 위주로 먼저 태우는 거 잊지 말라우.”


“아, 알갔습네다. 즉시 시행하갔습네다. 아! 그런데 핵력량은 어떡합네까? 전함에 싣고 갑네까?”


핵미사일의 처리에 대한 조영일의 물음에 이기동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그 하등 쓸 데도 없이 돈만 처먹고 자리만 차지하는 기거, 그냥 남조선에 줘버리라우. 기거 없애는 것도 일인데, 우리가 가진 핵력량을 죄다 넘길 테니까 우리 전함이 이륙하기 전까지 한 일주일 정도 진군을 멈춰 달라고 하면 되지 않캈어?”



* * *



- 미르님! 평양 북쪽에 차원전함이 등장했어요.


“뭐?”


함장실 침대 위에 누워 잠시 쉬고 있던 유미르는 세라의 급한 보고에 상체를 벌떡 세웠다.


- 영상 및 신호 확인 결과, 제르온에서 만들어진 전함이에요. 지금 바로 지휘권을 탈취할게요.


“어! 그렇게 해. 빨리!”


중국과는 달리 북한과는 현재 교전중이었다.


전함을 상공에 띄움과 동시에 주포를 발사할 위험도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다급한 마음을 금하기 어려웠다.


급히 몸을 일으킨 유미르는 테이블 위에 던져두었던 베레모를 집어 들고 곧장 방을 나서 함교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함교에도 비상이 걸려 있었고, 급하게 상급자들을 불러오기 위해 뛰쳐나오던 참모진들과 장교들이 베레모를 쓰며 함교로 들어서는 유미르를 보고 잠시 걸음을 늦춰 빠르게 경례하고 다시 뛰어갔다.


그와 마주치자마자 그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 다시 한번 북한의 차원전함을 강탈해 올 것을 기대하는 듯했다.


발걸음을 옮겨 함교 안에 들어선 유미르의 시야에 함교의 메인 디스플레이가 들어왔고, 평양 북쪽 상공에 거의 지면에 닿을 듯 나타난 거대 차원전함이 보였다.


고고도에 띄워둔 그리폰들로 북한 전역을 감시하는 와중에 평양 상공에 있던 그리폰 두 기에서 보내오는 광학신호를 메인 디스플레이에 띄운 것이었는데, 화면에 비친 전함은 역시나 중국 북경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메인디스플레이에 막 시선을 집중했을 때, 세라의 보고가 들려왔다.


- 지휘권 탈취에 성공했어요.


‘휴우. 다행이다. 주포는 봉쇄했지?’


- 네, 지휘권 탈취 직후에 바로 주포부터 가동할 수 없도록 조치했어요.


‘잘했어, 세라.’


차원전함은 차원항모에 비해서는 크기가 조금 작아 동력원인 핵융합로가 2기 덜 장착되고 운용할 수 있는 함재기의 수에서 큰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차원항모와 동급으로 볼 수 있는 함선이다.


그래서 주포도 차원항모와 같이 행성파괴급 화력을 지니고 있고, 로레인도 저 전함에게 주포로 선제공격을 당한다면 방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니, 중국 차원전함 때와 마찬가지로 최우선적으로 주포를 봉인해야만 했다.


그때 오퍼레이터 역할을 하던 정보참모부의 한 장교가 내지른 고성이 함교에 울려 퍼졌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입니다. 메인 디스플레이를 봐주십시오.”


동시에 메인 디스플레이에 평소에 보던 한복 차림의 이지선 아나운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 남조선 괴뢰도당의 폭거에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원한 영도자이시자 최고사령관 동지께서는 결단을 내리시었다. 이에 최고사령관 동지의 남조선 괴뢰도당에 대한 최후통첩을 전하고자 하니, 괴뢰도당의 수괴는 이를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고사령관 동지의 영도에 따라 전 인민과 함께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남조선 괴뢰도당에게 일말의 양심과 동포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다면 공화국에 대한 침략행위를 즉각 멈춰, 우리 인민들이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앞으로 열흘 동안 공화국 인민들은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손수 마련하신 차원전함에 탑승하여 공화국과 새로운 미래를 함께 하는 영광을...]



지금 이지선 아나운서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짧게 요약하면, 자리를 비켜줄 테니 열흘의 말미를 달라는 것이었다.


“전함에 탑승하는 동안 진격을 멈춰 달라는 말이지, 저거?”


방송을 보는 중에 함교에 도착한 이윤문이 곁으로 다가오며 확인하듯 물었다.


유미르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려 가볍게 목례했다.


아직 거수경례가 몸에 배지 않은 탓에 좀처럼 손이 먼저 올라가지 않는 그였다.


“오셨습니까? 대통령님.”


“인사는 됐네. 아무튼 내가 맞게 이해한 건가?”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윤문은 잠시 유미르를 향해 있던 시선을 메인 디스플레이로 돌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기껏 차원전함을 사 왔는데 중국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와 싸우겠다가 아니고, 다른 곳으로 꺼져 주겠다는 건 누구 아이디어일까?”


