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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님의 서재입니다.

깡패가 아니라 배우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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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향수
작품등록일 :
2023.09.18 16:44
최근연재일 :
2023.10.0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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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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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3화.

DUMMY

다음 날. 최강철은 아침 일찍부터 현장을 찾았다.

개인 촬영은 없지만, 이광기가 흘린 말 때문이다.


[ 자, 이거 1화 대본. 강철씨가 오고 나서 내용이 약간 수정됐어. 봐봐. ]

[ 내일 재촬영이 있을 예정인데, 혹시 강철씨도 와서 보겠나? 어차피 다 도움 되는 거니까. ]


강철은 흔쾌히 그 말을 받아들였다.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연기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오늘은 드라마의 꽃인 주인공들의 열연을 지켜볼 수 있다.

한때 주인공 역할을 했던 강철에게도 남다른 감정이 피어오른다.


이광기가 특별히 내준 옆자리에 앉은 강철은 아주 흥미로운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봤다.


메인 빌런(극 중 강철)이 휩쓸고 간 현장.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남주인공 천재 프로파일러 강건우, 여주인공 서울지검 검사 출신의 특임검사 배유나의 신으로 리드된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폐 건물.

낡은 철문이 열리며 쇠를 긁는 신음을 토한다.


끼이이이-


강건우와 배유나는 난장판이 된 현장을 보고 경악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조폭 패거리들.


“······.”


그들은 전국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조폭 무리 중 하나였다.

동네 양아치들로 구성되어 있던 일개 깡패 무리는 어느샌가 세력을 키워 이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해버렸다.

도박, 성매매는 기본이며 마약, 장기매매까지 손을 대고 있는 실정.

명성 있는 대기업 회장까지 엮여 뒤를 봐주고 있는 터라 여검사인 배유나도 기회를 엿볼 뿐, 쉽게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토록 쫓아다니던 상대 보스, 골칫덩어리인 그들을 잡아들이려면 최소한 1개 중대의 힘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찰에게도 겁 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그들이기에.


그랬던 그들이 의식불명 상태로 모두 쓰러져있었다.

배유나는 CCTV도 없는 한적한 그곳에서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음에, 한탄했다.


“도대체 누구 짓이지?”


순간, 배유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이광기가 외쳤다.


“컷! 오케이 좋아.”


톤 다운된 스커트 여성정장.

정의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단아한 복장을 차려입은 배유나.

넘치는 골반이 바디라인을 따라붙고 그 밑으로 퍼지며 섹시함까지 풍긴다.

그런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던 스태프들은 서로 중얼거렸다.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인성 빼고.”

“그건 인정. 그것까지 완벽했으면 진짜 배 아프지.”

“근데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하얘? 설마 밀가루 바르는 거 아냐?”


촬영은 탄탄대로를 걷듯, NG 하나 없이 아주 편안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휴식을 위해 자리에 앉은 배유나는 무의식에 누군가를 보며 흠칫거렸다.

팔짱을 끼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자신을 살벌하게 쳐다보고 있는 최강철이었다.

사람을 여럿 죽이고도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을 것만 같은 눈빛.

물보다는 피를 더 좋아할 것만 같은 끔찍한 외모가 살을 떨리게 만든 것이다.


‘지금 혹시 청담 쪽 가세요? 남자 보러.’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미행이라도 붙였나?


이후, 배유나는 생전 내지 않던 NG를 내기 시작했다.

솟구치는 심박수를 눌러보며 애썼지만, 무의식에 눈이 마주칠 때면 본능적으로 다시 요동쳐댔다.


그때, 이광기 PD의 목소리가 그녀를 번쩍 깨웠다.


“유나 씨,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순간, 배유나는 옆에 있던 남주인공 강건우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받쳐주는 사람 연기가 오늘 영... 마음에 안 들어서요.”


앵글 안에서의 그녀와는 상반된 모습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무덤덤한 표정이다.

한두 번이 아니란 걸 증명하는 셈이다.


“몰입이 되게 만들어줘야 연기를 하죠.”


보다 못한 이광기가 인상을 팍팍 구기고 있는 배유나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조금 쉬었다 가자고. 서로 얘기 좀 해 봐.”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지면 좀 나을까 싶었던 이광기가 그녀를 배려했다.


배유나는 상대가 한심하다는 듯 숨을 내쉬며 현장을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광기는 쓴웃음을 삼켰다.

강건우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문제는 명백한 그녀다.


“성격만 좀 고치면 참 좋은 배우가 될 텐데.”

“네?”

“아니야. 그냥 혼자 한 말일세.”


결국, 이광기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강철은 배유나가 떠난 자리를 바라봤다.

안 본 사이 어느새 A급 배우로 성장해버린 그녀.

드라마나 영화 할 것 없이 연기력 하나만큼은 어디서나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드라마 지원에 아주 큰 기여까지 했다는데···

그것을 빌미로 삼아 더 이러는 걸까?


그때, 이광기가 물었다.