“저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대통령님.”


“그럼 열흘을 기다려 달라는 요구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어진 그의 물음에 유미르는 손을 들어 평양 북쪽 상공의 차원전함을 비추고 있는 서브 디스플레이 하단을 가리켰고, 그의 의도를 파악한 세라가 그가 가리킨 부분을 확대해서 해상도를 높였다.


확대된 부분에는 양손에 바리바리 짐가방을 들고 있는 민간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차원전함에서 내려온 기다란 계단을 바삐 오르고 있었다.


“차원전함이 등장하자마자 벌써 사람들이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진심인 듯합니다.”


“그렇군. 그리고 저 전함의 지휘권은 자네가 벌써 손을 써뒀을 테지?”


“네, 물론입니다.”


간명하게 대답하는 유미르를 힐끗 본 이윤문은 역시나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이 나오는 메인 디스플레이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빠르구만. 아무튼 일단 지상의 오거와 그리폰은 진격을 멈춰주게, 유사령관. 이기동 주석과 통화할 필요가 있을 듯 싶군.”


“네, 알겠습니다. 즉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서브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유미르가 이윤문을 향해 몸을 돌려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일 때, 로레인의 음성이 함교에 울렸다.


- 함장님, 평양 상공의 차원전함 세파스에서 교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조영일 참모총장이라는 자가 우주군 사령관과 대화하고 싶다는 메시지입니다.


로레인의 보고에 함교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유미르를 향했고, 짐짓 놀란 표정을 한 이윤문도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유미르는 담담하게 이윤문에게 지시를 구했다.


“대통령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디 연결해 보세나.”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로레인, 내가 함장석에 앉으면 통신 연결해. 대통령님께서 화면에 잡히지 않도록 카메라 화각 조정하고.”


무슨 대화를 하려는 지는 감이 왔지만, 대통령이 교신에 응하기에는 상대와 격도 맞지 않은 데다가 대통령이 로레인에 탑승해 있다는 것을 적에게 알려줄 필요도 없었으니, 가능하면 유미르 혼자서 교신하는 편이 나았다.


- 네, 알겠습니다, 함장님.


로레인의 대답을 들으며 유미르는 천천히 함교 한가운데 위치한 함장석으로 걸어가 앉았다.



곧 세파스와 통신이 연결되었다는 로레인의 음성과 함께 메인 디스플레이에 적당히 살집이 있는 인민군 장성 차림새를 한 중년인의 상반신이 나타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함장석에 앉은 그 중년 남성이 조선인민군 참모총장 조영일임을 유미르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지만, 상대방은 통신 연결이 된 것인지 옆의 부관을 돌아보며 묻고 있었다.


- 이거 연결이 된 거이네?


“반갑습니다, 대한민국 우주군 사령관 유미르입니다. 조영일 참모총장님이시죠?”


대뜸 먼저 건넨 유미르의 인삿말에 조영일이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 험험, 반갑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참모총장 조영일이외다.


“네, 저와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유미르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만 보던 조영일이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 내 단도직입적으로다가 말하리다. 우리는 본래 남조선을 공격할 의사가 없었고, 지금도 그거는 같소.


“흐음, 일전의 이능력자 특수부대는 그럼 어찌 된 일입니까?”


- 그건 중국이 억지를 써서 빼앗아 간 거나 마찬가지요.


“네, 그렇군요.”


변명 같았지만, 일리가 아주 없는 말은 아니었다.


유미르가 아는 바로도 북한 이기동 정권은 중국공산당의 요구와 지시에 따른 것만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 남조선이 차원항모를 세 척이나 동원하는 바람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차원전함을 사 오기는 했지만, 우리는 이 배로 남조선과 싸울 의사가 없소.


“으음, 중국과 힘을 합하면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실 줄 알았는데요?”


- 하하하하. 그 떼놈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힘을 합친다는 말이오? 우리가 김정은이를 몰아내고 나서 살짝 아쉬운 게 있어서 그놈들 위세를 조금 빌렸다고, 지금껏 우리를 종 부리듯 하는 작자들이오.


“그럼 항복하시면 될 텐데요. 저희가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아셨을 것 아닙니까?”


- 하하하하하하. 거, 젊은 친구가 말을 너무 쉽게 하는구만. 항복이 어디 길케 쉽게 되나? 사령관 동무 같으믄 전선에서 밀린다고 대뜸 항복부터 하갔어? 길구 애초에 남조선은 우리 북조선한테는 항복 요구도 하지 않디 않았나 이 말이야.


“흠.”


어제 중국에만 항복을 요구했던 이윤문 대통령의 성명을 꼬집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유미르도 딱히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성명으로 발표할 내용에 대해 논의했던 사전회의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까지 진군하여 한반도 전역을 수복할 생각에 항복을 요구할 상대에서 북한을 제외하자던 이윤문의 의견에 동조했던 것은 유미르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가 대꾸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는 듯 보이자, 조영일은 더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본론을 꺼내 들었다.