“강철씨는 결혼했나?”


강철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입니다.”

“여태 뭐 하고?”

“일이 바빠 만날 시간이 없었습니다.”

“눈이 높은 건 아니고?”

“절대 아닙니다.”


전생은 연기에 미쳐서 그랬다 치지만, 현생은 9할이 얼굴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얼굴 보고 흠칫흠칫 놀라는 게 일상이니까.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어?”


강철은 순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심성이 고운 사람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이광기가 실소를 터트리며 맞장구쳤다.


“사람 좀 볼 줄 아는구만? 맞는 말일세. 겉만 뻔지르르해봤자 다 무슨 소용인가, 마음씨 고우면 그게 장땡이지. 안 그래?”


강철은 살인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정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나도 소싯적에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봤지만, 결국 오래 남는 건 그 마음이야.”

“저도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때, 휴식을 위해 나간 줄만 알았던 배유나가 최강철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철이 고개를 숙이자, 인사도 무시한 채 입을 열었다.


“오늘 촬영이 없는 걸로 아는데?”

“스토리가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요. 보면 많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해서 왔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했어요? 생긴 거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어제 대화가 많이 불편했는지, 감독이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팍팍 낸다.

최강철은 그녀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좀 부지런합니다.”


순간, 배유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어느 순간 떡하니 나타난 일반인이 아무리 연기라지만 자신을 겁박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을 어떻게 다 꿰고 있는 건지···


초조한 배유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요. 깡패 맞죠? 아니, 깡패 출신이죠?”


결국, 옆에 있던 이광기가 중재에 나섰다.


“유나 씨. 강철씨 그런 사람 아니라니깐.”

“확실히 조사해 보신 거 맞아요?”

“그래. 사람 앞에 데려다 놓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강철씨 섭외하고 나서 우리가 다 조사해 봤어. 티끌 하나 없는 사람이야.”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회사에서 어떻게 나올지 아시죠?”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배유나는 강철에게 고개를 홱 돌려 말했다.


“눈 좀 그렇게 뜨지 말아주실래요?”


강철을 위아래로 쏘아보며 말을 이어붙였다.


“불쾌하니까 노려보지 좀 말아 달라고요.”


강철은 쓰게 웃었다.

혹시나 일이 커질까 일부러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아, 이게 노려보려고 한 게 아니라···

“PD님. 촬영 들어가시죠.”


해명을 위해 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배유나는 촬영장 안으로 훅 들어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강철은 뒷머리를 머쓱하게 매만졌고.

이광기는 그런 강철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듯 말했다.


“강철씨가 좀 참아. 유나씨도 곧 적응할 거야.”

“······.”


결국, 강철은 짧은 한숨을 내뱉고 말았다.

아니, PD 님. 전 정말 노려보지 않았다니까요?


***


촬영이 재개되었다.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배유나는 어느 순간 다시 NG를 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NG 퍼레이드.

보통 화기애애한 현장에서 웃음이 터져 NG가 길어지는 경우는 있으나, 이건 상황이 달랐다.

배유나가 NG를 낼 때마다 괜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촬영 현장은 얼음장이 돼버렸다.


“신경 쓰여서 연기에 집중이 안 되네. 정말.”


최강철은 애써 시선을 피하는 배유나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유나 씨, 오늘 왜 저러는 거야?”

“어제 무슨 일 있었나?”


회식 자리에서 했던 그 한마디.

강훈이었던 시절, 알고 지내던 배우가 배유나에 대해 어떠한 사실을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선수를 몰래 만난 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만나는 모양이다.


강철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신을 곁눈질하는 배유나를 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배유나의 눈은 귀신이라도 본 듯 지진이 일었고.

강철은 이내 자리를 떠났다.

NG가 자꾸 늘어나면 드라마 촬영에 차질이 생길 테니까.


드라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스텝들도 말이다.


***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최강희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띠링- 띠링-


그런데, 최강희는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크게 떴다.


-야, 이거 너네 오빠 아니냐?

-덩치만 봐도 딱 니네 오빤데?

-저런 몸은 우리나라 천지를 다 뒤져도 너네 오빠 말곤 없다야.


친구들이 보낸 기사에 누가 봐도 자신의 오빠 같은 사람이 떡하니 서있었던 것이다.


[ 촬영장에서 난동을 부리던 조직폭력배들을 최모 씨가 쫓아냈다. 중략······ 최 모씨는 한때 신의파의 검거를 위해 경찰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인 일반인이었지만 배우로··· ]


“아니, 이게 뭐야?”


얼굴은 모자이크 되어 있었지만, 무쓸모였다.

큰 덩치의 유전자만 봐도 자신의 오빠인 걸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마치 모자이크를 뚫고 얼굴이 투시되어 보이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게 했다.


최강희는 기사 내용을 천천히 훑어보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며칠 전, 자신에게 농담 삼아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오빠가 갑자기 연기가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머리를 짜릿하게 만든다.

최강희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엄마!!!”


작가의말

항상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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