- 아무튼, 지금부터 우리가 떠나기 전까지 열흘 동안만 공격을 멈춰주기오. 그러면 조용히 이 땅을 내어주고 떠나겠다는 거이 우리 최고사령관 동지의 확고한 의지요. 우리가 가진 52기의 핵미싸일까지 죄다 남조선에 넘겨주고 아예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이오.


차원전함이라는, 핵보다 강한 전력을 확보한 이상 이제는 쓸모도 없는 핵미사일을 가지고 있어 봐야 골치만 아프거나 해체하는 비용만 들 것이었으니 떠넘기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그래도 제안의 진정성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다만, 전장에서 후퇴하거나 도주한 병사들, 피난하는 주민들까지 모두 그대로 보내주었기 때문에 지금 평양에는 수백만의 주민들과 인민군 병사들로 바글바글한 상태였고, 만약 이기동이 이들까지 포함해서 북한 주민 대다수를 데려가 버린다면, 이전에 계획했던 영토 수복 이후의 재건 사업에 좋을 것은 없었다.


“다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 맘 같아서야 그러고 싶디만서도, 그럼 예의가 아니디 않캈소? 전함 한 척에 다 태울 수도 없고 말이디. 해서 함께 가고자 하는 인민들만 태울 생각이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 기거야, 우리 맘이디. 다만, 우리가 어디를 찍든 간에 남조선에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소.


이미 지휘권까지 빼앗아 온 참이었으니 차원전함을 빼앗아 오면 굳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도 없이 이기동 정권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조영일이 데려가겠다고 한 사람들은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에 쉽사리 녹아들지 못할 것이 분명한 북한의 지도부와 골수 노동당원들, 그 가족들이 태반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준다면 역으로 통일 이후의 대통합에 큰 도움이 되어줄 가능성도 다분했다.


- 미르님, 참고하실 만한 정보인데요. 조영일과 통신이 연결되기 전부터 세파스에서는 아프리카 북서부 서사하라 지역과 모리타니 지역, 중동부의 앙골라, 남서부 나미비아 쪽을 탐색하고 있네요. 모두 지금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에요.


세라의 보고에, 유미르는 이기동이 대격변 이후에 인류가 철수한 빈 땅으로 갈 생각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물과 자원,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차원전함 세파스가 있고 수백만의 이능력자들까지 있는 마당에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이나 괴수들이 점령한 정글에 자리를 잡는다 한들, 지금 북한지역의 기반을 버리더라도 큰 문제 없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한 것이 분명했다.


“으음, 제가 결정할 수는 없는 사항입니다. 대통령님과 말씀을 나눠보고 다시 연락드리지요.”


- 기카믄 대동강 남쪽까지 온 그것들은 어떻게 할...


“다시 연락드릴 때까지 임시로라도 진군을 멈추도록 하죠.”


직전에 이미 이윤문으로부터 진군을 잠시 멈추라는 언질을 받았던 만큼 그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일단 진격을 멈춰준다는 말에 조영일의 얼굴이 환해졌다.


- 기래요. 나중에도 좋은 소식이 있을 거로 내 믿겠소. 우리가 독하게 맘먹고 이 차원전함으로 서울 상공에서 함포를 쏴 재끼면 남조선이고, 북조선이고 다 같이 망하는 기니끼니, 잘 좀 생각해 보시라고 꼭 전해주기요.


“하하하, 네.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이기동이 허튼 생각을 한다 한들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었지만, 굳이 미리 알려줄 필요는 없었기에 유미르는 멋쩍게 웃으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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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sa******
    작성일
    24.05.16 07:28
    No. 1

    외부의 적이 없어지면 남한 내부에서 너무 많은 힘을 가진 미르를 경계하고 싫어 하겠죠.그게 정치이고 권력을 나누기 싫어하는, 인간의 심성인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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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170화. 그냥 받아들이세요. +1 24.05.06 462 9 24쪽
170 169화. 해드릴 수 있죠. +3 24.05.05 500 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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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165화. 둘 중 하나지. 24.05.01 530 12 18쪽
165 164화. 간만에 재밌는데? +2 24.04.30 553 12 16쪽
164 163화. 내가 원하는 대로. 24.04.29 540 10 20쪽
» 162화.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1 24.04.28 548 11 24쪽
162 161화. 어림없어요. +4 24.04.27 626 11 25쪽
161 160화.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2 24.04.26 597 11 24쪽
160 159화. 지구는 내가 지킨다? +2 24.04.25 600 13 19쪽
159 158화. 신세계라고? 24.04.24 585 12 15쪽
158 157화. 절망을 안겨주는. +2 24.04.23 610 12 15쪽
157 156화. 각자의 역할 +2 24.04.22 625 13 16쪽
156 155화.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5 24.04.21 624 1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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